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 디자이너, 독일사람들은 ‘장인’으로 존중해요

<우리가 독일에 도착한 이유> 윤실: 헤어 디자이너, 베를린

채혜원 | 기사입력 2019/12/17 [09:47]

헤어 디자이너, 독일사람들은 ‘장인’으로 존중해요

<우리가 독일에 도착한 이유> 윤실: 헤어 디자이너, 베를린

채혜원 | 입력 : 2019/12/17 [09:47]

※ 밀레니엄 시대, 한국 여성의 국외 이주가 늘고 있습니다. 파독 간호사로 시작된 한국 여성의 독일 이주 역사 이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 <일다>는 독일로 이주해 다양한 직업군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 여성들을 만납니다. 또한 이들과 연관된 유럽의 여러 젠더와 이주 쟁점에 대해서도 함께 다룹니다. -편집자 주

 

윤실 이주 이력서

 

이주 4년차.

1990년~2015년 한국 프랜차이즈 미용실에서 25년 근무

2015년 독일로 이주

2016년 마이스터(장인) 시험 통과

2017년 독일 미용실에서 일 시작

2018년~현재 베를린 한인미용실 ‘HERA Choi’ 운영

 

▲ 겨울이 찾아온 베를린은 오후 4시경 해가 진다.     ©채혜원

 

윤실은 1990년부터 헤어 디자이너 ‘헤라(HERA)’로 살았다. 인턴으로 시작해 한 프랜차이즈 미용실 점장이 되기까지 25년간 미용실에서 일했다. 압구정, 이대입구, 반포, 마포 등 미용실로 유명한 곳이라면 일하지 않은 동네가 없을 정도다.

 

본인 이름보다 ‘헤라’로 산 시간이 더 긴 윤실은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에 놓인 미용업계에서 정말 ‘일’만 했다. 휴가도 일 년에 한 번 가까운 곳으로 2~3일 여행 다녀온 것이 전부였다. 윤실의 설명에 따르면, 한국 프랜차이즈 미용실 디자이너는 모두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어 기본급 없이 오로지 매출에 의한 인센티브로만 월급을 받는다. 퇴직금이나 각종 수당 역시 지급되지 않는다. 미용실은 디자이너에게 ‘공간’만 제공하는 셈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 윤실은 점장이 됐지만, 경력을 인정받는 게 아니라 오로지 매출만을 기준으로 헤어 디자이너 실력을 평가하는 업계문화에 점점 지쳐갔다. 돈은 부족하지 않게 벌었지만 손님이 많을 때면 화장실도 못 가고 밥을 못 먹는 건 일상이었다. 마흔을 넘기면서 힘들게 일한 날은 퇴근해서 몸이 아팠다. 윤실은 ‘이렇게 몸을 굴려서 얼마나 미용 일을 더 할 수 있을까’ 겁이 나기 시작했다.

 

이때 친언니가 지속적으로 유럽에 나가 일할 것을 제안했다. 돈을 버는 것보다는 우선 고된 삶에 변화를 주는 건 어떻겠냐고. 윤실은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외국이라면 짧은 여행만, 그것도 가까운 아시아만 다녀온 내가 유럽처럼 먼 곳을 가서 산다니.’ 마침 독일에 일정 기간 살게 된 언니의 설득은 계속됐고, 윤실의 마음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마흔이 넘도록 변화를 꾀한 적 없던 그는 그렇게 독일로의 이주라는 큰 도전을 감행한다.

 

독일에 와서 1년 만에 ‘장인’(Meisterin)이 되다

 

윤실은 모든 걸 와서 부딪혔다. 독일어 공부도 독일에 도착한 이후 시작했기 때문에, 자신의 미용실을 열려면 어떤 자격을 갖춰야 하는지 조사하기 위해 통역사부터 구했다. 통역사와 함께 온갖 관청을 다니면서 자료를 모으고 어떤 교육을 받아야 하는지 알아보는 데 3개월이 걸렸다.

 

“한국에서 구하는 정보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독일 와서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어요. 이력서를 들고 다니면서 나의 이력으로 여기서 미용실을 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샅샅이 알아보기 시작했죠. 먼저 미용실협회를 찾아가 봤는데 무조건 직업교육 과정을 등록해서 다니라고만 조언하더라고요. 저는 이미 25년 경력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방법을 계속 알아봤고, 그 과정에서 수공업회의소(Handwerkskammer)를 알게 됐어요.”

 

독일 수공업회의소는 전문 손기술을 바탕으로 한 구성원들의 협의체로 수공업 역할 관리부터 관련 교육, 감독, 전문가 임명, 자격 관리 등의 모든 활동을 맡고 있다. 특히 수공업과 관련된 영역의 장인, 즉 마이스터(Meister) 시험을 주관하고 있다. 해당 직군으로는 안경사, 전기기사, 정밀기기 정비공, 미용사, 배관공 기사, 주택 지붕 시공기술자, 농기계 정비공, 가구 제작사, 목수, 차량/자전거 정비공 등이 있다.

 

윤실은 수공업회의소에서 마이스터 시험에 통과하면 자신이 꿈꾸던 미용실을 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원래 원칙에 따르면 직업교육 과정 3년과 학위교육 과정 2년을 이수해야 시험(필기/실기) 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지만, 윤실은 25년간의 경력을 인정받아 바로 시험 볼 자격을 얻었다. 그렇게 그는 빈손으로 떠나온 독일에서 1년 만에 마스터 시험에 합격한다.

 

▲ 헤라가 수공업회의소를 통해 얻은 자격증     ©채혜원

 

마이스터 시험은 필기와 실기 두 단계로 나눠 진행됐다. 사업장을 열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보는 시험이기 때문에 미용 자재 단가에 따른 미용비용 산출, 위생을 위한 도구 사용법, 직원 채용 시 근무계약서 작성 방법, 가게 운영 시 예상되는 물/전기 사용량 등에 대해 필기시험을 봤다. 객관식도 있지만 대부분 주관식이다. 실기 시험은 모델을 데리고 와서 머리 자르는 단계부터 완성된 스타일링까지 심사위원이 체크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마이스터 시험에 합격했지만, 미용실을 열려면 여러 준비과정이 필요했다. 마침 수공업회의소 상담사가 미용실에서 ‘스툴미테’(Stuhlmieter, 의자 하나로 사업장을 여는 것) 일을 제안했다. 윤실에게는 가게를 열기 전 독일 미용실에서 일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미용실의 의자 하나만 빌려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남는 시간에 독일어 공부도 할 수 있었다.

 

우선 집 근처의 모든 미용실을 다니며 스툴미테를 구하는 곳이 있는지 알아봤고, 어렵지 않게 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워낙 일에 치이며 살았기 때문에 오전에는 어학원에서 독일어를 공부하고, 주 4일 오후에만 예약 손님에 한해 일을 했다. 함께 일하는 미용사도 주 4일만 일했고 오후 4시에 퇴근했다. 휴가는 한두 달에 한 번씩 떠났다. 25년간 몸담았던 한국과는 모든 것이 달라서, 윤실은 한동안 매일 충격을 받았다.

 

한국의 ‘고객님’ 문화와는 대조적인 대우와 조건

 

윤실이 헤어 디자이너로 산 지난 시간에는 한국사회의 불편한 민낯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미용사들의 열악한 노동환경, 전문기술직이 전문직으로 인정받는 게 아니라 서비스를 팔아야만 하는 ‘고객님’ 문화, 독일에서는 장인으로 인정받는 전문 손기술자들에 대한 홀대 등. 윤실은 이 모든 걸 25년 동안 말 그대로 ‘버텼다’.

 

윤실이 접한 독일 미용실 문화는 한국과 달랐다. 우선 대부분의 독일 미용실은 예약제로만 운영되기 때문에 미용사는 예약이 있는 시간엔 일을 하고, 예약이 없는 시간은 여가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한국에서 일할 때 윤실은 출퇴근 시간도 가늠할 수 없었는데, 독일에서는 하루에 몇 시간을 언제 일하는지 알 수 있어 계획된 일정으로 지낼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두 국가의 가장 다른 점은 헤어 디자이너가 한국에서는 서비스직이지만, 독일에서는 예술가나 전문직으로 대우받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미용사가 전문가이기 때문에 손님이 스타일과 관련해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나 고민에 대해 상담하고 이에 대한 미용사의 의견을 존중해주는 분위기예요. 그래서 일할 때 굉장히 대우받는 느낌이고요. 한국에서는 실력, 경력에 상관없이 그저 ‘고객님’ 비위를 맞추는 게 중요했어요. 손님이 아무리 억지를 써도 절대 인상 쓰지 않고 감정노동을 해야 했고요. 그럴 때마다 기술을 열심히 공부했는데 왜 이렇게 일하고 있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의 말에 따르면, 한국의 헤어 디자이너들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 세미나도 듣고 트렌드를 따라가기 위해 많은 공부를 하는데 정작 고객에게는 기술보다 서비스로 평가를 받는다. 고객 불만이 접수되는 사례는 대부분 디자이너의 실력이 아니라 태도에 관한 것이 많다고 한다. 이렇게 불만이 접수되면 디자이너는 본사에 시말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그때마다 디자이너는 큰 회의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윤실은 법으로 근무시간과 휴무일이 규제되는 독일 시스템이 한국에도 자리 잡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독일에서는 관청 허가 없이 공휴일과 일요일에는 상점이 문을 닫아야 하고(의식주 해결에 필요한 가게 일부 제외), 근무시간이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어 이를 어길 시 기업은 엄청난 벌금을 내야 한다. 그는 “독일처럼 국가에서 업종별로 총 상점 수를 제한한다면 한국과 같이 무분별하게 경쟁해야 하는 문화가 바뀔 것이고, 그러면 모두가 잘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40대 중반에 인생의 롤모델을 만나다

 

‘스툴미테’로 일하는 동안 윤실은 함께 일했던 60세 헤어 디자이너를 보며 미래를 꿈꾸게 됐다. 한국에서는 마흔 살만 돼도 위기감이 들고 미래를 꿈꾸기 어려웠는데, 60세가 훌쩍 넘어서도 자신의 일을 즐기며 사는 독일의 헤어 디자이너들을 보며 그는 희망을 얻었다.

 

“독일에서 미용 일을 즐기면서 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미용 일은 지금까지 저에게 밥벌이를 위한 일이었고 그저 직업이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미용 일을 했고, 이 일만 해왔으니까요. 하지만 함께 일했던 원장님은 일을 즐겁게 하고 충분히 여가를 즐기면서 사는 게 보였어요. 미용 일을 하면서 저렇게 늙어갈 수 있다는 걸 원장님을 보며 처음 알게 됐어요.”

 

▲ 독일 수공업 분야에서는 나이와 상관없이 여러 여성이 일하고 있다.  (출처: frauenimhandwerk.de) 

 

윤실은 월요일부터 목요일, 주4일 동안 오후에만 일하고 오전에는 어학원을 다니며 독일어 공부를 이어갔다. 가끔 예약 없이 찾아오는 손님이 있으면 윤실은 반가운 마음으로 맞이했지만, 함께 일하는 원장은 ‘여기는 약속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곳이니, 약속을 잡지 않은 손님은 돌려보내라’고 조언했다.

 

독일 미용실에서 새로운 문화도 많이 배웠다. 윤실의 설명에 따르면, 독일인은 스타일 변화를 싫어한다. 그래서 보통 한 달에 한 번 미용실을 찾아 머리를 자르는데 딱 자라난 길이만큼만 자른다. 그 스타일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파마 손님은 거의 없다. 염색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고객 절반 이상이 염색을 하는데, 전체 염색이 아닌 뿌리 염색만 한다. 자라난 만큼만 염색을 하는 것이다. 독일 미용실은 그렇게 한 달에 한 번 100유로 가까이 투자하는 단골손님들로 운영되고 있다.

 

반면 윤실을 찾아오는 한국 고객은 대부분 파마를 하기 위해 미용실을 찾는다. 윤실이 ‘스튤미테’로 일했던 미용실에서는 파마 손님이 평균 1년에 한 명 정도밖에 없었지만, 윤실의 손님은 대부분 파마 손님이었다. 독일인이 파마약 냄새를 싫어해 파마 손님을 받으려는 스튤미테 디자이너는 환풍기가 설치된 미용실을 구해야 할 정도였고, 윤실과 일했던 원장은 계약 시 하루에 파마 손님을 두 명만 받을 것을 명시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윤실을 찾아오는 한국 손님이 늘어났고, 이들을 감당하려면 자신의 미용실 오픈을 서둘러야 했다. 다른 디자이너 없이 자신의 롤모델로 삼고 싶은 원장과 둘이서만 일하는 좋은 일터였지만, 윤실은 파마 손님을 받기 위해 가게 오픈 준비에 들어갔다. 한인 미용실이 많은 프랑크푸르트를 방문해 사전 조사에 들어갔고, 독일에서 판매하는 파마약이 한국인 모발에는 소용이 없어 한국에서 파마약을 모두 사 와야 했다.

 

독일이 좋아서라기보다 여기서 지내는 게 ‘맞다’ 생각해요

 

‘스튤미테’로 1년간 일한 뒤 윤실은 2018년 9월, 바람대로 베를린에 자신의 이름을 건 미용실 ‘HERA Choi’를 열었다. 이 미용실에 있으면 마치 한국 미용실에 있는 기분이다. 독일 미용실은 대부분 1층에 위치하지만 윤실의 미용실은 2층에 있고, 구조도 한국 미용실 구조와 비슷하다. 윤실도 이 공간을 보자마자 맘에 들어 자재도 모두 인수하고 계약을 서둘렀다고 한다. 스튤미테로 일하며 모든 돈으로 보증금과 시설비를 해결할 수 있었다.

 

▲ 본인이 운영하는 베를린 한인미용실에서 윤실의 일하는 모습.     ©채혜원

 

운영 시간은 9시부터 20시로 되어있지만, 예약제로 운영하기 때문에 손님이 없는 시간에는 개인 시간을 보내고, 저녁 예약이 없는 날은 일찍 퇴근하기도 한다. 윤실은 자신의 미용실을 운영하면서도 하루 시간을 계획해서 이용할 수 있는 점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손님은 대부분 한국인 손님과 이민 2세 손님이 주를 이룬다.

 

그렇게 꿈꾸던 가게를 열었지만, 윤실에게 마음의 여유는 아직 없다.

 

“독일에서 일하는 건 좋아요. 다만 마흔을 넘겨 이곳에 와서 그런지 외로워요. 한국에서는 시간이 없어서 친구를 못 만났다면, 독일에서는 시간은 많지만 친구가 없어요. 그리고 한국에서 너무 일만 하면서 지내온 시간이 길어서, 아직도 일을 즐기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고요.”

 

여전히 독일어 구사가 마음만큼 되지 않는 것도 크다. 독일어를 유창하게 한다면 어디든 가서 친구도 사귀고 베를린 곳곳에 있는 재미난 공간을 찾아다닐 텐데, 윤실은 언어 때문에 모든 게 망설여진다. 사업체를 갖고 있다 보니 세무, 행정 등의 일로 관청 갈 일이 많은데 언어가 서툴러서 한번 찾아가면 될 일을 여러 번 가야 하는 것도 곤욕이다. 종종 관청에서 ‘당신은 이 정도 독일어 수준으로 무슨 사업을 하고 있느냐’는 말을 들을 때면 마음이 답답하고 한국이 그리워지곤 한다.

 

하지만 윤실은 이렇게 말했다.

 

“독일이 너무 좋아서 있다기보다는 여기 있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어서 살고 있어요. 한국에 돌아가면 25년의 경력은 사라지고 다시 원점에서 시작해 고객 유치를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난 여기서 살아야 하니까 힘들어도 적응해야 한다.’ 그런 마음으로 지내고 있어요.”

 

윤실의 말을 듣고 나니 그간 수많은 여성과 나눈 이야기가 떠올랐다. 돌이켜보면 독일이 ‘최종 도착지’라고 말한 이주자는 없었다. 많은 이주자가 지금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땅에서 최선을 다해 살고 있지만 더 나은 도착지를 찾고 있었고, 그 도착지로 가기 위한 새로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윤실의 말처럼 독일에서 사는 게 너무 좋다기보다, 지금 머물기에 최선인 곳이 독일이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여전히 힘든 일이 많지만 윤실은 독일에 도착하기 위해, 그리고 정착을 위해 더욱 열심히 노력하기로 했다. 이미 한번 합격한 마이스터(Meister) 시험의 다음 단계에도 도전하기로 한 것이다. 독일에서 장인으로 인정받는 마이스터 시험은 총 네 파트로 나뉘며, 첫 번째와 두 번째 파트가 관련 영역 필기/실기 시험이다. 윤실은 이 두 가지 파트 시험을 통과했고, 일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세 번째 파트는 경제와 법에 대한 시험이고, 네 번째 파트는 업무와 관련된 교육학 시험이다. 윤실은 우선 네 번째 파트인 교육학 시험에 도전해 강사 자격증을 획득할 계획이다. 그는 “독일에서 미용에 관심 있는 한국인에게 미용 기술을 가르쳐주고 싶고, 나중에 독일어가 된다면 독일인에게도 한국미용 기술을 가르치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2년 안에 교육학 시험에 합격해서 직업교육 과정에 있는 이들을 내 미용실에서 고용하는 것이 가능해지면, 본격적으로 가르치는 일을 시작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후에도 윤실의 도전은 계속된다. 그는 세 번째 파트인 경제와 법에 대한 시험도 통과해서 네 파트의 ‘마이스터 시험’(Meisterprüfung)을 모두 합격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현재 자영업 비자로 일하고 있는데, 3년 안에 비자 기간이 만료되면 바로 영주권도 신청할 계획이다. 마이스터 도전에 대한 포부를 밝히며 “독일어 공부를 꾸준히 하려고요. 아니, 해야겠어요.”라고 말하는 윤실을 보니, 그가 왜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단기간에 획득한 반짝이는 실력보다는 오랜 시간 한 영역에서 일해 온 경험을 높은 가치로 인정하는 독일 사회에서 윤실이 가지고 있는 25년이라는 긴 경력이 뒷받침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주해서 무엇을 한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목표’와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자격을 갖추는 일이다. 윤실은 ‘독일에서 미용실을 열겠다’는 명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25년간 갈고 닦은 자신만의 미용 기술로 마이스터 자격을 갖췄다.

 

윤실을 보며 다시금 깨닫는다. 이주자에게 ‘정착’은 목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결과’라는 것을. 이주를 준비하는 이에게 전하는, 그의 짧지만 강한 메시지다. 그가 정착에 성공한 한인 미용사를 넘어 독일에 한국의 미용 기술을 전파하는 교육자로서 사는 모습을 그려본다. 상상이 아니라 곧 현실이 될 그 모습을 말이다.

 


[독일 수공업 분야 여성 비율 여전히 미흡]

 

안경사, 전기기사, 정밀기기 정비공, 미용사, 배관공 기사, 주택 지붕 시공기술자, 농기계 정비공, 가구 제작사, 목수, 차량/자전거 정비공 등 독일에서 전문 손기술과 관련된 수공업 분야에 종사하는 여성 비율은 남성에 비해 여전히 낮다. 미용사 분야에서만 여성 비율이 높고, 대부분 ‘전통적인 남성 직업’인 전문직으로 여겨지고 있다.

 

▲ 여전히 낮긴 하지만 독일 수공업 분야의 여성 비율이 늘고 있다.     (출처: zeit.de)

 

예를 들어 도장공 여성 비율은 6.5%, 목수 5%, 전문제빵사 7.7%에 그치고 있다. 이는 독일 연방 직업교육연구소가 지난 12년 동안 전형적인 남성 직업훈련 영역으로 여겨지는 105개 직업군에서 젊은 여성 비율이 얼마나 늘었는지 조사한 결과다. 전체 영역 중 80%에서 여성 비율이 증가했다고 하지만, 매우 낮은 비율이다. 여성이 가장 많이 종사하고 있는 직업은 미용사이며, 식품거래 전문 판매원, 도장공 등이 뒤를 이었다. 연구소가 정의한 ‘전형적인 남성 직업군’이란 전체 종사자 중 남성 비율이 80%를 초과한 직군을 말한다.

 

여성 비율이 여전히 낮다 보니 여성들은 편견과 차별을 겪으며 일하고 있다. 독일 언론 <디차이트> 보도에 따르면, 도장공으로 일하고 있는 실비아(35)는 직업교육 훈련을 거쳐 마이스터(장인) 시험에 합격한 이후 자신의 가게를 열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이 ‘전문가’임을 증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비아는 <디차이트>와의 인터뷰에서 “롤러와 페인트, 니스 등의 재료로 건물과 여러 구조물을 보호하고 장식하는 일은 어렵지만 익숙해졌다”며, “그러나 사람들의 불신으로 인해 여성으로서 이 기술 전문가라는 것을 정기적으로 증명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독일 남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 있는 도시 울름의 수공업회의소에서도 새로운 직업교육 계약을 이뤄낸 여성은 25%에 불과하다. 수공업 종사 여성을 위한 센터를 맡고 있는 카린은 “3년에서 5년 안에 수공업 내 모든 훈련 장소의 여성으로 채워질 것이라고 전망하며, 여성이 수공업 영역에 관심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울름과 보댄 호수 사이 지역에서 운영되고 있는 수공업 매장 중 약 20%가 여성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여성 참여율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여성이 운영할 사업체가 증가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독일수공업중앙협회는 “여성 비율이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울름 수공업회의소의 자료는 이 지역뿐만 아니라 독일 전역의 발전을 반영한다”고 진단하며, “마이스터(장인) 시험에 합격한 이들 중 여성 비율이 20%에 달하며, 이는 지난 25년간 두 배 증가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에 독일 정부에서는 수공업 분야 여성 지원을 위해 여러 기관을 운영 중이다. 예를 들어 베를린에서는 ‘베를린 여성 수공업자를 위한 역량센터’가 있다. 베를린 시의회에서 지원하는 역량센터에서는 자영업자나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여성이 다양한 방식으로 기술을 익힐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구체적으로 지원 내용을 살펴보면 ‘수공업 분야 여성 전문 네트워크 운영’ ‘전문가 및 전략적 파트너와 여러 교육, 세미나 운영’ ‘개인 경력과 잠재력 개발 지원’ ‘수공업 분야 여성 채용 기회 확대하기 위한 활동’ 등이다.


 

※ 필자 소개: 채혜원. 독일 베를린 거주. 한국에서 ‘우먼타임스’, ‘여성신문’ 기자와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에서 전문직 공무원으로 일했다. 현재 국제 이주·난민 페미니스트 그룹 <International Women Space> 멤버로 활동 중이며,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로 유럽 페미니즘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chaelee.p@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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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브리즈번 2020/02/12 [00:00] 수정 | 삭제
  • 호주도 비슷합니다. 주요 도시 1층, 쇼핑센터는 밀려드는 손님때문에 예약제 없이 운영되고 도시외각 1층이나 2층에 있는곳은 한인홈페이지에 광고하여 예약제로 운영중이고 제가 다니던 한인 미용실도 돈보다는 대우받고 싶어서 오셨다고 햇어요 ㅎㅎ 호주 오지사람 한명 스텝으로 가르치면서 운영하시더라구요 그분 나이가 55세 였는데 영어는 못해도 즐겁게 일하셨습니다 돈은 한국보단 적게 버는데 호주 물가가 비싼편이 아니라서 살만 하시다고 했습니당. 참고로 호주는 최저 시급 1만7천원정도합니다.
  • 혜원 2019/12/30 [17:27] 수정 | 삭제
  • 기사에 모두 언급되어 있지만 다시 설명드립니다. '임금' 이야기는 기사에 나오지 않는데, 굳이 임금 이야기를 꺼내셨으니 말씀드립니다.

    윤실의 경우는, '돈'보다 '시간' 그리고 서로 존중하는 문화 때문에 독일로 이주한 경우입니다. 지점장까지 하며 돈을 잘 벌었던 윤실에게 '돈'이 중요했다면, 한국에서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독일에도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는 미용사들이 있겠지만, 기사에서는 '임금'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몇 년 경력인지, 어느 도시인지, 어떤 직업훈련을 받았느냐 등에 대해 따라 상대적으로 크게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 임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25년의 경력을 가지고, 5년 넘게 걸리는 마이스터 시험을 1년 만에 합격한 윤실의 경우와 직업훈련만 마치고 현장에 투입된 미용사와는 당연히 대우와 조건이 다르겠죠. 한국도 그렇지만, 독일에서는 경력과 그 분야에서 일한 시간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니까요. 한국 미용사가 독일 와서 취직할 경우, 어느 정도의 경력을 가지고 있는지 마이스터 시험에 합격해 윤실 처럼 본인의 가게를 운영할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노동조건은 굉장히 달라질 겁니다.

    덧붙여, 독일 미용실은 '대부분' 예약제로 운영된다고 기사에 적혀있고 윤실은 100% 예약제로만 운영하는 미용실에서 근무한 경우입니다. 독일의 경우, 고급/일반 미용실 기준 보다는 운영자 의지에 따라 예약제 여부가 다르고요. 물론 예약 시스템으로 운영하는 곳이 더 많긴 하지만요. 기사에서는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라 굳이 쓰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독일에 도착한 이유' 연재의 목적은 '여성의 자기 실현'이 아닙니다. 연재 목적에 관한 내용은 연재 첫 번째 기사 '밀레니엄 시대 한국 여성의 이주 이야기'에 담겨 있습니다.
  • 황당 2019/12/29 [00:50] 수정 | 삭제
  • 침소봉대 기사의 전형. 독일에서 원장이 아닌 미용사는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최저임금 언급될 때 항상 미용사 시급이 언급될 정도로요. 그리고 고급 미용실이나 완전 예약제로 운영되지, 일반 미용실은 예약없이 합니다. 현실을 전혀 모르고, 특정 목적 - 여성의 자기실현 - 에 맞춘 왜곡기사네요. 기사 믿고 독일가서 미용실에 취직해 고생하면 기자가 책임질껍니까?
  • 오스틴 2019/12/21 [18:23] 수정 | 삭제
  • 단골 미용실 언니가 다르게 보이네요..
  • kong 2019/12/19 [18:09] 수정 | 삭제
  • 롤모델이 있다는 것만도 좋은 자극을 주죠. 부러워요. 헤라씨의 도전에 박수를 보냅니다
  • 폴짝 2019/12/18 [14:48] 수정 | 삭제
  • 미용실에 갈 때마다 파마약 냄새가 코를 찌르는데 여기서 종일 일하는 분들은 진짜 몸이 괜찮을까, 피부병은 없을까 걱정스러웠어요. 독일에 미용사가 파마 고객은 하루에 둘 이상은 받지 않는다는 부분 보고서 진짜 한국하고는 차원이 다른 환경이라는 걸 체감하게되었습니다. 노동환경, 노동자의 건강, 진짜 중요한데 하찮게 취급하고 개개인이 골병들고 병원비 감당하는 구조인거죠. 한국은. 언제쯤 달라질까요.
  • 리에 2019/12/18 [11:40] 수정 | 삭제
  • 기술자를 존중하는 나라 독일로 가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직접 실행에 옮긴 분 얘기를 보니까 참 멋지고 대리만족도 되네요. 잘 적응하시고 건강관리도 잘 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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