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만큼 ‘나이’에 민감한 나라도 드물다. 어린이는 별 고민 없이 순진무구하고 천진난만한 존재이고, 십대는 ‘질풍노도의 시기’로 뭔가 미숙하며 2차 성징이 시작돼 이성에 관심이 많아지는 시기다. 이십대는 사회에 나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할 시기이며, 삼십대는 안정된 직장을 잡고 승진을 위해 노력하거나 자녀를 키우는 시기다. 사십대는 삶의 여유가 생기고 사회에서 기반을 잡는 성숙기이며, 오십대 이후는 일생을 차분히 되돌아 봐야 하는 자성의 시기다. 이것이 우리가 나이 대 별로 갖고 있는 이미지, 혹은 설명의 방식이다.
그러나 이 말을 조금 돌려 해석해본다면? 사회문제에 관심이 있거나 우울증을 앓는 ‘어린이’나 이성에게 관심이 없는 ‘십대’, 직장이 없거나 결혼할 생각이 없는 ‘이십대’, 뭔가 새로 공부나 일을 시작하고자 하는 ‘삼십대’, 사랑에 빠진 ‘사십대’, 이혼을 하는 ‘오십대’는 예외적인, 이상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그 속에 내가 없다 “어렸을 때 말도 별로 없고 찌푸리고 있으니까 엄마가 병원에 데리고 가셨는데 의사가 신경성이라는 거에요. 우울증도 있고. 그때 엄마가 너무 놀라면서 ‘무슨 애가 걱정할 게 있느냐’ 고 말도 안 된다고 그러더라고요. 내가 좀 이상한 애구나 싶었죠.” (ㅁ씨, 28세) “내 주위를 살피면서 내 나이대 여자들이 어떻게 살고 있나를 보게 돼요. 어떻게 입고 얼만큼 얼굴이 늙었고 뭘 입고 뭘 하고 사나를 보게 되는 거에요. 보편적 이미지와 내가 동떨어져 있는 것 같으니까. 사실, 내 나이가 정말 어떤 나이인지는 모르겠어요.” (ㅈ씨, 30세) “나는 지금까지도 연예인에 관심 많고 이십대에도 남자친구 안 사귀었고 사십대 가서도 아이 안 키울 것 같고 삼십대지만 돈도 별로 없고 결혼도 안 할 것이고…. 그 나이대의 보편적인 틀 속에 존재한다고 느끼지 못해요. 그리고 그 나이대 ‘여성’이라는 이미지 속에도 존재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ㅂ씨, 33세) “결혼도 하고 사십대가 됐지만 자녀가 존재하는 ‘안정적인 가정’ 안에 안착한 것이 아니라 부유하는 느낌이에요. 집을 늘려가거나 가전제품, 가구 따위 바꾸는 재미로 살지도 않고. 나이 들고 살쪘다고 해서 젊었을 때의 여러 정서들의 감정들이 싸그리 사라지는 것이 절대 아니에요.” (ㄱ씨, 40세) 본인이 직접 경험하고 느끼는 나이에 대한 감수성은 사회에서 통용되는 보편적인 이미지와 거리가 먼 경우가 많다. 패턴화된, ‘그 나이에 맞는’ 뭔가가 있다고 믿고 있지만 실제로 개개인이 느끼는 감수성, 경험은 그것과 별 상관없거나 설명되지 않는 것이다. 나이 값 해라 ‘나이’를 말하는 것은 사실 그 나이대에 맞는 역할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흔히 ‘나이 값을 하라’는 말은 그 나이대에 ‘해야 할 것’을 하라는 말이다. 나이에 어울리는 행동, 옷차림, 말투, 경제적 능력, 결혼여부, 관심사 등이 따로 정해져 있다. “난 원래 연예인을 안 좋아했거든요. 그런데 다들 십대 때는 그런 거고 친구들도 그러니까 나도 그냥 장국영을 찍어서 좋아하기로 하고. 애들한테 막 말하고 다니고 그랬어요. 브로마이드도 사고.” (ㄱ씨, 28세) “식성이 어린애 같다고 하는 소리도 들었어요. 단무지를 무쳐 먹거나 햄버거, 짜파게티, 떡볶이 이런 등등. 그런데 그게 딱 그 부분만 떨어뜨려 생각할 수 있는 건 아닌 거 같고. 내가 사는 스타일이 그러니까. 결혼도 안 하고 남자친구도 없고 공부하고 음악 듣고.” (ㅎ씨, 33세) “나이 값 못한다, 철 좀 들어라, 그러고 살 때냐, 이런 소리 아이러니컬할 지 모르지만 오히려 친구들한테 많이 들었죠. 가장 가까운 주변 또래 친구들이 그런 잔소리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 친구들을 회사 다닐 때까지는 정기적으로 만났는데 그 애들이 어느 날부터 갑자기 모임에 정장을 입고 화장도 하고 나타나는 거에요. 청바지에 티 쪼가리 입던 애들이 어느 날부터는 큰 목소리로 와르르 떠들고 까르르 웃고 하지도 않고. 여하튼 그런 것보다 그 친구들이 아직도 청바지에 티 입고 다니는 나를 좀 늦된 아이 취급을 해서 그 이후에는 잘 안보게 되더라고요. 내 친구들이 보기에 나는 너무 뜬구름 잡는 식이라고. 발이 항상 허공에 떠있고.” (ㅇ씨, 33세) “청바지 쪼가리나 입고, 그것도 지저분하게 입고 다닌다고 ‘니 나이가 몇이냐’ 하는 소리도 많이 듣죠. 술 많이 먹고 다닌다고 뭐라고 하고. 나는 초면인 사람이(특히 남자들) 나이를 물으면 대답하기가 꺼려지는데 나이를 말하고 나면 ‘젊어 보인다’ 운운의 과장된 반응이 결코 좋은 소리만은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에. 속내는 ‘그 나이에 그런 유아틱한 복장으로 밤 늦게까지 술 쳐먹고 다니냐’ 이 딴 생각을 하는 인간들이 있으니까.” (ㄱ씨, 40세) ‘나이에 맞는’ 삶은 주변에 의해 그 나이대 또래집단에 의해 강제되는 경향이 강하다. 그 나이대 친구들의 삶이나 관심사에서 벗어나 자신의 욕구를 바라보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나이’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믿는 집단문화가 형성되고 나면 그 집단문화, 획일적인 삶의 방식에서 벗어난 이들은 자연히 자신에게 쏟아지는 ‘뭔가 어색한’ 비난의 시선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많은 이들이 ‘소외 받지 않기 위해’ 동일한 나이대의 표준화된 삶을 닮고자 노력하게 된다. ‘유효기간’이 지난 여성들 ‘나이’는 여성에게 특히 민감한 주제다. 나이 드는 것에 대한 공포는 여성들에게 더 심하게 나타난다. 여성에게 있어서 나이가 드는 것은 ‘추하거나’, ‘한 물 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한 물 간’ 기준은 이십대 중반부터다. 많은 여성들이 이십대 중반을 넘어서면 자신이 ‘늙었다’고 말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실제로 ‘젊은’ 여성들이 자신을 나이든 여성으로 정체화하고 있다. “친구를 만났는데 친구가 계속 ‘어렸을 때는’, ‘나이가 들고 보니’ 그런 말을 하는 거에요. 그 어렸을 때가 언제냐고 물었더니 ‘이십대 초반’이라는 거에요. 저는 사실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느껴지거든요. 이십대 초반의 열정이나 의지, 욕구가 똑같아요. 그 친구처럼 초반, 중반, 후반 이런 식으로 단절적인 것이 아니라 그냥 그때나 지금이나 그렇게 다르다고 안 느껴지는데 그 친구는 끊임없이 지금의 자신이 나이 들었다고 정체화하더라고요.” (ㄱ씨, 28세) 이십대 중후반의 나이는 여성들에게 아주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취업’제한 나이이자 ‘결혼’한도인 것이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26-28세까지를 여성들의 취업연령으로 제한하고 있다. 여자는 어릴수록 ‘시집가기 유리하며’, 서른을 넘기면 ‘노처녀’ 소리를 듣게 된다. 이런 현실 속에서 여성들은 자신의 ‘기능’이라는 것이 딱 그 나이까지 유효기간을 지닌다고 생각하게 된다. “해왔던 길로 쭉 가야 하고 모든 게 너무 완료된 느낌. 빼도 박도 못하고. 남자친구를 6년 사귀었는데요. 나이도 있고 그러니까 다들 그냥 ‘결혼해야겠네’ 그래요. 나는 그냥 사귈 뿐 결혼할 생각은 없는데. 사실 난 젊은 나이인데 주변에서 선택하면 쭉 가야 하는 나이로 자꾸 인식시키니까 내 나이에 정말 하고 싶은걸 생각하거나 결정하지 못하고 밀려가는 느낌이 들어요. 새로운 일에도 도전하고 싶은데 너무 늦은 느낌. 주변 친구들도 회사를 때려 치고 놀고 있으면 ‘너 어쩔래? 그런 도박을 왜 하니? 그 나이에 뭘 하려고 해?’ 그런 식이고. 가끔 나이를 막 부정하게 되죠. 내 나이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생각해보면 그 나이 자체가 아니라 그 나이에 갖고 있는 주변의 인식인 거에요.” (ㅂ씨, 28세) 유효기간이 지나면 개인의 삶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사라진다. 본인의 욕구보다는 그 나이에 해야 하는 ‘어떤 것’에 급급해 선택을 하고 나면, 나이가 들어 자신의 욕구에 충실하게 뭔가 새롭게 시작하기란 쉽지 않다. 사회적인 여건도 안 받쳐주지만 무엇보다 당사자가 ‘이젠 나이 들었으니까’ 하고 체념하게 된다. “이십대 중반 즈음부터 내 나이가 무척 많다고 생각했어요. 지나고 보니 그때는 참 젊었는데 왜 그랬을까 싶은데. 이십대였던 삼십대였던 그 당시 나 자신은 항상 나이가 많다는 부담을 스스로 주었고 지금도 그런 경향이 있어요. 삼십대 초반에 내가 어느새 이 사회의 기준으로 볼 때 한없이 무능한 인간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뭔가 새롭게 시작해 사회가 요구하는 유능한 인간이 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나이가 너무 많다고 생각했고 무서웠죠.” (ㄱ씨, 40세) 솔직하게 살고 싶다 전체주의적인 한국의 교육, 프라이버시를 존중하지 않는 사회문화, 뽀송뽀송한 피부의 십대여성들이 ‘가장 경쟁력 있는’ 상품이 된 미디어, 그리고 사회가 변해도 여성만은 그대로 ‘전통적 역할’을 수행해주기 바라는 남성중심적 편견들이 여성의 삶을 ‘나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만든다. ‘이 나이대에 이건 반드시 해야 한다’는 당위는 여성들을 다급하게 몰아세우고, 만약 그 통념을 따라가지 못하면 ‘실패한 삶’, ‘일탈’로 낙인 찍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같지 않으면’ 욕하는 사회다. 그리고 그 ‘같음’은 나이대에 따라 다르게 요구된다. 결국 ‘나이’를 말하거나 ‘나이’를 생각하는 것 자체가 사회가 요구하는 통념을 내면화하는 출발이 되는 셈이다. 그 속에서 개개인은 자신의 경험과 느낌들을 존중하기 어렵고, 솔직하게 살아가기도 어려워진다.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나이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유는 보편적으로 강요되는 ‘나이’에 대한 기존의 통념이 자신의 삶이나 경험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하고 마음이 맞는 친구를 만나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열린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 안에 내재된 ‘나이’에 대한 통념을 넘어서야 한다. 삶 속에서 자신이 서있는 위치를 가늠하고 판단하며 타인의 선택과 다양성에 대한 존중을 기반으로 한 시선, ‘나이’ 개념에 대한 재인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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