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많은 청년 페미니스트들이 다양한 페미니즘 주제를 예술로 표현하고 있고, 나아가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과 차별, 위계 등에 문제 제기하며 평등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따로 또 함께’ 창작을 통해 사회와 소통하는 페미니스트 예술가들의 새로운 서사를 기록합니다. 이 기획은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지원을 받아 진행됩니다. [편집자 주]
‘2020년은 연극의 해’ 무색한 코로나19 사태
나는 청년 창작자인 동시에 페미니스트이다. 대학의 울타리를 벗어날 무렵 페미니즘 리부트의 세례를 받았고, 내가 처한 일상의 문제에 대해 자각하기 시작했다. 이를 연극이라는 사회적 틀을 통해 탐구해보고 싶었고, 비전공자 출신으로 시작해 연극계에 진입한 지 3년이 되었다.
그런데 올해 개편된 서울문화재단의 지원사업 체계는 이제 나를 ‘청년’예술인이 아니라 ‘신진’예술인으로 호명한다. ‘청년’에서 ‘신진’이라는 공적 언어의 변화가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혹시 청년이라는 사회적 나이 범주에 들지 못했던 신진 창작자들을 포괄한다는 장점보다 상당수의 청년 창작자들이 경쟁에 밀려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다는 단점이 두드러지진 않을까? 미투(#MeToo) 이후 연극계의 변화를 추동한 여성 창작자들의 활발한 활동의 배경에는 청년예술인 지원사업의 기여가 컸기에 이런 걱정을 하게 된다.
한편으로 2020년을 강타하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로 인해 공론장의 논의 자체가 후퇴하게 될 것 같다는 두려움이 생긴다. 모든 공연 주체들이 똑같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3월 중순인 현재, 상반기 공연을 계획했던 대부분의 프로덕션들이 공연 연기 혹은 취소를 하고 있다. 2020년이 ‘연극의 해’로 지정되었다는 사실이 무색하다.
언제까지,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는 점에서 연극계는 하나의 운명 공동체임을 절감하는 중이다. 후대의 누군가가 한국 현대 연극사를 공부한다면 2014년 세월호 참사, 2015년 블랙리스트 사태, 2018년 미투 운동, 2020년은 코로나19가 연극계에 미친 영향을 공부하게 될 것이다.
코로나19라는 천재지변이 닥쳐서야 무력해진 ‘show must go on’(쇼는 계속되어야 한다)이라는 명제를 다시 사유한다. 연극판, 공동체, 동료, 생계. 어느 때보다 연결되어 다가오는 단어들이다. 특히 취약한 위치에 놓여 있는 여성 배우들과 조연출, 스태프들이 이 위기를 잘 넘길 수 있기를 기도한다.
우리의 노동은 시급 얼마? 예술노동 적정임금 찾기 프로젝트
서두를 길게 늘어놓는 이유는 연극계에서의 생존과 노동에 관한 나의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서이다. 예술인복지재단에서만 심층적으로 다룰 수 있는 이 어렵고도 복잡한 이슈. 이와 관련된 작은 경험을 써보려 한다.
2018년 10월 진행된 ‘제4회 10분희곡 페스티벌’에 연출로 참여하였다. 10분 분량의 32편의 희곡 작품을 2일 동안 8명의 연출이 맡아 4편씩 공연을 올리는 콘셉트였다. 내가 섭외를 받다니, 그것도 서울연극센터에서! 왠지 뿌듯했던 감정을 부인할 수 없다. 20대 연출이 관에서 섭외를 받는 일은 좀처럼 없기 때문이다.
10분희곡 페스티벌에 참여한 경험이 준 또 하나의 개인적인 의미는 현장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연극계 동료 연출들을 처음으로 만났다는 점이다. 2030 연극인의 지상 최대 미션 ‘10년간 버텨서 살아남아라’를 수행 중인 또래들과 모여 있으니 동질감에 신이 났다. 다들 모이자마자 부담 없이 즐겁게 해내기로,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겪는 어려움을 공적인 테이블로 올려 이야기해보자고 결의했다.
예술은 노동과 다르고, 우리는 근로관계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을’이 아닌 ‘갑’의 입장에서 더 유리하게 통용될 수 있는 논리라면 다시 생각해보자는 취지로 이해했다.
4편의 작품을 위해 6명의 배우를 섭외했다. 우리 팀은 작품 제작비를 모두 인건비로 사용하며, 1/n 배분하기로 결정했다. 배우의 경우 연기 경력과 출연하는 작품 수(1개~3개)에 차이가 있었다. 연출의 경우 4개의 작품에 모두 참여하며, 제작비 절감을 위해 기획, 소품 및 무대 디자인, 음향 오퍼레이터 역할을 겸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것을 페이에 있어 차등 요인으로 반영하지 않았다. ‘연기 경력이 제일 오래된 선배 배우가 출연하는 작품 수가 제일 적기 때문에 나름 합리적’이라는 나의 논리에 팀원들이 동의해주었다. 음향 편집도 겸하려다가 너무 오래 걸려서 결국 배우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음향 디자이너를 섭외해 인건비 n에 1을 추가했다.
축제 준비 및 진행 156시간. 시급 1,600원이라는 결과가 도출됐다. 다른 팀원들은 연출인 나보다 좀 더 많은 시급이 나온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충격적인가?
당연히 이런 납작한 숫자가 축제를 함께 준비한 모든 사람의 열정과 축제의 의미를 대체할 수 없고, 대체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연극 하며 살 거면 가난한 건 감수해야지, 신성한 예술에 돈 타령이냐’ 등등의 블랙홀 같은 말들에 질문을 던지고 싶었을 뿐이다.
후속 작업으로 포럼을 개최하려 했지만, 예산과 시간 부족으로 성사되지 못해 아쉽게도 다른 팀의 실험 결과를 듣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연극계 최초로, 눈에 보이는 노동 지표인 최저임금과 관련지어 연극 노동의 현실을 들여다보려고 시도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가 있는 실험이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큰 의미가 또 있다. 결론적으로 평등해 보이는 ‘제작비 1/n 분배 방식’이 내게는 지속가능하지 않은 방식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역할에 상관없이 인건비를 1/n하는 방식으로는 더이상 작업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출로 참여하는 작품이 1년 평균 1~2개인데, 제작을 겸하다 보니 연극의 다른 포지션에 비해 물리적인 시간을 가장 많이 투여한다. 그런 상황에서 작업이 생계유지에 보탬이 되지 않아 다른 일을 하느라고 정작 창작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긴다. 해를 넘기는 지원금 정산까지 끝나야 내 작업이 마무리되니 쉽게 다른 일을 계획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동료들에게 내가 갖게 되는 강박적인 미안함을 좀 더 생산적인 에너지로 바꾸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더 좋은 프로덕션과 작품을 만들기 위해 아르바이트하는 시간을 줄여 연출로서 고민하는 시간을 늘리고 싶고, 이번 프로덕션에서 예상되는 나의 작업량이 이 정도니까 이를 기준으로 제작비를 나누고 싶다’와 같은 솔직한 이야기를 꺼내겠다고 다짐해본다.
미투 이후 연극계의 변화, ‘생계 불안’이라는 걸림돌
이렇듯 2020년의 나는 열정보다 현실적인 고민이 앞서기 시작했다.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도 직장인 3년 차 징크스가 제일 고비라고들 하지 않는가. 나의 연극 열정이 점점 사그라드는 걸까? 쉽게 소진하게 되는 작업환경이 절망스럽다. 건강한 멘탈을 가진 연출이 되어야 동료들이나 작품과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 텐데, 생계 걱정에 자주 불안하고 우울하다.
매년 지원금 공고가 언제 나올지, 지원해도 떨어질지 붙을지, 붙어도 얼마를 지원받게 될지 불확실한 국가 지원 구조에 의해 연극계가 지탱되고 있다. 지원사업에 따라서 대다수 연극인들의 1년 창작 수입이 결정되는 지금의 구조로는 공정함이나 평등함이라는 페미니즘적 가치를 추구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딱히 다른 대안을 찾지도 못했다. 이 가운데 연출로 혼자 살아남아 견고한 연극계의 방조자가 될까 봐 두렵기도 하다.
지원사업 공모에 떨어지면 작업을 안 하는 것이 동료들을 돕는 것인가? 아니면 돈을 못 주더라도 다른 의미, 재미, 한 줄의 이력 등등이 될 수 있으니 함께 하자고 제안할 것인가? 그렇다면 나는 갑인가? 당장 나는 어떤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 생활비를 충당할 것인가?
이런저런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해져서 창작에 집중할 에너지를 다 써버린다. 과도한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 강박이 나를 망칠 것이다. 윤이형 소설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출판 권력의 방조자가 될 수밖에 없는 문단 현실을 고발하며 절필을 선언했고, 장은정 평론가는 “매당 5,000원의 삶”이라는 글을 경향신문에 발표하며 ‘노동자로서 평론가’의 삶은 가능한가 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 예술가들의 글에서 나의 미래를 본 것만 같다.
그렇지만 한편으론 이것이 페미니스트 예술인뿐만 아니라 활동가, 프리랜서들의 공통적인 고민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다른 페미니스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런 선택을 했고, 왜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 조건과 마음이 궁금하다.
[필자 소개: 강보름. 여성 도시청년으로서 ‘나’를 둘러싼 관계와 사회를 향하는 시선을 벼리면서 작업하고 싶은 ‘프로젝트 레디메이드’ 소속 연출가.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통시적으로 고찰한 <레디메이드 인생>(2017) 1990년대생의 불안을 사유하는 <우리가 고아였을 때>(2018) 근대 여성 노동자와 연대를 꾀하는 <모던걸타임즈>(2018, 2019) 한국 사회와 아프리카 담론을 들여다보는 <환대의 극장> 프로젝트(2019, 2020) 등 다양한 소재와 형식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일상에서 잘 이야기되지 않는 것들을 포착하여 무대화하고, 관객과의 만남을 중시하되 과정에서 모든 구성원의 희생과 착취를 담보로 하지 않기 위해 평등한 작업과정을 지향한다. 타인과 사회를 향한 시선을 열고 관계를 맺을수록 ‘나’의 자아 또한 확장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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