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돌이 회계사”로, ‘힘없는 아시아 여성’ 선입견 깨는 삶<우리가 독일에 도착한 이유> 다영: 미국공인회계사, 프랑크푸르트※ 밀레니엄 시대, 한국 여성의 국외 이주가 늘고 있습니다. 파독 간호사로 시작된 한국 여성의 독일 이주 역사 이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 <일다>는 독일로 이주해 다양한 직업군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 여성들을 만납니다. 또한 이들과 연관된 유럽의 여러 젠더와 이주 쟁점에 대해서도 함께 다룹니다. -편집자 주
다영 이주 이력서
이주 11년 차 2008~2009년 미국 유타주 한 고등학교에서 교환학생 체험 2009~2011년 미국 플로리다에서 고등학교 2학년 편입학 및 졸업 2011~2014년 미국 위스콘신 주립대에서 국제학, 경제학 학사 2014~2016년 미국공인회계사(USCPA) 자격시험 준비 및 인턴십, 구직활동 2016~2018년 홍콩 회계법인에서 신입 회계사로 근무, 공인회계사 면허취득 2018~현재 글로벌 기업 KPMG 프랑크푸르트 지사 미국 세무팀 근무
‘떠돌이 회계사’ 미국, 홍콩, 독일 내년에는 캐나다로
다영은 코로나19로 인해 독일 전체가 록다운 된 동안에도 프랑크푸르트의 자택에서 평소처럼 바쁘게 일한다. 글로벌 4대 회계법인 중 한 곳인 KPMG의 직원 2천여 명 규모 프랑크푸르트 법인에서 미국 세무(US Tax)팀 선임 회계사(Senior Associate)로 근무한 지 2년이 넘었다. 올해 하반기에는 승진을 앞두고 있다. 5년 차 경력과 유창한 영어, 미국공인회계사 면허증이 탄탄한 스펙으로 작용했다.
전례 없는 전염병 사태와 사회적 혼란에도 다영은 실직이나 업계 불황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현대사회 모든 개인과 조직에게 필수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계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다영은 구체적으로 미국 세무 담당인데, 미국뿐 아니라 세계 어디에나 일자리가 있다. 재외국민도 소득 신고와 납세를 의무화하고 있고, 미국령 내에 자산을 보유한 외국인도 모두 납세 대상으로 포괄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지금은 독일에 있는 미국인 근로자나 미국계 사업장 그리고, 미국에 소득이 있는 독일인들의 세무를 대행한다.
“동시에 10개 정도의 세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일반 근로자부터 크고 작은 법인까지 연간 3백 개 정도 클라이언트의 세금, 회계 관련 서류들이 제 손을 거쳐 가요. 각각을 꼼꼼하게 숙지하고 분류, 분석해야 하니까 정리하는데 시간을 많이 써요. 매일 새로 들어오는 이메일에 따라 프로젝트마다 일정 체크, 서류 업데이트, 마감일 관리를 하고, 일의 우선순위를 매기는 식이죠. 미국 조세제도는 아주 까다롭고 복잡하게 되어 있어서 일반인이 감당하기 어려워요. 매년 바뀌는 법도 많아서 계속 공부해야 됩니다. 공인회계사 면허를 유지하려면 정기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교육과정도 있어요.”
유학생 신분에서 ‘외국인 구직자’가 되고 나니
미국의 한 주립대를 졸업하고 뉴욕에 있는 투자회사에서 6개월 간 인턴으로 일한 다영은 정규직 전환을 예상했지만, 계약서를 받지 못했다. 학생 비자도 곧 만료되어 손쓸 도리없이 한국으로 일단 돌아와야 했다.
한국행은 청천벽력같은 일이었다. 대구에 살다 교환학생을 거쳐 편입한 고등학교 2년 때부터 벌써 6년이나 미국에 살아 그곳에 익숙해진 데다, 타지에 홀로 살면서도 늘 노력한 만큼 성과를 거뒀기 때문에 새로운 도시에서 취업하는 것도 최선을 다하면 당연히 따르는 결과일 줄 알았다.
하지만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자 현실은 달랐다. 등록금을 내고 다니는 학생 신분일 땐 비자가 잘 나왔지만, 돈을 버는 노동자가 되려 하니 미국 사회는 외국인에게 냉정했다. ‘별다른 경력이 없는 22살짜리 외국인 인문계 대학 졸업자’에게 현지 취업의 문은 바늘구멍이라는 걸 비로소 실감했다.
한국에 돌아온 다영은 이내 미국계 홍보대행사에서 3개월짜리 인턴십을 했다. 그런데 태생만 미국계지, 조직이 돌아가는 생리는 보통 한국 회사와 다를 바가 없었다. 윗사람 눈치 보기 바쁘고, 야근을 밥 먹듯이 해도 보상은 없었다. 의사 표현에 주저함이 없고 자유분방한 다영을 회사에서도 곱게 보지 않았다. 출근길이 괴롭기만 하고 한국에서 계속 직장생활을 해나갈 자신이 없었다. 억지로 떠나온 미국이 그리웠다.
10대 초반부터 할리우드 영화를 보는 것이 취미였던 다영에겐 일찌감치 자칭 ‘미국병’이 들었고, 실제로 유학 생활 동안에도 즐거운 경험이 대다수였다. 미국은 ‘나에게 잘 맞는 곳’, ‘계속 살고 싶은 곳’이었기에 어떻게든 돌아갈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인문계 전공자가 공인회계사로 진로를 바꾼 이유
다영은 그때부터 냉철하게 조사하고 분석하면서 해외 취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전부터 냉철한 현실 판단과 정보력이 다영의 강점이었다.
“당장 미국에 취업할 가능성이 너무 낮다는 게 보여서 우선 영어권 국가로 희망 지역을 넓혔어요. ‘이 국가들에서 외국인의 취업이 유리한 직종은 뭘까?’ 알아보니 엔지니어, IT 전문가, 의사, 간호사, 요리사, 회계사 정도가 있더라고요. 그중에서 회계사가 해볼 만하다고 판단했어요. 대학에 다시 가지 않아도 공인회계사 시험은 누구나 응시할 수 있고, 시험장이 미국령 전역에 있는 데다 시험 횟수와 경쟁률 면에서 우리나라 고시처럼 비인간적이진 않아요.”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 혹은 대학에서 전공한 분야가 아니라 취업에 유리한 직종에 스스로를 맞추는 결정을 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직업의 의미, 직업 선택의 기준에 대한 명사들의 강연을 찾아보면서 앞으로 어떤 직업 가치관으로 살아갈지 마음을 다잡는 시간이 필요했다. 낯선 회계 분야를 이해할 수 있도록 ‘뇌를 개조’하는데도 시간이 걸렸다. 입시 학원에서 처음에 꼴찌였던 다영은 1년가량 ‘고시 생활’을 하고 세 차례 시험장이 있는 괌까지 오간 끝에 시험에 합격했다.
노동자 복지는 좋지만, 보수적인 독일의 기업문화
“독일로 온 이유는 홍콩에 간 이유와 같아요. 오로지 일 때문에. 굳이 독일에 오고 싶어서가 아니라 더 좋은 오퍼(offer)를 좇아서 왔어요. 앞으로도 더 좋은 자리가 있다면 어디든 가겠다는 입장이에요. 경력을 쌓으면 점점 바게닝 파워(bargaining power; 협상력)가 높아지겠죠. 홍콩에 2년 정도 있으면서 장단점이 보였고, 직장문화도 겪어보니 계속 살 곳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2년 경력이 채워지고 공인회계사 면허가 나오자마자 2차 목표였던 유럽권에 이력서를 쫙 뿌렸죠.”
다영은 유럽의 금융중심지인 취리히, 런던, 프랑크푸르트 소재 회사들에 주로 지원했다. 그런데 취리히 회사들은 아시아권 외국인에게 5년 이상 경력을 요구하는 추세였고, 런던은 이미 경쟁이 너무 치열했다. 다행히 프랑크푸르트 쪽에 기회가 닿아 미련 없이 홍콩을 떠나왔다.
독일 생활은 꽤 괜찮다. 무엇보다 법정 휴가가 30일가량이나 된다. 게다가 초과근무 시간을 휴가로 환산하는 법도 엄격히 시행되어 다영은 작년에 휴가를 10일 더 쓸 수 있었다. 다른 나라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란 걸 잘 알고 있다. 덕분에 즉흥적으로 비행기 표를 잡아 유럽 곳곳을 여행하고, 재충전 시간도 충분히 누렸다. 현 직장은 글로벌 회사로서 직원 복지도 잘 갖추고 있다. 그런데도 다영은 독일 이주 3년이 되는 내년 초에 캐나다로 이직하기로 했다.
“본래 목표였던 미국 진출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어요. 물론 ‘무조건 미국’은 아니에요. 직장인으로 미국에 사는 건 학생 신분일 때와 비교해 매우 다를 것임을 알고 있어요. 그래도 미국으로 간다는 목표가 그동안 여러 나라를 오가며 경력을 쌓는데 강력한 동기가 돼 준 것 같아요. 지금도 미국 취업 ‘넘사벽’이에요. 아마 캐나다에서 경력을 쌓은 후엔 가능할 수도 있어요. 솔직히 아직까지 컨트리 쇼핑(country shopping)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궁극적인 목표는 어느 나라에서도 취업비자를 받을 수 있을 정도의 전문성을 기르는 것이에요.”
가령, 열심히 해도 손에 쥐는 세후 월급이 크게 바뀌지 않는다. 승진하면 원천징수세율이 현재 평직원으로 내는 40%보다도 훨씬 올라간다. 그리고 정규직 일자리는 아직도 대체로 정년까지 안전하기 때문인지 직원들에게 그다지 발전 의지가 없다. ‘자신의 책임 범위가 아닌 일은 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강하고, ‘새로운 시스템이나 기술을 도입하고 혁신하려는 의지’가 낮다는 게 다영의 통찰이다.
“전임자가 했던 그대로 현재 상태(status quo)를 유지하는데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아요. 아직도 독일엔 카드기 없이 현금 계산을 고집하는 상점이 많고, 각종 문서를 오로지 편지로만 주고받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인 것 같습니다. 회계업무에 있어서 앞으로 자동화가 많이 도입될 것이고, 요즘은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데, 북미나 한국처럼 기술도입이 빠른 나라들에 비해 독일은 뒤처지지 않을까 싶네요.”
친근하게 성이 아닌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고 직책에서도 계급적인 어휘를 점점 없애는 추세인 북미 기업 문화에 비해, 독일에서는 성과 존칭 사용이 아직도 기본이고 직책에는 계급이 드러난다. 이력서에 성별, 생년월일(나이), 국적, 최근 사진을 기재하는 것도 아직까지 남아있는 독일의 케케묵은 관습이다.
직장 내 인종차별과 잦은 공공장소 ‘캣콜링’에 실망
다영이 경험하는 독일 직장은 의외로 외국인에게 배타적인 분위기이다. 미국 세무팀에 있고 글로벌 회사임에도, 독일인 디렉터는 회의 때 독일어만 고집해 30명 중 6명인 외국인 팀원들을 배제해버린다. 독일어 구사가 채용 조건이 아니고 업무에 필수가 아닌데도, 근태 평가에서는 ‘독일어 향상’을 주문한다.
독일어 구사력이 없는 미국인 클라이언트에게 회사 측에서 계속 독일어로 메일을 보내자, 다영이 나서 유창한 영어 전화로 답답함을 풀어주어 전담 회계사가 되기도 했다.
“1년 근무 후 면담 때 매니저가 저에게 준 피드백이 ‘you are very polite, but too polite’(지나치게 공손하다)였어요. 더 자신감 있고 활발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사실 어이가 없었어요. 회의에서 발언권 자체를 주지 않았고, 독일어에 서툴러서 말을 많이 할 수 없는 상황인데 단지 제 성격이 조용하다고 규정해서요. 전 살면서 조용하다는 평가를 들어본 적이 없었어요. 그 뒤로 2년 차에는 전략을 아예 바꿔서 독일어를 쓰려는 노력을 아예 접었어요. 커리어에 도움도 안 되고 그것 때문에 날 무시하니까. 오히려 영어를 제 무기 삼아 클라이언트 베이스를 구축해 회사 내에서 입지를 굳혔어요.”
“제가 처음 입사했을 때 저한테 떨어진 일이 주로 엑셀에 숫자 입력하는 업무였어요. 그런데 같은 직급의 북미, 유럽계 직원들은 컨퍼런스 콜이나 외부 미팅, 상담 전화를 주로 하는 거예요. ‘아시아 사람=조용하고 꼼꼼한 업무에 능하다’는 편견 때문인 듯했어요. 2년 차부터 작정하고 공격적, 주도적 캐릭터로 나가니까 그제서야 저한테도 커뮤니케이션 업무가 많이 떨어졌어요. 캐나다 이직 결정에 큰 동기 중 하나가 그 회사(동일한 회계법인의 캐나다 지사)의 매니저들을 살펴보니 중국인, 인도인 등 아시아인들도 많았다는 거예요. 롤모델이 있으니 자연스레 ‘나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죠.”
이러한 차별 대우는 회사 지침이나 제도상에는 물론 존재하지 않는다. 조직 구성원 다수가 인종 문제에 둔감하고 소수자 차별에 대한 감수성이 없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되풀이되는 문화라고 봐야 한다.
다영은 프랑크푸르트에 살면서 일상적으로 겪는 캣콜링(catcalling, 길거리 성희롱, 지나가는 여성에게 휘파람을 불거나 언어 성희롱을 하는 것) 경험을 얘기할 때도 동료들에게 지지를 받은 적이 없다. 동료들은 ‘외모가 아름답다는 칭찬’으로 받아들이라고 조언하거나 “외국인들이 그런 거 아니야? 아랍계 사람들?”이라고 또 다른 인종차별 발언을 서슴없이 한다. 다영이 “아니야, 너희들같이 생긴 백인 독일인들이 그랬다니까”라고 답하면 독일을 인종차별 국가로 비하한다며 불쾌해하거나 “네가 잘못 들은 것”이라고 다영의 경험 자체를 부정하기도 한다. 여성 동료들조차 “그냥 친근한 인사인데 네가 오버하는 것”이라며 좀처럼 공감해주지 않는다.
직장 밖의 독일 사회도 인종 문제에 둔감하긴 마찬가지이다. 외국인 비율이 높은 편인 대도시에 살고 있는데도 다양한 인종과 연령대 남자들에게 캣콜링을 너무 자주 당하면서 다영은 ‘아시아 여성의 입지가 이렇게 작은가, 혼자 다니는 아시아 여성이 이렇게 만만한가’ 싶어 분하다.
“크리스마스 마켓이 개장한 날, 퇴근 후 직장 동료들과 놀러 갔는데 어떤 젊은 남자 무리가 저한테 ‘칭챙총’ ‘호잉호잉’하면서 낄낄거리더라고요. 누군가 하고 봤는데 정말 멀쩡하게 보이는 젊은 백인 남자들, 더구나 우리 회사 가방을 멘 애들인 거에요. 요즘 세대에, 교육수준도 높고, 수트까지 입은 우리 회사 남자애들이라니… 화가 머리끝까지 났어요. 길거리의 부랑자가 그러면 못 배운 사람이라 그런다고 측은하게 여기고 넘어갈 수라도 있는데, 주변 사람들의 무지와 무례는 정말 실망스러운 부분이에요.”
앞으로 ‘떠돌이 회계사’로 세계를 돌아다니며 살고 싶은 다영에게는 남들이 자신을 ‘힘없는 아시아 여성’으로 바라보고 공격할 때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가 고민거리일 수밖에 없다. 그 편견을 시원하게 부숴버리고 싶지만, 개인의 힘으론 한계가 있다고 느낀다.
다영에게 향후 5년간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는지 물으니, ‘직급을 떠나 내 분야 지식을 남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전문성’이라는, 역시 현실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경력 5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아직도 모르는 게 많다고 느낀다. 업무상 미국 국세청(IRS)과 소통하는 경우도 잦은데, 그렇게 하나씩 부딪치며 알아나가는 테크닉들을 내공으로 쌓아야 한다.
“어느 나라에 혼자 뚝 떨어져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추고 싶어요. 그게 제 최종 목표라고 할 수 있어요. 캐나다나 미국에 정착했다 싶어도 또 떠날 수도 있어요. 확고한 자리가 있다면 재택근무가 가능한 이 일의 특성상, 한 달씩 발리 같은 곳에 가서 즐기며 일할 수도 있겠죠.”
그래서 다영은 앞으로 3~4년은 더 커리어 계발에 집중하고 이후에 가정을 꾸리고 싶다. 육아휴직 제도가 있어 출산 후 복귀해도 자리는 보전이 되겠지만 진급에 불리하고, 클라이언트도 다 빼앗긴다는 것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성차별이 적은 업계임에도, 많은 여성 직원들이 일-가정 양립을 위해 진급을 포기하고 매니저 이하 직급에서 시간제로 일한다. 다영은 최소한 매니저까지 올라간 뒤 아이를 가질 것이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가치가 ‘자립’인 다영에게는 페미니즘도 곧 자립을 뜻한다. 한 여성으로서 경제적, 그리고 정신적 자립을 할 수 있는 것. 사회적 압력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결정하고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그런 이가 페미니스트라고 여긴다. 다영 자신도 진학, 진로, 이주와 같은 중요한 삶의 결정들을 오롯이 스스로 해왔고, 어려움이 있어도 혼자 돌파하며 그 이상향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자아가 형성되는 청소년기, 미국에서 주변 멋진 여성들을 롤모델 삼아 독립의 꿈을 키운 다영은 이렇게 말했다. “Isn’t living as a brave woman a protest in itself?”(용감한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하나의 저항 아닐까요?)
다영은 스스로에게 ‘떠돌이 회계사’라는 별명을 붙였다. 어렵게 쟁취한 직업적 정체성과 자유롭게 유랑하며 살겠다는 의지가 둘 다 담겨있다. 2016년부터 동명의 블로그도 운영하는데, 2백여 개 포스트를 통해 미국공인회계사가 되기까지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 해외 취업 성공 후 홍콩과 독일에서 일하면서 얻은 크고 작은 통찰과 성취를 성실하게 기록해왔다. 글과 다른 분위기로 목소리를 내기 위해 유튜브 채널도 개설할 예정이다.
다영은 오늘도 쉼 없이 도전하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자신이 모르는 새, 이미 많은 이들에게 ‘용기 있는 여성’ 롤모델이 되어오지 않았을까.
[독일 및 미국 회계 분야의 다양성 현황]
다영은 “회계, 세무 분야는 성차별이 가장 적은 업계 중 하나”라며 “남녀 비율이 비슷하고, 특히 세무 분야에 여성 회계사들이 많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통계 자료를 살펴보면, 독일에서 주 40시간 기준 여성 세무사의 세전 수입은 연간 74,600유로 가량으로 남성 평균 52,600유로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출처: lohnanalyse.de)
또한, 미국노동청에 따르면 2019년 여성 회계사, 감사의 주간 평균 수입은 남성의 약 80%였다. 임금 격차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여성들의 노동시간이 더 짧다는 것을 고려하면 사실상 비슷한 수준이다. 성별 비율은 2018년 기준 여성 종사자가 60.9%로 더 많았다.(datausa.io)
하지만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숫자와 법은 남녀를 차별하지 않는다”는 다영의 통찰과는 달리 젠더 격차가 두드러지는 곳이 있다. 국제공인회계사연합(AICPA)에서 발표한 보고서 <2017 CPA Firm Gender Survey>에 따르면, 미국 회계법인의 파트너(10년 이상 장기근속하거나 스펙과 실적이 뛰어난 직원들이 오르는 고위 직책으로, 회사의 주주로서 경영에 참여하고 급여 외에도 수익의 일정 지분 나눠 갖는다) 10명당 2.2명만이 여성이다.
미국 회계법인에서 대다수 여성이 사원부터 매니저(associate-senior manager)급 안에서 일하고 있으며, 이런 경향은 법인 규모가 큰 곳일수록 더욱 두드러진다. 회계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전체 여성의 숫자는 많지만, 상대적으로 많은 연봉과 결정권을 가진 자리는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남성이 주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종 다양성 면에서는 격차가 더욱 심하다. 2018년 기준 회계사, 감사의 75%가 백인이며, 아시아계는 11%, 흑인은 9%에 불과하다.(The American Public Survey 2018) 숫자와 세금을 다루는 일에 백인 엘리트 계층이나 ‘수학을 잘하는 아시아인’이 적합하다는 인종적 편견이 작용한 결과라는 지적이 많다.
이러한 젠더 및 인종 불평등에 도전하는 사례로, 여성공인회계사 비영리 네트워크인 ‘The Lady CPA Network’를 들 수 있다. 설립자인 미국 여성 Ja Juan Williams는 기업회계 분야에서 20여 년 일하면서 자금관리이사(CFO) 등 고위직까지 올랐고, 이후 공공회계법인을 설립해 성공을 거뒀다. 그는 “공인회계사 면허를 보유한 흑인 전문가는 아직도 1%에 불과하다”며, 자신과 같은 흑인 여성들의 커리어 계발을 돕고자 단체를 꾸렸다. 이 단체의 활동 대사(ambassador) 및 직원들은 모두 흑인 여성이며, 관련 전공자나 공인회계사 수험생, 창업가들에게 장학금과 멘토링 등을 제공한다.
필자 소개: 하리타 (정세연). 현재 독일 프라이부르크 거주. 그 동안 일다에서 <29살, 섹슈얼리티 중간 정산><우리 자신의 목소리로 – 독일 여성 난민들의 말하기><하리타의 월경만남>을 연재했으며, 저서로 <오늘부터 내 몸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어 (동녘, 2017)>가 있다. ‘이주’라는 삶의 모험을 함께하고 있는 이웃 여성들에 대한 큰 사랑과 존경이 이번 연재의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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