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전무한 독일 법 영역에서 활약하는 한국여성<우리가 독일에 도착한 이유> 현승: 범죄 심리치료사 & 법정소견인, 베를린※ 밀레니엄 시대, 한국 여성의 국외 이주가 늘고 있습니다. 파독 간호사로 시작된 한국 여성의 독일 이주 역사 이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 <일다>는 독일로 이주해 다양한 직업군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 여성들을 만납니다. 또한 이들과 연관된 유럽의 여러 젠더와 이주 쟁점에 대해서도 함께 다룹니다. -편집자 주
현승 이주 이력서
이주 20년 차 2001~2006 본(Bonn) 대학교 심리학 학‧석사(Diplom), 법학 부전공 2007~2010 본 대학교 심리학 박사 2011~2015 베를린 훔볼트대학 심리치료사 과정 이수, 국가고시 합격 2012~현재 베를린 및 브란덴부르크 주 형사재판소 법정 소견인 2015~현재 공인 인지행동 심리치료사 2018~현재 본 대학교 석사논문 제2시험관
독일 형사재판소에서 소견을 밝히는 범죄심리학자
한국에서 어느 때보다 ‘범죄심리학’에 대한 관심이 높다. 범죄자를 분석해 수사와 범죄 예방에 도움을 주거나 범죄자의 재사회화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보니, 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범죄 심리학자가 언론에 등장한다. 범죄심리학의 연구 영역은 형사 심리, 범죄 정신의학 등 세분되어있는데 독일에서 범죄심리학을 공부한 현승의 경우, 법심리학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승은 대답했다. 소견인으로 경험이 많다는 것이 매번 더 나은 소견을 낸다는 보장은 아니며, 100번 소견서를 써도 같은 실수를 할 수 있다고. 내 소견은 심리학자로서 내린 최선의 결론이며, 그 내용에 대한 질문이 있다면 기꺼이 답하겠다고 말이다.
현승은 여러 번 법정에 서면서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 법정 소견인과 의견이 다른 검사나 변호사가 소견인을 감정적으로 흔드는 이유는 성급한 발언을 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있다는 걸, 그는 이제 알고 있다.
현승은 “내가 알 수 없는 것은 모른다고 하고, 감정적인 질문을 받아도 내 주장이 정답이라고 우기지 않는 태도, 즉 법정 소견인으로서 선을 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며 “액션을 취하되 반응하지 않는 쿨함을 잃지 말아야 언어의 기술자인 법조인들을 상대로 중심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몇 번의 잔인한 경험을 통해서 배웠다”고 말했다.
현승은 범죄심리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심리치료사 과정을 이수한 후 국가고시에 합격한 ‘국가 공인 심리치료사’다. 범죄심리를 전공한 만큼 현승의 환자는 대부분 가석방자이거나 보호관찰 대상자다. 법원 명령으로 심리치료를 의무로 받아야 해서 법무부에서 보낸 환자도 있고, 본인이 원해서 정부 지원으로 온 환자도 있다. 현승은 주로 재범했을 때 사회적 손실이 큰 범죄자의 심리치료를 진행한다.
범죄자를 분석해 소견서 쓰는 ‘법정 소견인’의 일
현승은 심리치료사인 동시에 법정에서 의뢰한 심리 심약 관련 범죄자를 심사하는 ‘법정 소견인’으로도 일하고 있다. 주로 심리 심약 관련 범죄자를 분류 심사하거나, 석방 소견서를 작성한다.
구속된 후 재판 준비 중인 과정에 있는 피의자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현승은 전문가로서 그에 대한 소견서를 작성한다. 이를 위해 현승은 재판이 시작되기 전에 구치소에 있는 피의자를 만나 상담을 진행하며, 심리분석 후 감옥으로 보낼지 치료감호소로 보낼지 분류한다. 치료감호소로 갈 경우 형이 없는 것으로 인정되고 치료 완료 후에 석방되는 것으로 되어있지만, 현승에 따르면 20년 넘게 감호소에 갇혀 지내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법정 소견인 일을 하게 된 것은 대학에서 심리학 전공 외에 법학을 부전공으로 공부한 게 뒷받침됐다. 독일에 도착한 후 1년간 어학 공부를 한 현승은 겨울 학기가 시작되기 전, 한 학기 정도 시간이 비었고 이 시간에 법대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호기심으로 법 공부를 시작했지만, 범죄심리 공부를 앞둔 현승에게 이와 연관된 형법 공부는 큰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이후 범죄심리를 전공하면서 형법을 부전공으로 같이 공부했다.
“박사과정을 마치고 한 의대 교수님과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는데, 그분이 독일에서 정말 유명한 법정 소견인이었어요. 지금 일하고 있는 사무실 대표가 그분의 제자이기도 하고요. 당시 심리치료만으로는 벌이가 걱정돼서 소견서 쓰는 일을 시작했어요. 독일에서는 대부분 정신과 의사나 심리학자가 법정 소견인으로 일하고 있어요.”
현승은 주중에 주로 사무실에서 석방된 범죄자를 치료하거나 법정 소견서를 쓴다. 소견서를 써야 하는 대상자가 구치소에 있거나 치료감호소에 있으면 직접 방문해 상담을 진행하기도 한다. 이외에 하루나 이틀은 법정 소견인으로서 재판에 참석한다. 만약 재판이 4년 정도 진행되는 사건이 있으면, 4년간 매주 이틀씩 그 재판에 참석하는 경우도 있다. 현재 일반인 대상 심리치료는 하지 않고 있으며, 몇몇 경찰과 군인의 심리치료만 맡고 있다.
20년 전, 범죄심리를 공부하기 위해 홀로 떠나온 독일 ‘본’
올해는 현승이 독일로 이주한 지 딱 20년 되는 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년 후 현승은 홀로 독일에 도착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범죄심리학에 관심이 있던 현승은 외국어고등학교 재학 시절, 여름방학 기간에 영국에서 어학연수 하면서 당장 외국에 나와서 공부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자유로운 환경에서 새롭게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당시 현승은 너무 어렸고, 영국으로 이주하기엔 경제적 부담이 너무 컸다. 범죄심리학 분야는 미국, 영국, 독일 대학이 잘 알려져 있었고, 현승은 자신이 살아보고 싶은 유럽 국가 중에서도 등록금 부담이 없는 독일로 떠나왔다. 당시 범죄심리학에 대한 전문적인 학‧석사(Diplom) 과정을 운영하는 독일 대학은 여섯 곳에 불과했고, 그중 서독의 임시수도였던 본(Bonn) 대학을 택해 심리학과에 입학했다.
독일 대학에 들어가려면 입학자격시험인 아비투어(Abitur)을 봐야 하지만, 현승은 독일로 떠나오기 전 1년간 한국외국어대에서 이수한 학점이 인정되어 입학 자격을 얻었다. (독일에서는 독일 대학에서 공부하려는 외국 학생의 입학 여부를 결정하는 시험 준비 과정으로 ‘스투디엔콜렉’(Studienkolleg)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고등학교 졸업 증명서와 중급 이상의 독일어 능력이 되면 지원할 수 있다.)
“한국에서 공부한 독일어는 문법 위주였지만, 법학 공부를 시작하자마자 모든 걸 논술형으로 써야 했어요. 한 법정 사례를 두고 형법에 맞게 수십 장을 쓰는 게 시험이었는데, 쓰는 것 자체가 곤욕이었죠. 학사와 석사 과정이 끝날 때 본 시험은 모두 구두시험이었어요. 발표도 50개 이상 해야 했고요. 독일어를 잘하지 못하면 앞으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죠. 그래서인지 심리학과와 법학과에 외국인의 거의 없었어요. 학교 다니는 내내 독일어로 나 자신과 싸움을 했던 것 같아요.”
독일어와의 싸움에서 현승이 지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심리학과 법학에 대한 흥미였다. 심리학은 통계 쓰는 일이 많아 학사 때는 수학 수업이 많았는데 그조차 재밌었고, 범죄심리와 연관된 형법을 같이 공부할 때에는 큰 행복감을 느꼈다. 정해져 있는 교육과정에 학생의 자율권이라고는 전혀 보장되지 않는 한국 교육 시스템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 공부를 하니 현승은 그저 좋았다. 독일어 실력을 늘리기 위해 친구들과 열심히 놀러 다니는 일도 즐거웠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청소, 베이비시터, 여행가이드, 비즈니스 일정 조직 및 통역 등 다양한 아르바이트도 부지런히 했다.
고난은 본에서 11년간의 공부를 마치고 심리치료사 과정을 이수하기 위해 베를린으로 이사하면서 시작됐다. 많은 학문이 그러하듯 현승이 학교 밖으로 나와 접한 범죄심리 현장은 이론과는 전혀 달랐다.
베를린에서 치료감호소 인턴, 이론과 다른 현장을 접하다
본은 공부하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도시였지만, 현승은 베를린을 방문할 때마다 직업을 갖고 일할 곳은 베를린이라고 생각해왔다. 베를린 고등법원은 규모도 물론이거니와 처리하는 케이스 수도 다른 법원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큰 법원이다. 게다가 다뤄지는 사례도 갱단, 마약밀매 등 규모가 크다. 어느 도시보다 풍성한 베를린의 먹거리와 놀 거리도 스트레스 관리 측면에서 현승에게 중요했다.
베를린 이주를 위해 현승은 박사학위 취득 후 직업훈련과정에 참여하기 위해 베를린 훔볼트대학으로 심리치료사 과정을 지원했다. 여러 곳을 지원하는 게 보편적이지만, 현승은 오로지 훔볼트대학에만 모든 걸 걸고 지원서를 냈다. 결과는 8:1이라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합격. 2011년 1월, 현승은 베를린 훔볼트대학 소속 심리치료사 과정을 시작한다.
의대에서 본과 공부를 마치면 수련 과정을 거치는 것처럼, 심리치료사가 되려면 학위를 마친 후 환자를 돌보면서 세미나를 듣는 과정을 5년 정도 이수한다. 치료사 과정을 마치고 국가시험에 합격하면 국가가 인정하는 공인 심리치료사가 되는 과정이다. 이들은 의료진으로 인정돼 대게 큰 병원에서 일하거나 개인병원을 연다.
심리치료사 실습 과정에 들어가면서 현승은 치료감호소(Krankenhaus des Maßregelvollzugs)에서 인턴을 시작했다. 독일에서는 누군가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르고 정신적인 특이점이 관찰될 경우, 감옥이 아니라 치료감호소에 수용된다. 그러다 보니 현승은 이곳에서 반사회적 인격 장애의 일종인 소시오패스(sociopath) 등 심각한 정신적 문제를 안고 있는 데다 빈곤층으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수많은 범죄자를 접했다. 10년간 공부한 무수한 이론이 무색하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심리치료사로서 그들을 치료해야 하지만, 치료에 참여할 의지가 전혀 없거나 사이코패스 또는 소시오패스 성향을 가진 범죄자들을 계속 접하다 보면 시니컬해지기 쉽다. ‘어차피 저 사람은 치료되기 어려워’ 등의 부정적인 생각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 현승은 굳게 자기 자신을 다잡았다.
“저는 저 자신을 의료진이라고 생각하니까 내 앞에 아무리 극악무도한 사람이 있어도 치료해야 하는 환자라고 생각해요. 의료진으로서 누군가를 도덕적으로 판단하면 안 되니까요. 그런데 치료감호소에 그런 치료사가 너무 많았어요. 범죄자 중에서도 가장 치료가 시급한 이들을 치료자로서 진심으로 대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크게 실망했죠. 여기서 계속 일하면 나도 그들처럼 시니컬하게 변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로 인해 현승은 1년간의 치료감호소 인턴 생활을 마치고, 독립적인 상황에서 치료하는 치료사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치료사 과정을 모두 마치고 국가고시에 합격한 현승은 2017년 개인병원을 열었다. 영주권은 심리치료사 과정 중인 2014년에 취득했다.
개인병원을 연 이유에는 치료사와 환자 간 철저한 비밀유지가 보장되는 점도 있었다. 치료감호소에서는 치료한 내용을 보고서로 작성해 모두 법정에 보고해야 하므로 환자는 치료사에게 진실을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진실을 말했다간 몇 년을 더 감호소에 있을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이에 현승은 제대로 된 심리치료를 할 수 있는 환경, 즉 환자와 치료사 간 비밀이 철저히 유지되는 개인병원을 열었다.
“재사회화와 관련해 다양한 범죄학적인 접근이 있어요. 과거에는 범죄자의 문제에 초점을 맞춰 ‘당신은 이런 게 문제이니 이걸 고쳐야 한다’는 식의 접근이 많았는데, 이렇게 되면 범죄자 입장에서는 ‘아, 내가 문제구나’라고만 결론이 나거든요. 하지만 최근에는 당신이 이런 잘못을 저질렀지만, 반면 이런 잠재력이 있다고 말해주고, 그 잠재력을 부각시켜주면서 지원하는 방법이 늘고 있어요. 아무리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잠재력을 끌어내서 스스로 치유할 수 있도록 치료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현승에게 중요한 건, 자신에게 치료받는 사람이 자기 의지를 가진 사람으로 존중되고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이에 현승은 한 사람이 범죄자가 된 과거 상황에 대한 분석뿐만 아니라, 현재의 자신을 어떻게 분석하고 잠재력을 끌어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지에 집중한다.
이주 배경 가진 청소년 범죄자의 재사회화에 애착
현승이 일하는 영역이 워낙 특수하다 보니 외국인이나 여성으로서 겪는 차별 경험은 거의 없었다. 다만 현승은 이주 배경을 가진 청소년 범죄 문제와 이들의 재사회화에 대해 큰 애정을 갖고 있다.
“청소년 중에서도 18세에서 만 21살 사이 범죄자의 경우, 그 나이대에 심리상담이나 치료가 이뤄지지 않으면 계속 잘못된 길로 갈 확률이 높아요. 그래서 이들을 위해 한 비영리단체에 고문으로 합류해 이주 배경을 지닌 멘토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A국가 출신 청소년이면 범죄 이후 재사회화 과정을 잘 마친 A국가 이주 배경이 있는 멘토를 연결해주는 거죠. 문화 차이가 너무 커서, 독일인이나 다른 배경을 가진 멘토는 소용이 없어요.”
여전히 성차별이 심한 국가에서 온 청소년을 대할 때, 현승은 이들에게서 여성 심리치료사에 대한 존중이 전혀 없는 경우를 접하곤 한다. 여자가 하는 말을 무시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현승은 이들을 존중하는 입장으로 자신의 인생 경험을 들려줄 적합한 멘토를 찾아주는 일에 여념이 없다. 박사과정을 공부할 때부터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이들이 이주 배경을 가진 청소년 범죄자 그룹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업무를 익히느라 힘들었지만, 이제 경험이 생기니 일이 많아지는 게 문제에요. 저기 쌓여있는 박스 두 개 보이시죠? 이틀 전에 온 건데 5천 장 정도의 자료를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읽고 범죄자를 만나 소견서를 써야 해요. 이전에 보통 한 달 정도 시간이 주어졌다면, 요즘엔 같은 분량인데 2주 만에 끝내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업무량은 늘었지만, 업무 시간은 오히려 줄었다. 현승은 스스로 근무시간을 최대 주 35시간으로 정했다. 일을 더 해야 할 상황이 발생하면 반드시 평일 내에 일을 끝내고 주말엔 쉰다. 2012년부터 심리치료사와 법정 소견인 일을 병행하면서 근무시간이 주 70~80시간으로 늘어났었고 건강을 해치며 일했다. 그 이후로 약 3년 동안 일을 반으로 줄였고, 2016년부터 주 35시간 근무 원칙을 지키고 있다.
일상에서 느끼는 현승의 행복은 베를린의 다양한 레스토랑을 다니며 맛있는 음식 먹는 것으로부터 온다. 미식가인 동료와 친구들이 많아서 새로운 가게가 문을 열면 꼭 가보고, 옆 사무실에서 일하는 동료와는 정기적으로 미슐랭 식당 투어를 다닌다. 가깝게 지내는 친구들과 한 달에 한 번씩 직접 요리한 음식을 나눠 먹는 시간도 갖는다. 코로나19 이후로는 레스토랑이 문을 닫고 친구와의 모임도 하기 어려워서, 파트너와 함께 호숫가나 베를린 근교 여행을 다녀오곤 한다.
법 영역에서 보기 힘든 외국인 및 아시아 여성으로 전문성을 견고하게 쌓고 있는 현승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현승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다. 그에게 독일은 도착지일까, 긴 정착지일까.
“이제 한국보다 독일에서 산 시간이 더 길어져서인지 한국에 갈 때마다 손님이 됐다고 느껴요. 물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은 너무 좋지만요. 독일 생활에 익숙해지기도 했고 일에 대한 만족도도 크고요. 하지만 많은 이주자가 그러하듯 독일에서 남은 생을 살게 될 거란 확신은 없어요.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최적의 상황과 조건이 갖춰진 곳에서 하는 게 목표일 뿐이에요. 지금은 그곳이 독일이고요.”
독일에 거주하는 총인구 8,170만 명 중 1,930만 명이 이주 배경을 가지고 있다.(2017년 기준) 현승이 그리는 그 미래에, 현승과 같이 이주 배경을 가진 여성 법조인과 법정 소견인, 심리치료사가 지금보다 늘어난 모습을 덧붙여 그려본다. 그들이 법 영역을 이끄는 독일의 미래는 지금과 분명 다를 것이다.
[성범죄자를 둘러싼 한국과 독일의 다른 점]
독일에서는 지난해 한국의 ‘n번방’과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약 1,800명의 회원을 가진 아동 성착취물 관련 휴대폰 채팅 그룹이 발견된 것이다. 아동 성착취물 네트워크에서 가해자들은 아동 성학대와 관련된 정보와 사진 등을 교환하고 있었다. 현재 전국구로 수사가 계속 진행 중이며, 지금까지 체포된 가해자는 10명으로 알려졌다.
독일의 언론 보도 행태를 살펴보면, 당시 발견된 네트워크에 대한 자세한 정보나 가해자들이 사는 동네 등에 대한 정보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압수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수사가 계속되고 있음을 알릴 뿐이다. 이는 재판 결과가 나오기 전에 범죄 내용을 적나라하게 보도하거나 가해자 주변을 취재해 가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하는 한국 언론과 크게 다르다.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에는 수많은 관련 기사가 쏟아지지만, 정작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지는지에 대한 보도가 적은 것도 한국 언론의 또 다른 특징이다.
현승에 따르면, 독일에서는 공공연하게 형을 적게 받는 게 문제가 되진 않는다. 다만 성범죄자에 대한 치료를 제대로 지원해 재범을 막는 데 집중한다. 독일에서는 성범죄자에 대한 심리치료를 감옥에서 진행하는데, 이들은 치료감호소보다는 감옥 내 SothA(Sozialtherapeutische Anstalt)라는 분리된 치료 담당 스테이션에 수용된다.
SothA는 일반 교도소와 같이 구성되어 있지만, 심리치료사 사무실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만 다르다. 현승은 “소아성애자, 연쇄 성범죄를 저지른 성폭행범일 경우 거의 SothA에 수감된다”며, “특히 성범죄만 반복적으로 저지른 범죄자일 경우에는 치료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성범죄자 ‘신상 공개’를 둘러싼 정책도 한국과 독일이 차이를 보인다. 독일은 성폭력 범죄자의 신상을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해 관리하고 있으나, 공개하진 않는다. 한국에서는 2001년 8월부터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하고 있다. 공개되는 신상정보는 이름과 신체 정보, 사진, 거주지 주소 등이다. 당시에는 관할경찰서를 방문해 정보를 열람하는 방식이었지만, 2010년부터 여성가족부가 홈페이지 ‘성범죄자 알림e’를 개설해 온라인으로 정보를 열람할 수 있게 됐다.
※ 필자 소개: 채혜원. 독일 베를린 거주. 한국에서 여성매체 취재기자로,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에서 전문직 공무원으로 일했다. 현재 국제 이주·난민 페미니스트 그룹 <International Women Space> 멤버로 활동 중이며,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로 유럽 페미니즘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chaelee.p@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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