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기 농민의 죽음…신뢰도, 상식도 없는 정권

세월호와 함께 사는 사람들(7) 더 이상 죽이지 말라

화사 | 기사입력 2016/09/28 [12:53]

백남기 농민의 죽음…신뢰도, 상식도 없는 정권

세월호와 함께 사는 사람들(7) 더 이상 죽이지 말라

화사 | 입력 : 2016/09/28 [12:53]

방법을 찾고 싶습니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상식’이라고 믿었던 것들,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끝도 없이 무너지고 있어요. 지금까지 사회에 대해 배우고 믿었던 것들이 착각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목격할 때마다 힘이 듭니다. 외면할 수도 없지만, 직면하기도 버거운 현실입니다.

 

▶ 2016년 9월 25일 故 백남기 농민의 시신이 안치된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 주차장 입구.  ⓒ화사

 

“제발 그만해” 무차별 물대포를 쏘아댔던 경찰

 

故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려졌던, 작년 11월 14일은 ‘밥쌀용 쌀수입’ 반대와 쌀값 보장, ‘노동법 개악’을 통한 구조조정 중단,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를 외치는 1차 민중총궐기 대회 날이었습니다. 농민과 노동자들의 생존권과 관련된 행사였죠.

 

이날 대회 일정은 대학로부터 행진을 해서 광화문 광장에서 집회를 하는 것이었죠. 저는 당시 광화문 광장에 있었지만, 지하철역을 봉쇄한 경찰들 때문에 대부분의 집회 참가자들은 광장에 진입하지 못한 채 세종로 사거리에 멈춰있었어요. 경찰이 막지만 않았다면 세월호 2주기 때처럼 집회를 마친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해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날 경찰은 광화문역 출입구를 완전히 봉쇄하고, 광장으로 오지 못해 거리에 선 시민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물대포를 쏘았습니다. 다른 때보다 많은 살수차가 왔었죠. 그리고 비상식적으로 오랫동안 물대포를 쐈어요. 물대포는 사람에게 바로 쏘면 사망할 수 있는 무서운 무기입니다. 두려웠어요. 광장 쪽에 있던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경찰들에게 “제발 그만해!” 하고 외쳤습니다. 방패 뒤 앳된 모습의 경찰들은 망설였지만, 뒤에서 지휘하는 경찰이 고함을 치자 결국 광장에 있던 사람들한테까지 밀고 나와서 위협을 했어요.

 

계속 시민들의 부상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멈추지 않았죠. 그리고 결국 백남기 농민을 쓰러뜨리고야 만 것입니다. 백남기 농민을 실은 구급차 안까지 물대포를 쏘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저는 ‘설마’ 했어요. 경찰에게 너무 화가 난 사람들이 과장해선 한 얘기겠지 생각한 것이지요. 하지만 나중에 그 현장을 담은 영상을 보고는, 내가 아직도 공권력의 폭력을 그대로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세월호 유가족이 겪은 ‘믿기 힘든 공권력의 횡포’

 

저는 세월호 유가족 곁에 있으면서, 시민들에게 진상 규명을 위한 서명을 해달라고 외치면서, 피켓을 들고 거리에 서면서, 이전에는 추상적으로만 알았던 이 사회의 민낯을 하나하나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우리의 활동을 응원해주는 분들도 계시지만, 누군가 시켜서 하는 짓이라고 여기며 “한심하다” 욕하는 노인들도 있고, 피켓을 주먹으로 때리는 분까지 만났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은 자기 삶의 무게를 감당하느라 눈을 들어 피켓을 볼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지난 6월,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활동 기간(1년 6개월)과 예산 보장, 두 차례 특별검사 요청 권한과 인양선체에 대한 정밀조사 권한을 보장하는 내용으로 ‘세월호 특별법 개정’을 요구하며 유가족들이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농성을 하실 때였죠. 바닥에 깔기 위해 가져온 은박돗자리를 경찰이 훔쳐서 달아난 사건이 생겼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 어이없는 상황은 진짜 일어났죠.

 

▶ 2016년 9월 21일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개정을 위한 집중실천 선포 기자회견. ⓒ416연대

 

저는 그동안 세월호 유가족 곁에 있다가 경찰력에 갇혀 노숙을 한 적도 있습니다. 내가 유가족과 이야기한 걸 봤다는 이유로, 경찰이 인도를 막아선 채 집에 가지 못하게 해서 5시간동안 길바닥에 있어야 했던 적도 있죠. 시민으로 위장하고 시위대 쪽에 들어와 분란을 만들려다가 들킨 사복경찰도 봤습니다.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 속에 들어와 몰래 채증(採證)을 하다 적발된 사람도 봤어요. 경찰이 유가족들을 고립시켰을 때 시민들이 이에 항의하며 모여들자, 유가족을 풀어주겠다며 시민들을 해산시킨 후 유가족에게 무차별적으로 최루액을 뿌려대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아직도 공권력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버리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무엇을 믿고, 무엇을 기대하는 걸까, 혹은 무엇이 두려운 걸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국과수는 다른 사인을 만들어낼 수 있나 보죠?

 

지난 주말 백남기 농민의 혈압이 떨어졌다는 소식이 들리면서부터 엄청난 수의 경찰이 서울대학병원에 배치되었습니다. 백남기 농민이 돌아가시면 경찰이 시신을 탈취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도 걱정이 되어서 병원으로 달려가셨죠. 저는 또 ‘설마’ 했어요. ‘공권력에 너무 많이 당하다보니 그런 것까지 걱정하시게 됐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서울대병원에 가보고는, 그냥 하는 걱정이 아니었단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현장에 갔던 건 9월 25일 일요일, 백남기 농민이 돌아가신 날 저녁이었습니다. 서울대병원 인근인 이화사거리부터 마로니에 공원까지 배치되어있는 경찰차를 세어봤는데, 스물네 대나 되더군요. 병원 입구는 경찰로 아예 막혀있었습니다. 조금 지나서 어떤 양복 입은 분이 경찰력의 부당성에 대해 조목조목 따지더군요. 그 후에야 경찰은 병원 입구에 작은 틈을 만들어 한명씩 줄지어 들어갈 수 있게 해줬습니다.

 

그 틈에 저도 병원 안으로 들어갔는데요, 병원 구석구석에도 대기하고 있는 경찰들도 많았습니다. 방패들도 줄지어 바닥에 있었고, 옆에는 최루액 가방도 보였어요. 사복 경찰은 병원 안에서 담배를 피우기도 했죠. 이름표를 달고 있는 경찰은 한명도 못 봤습니다. 경찰이 가장 많이 있었던 곳은 장례식장 앞이었죠. 촛불문화제를 하는 시민들을 앞뒤로 포위하고 있었습니다.

 

▶ 2016년 9월 26일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故 백남기 씨 유족들.   ⓒ촬영: 타잔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고인의 사인은 누가 보더라도 분명한데, 경찰은 부검 영장을 청구했죠. 법원에서 영장을 기각했음에도,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부검 영장을 재청구를 했습니다. 故 백남기 농민은 물대포에 의한 뇌손상으로 317일 동안 의식불명이었지만, 시신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데려가면 다른 사인을 만들어낼 수 있나보죠.

 

지금으로부터 25년 전(노태우 정권)에는 백골단(사복경찰 체포조)이 병원 담을 부수고 들어와, 고문치사 의혹이 제기된 한진중공업 노동자 박창수 씨의 시신을 탈취해서 유가족도 없이 화장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끔찍한 공권력의 횡포를 우리는 배우지 못한 채 자랐지요.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걸 구체적으로 실감하게 될 때마다, 자꾸만 ‘설마’ 하는 생각 속으로 숨고 싶어져요. 우리의 안전을, 생명을 지켜주지 않는 나라에서 왜 세금을 내며 살아가야 할까요?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일 년 조금 넘게 월요일마다 서울 청운동에서 세월호 미수습자를 찾아달라는 피켓을 들었습니다. 또, 이 년이 조금 안 되게 수요일마다 망원역에서 세월호 관련 서명을 받거나 소식지와 리본을 나눴어요. 살면서 무언가를 이렇게 정기적으로 오래 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저 희생자들에게 미안해하고만 있는 게 싫어서, 무기력해지는 게 싫어서 움직이는 거예요.

 

진실을 밝히는 것을 삶의 일순위로 삼고 살아가는 것과, 진실을 외면하며 그로인한 죄책감을 합리화하기 위해 귀를 닫고 사는 것 사이에, 사람들이 결정할 수 있는 무수히 많은 선택지가 있을 겁니다. 저는 그 선택지를 넓히고 또 밝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다면 아직까지 바다에 가라앉아 훼손만 계속되고 있는 세월호처럼, 우리 사회의 진실도 그렇게 분해되어 갈 테니까요.

 

올해 칠순을 앞둔 故 백남기 농민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추모와 슬픔도 “시체팔이”의 하나라고 모욕적으로 기억될지 몰라요. 그렇게 끔찍한 세상에서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투신’과 ‘외면’ 사이에 또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함께 고민해보면 어떨까요? 국민에게서 권력이 나오는 민주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 2016년 9월 27일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단식 63일차.  ⓒ세월호 특조위 페이스북

 

정부의 자의적 해석에 따라 6월 30일에 조사활동이 종료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는 지금 두 달이 넘도록 릴레이 단식을 하며, 오후 3시마다 광화문 광장을 찾는 시민들에게 세월호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세월호 인양은 전문가들이 위험하다고 지적한 잘못된 방식으로 진행되면서 계속 미뤄지고 있죠. 9월 30일이면 특조위의 보고서 작성 기한마저 종료됩니다. 다음 날인 10월 1일은 세월호 참사 900일째 되는 날이에요.

 

지진이 나도 ‘가만히 앉아서 공부하라’고 하는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권은 지진에 대한 시민들의 두려움을 지나친 것으로 간주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지진의 위험성을 계속해서 경고하고 있죠. 수많은 국가폭력과 책임 방기로 인한 끔찍한 진실을 소수의 사람들만 알고 감당하기란 너무 힘겹습니다. 나누어야하지 않을까요? 보다 많은 사람이 진실을 알고, 관심을 가지고 움직인다면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요? 생각을 나눠주세요. 작은 움직임이라도 함께 해주세요!

 

※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특검 도입 요구 서명운동: http://baeknamki.kr

 

※ 세월호 900일 촛불문화제 “국민의 힘으로 끝까지 진상규명”: 2016년 10월 1일 토요일 저녁 7시 광화문 416광장 (오후 4시 대학로, 백남기 농민 추모대회부터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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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 2016/10/02 [15:11] 수정 | 삭제
  • 사람이 죽어나가는데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나라반드시 죽음의 책임을 물어아한다
  • 시민 2016/09/29 [18:52] 수정 | 삭제
  • 슬픕니다. 애통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헬조선을 떠나 평안할 곳으로 가시길...
  • zilla 2016/09/29 [12:27] 수정 | 삭제
  • 정말 너무해.
  • 독자 2016/09/28 [16:18] 수정 | 삭제
  • 물대포를 쏘아서 국민을 쓰러뜨리고 의식을 잃은채 병원에 있는 동안 사과도 하지 않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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