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조선인이자 프리랜서 작가인 리신혜 씨가 일본에서 자신이 겪은 민족차별과 성차별 발언(혐오 표현)들에 대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작년부터 연이어 승소하고 있다. (관련 기사: “나를 침묵하게 만드는 힘에 지지 않겠다” http://ildaro.com/7027)
소송은 ‘자이니치(재일조선인)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의 모임’(재특회)과 이 모임의 사쿠라이 마코토 전 회장에 대해 제기한 재판과, 온라인뉴스 포털사이트 ‘보수속보’(극우 성향을 보이고 있는 일본의 온라인 사이트 ‘2채널’ 게시판 내용 중에서 주로 정치, 경제, 국제관계 관련한 정보를 모아 제공함)에 대해 제기한 재판, 두 가지다.
리신혜씨는 2014년 8월, 재특회와 사쿠라이 마코토 재특회 전 회장을 상대로 민족차별 등의 발언에 따른 명예훼손으로, ‘보수속보’를 상대로 온라인상의 차별적인 투고들을 모아 게재한 것에 따른 명예훼손으로,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을 요구하며 오사카지방법원에 제소했다.
재특회를 상대로 한 소송은 2016년 9월, 피고 측에 77만엔의 배상을 요구하는 판결에서 ‘원고 승소’ 결정이 났다. 2심에서는 작년 6월 오사카고등법원이 1심을 지지하였으며, 11월에는 최고법원(대법원)에서 고등법원 판단을 확정하면 마무리되었다.
‘보수속보’를 상대로 한 재판도 2017년 11월, 1심 재판부는 피고에게 200만엔 지급을 명하였고, 올해 6월 오사카고등법원은 지방법원 판결을 지지하고 항소를 기각했다.
리신혜씨의 소송은 일본에서 오랫동안 문제가 되어 온 민족차별과 타민족에 대한 혐오에 대하여, 그리고 그것이 성차별과 교차하는 지점에 대하여 법정에서 제도적인 싸움을 벌인 것으로서 주목받았으며, 승소 판결을 받음으로써 일본 사회에 미치는 파장도 크다. 재판의 과정과 결과에 대해 당사자 리신혜 씨의 기고를 싣는다. [편집자 주]
재일조선인 여성에 대한 비방과 중상모략 ‘법정으로’
저는 2014년 8월 18일, 재특회(재일조선인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의 모임)와 그 모임의 전 회장인 사쿠라이 마코토, 그리고 온라인뉴스 포털사이트 ‘보수속보’를 제소했습니다.
그로부터 약 4년이 지났습니다. 작년 11월 30일, 재특회와 사쿠라이 마코토 전 회장을 상대로 한 재판은 최고법원(대법원에 해당) 판결이 났습니다. 완전한 승소였습니다.
그에 이어 올해 6월 28일, 보수속보와의 재판 항소심 판결은 오사카고등법원(에구치 토시코 재판장)이 피고에게 200만엔 지급을 명한 1심 오사카지방법원 판결을 지지하며 쌍방의 항소를 기각했습니다.
보수속보 기자에 대해서는 그가 유포한 차별과 중상모략, 비방이 ‘인종차별 및 여성차별에 해당하는 복합차별’이며 ‘사회통념상 용인되는 한도를 넘어섰다’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일반 사용자의) 게시판 글을 ‘한 데 모아주는’ 행위도 ‘독립적인 개별 표현 행위’라고 보고, 게시판 관리자(남성)의 책임도 인정했습니다.
긴 날들을 기다려야 했지만, 많은 분들의 지지 덕분에 드디어 이 날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누구든 ‘태어나 다행’인 사회를 만들고 싶다
‘보수속보’는 지금까지 저에 대한 기사를 낼 때, ‘2채널’ 내에서도 극히 심각한 차별 용어와 중상모략, 비방을 추출해서 모아 냈습니다. 재특회나 사쿠라이 마코토 씨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센징’, ‘바퀴벌레만도 못한’, ‘일본에서 꺼져’ 등 어떤 말이든 상처를 받는 건 매일반이지만, 특히 제가 여성이라는 점을 물고 늘어졌습니다. ‘암컷 조센징’, ‘썅년’, ‘할매’, ‘갱년기 장애’, ‘폭탄’ 같은 말들도 줄이었습니다. 제가 당한 것은 그야말로 복합차별입니다.
그것에 대해 웃어넘기면 “이 정도론 안 먹힌다”며 강도가 더 세지고, 울면 통쾌해하며 “더 하자”고 나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저는 감정을 억눌러야 한다는 생각과 동시에 침묵을 강요당하는 것이 싫다는 마음이 계속 부딪혔습니다.
법적 소송을 제기한 후에, 저는 이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이 일본에서, 재일조선인 여성으로 태어나길 잘했다고, 언젠가 마음 속 깊이 생각하고 싶다. 누구든 ‘태어나 다행이다’, 삶이란 이따금 감당하기 벅차고 귀찮지만, 그럼에도 근사하다. 그렇게 말하며 서로를 지지하고 웃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언젠가 누군가를 미약한 힘이나마 돕고 싶다.”
이번 최고법원과 고등법원의 판결을 받고 조선인으로서, 여성으로서 이 일본에 태어나서 다행이라고 마음 속 깊이에서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쁩니다.
혐오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재판’을 택한 이유
제가 소송을 제기한 해에는 아직 일본에서 혐오 발언(hate speech)을 억제할 법이 없었습니다. 그러한 차별 앞에서 우리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2013년 2월, 처음으로 열린 도쿄 신오쿠보 거리의 혐오 집회에서 “좋은 한국인이든 나쁜 한국인이든 다 죽여”라고 쓴 현수막을 보았습니다. 그때는 몸도 마음도 얼어붙는 것 같았습니다. 마치 경찰의 비호라도 받듯이 앞으로 나아가는 시위대를 눈앞에서 보며, 저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반(反)차별 활동에 참여하고 혐오 발언을 비판하는 글을 쓰게 되었지만, 항상 무력감에 시달렸습니다. ‘아무 힘도 없는 내가 싸울 수 있는, 일본에서 가장 공평한 곳은 어디일까?’ 자문했습니다. 그곳이 바로 사법의 장이 아닐까 생각해서 재판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재일조선인에겐 선거권이 없습니다. 그래서 한 표를 통해 국가에 뭔가 의사를 전달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까지도 선거권을 갖지 못한 재일조선인들은 사회운동이나 법정 투쟁을 통해 일본 사회에 질문을 던지고, 권리를 쟁취해왔습니다. 조금이라도 걷기 편한 길을, 미래를 만들어 갈 아이들에게 남겨줄 수 있길 바랐습니다.
또 다른 소수집단의 인권을 위한 싸움에 쓸모가 있길
2016년에 일본에서 ‘혐오 발언 해소법’(헤이트스피치 억제법이라고도 국내에 알려짐, 혐오 발언이란 일본 외 출신자에 대한 차별의식을 조장할 목적으로 공공연히 생명과 신체, 재산에 위해를 가하려는 ‘의도를 알리는 것’으로 규정)이 성립되었습니다. 불충분한 부분도 많지만, 간신히 한발 내딛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이 법률이 소수자를 지키고 있느냐 하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재특회는 지금 예전만큼의 기세는 없지만, 사쿠라이 전 회장이 ‘일본제1당’을 창당해 2016년에는 도쿄도지사 선거에도 출마했습니다. 각지에서 당원들이 선거에 입후보했습니다. 도지사 선거에서도 혐오 발언을 계속했지만, 공직선거법 조항 때문에 제대로 항의하기도 어려웠습니다.
지난 8월 14일에는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역 앞에서 일본제1당의 가두연설이 진행되었습니다. “미쳐 날뛰는 조선인”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렸고, 차별 발언도 많았습니다. 이 현수막은 고베나 오사카에도 몇 차례 거리에 걸린 적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경찰에 항의를 했지만, 상대조차 해주지 않은 경우도 몇 차례 있었습니다.
경찰에 ‘혐오 발언 해소법’에 대해 이야기하면 “벌칙이 없기 때문에 경찰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최근 도쿄도의회에서는 혐오 발언을 규제하고 LGBT(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헤이트 스피치 규제 조례’안(올림픽 헌장에 명시된 인권 존중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조례안. 2020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도입한 것으로, 공공시설에서 외국인이나 다른 민족,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선동 집회를 벌이거나 인터넷 상에서 차별적인 언동을 하는 것에 대해 규제하는 내용을 담음)을 제정했습니다.
혐오 발언을 한 사람에 대해서는 공공시설 이용을 제한시키는 등 강제력을 갖는 내용으로, 전국에서 처음입니다. 일본 각지에서 인권조례를 제정해, 어떤 상황에서든 소수집단에 대한 혐오 발언을 없애고자 하는 노력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나아가 “죽어, 죽여!” 같은 과격한 혐오 발언뿐 아니라 정치 활동을 빙자한 배외주의와 역사를 수정하는 교과서 문제 같은 ‘그럴듯한 혐오 발언’에 어떻게 대항해야 하는지도 앞으로의 과제가 아닐까요.
일본 사회에는 많은 차별이 남아 있습니다. 아이누(훗카이도 일대에 사는 소수민족)이거나 오키나와 사람(류큐민족)이거나, 부락 출신(천민이라고 불렸던 일본 내 피차별 집단)이거나… 성소수자들과 장애인들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이번 재판과 판례가 다른 누군가의 인권을 위한 싸움에 쓸모가 있기를 바랍니다.
※ <일다>와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에서 제공한 기사입니다. 고주영님이 번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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