[단편소설] 문 앞에서

낭미 | 기사입력 2016/05/05 [14:27]

[단편소설] 문 앞에서

낭미 | 입력 : 2016/05/05 [14:27]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일어서서 현관문을 쳐다보았다. 주먹으로 두드리는 소리가 다시 크게 들렸다. 뒤돌아보았다. 아무도 없다. 나는 주춤거리며 뒷걸음질쳤다. 문은 잠겨 있고 그것을 열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당연한 소리다. 하지만 문을 열 것인가, 말 것인가를 정해야 할 때 당연한 건 없었다. 소리는 계속 들렸다. 점점 빠르고 점점 거대하게 나를 덮칠 듯이.

 
“야, 뭐 한다고 이제 나와?”

현민이 불쑥 던진 말이었다. 앞 테이블에는 벌써 혼자 반쯤 마신 맥주잔이 놓여 있었다. 양복차림을 하고 입술을 비죽거리며 나를 쳐다보는 모습에서 성가신 피로가 느껴진다. 나는 군소리 없이 맞은편에 앉아 피식 웃었다. 태연하게 맥주 오백 한 잔을 시키고 나서 메뉴판을 탁 펼쳐 안주를 고르려 한다.

“짜식, 지가 살 것도 아니면서……”

현민은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이 못마땅하다. 눅진한 냄새가 나는 맥줏집 지하에는 손님이 별로 없었다. 불경기였다. 늙수그레한 남자 몇 명이 건너편 테이블에 앉아 목소리를 높이며  성토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되먹지 않는 술집 경기만큼 텅 빈 채 줄줄이 선 택시들이 밖에서 굶주린 채 취객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불러내놓고 막상 별 말 없는 현민을 나는 쳐다보았다. 뺨이 좀 붉어진 걸 보니 앞에 놓인 잔이 첫 잔은 아닌 성싶었다. 내가 노골적으로 쳐다보았지만 현민은 눈을 내리깔고 잠자코 술을 마실 뿐이다. 눈썹이 짙고 턱이 뾰족한 녀석은 한쪽 눈에 굵은 쌍꺼풀이 있다. 뭔가 숨기고 있는 듯한 그 무표정한 눈으로 곧잘 앞을 뚫어지게 보았다. 결핍. 아무리 비싼 옷을 입고 있어도 녀석에겐 그것이 느껴진다.

“야, 우린 천출이잖아.”

녀석은 술만 들어갔다 하면 내 어깨를 얼싸안고 그딴 말을 지껄였다. 때로 녀석은 실컷 제 말을 늘어놓고, 내가 딴에 위로를 해주려고 무슨 말을 하면 비웃음을 지으며 못마땅하다는 듯이 쏘아 보기도 했다.

“난 너보다 더 넓은 세상을 봤어. 세상이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

 

남을 열등하게 만들어 한번 비웃어버리는 게, 공짜 술을 사주는 대신 그 녀석이 하고 싶어하는 행동이었다.현민은 회사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했다. 어디서 주워들은 남들 얘기를 자기 얘기로 둔갑시키기도 좋아했다. 덴마크가 레고의 원산지이며 지금도 레고를 만들어 파는 게 무역에서 큰 몫을 차지한다든지, 독일 사람들은 프레젠테이션 때 웬만한 농담에도 웃지 않는다든지, 바다 위에서 돌아가는 바람개비를 거느린 발전소가 있는데 이제 우리나라도 남의 나라 바다에 그걸 턱턱 세울 줄 안다든지, 그런 얘기를 녀석은 술자리에서 하기 좋아했다. 현민은 점점 더 흥분해서 얘기를 했는데 이유는 내 반응이 시원찮았기 때문이다.

 

“기업이 잘 돼야 대한민국이 잘 되는 거야. 나가보면 우리 기술은 아직 멀었어. 원유 말이야, 그 나라에 가서 보면 원유 빼내는 작업에서 큰 건더기는 다 선진국이 해 처먹어. 우리는 가서 떡고물이나 주워 먹으려고 그 전 작업을 하는 거야. 우리 시켜달라고 그쪽 정치인들한테 홍보하고 애교 떨고 하지. 결국 우리가 벌어오는 돈이 대한민국 경제를 지탱하는 거야. 너 그런 거 알기나 해?”

당연히 모르지. 하지만 기업들이 생각보다 큰일을 하고 우리가 기업을 좋아해주어야 한다는 뜻 정도는 얼추 알겠다.

“야, 원유를 팔면 수출국에 돈이 생길 거 같지? 안 그래. 원유를 파가는 선진국들이 그걸 가공해 또 다른 데에 팔아먹고 떼돈을 버는 거야. 수출국은 그 나라 지배층이 돈 조금 벌고. 그러니까 국민들은 자기 땅에서 나는 원유 빼앗기고 선진국 배만 불리는 거야. 우리도 그 속에 끼어보려고 머리 디밀고 있고.”

녀석은 앞장서서 머리 들이미는 일을 하고 싶어하면서도 그 나라 국민에게 원유의 이익이  돌아가지 않는 데에 분개한다. 일종의 정신착란이다. 불쌍한 녀석. 나는 녀석의 정신착란이 좋다. 나는 천출인 녀석이 일으킬 수밖에 없는 정신착란이 마음에 든다.

 

그런데 오늘은 뭔가 분위기가 다르다. 녀석은 무슨 말을 할까 말까 고민하듯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내가 안주를 반 넘게 집어먹다가 문득 재떨이를 보니 거기에는 벌써 담배꽁초가 대여섯 개 있었다. 

“야, 너 우리 마누라 알지, 마누라 토꼈다.”

“어, 어쩌다가?”

“그냥 튀었어, 임마.”

나는 얌전히 맥주로 입술을 축였다. 현민은 더 말이 없었다. 나는 슬그머니 얼굴을 쳐다봤다. 물을 끼얹은 것처럼 착 가라앉아 있다.

“쌍년, 진급되기 직전인데 회사에서 알면 어쩌려고.”

“마누라가 토끼면 회사가 싫어하냐?”

내가 한 질문에 현민은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다가 푸핫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쌍년 아니냐?”

“글쎄……”

“병신 새끼, 니가 그래서 안 되는 거야.”

불똥이 튀었다. 나는 또 맥주를 얼른 삼킨다. 목구멍이 아팠다.

“야, 그년이 바보지. 지가 나가서 어디서 살아? 어딜 가봐, 나 같은 물주를 또 만날 수 있나. 팽팽 굶다가 씹 하나 달았으니 아무 얼간이하고 달라붙어 뜯어먹고 살겠지.”

뭐 그 정도 독설을 퍼부어댔으니 그만 하면 좋겠는데 또 무시무시한 욕을 늘어놓는다.

 

“저, 맥주 더 먹을 거면 같이 시킬까 하는데……”

물었지만 대꾸가 없어서 나는 눈치를 살피며 벨을 눌렀다.

“난 잘 살아야 한단 말이야. 행복해져야 한단 말이야!”

녀석은 행복에 인생을 걸었다. 그게 녀석과 나의 차이점이었다. 녀석은 태어난 동네에서 떠났고 부모와 등진 채 좋은 직장에 들어갔고 혼자 좋은 차를 샀고 혼자 좋은 아파트를 샀다. 나는 어릴 때 살던 집에 그대로 살고 부모가 기가 막혀 그 집을 떠났고 직장은 아예 안 구했고 혼자 라면을 끓여먹고 혼자 죽을 생각을 한다. 나는 그만하면 녀석이 행복해졌을 줄 알았다. 그런데도 아직 행복해지지 않았나보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돼.”

녀석은 얼굴을 손바닥으로 싸쥐었다. 순간 녀석이 안쓰러웠다. 이유야 어쨌든, 처지야 어떻게 달라졌든, 나는 한때 같은 빌라에서 산 저 녀석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 녀석은 그동안 충분히 노력했으므로. 악의를 품고도 세상을 향해 웃었고 주먹을 불끈 쥐고도 악수를 청했으며 죽이고 싶어도 존경한다고 말해왔으므로, 그렇게 구차하도록 세상에 빌붙어 자리 잡고 싶어했으므로 나는 녀석이 세상에 더 굽실대지 않고도 살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야, 이런 좆 같은 경우가 어디 있냐. 다 된 밥에 재를 뿌렸단 말이지, 그년이. 넌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지? 병신.”

나는 잠깐 숨을 멈췄다. 드물게 올라오는 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비굴하게 다시 웃었다.

 

내가 그날 문을 열어주었다. 그녀는 지친 행색으로 거기에 서 있었다. “들어오세요.” 나는 그렇게 말해버렸다. 그녀가 안전하게, 완전하게 안으로 들어온 것을 확인하고 나는 문을 잠갔다. 녀석의 부인은 내 집에 있다.

 

뜻밖이었다. 녀석이 인사불성이 되어버린 것이다. 누가 봐도 오늘의 병신은 내가 아니라 토하면서 질질 끌려가는 이 녀석으로 낙찰될 것이다. 나는 녀석이 토한 자리를 열심히 휴지로 닦고 녀석의 지갑을 뒤져 계산을 하고 콜택시를 불렀다.

“야! 난 집에 안 가!”

녀석은 내 어깨에 들러붙어 있는 주제에 버럭 소리를 쳤다. 잠시 망설였다. 어디로 갈까. 부인 잃었다고, 그보다 행복의 조각퍼즐 하나 잃었다고 몸부림치는 어이없는 이놈을.

 

택시에서 내렸을 때 들큼한 냄새가 났다. 그건 길에 짓이겨진 비둘기가 풍기는 냄새였다. 가로등 아래로 붉은 살덩이와 뼈와 깃털이 뒤섞인 판판한 것이 보였다. 오래된 버즘나무들은 검은 잎을 소리 없이 펄럭이며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현민이 깨어나 익숙한 나무들과 빌라를 본다면 경악하겠지.

낡은 빌라 앞까지 가서 잠시 숨을 토하곤 안으로 들어간다. 현민을 끌고 모서리가 닳고 금이 간 계단을 밟아 올라갔다. 옥색 페인트칠이 벗겨진 낡은 철문이, 우리 집의 것과 똑같은 철문이 나타났다. 문 앞에서 나는 잠깐 망설였다. 새벽 세시였다. 머뭇거림을 눈치챈 양 현민이 쾅하고 쓰러져 머리를 문에 박았다.

 

“누구세요?”

안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니, 접니다. 아래층에 사는 정훈이요. 현민이 재우러 왔어요.”

문이 조심스레 열렸다. 나는 얼른 고개를 숙였다. 입에서 불쑥 나온 ‘어머니’ 소리가 스스로 낯간지러웠다. 현민의 어머니는 작고 말랐다. 그의 어머니는 우두망찰하게 서서 아들을 내려다보고 다시 한 번 나를 쳐다보았다.

“저, 같이 술을 먹다가 이 친구가 취해서요. 근데 여기 오겠다고 하도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데려왔습니다……”

뻥인 줄 알겠지. 현민은 요 몇 년 새에 집에 오지 않았다. 그런데 술을 먹다 난데없이 ‘어머니!’를 부르짖으며 취한 채 한달음에 왔다고 하니 얼마나 뜬금없을까. 내 꼴은 더 한심했다. 빌라에서 다 같이 청소를 하거나 옥상 공사비나 자잘한 수리비 같은 것을 걷을 때 늘 집안에 숨죽여 있던 총각이 새벽에 갑자기 문을 두드려 아들을 배달하는 꼴이라니. 나는 얼른 뒤돌아섰다. 허둥지둥 계단을 내려가려 했다.

“고맙다, 정훈아.”

약간 잠긴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그건 어린 아들의 친구한테 이르듯 다정하고 따뜻한 목소리였다.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계단참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세 층 계단을 내려오고 다시 반 층을 더 내려가 어두컴컴한 우리 집 문 앞에 이르렀다. 주머니에 있는 열쇠로 문을 땄다. 밖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녀가 작은방에 누워 자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불을 켰다. 그녀는 눈썹을 일그러뜨리고 입을 벌리고 자고 있다. 퀼트로 만든 치마와 꽃무늬 블라우스를 입었는데 옷만 억지로 부풀어 올라 웃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차갑고 먼지 앉은 방바닥에 그냥 누워 있었다. 나는 불을 끄고 소리 없이 방문을 닫았다.

사십 년이 넘은 빌라였다. 부모가 떠나고 난 다음 나는 혼자 살았다. ‘바보 같은 놈, 장가도 안 가고 그 집구석에서 뭐하러 썩고 있어? 아무 여자나 데리고 살아!’ 이민 간 부모는 한심하다는 듯 가끔 전화를 걸어 잔소리를 해댔다. 부모는 미국에 가서 세탁소 일을 하면서 동생을 미국의 대학원까지 졸업시켰다. 나는 이제 잠자지 않을 것이다. 더 외출하지도 않을 것이다.

 

“여기, 나랑 어릴 때 알던 친구야. 아래층에 살아. 직업이 백수야.”

현민이 나를 처음 그녀에게 소개할 때 한 말이었다. 우리는 빌라의 입구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그들이 신혼여행을 마치고 인사를 드리러 왔을 때였다. 그 여자는 천출이 아니었다. 느낌이 그랬다. 말없이 잘 웃는 인상이었다. 그 웃음이 낯설었다. 낯설어서 불편했다. 그 옆에서 현민은 의기양양했다. 그런 여자였기 때문에 의기양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계단을 올라가던 현민은 나를 내려다보고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저 녀석은 하는 일 없이 시간만 죽이고 산다고.”

“네, 그렇습니다.” 내가 맞장구치며 넘겼을 때 여자는 당황하며 말했다. “반갑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저한테 뭐 부탁할 게 있나요?” 나는 별 생각 없이 대꾸했는데 이상하게 가슴에 뭔가 조금 얹힌 듯했다. 한 번 본 그녀의 얼굴은 머릿속에서 쉽사리 잊혔지만 그 느낌은 계속 남아 있었다.

 

그녀를 두 번째 본 것은 두어 해 후였다. 빌라 앞에서 마주친 현민은 딴 사람 같았다. 유들유들한 웃음을 지으며 멀쑥한 양복을 입고 걸어오는 현민은 당당해 보였다. 그의 손에는 작은 아이의 손가락이 꼬물거렸다. 아들이었다. 돌이 지났다고 했다. 그 옆에 아내가 있었다. 그녀는 전처럼 조신하게 웃고 있었다. 어린아이를 둔 엄마가 그렇듯 피로한 행색이었다. 나는 갑자기 머리가 아파와 주먹을 쥐어 앞머리를 쿵쿵 때렸다. 그리고 가슴에 오래 얹혀 있던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건 불안이었다.

 

부모에게 이민을 못 간다고 한 건 그 직후였다. 십 년 전이었다. 어머니는 엄청 속상해했다. 미국에 기회가 많다고 했다. 공부를 잘 하는 둘째를 번듯하게 세계 최고 수준의 인재로 만들어보겠다고 기반을 다 접고 떠나건만 따라주는 않는 큰아들이 못내 어리석어 보인 것이다. 나는 동생에게 물었다. “미국에 가서 뭘 하고 싶어?” “형, 나는 꼭대기로 갈 거야, 그리고 꼭대기에서 내려다볼 거야. 아래에 줄서 있는 사람들, 버둥거리는 사람들을.” 동생은 벌써 내려다보듯 나를 쳐다보았다.

 

현민 아버지는 작년에 갑작스레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그분은 나를 ‘병신’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원조다. 돈도 못 벌고 아르바이트로 연명하고 사는 내 모습을 보고 못마땅해서 붙인 별명이다. 나는 농수산물 시장에서 일했다. 파를 봉투에 넣는 일을 종일 하면 사천 단 정도 했다. 열 단짜리 한 봉투는 이백 원이었다. 사천 단을 하면 팔만 원을 벌었다. 하루에 열두 시간을 했다. 손가락 끝이 짓무른 파처럼 독한 냄새를 피웠다. 나는 돈이 떨어지면 나가고 돈이 있으면 나가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날은, 현민 아버지의 장례식날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기분 좋게 술 한잔 한 다음이었다고 했다. 무단횡단을 할 때 손에는 먹다 남은 소주 반병이 들려 있었다.

나는 그달 치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을 모두 봉투에 넣었다. 오십만 원이었다. 검은 양복을 입고 문상객을 맞던 현민은 내가 온 것을 보고 좀 놀란 것 같았다. 그보다 더 놀란 것은 내가 내민 봉투의 액수를 확인하고서였다. ‘너 정말 내 친구였구나.’ 감격과 냉소가 섞인 표정이 떠올랐다. 나는 먼저 영정에 절을 했다. 그의 아버지는 활짝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넌 또 왜 왔냐, 짜식. 오십만 원이나 들고.’ 그러는 것 같았다.

 

현민은 아버지가 죽을 날짜를 예상이라도 한 듯 차분하게 장남의 역할을 해나갔다. 음식을 쟁반에 담고 분주히 움직이는 건 여자들이었다. 그 가운데 검은 상복을 입은 한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부인이었다. 그녀는 흐느적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맥주를 꿀꺽 삼켰다. 나와 그녀의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나를 정면으로 쳐다보았다. 그녀는 공포에 질려 있었다. 그녀는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건, 살려달라는 눈빛이었다. 그때 현민이 내 앞에 앉았다.

“야, 많이 먹어. 어휴, 내가 아는 사람이 많아서 문상객이 좀 많아.”

현민의 낯빛은 밝아 보였다. 너 같으면 부모가 죽어도 이 정도 모아올 수 있냐고 호기롭게 놀리는 소리 같기도 했다. 옆에는 친척뻘인 듯한 아주머니들이 앉아 있었다.

“아휴, 문상객 좀 봐. 끝도 없네. 자식들이 잘 나가나봐.”

“아들이 하나인가본데?”

“그래 작은애는 어릴 때 아파서 일찍 잃고……”

“그래도 큰아들 결혼시키고 며느리 보고 손주 보고 호상이지, 호상. 뭐, 우리는 하나도 못 보냈는데.”

현민이 그쪽을 한 번 흘겨보고는 소주를 쭉 들이켰다.

“야, 요즘 세상에 환갑 겨우 넘겨 차에 치여 죽었는데 호상이란다. 뒤질 노인네들.”

 

나는 말없이 술을 더 마셨다.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개 짖는 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나는 땀을 흘리면서 귀를 막았다. 현민은 처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야, 부인 좀 챙겨.” “죽은 노친네 챙기느라 바쁜데 말짱한 마누라까지 왜?” 말짱하지 않아. 밤이 되고 손님이 뜸해지고 엉덩이 질긴 늙은이들이 군데군데 앉아서 취기 어린 헛소리를 할 때, 상주는 구석방에서 일찌감치 돈을 침 묻혀 세고 있을 것 같은 즈음에, 나는 그녀를 찾아다녔다.

 

아래층에 있는 컴컴한 보일러실까지 찾아 들어갔다. 그곳에 그녀는 누워 있었다. 왜 이곳에 있는 것일까. 두 다리 뻗고 쉴 만한 방이 며느리에게까지 허락되지 않아서인지 그녀는 창문도 없고 공기가 매캐한 외딴 방에 혼자 있었다. 관 같은 공간 속에서 죽어 있는 것 같았다. 이것이 가스 냄새인지, 자해한 자의 피비린내인지 머릿속이 빙글빙글 돌면서, 그녀가 숨을 거둔 것인지 아닌지 헛갈렸다. 막다른 곳이다. 나는 숨죽여 속삭였다.

 

“이봐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숨을 수 있는 곳을 내가 알아요. 살아 있어도 찾지 못하고 영원히 숨어 있을 수 있는 곳, 저……만약에 말이죠,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우리 집으로 와요. 다시는 밖에 안 나가도 되는 곳에, 이 세상 누구도 못 찾는 곳에 숨겨줄게요.  죽으면 더 죽을 수 없지만, 살아 있으면 그 다음에 또 죽을 수 있잖아요.”

술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해본 적 없는 말을 늘어놓고 울었다. 무서워서 울고, 그녀가 벌써 죽었을까봐 두려워서 울었다. 그녀는 염을 마친 시아버지처럼 빳빳한 자세로 누워 내 앞에 있을 뿐이었다. 이제 곧 불길에 들어가길 기다리듯.

 

예상대로 다음날 아침, 현민은 이 집에 들르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인사차 들를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때까지 현민이 반지하에 사는 내 집의 문을 두드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녀는 작은방에서 깨어났다. 소리가 없다. 무엇이든 그녀에게 필요한 행동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필요한 것을 다 하도록 허용할 것이다. 가만히 밖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발걸음 소리가 계단을 내려오는 것 같았다. 작고 나직하게 슬리퍼를 끄는 듯 가벼운 발걸음 소리였다. 누구의 소리일까.

“병신 새끼.” 그 말을 나에게 한 이는 한 사람 더 있었다. 우리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잇속이 빠르고 사리판단이 정확한 사람이었다. 내가 이 집에 더 머물겠다고 했을 때 어머니는 실망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그녀는 이 빌라의 가난을 싫어했고, 가난이 빚는 시끌벅적한 풍경을 싫어했다.

 

그날 문이 쾅쾅거렸다. 나는 다시 쾅쾅거리는 문소리를 듣는다. 어머니가 내 손을 꽉 붙잡았다. 우리는 처음부터 모든 걸 듣고 있었다. 현민의 아버지가 술이 취해서 큰소리로 욕을 하면서 계단을 올라가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그 아버지가 치켜뜬 눈에 살벌함을 풍기는 모습까지 선명하게 눈앞에 떠올릴 수 있었다. 그때 나는 아홉 살이었고 현민도 나와 동갑이었다. 배우지 못해 한이 많고, 배우지 못해 일을 못 구해 한이 많고, 세상에 자존심이 짓밟혀도 대거리할 수 없는 그 아버지는 술을 마시면 무시무시하게 변했다.

현민은 그때까지만 해도 늘 고개를 숙이고 남을 비스듬히 쳐다보던, 응달에 있으려고 애쓰던 아이였다. 우리는 학교에서 선생님 눈에도, 아이들 눈에도 띄지 않으려 했다. 나의 얘기를 하지도, 남의 말을 듣지도 않았다. 무언가 양팔 가득 끌어안고 하나라도 새어나가게 하지 않으려고 웅크리고 걷는 기죽은 아이들이었다.

 

그리고 매질이 시작되었다. 마늘을 다듬던 우리 어머니가 무시하려고 해도 낯빛이 변할 만큼 무서운 소리였다. 자정이 넘는 시간에 쾅쾅거리며 들어간 그 아버지는 자고 있는 어린 자식들을 발로 차서 깨웠다. 졸려서 비틀거리며 제대로 못 일어나는 자식들을 옆구리고 뭐고 찼다. “내 질문에 대답해 봐!” 발음을 알아들을 수 없이 쏟아지는 질문에 아이들은 아무 대답도 못 했다. 어릴 때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상급학교로 진급하지 못한 아버지는 순간 괴물이 되었다. 자식들을 야구방망이로 후려치기 시작했다. 대갈통이고 팔다리고 할 것 없이 후려쳤다. 어마어마한 괴성이 계단에 넘치고 우리 집에까지 들렸다. 내가 소리를 지르려고 하자 어머니가 마늘 냄새가 나는 손으로 내 입을 막았다.

 

두들겨 맞는 아이들의 괴성과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현민이가 죽는구나. 나는 덜덜 떨렸다. 와장창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철컹 열리는 소리가 빈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도와주세요!” 비명이었다. 현민 엄마, 낮에는 식당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폐지를 줍는 그 엄마의 비명이었다. 이어 층층마다 철문을 황급히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도와줘요! 도와줘! 사람 죽어요!” “살려줘요. 문 열어봐요.” 하루 목숨 살기도 버거운 빌라의 문들은 열리지 않았다. 여자는 쫓기듯 굴러 떨어지며 다음 층으로, 또 그 다음 층으로 나동그라지듯 달렸다. 열린 문으로 아이들의 비명과 내리치는 소리와 포효소리는 들리는데, 아이들을 버려두고 죽을까봐 혼자 뛰쳐나온 그 엄마에게 문을 열어주는 집은 아무 데도 없었다.

 

“엄마……”

내 떨리는 목소리에 엄마는 아예 집의 전깃불을 꺼버렸다. 철문 아래로 실선 같은 빛도 새어나가지 못했다. 쾅쾅쾅! 드디어 우리 집의 철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집은 맨 마지막 집이었다. 자포자기한 듯, 모든 희망을 걸듯 처절한 두드림이었다. 내가 한 걸음 앞서 나갔을 때 엄마가 내 팔을 뒤에서 홱 끌어당겼다. “가만있어! 아무것도 모르면서.”

우리는 문을 지켜보며 안쪽에 가만히 있었다.

“문 열어! 도와줘요! 다 죽어! 우리 집 애들이 다 죽어! 어어, 문 열어줘! 정훈아! 정훈아! 으허허헝”

문이 부서질 듯 덜컹이며 그 앞에서 외치는 소리. 내 이름을 부르며 현민 엄마는 불이 붙은 여자처럼 공포에 질려 온몸을 문에 부딪혀댔다. 우리는 숨죽이고 있었다. 그녀가 지나온 계단은 모두 조용했다. 자신의 목숨 앞에서는 그렇게 냉정할 수 있었다.

“살려주세요!”

남편이 자신을 때려 죽일까봐 집을 달아난 아내가 자식들이 죽어간다고 문을 두드리며 달아나며 또 두드리며 외친다. 어머니는 내 어깨를 꽉 붙잡고 있었다.

“잘못하다간 우리까지 다친다.”

캄캄한 속에서 어머니가 냉정하게 일렀다. 끄아아악, 절망에 찬 비명이 우리 집 문밖에서 저 혼자 길게 꼬리를 끌며 들려왔다. 나는 귀를 막았다. 귀를 막아도 소리가 들렸다.

 

모든 일이 그날에서 시작되었다.

현민은 그날 이후 웃음을 잃었고, 그 어머니는 살려달라고 남들을 쳐다보는 일이 사라졌다. “형아, 비행기 접어줘.” 현민에게는 다섯 살 난 동생이 있었다. 이름이 현준이었던 그 아이는 유독 나를 잘 따랐다. 준이는 그냥 비행기 말고 머리끝이 양쪽으로 덧나온 오징어 비행기를 접어주는 걸 좋아했다. 준이는 어린아이인데도 매운 김치를 잘 먹었다. 찬밥을 물에 말아 김치 쪽을 찢어주면 군말 없이 밥그릇을 비우고 말간 양은그릇에 얼굴을 비추고 혀를 날름거렸다. 준이는 자기 이름 석 자를 벌써 쓸 줄 알았다. 준이는 과자가 있으면 현민한테는 “똥이야, 똥.” 하고 속보이는 거짓말을 하고 피하면서 나한테는 용케 그 과자를 한 움큼 나누어주었다. 되똑거리며 걸어와서는 몽톡한 손가락으로 과자를 세 개, 네 개 집어주고 망설이며 한두 개 더 집어주었다. 나는 준이를 업어주는 걸 좋아했다. 준이는 포동포동하고 따뜻했다. 현준이도 그날 짐짝처럼 패대기쳐지고 맞았다. 준이는 왜 맞는지 몰랐고 매를 이기지도 못했다. 한글로 벌써 이름을 쓸 줄 안다고 어미의 자랑거리였지만 아버지의 질문은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현준이는 그날 밤 이후 개 짖는 소리를 냈다. 말을 잃고 열에 시달리며 컹컹거리며 기침했다. 준이는 말을 잃어버리고 개 소리로 울부짖었다. 다섯 살 난 동생은 그날 이후 앓다가 세상을 떴다. 아무도 그게 그 밤중의 매질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누추하고 혐오스러운 자신을 패듯 피붙이를 패 죽인 아비 탓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우리 중 아무도 문을 열고 그렇게 말해주지 않았다.

 

‘애가 아파서 그랬어요.’로 말하고 마는 엄마 뒤에 현민이 말없이 있었다. 현민은 아버지 밑에서 커야 했기 때문에 그 엄마는 그렇게 죽은 자식을 쉽게 놓았다. 현민은 나에게 더 말을 걸지 않았다. “병신 새끼.” 내가 학교에서 말을 걸었을 때 싸늘히 쳐다보고 내뱉은 첫마디가 그것이었다. 그렇게 말을 걸어준 것만 해도 고마웠다. 현민은 죽다 살아난 아이고 말하자면 이제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무슨 짓을 저질러도 이상할 것 없이 된 아이이기 때문이다. 나는 현민이 잘 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나는 공부를 못 해도 녀석이 공부를 잘 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녀석은 집에서 뛰쳐나가기 위해서라도 공부를 해야 했고, 아버지를 메다꽂기 위해서라도 공부를 해야 했고, 아버지가 발길질로 찼을 때 어떤 질문에라도 막힘없이 대답해 매질을 안 당하기 위해서라도 공부해야 했다. 왜냐하면 우리 집이 그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으므로. 문을 한 번만 열어달라고 울부짖는 그 어머니 앞에서 차디차게 침묵하며 문을 닫고 있었으므로. 나는 그가 나를 경멸하든 어떻든, 진심으로 그의 힘으로 생존해서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를 바랐다.

 

그래서였다. 계단에서 현민의 부인을 만났을 때 느낀 답답함이 난데없었던 것은. 현민의 부인은 이 빌라에 어울리지 않았다.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천출들, 동생을 죽인 사람을 아버지라 불러야 하고, 자기를 보호해주지 못하는 여자를 어머니라 불러야 하고, 비밀을 모른 척하는 이웃을 친구라 불러야 하는 뒤틀린 시간이 현민의 속에 얼마나 잔인한 흔적을 남겼는지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자존감을 벌충하기 위해서 현민이 내뱉는 말들이, 가슴을 패게 하는 죄책감들이 독벌레처럼 핏속을 흐르면 자신이 완전히 갉아 먹혀 고목이 되어 쓰러질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이란, 때론 그 숙주로, 자신의 독을 퍼뜨릴 짝패로 매섭게 선택되고 한없이 갈취당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공범자의 불안을 품고 그녀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현민이 자기 말처럼, 자기는 아내를 때린 적도 없고, 바람을 피지도 않고, 노름을 하지도 않고, 지나친 술을 입에 대어본 적이 없는 게 사실이라도 그랬다. 그런 변명은 내게 통하지 않았다. 손을 대지 않고도 상대를 갈취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검은 상복을 입은 그녀가 살려달라는 눈빛을 내게 보냈을 때 나는 그 눈을 피하지 않기로 했다. 이번에는 나의 결심대로 할 것이었다.

 

내 귓가에는 개가 짖는 소리가 언제나 들렸다. 빌라에 몸을 눕히고 있으면 그 소리는 준이가 있던 위층에서 컹컹거리며 들렸다. 목에 가래가 그르렁거리고 캥캥대며 짖어대는 소리. 나는 그 소리가 들리면 준이가 아직 사투를 벌이며 살아나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빌라에 머무르면 준이는 완전히 죽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이 빌라를 떠나 인파에 묻히면 준이는 골방에서 완전히 죽는다. 준이의 어떤 조각이라도 이곳에 남아서 누구라도 기억하고 슬퍼해주길 바라지 않을까. 나중에라도 멈추었던 숨을 컹 내뱉고 묻고 싶지 않을까? 자기 혼자 왜 이곳에 있냐고, 묻고 싶지 않을까.

 

기억한다. 문을 열고 학교에 가려고 발을 내딛었을 때 나는 그 자리에서 토했다. 배가 아프고 머리가 아프고 무릎에 힘이 없어서 다리가 꺾였다. 자신이 없었다. 아무렇지 않게 살고 이기고 싸울 자신이 없었다.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학교에 가라고, 엄마가 아무리 ‘병신새끼’를 외치고 아버지가 정신 차리라고 뺨을 때리고 나보다 어린 동생이 덩달아 놀려도 나는 집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정답을 맞힐 자신이 없었고, 정답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무서웠다. 나는 틀리고 싶지 않았지만 입증하는 것이 버거웠다. 준이 곁에 있고 싶었다. 나는 이 빌라 안에 틀어박혀 있는 것을 유일한 소명이자 세상으로 삼았다. 이곳에는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이따금 준이는 위층에서 기침을 했고, 나는 그 소리가 날 때 모든 행동을 멈추고 들어주었다. 현민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현민의 어머니가 늙어 퇴직을 하고 현민이 결혼해 아이를 하나를 낳건 둘을 낳건 준이와 나는 그대로 이 집에 남아 있었다. 준이와 나는 가장 정직한 모습으로 살기로 약속했다. 그래서 우리는 짝패가 되어 각자의 방에 틀어박혔던 것이다. 영원히.

 

 

그녀가 내 집 문을 두드렸을 때, 나는 문 앞에서 다시 한 번 그 분주한 발걸음과 쿵쿵거리던 소리와 아이들의 비명을 들었다. 이 문을 열어주기 위해, 울고 있던 현민의 어머니를 우리 집으로 들어오게 하기 위해 줄곧 기다려온 것이다. 나는 마침내 문을 열었다.

 

그녀는 지금 나를 등지고 창가에 앉아 있다. 그 자리는 내가 늘 앉았던 곳이다. 나는 언제나 현관문을 등지고 창가에 앉았다. 오래된 나무창틀에 쓸모없는 쇠창살이 달린 그 창은 밖으로 시멘트벽과 마주해서 아무 기능을 하지 못했다. 그녀는 의자에 앉아 가만히 창밖을 보고 있다. “저기요……” 그녀를 불렀지만 아무 대답이 없다. 묵묵히 그녀의 뒤에 서 있었다. 날이 저물고 있다.

 

그녀와 나는 남이고 겨우 세 번을 스치며 보았다. 왜 이 여자를 집에 들어오게 했을까? 문득 새삼스런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했다. 살아남기 위해 타인을 짓밟고 발버둥 쳤던 현민처럼, 자식을 패 죽이고서야 자신을 멈출 수 있었던 그 무자비한 아비처럼, 단단한 침묵과 무표정 속에서야 삶을 이어갈 수 있었던 그 어미처럼, 그들에게 모든 경멸을 받아야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었던 내 모습처럼, 살던 곳을 모두 버리고 비행기를 타고 떠나야 비로소 숨통이 트일 것 같았던 내 가족처럼, 그녀가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어할 뿐이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그 자리에 타인이 공존할 자리는 없었다. 나는 일테면 투명인간이 되어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녀에게서 시간이 흐르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이 내 동기였다. 그러므로 나는 그녀에게 새로운 사건이 되지 않고 먼지처럼 느껴지는 게 낫다.

 

그녀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건 말건 자신과 상관없다는 듯이 가만히 있다가 문득 손을 내밀었다. 그것은 내 쪽이 아니라 창가 쪽이었다. 가리키는 손가락이 한참 그렇게 있었다. 나는 ‘아!’ 하고 낯을 붉혔다.

어떻게 그걸 발견한 것일까? 그건 창틀 아래에 내가 그려놓은 것들이었다. 낮이건 밤이건 준이가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들으면 그걸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준이가 몇 번 동안 고통스러워했는지 기억해주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준이의 기침 소리가 들릴 때마다 연필로 벽에 표시해나갔다. 소리를 세 번 들으면 세로로 세 줄 빗금치고, 다섯 번을 들으면 가운데를 가로로 그었다. 그 들쭉날쭉한 선들이, 오랜 환청의 기록이 날짜도 없이 창틀 아래 벽에 빼곡히 그려져 있었다.

 

치부를 들킨 듯 부끄러워서 눈을 돌렸다. 그녀는 계속 그것을 가리켰다. 무엇이냐고 묻는  듯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왜 그랬냐고 묻고 있는 듯도 했다. 그때 나는 귀에 그토록 끈질기게 따라온 준이의 소리를 그녀는 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느꼈다. 그건 당연했지만 나에게는 새로운 사실이었는데, 이 여자가 준이를 알지 못하고 내가 이 여자에게 준이를 설명하지 못하듯, 준이에게도 이 여자의 존재를 설명할 수 없다는 난감함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식사도 하지 않고 잠도 자지 않고 말도 하지 않은 채, 이 선들을 하나하나 그었다. 선을 그으면 이 집에 금이 가는 것 같기도 했고, 자해라도 한 듯 가슴이 시원해지면서 귓가에 생생한 준이의 기침 소리가 좀은 잦아드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이곳에 없다고 생각해요. 편한 대로 있고 싶은 만큼 있어요.”

그녀에게 나는 말했다.

“편하게 계세요.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당황했다. 왜 아니라는 걸까? 주변이 좀더 어둑해지고 비릿한 냄새가 풍기는 것 같았다. 창 너머로 보이는 시멘트벽에 검은 선들이 빗금을 하나둘씩 불현듯 그리고 있었다. 비가, 오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잠자코 있었다. 보이지 않는 비가 흔적을 앞세우며 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나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숙였다. 침묵이 감돌았다.

 

그녀는 내 생각은 상관없다는 듯이 있었다. 시선을 피한 그 등 뒤에 나는 한참 서 있었다. 비가 오기 시작했다. 빗소리는 간이지붕을 때리고 처마에서 떨어지고 또 배수관에서 흘러내리며 서로 다른 소리를 내었다. 딱 따다닥 딱딱, 따다다다……그것은 마치 장구소리처럼, 타악기 소리처럼 리듬이 있었다. 나름대로 규칙이 있고 반복이 되는 소리들이었다. 빗방울이 세게 부딪는 소리, 골을 타고 흘러내리는 소리, 여러 번 딱딱한 것과 부딪는 소리, 긴장을 풀고 터지는 소리, 그 소리는 점점 빠르게 겹쳐지면서 여러 겹의 박자를 거느리고 먼데와 가까운 데의 소리를 어울려 내고 있었다.

나는 난생 처음 빗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우리는 같은 자리에서 같은 빗소리를 듣고, 우리 밖에 있는 세상의 빗소리는 살아서 춤추며 흥겨운 장단을 끈덕지게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그건 선들을 지우고 선들을 이어주고 선들에 강약을 주고 선들에 한계를 주면서 마침내 선들을 모두 풀어주었다. 세상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문을 열었던 건 나였다.

 

“고맙다. 정훈아.”

목이 잠긴 듯, 그의 어머니가 환한 문 안에 들어서서 속삭이듯 인사하는 목소리가 내 귓가에 마지막으로 들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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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 2016/05/08 [02:29] 수정 | 삭제
  • 가슴아픈 소설이네요.. 정훈에게 공감하며 읽었어요 현실에서 그런 캐릭터가 있을까 생각하면서요..
  • 2016/05/06 [10:56] 수정 | 삭제
  • 슬프네요. 그 이후의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 re 2016/05/05 [19:47] 수정 | 삭제
  • 아찔한 이야기인데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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