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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체구의 메린 첸던은 무슬림(이슬람교도) 국가이자 가난과 전쟁으로 알려진 나라 파키스탄 사람이다. 자신을 ‘평범한’ 무슬림이라고 소개하는 그녀는 지금 머무는 영국에서 '무슬림' 하면 바로 ‘테러리스트’를 떠올리는 사람들의 편견에 시달리곤 한다.
그러나 그녀는 “지구상 그 어떤 종교도 사람을, 여성을 억압하고 죽이고 침략하고 미워하라고 가르치지 않았고, 누군가 종교의 이름으로 그렇게 한다면 그건 인간의 범죄일 뿐”이라고 말한다. 만 스물다섯의 메린은 현재 영국 중부지역의 한 대학에서 ‘간학문적 젠더연구(Interdisciplinary Gender Studies)’ 석사과정을 밟기 위해 두 달 전 영국에 도착했다. 식민지배, 종교분쟁, 수 차례의 전쟁 “파키스탄에서는 경제학을 전공했었어요. 농촌국가인 파키스탄에서 여성들은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고 사실상 가족부양까지 하고 있는데도 대부분 아무 보상도 받지 못한 채 빈곤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을 바꾸는데 뭔가를 하고 싶어서 경제학을 선택했어요. 하지만 경제학은 그저 ‘숫자’일 뿐이고 남녀가 처한 다른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여성학을 공부할 필요를 느끼고 이곳으로 왔습니다.”메린은 한국사람을 만나고 싶었다며 기자를 반겼다. 아버지가 늘 한국사람들을 가리켜 ‘평화로운 사람들’이라고 말해왔기 때문이기도 하고, 서로의 역사가 많은 면에서 닮은꼴이라고 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녀는 “당신들은 제국주의 시대의 오랜 식민지 경험, 냉전시대 주변 강국들의 견제로 휘말린 갈등들, 전쟁과 갈라진 국경, 그로 인해 겪은 고통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파키스탄이 겪은 오랜 식민지배, 종교분쟁과 수 차례의 전쟁, 인도로부터의 분리 독립 등 그 모든 역사의 상흔들은 ‘젊은 세대’인 그녀 안에도 아직 깊이 남아 있다. 현재 전 세계를 덮어버린 전쟁의 기운 역시 파키스탄과 무관하지 않다. 현재도 이라크 파병 압력이 가해지고 있고, 미국의 공습 때도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터라 파키스탄이 받은 영향은 아주 컸다. “수많은 사람들이 아프간 국경을 넘어 파키스탄으로 망명해왔고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시간들이었어요. 전쟁은 가난을 의미하고 그 가난은 여성과 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영향을 미쳤습니다. 가장 먼저 죽어나간 무수한 아프간 여성과 아이들이 묻힐 곳조차 없어서 방치되고 있다는 얘기가 떠돌았죠. 폭탄이 폭발해서 사람들이 죽는 것만이 아니라 공포와 가난, 질병으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갑니다. 슬픈 일이죠, 어떻게 슬프지 않을 수 있겠어요? 우리는 전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강한 것은 평화” 그녀는 전쟁을 ‘안다’는 것이 그 전쟁이 죄 없는 사람들에게 가져올 끔찍한 고통을 아는 것이라 했다. 또한 전쟁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들이대는 사람들의 말에 가려진 거짓들을 아는 것이라 했다. 메린 첸던은 한 손을 가슴에 얹으며 "강함은 이곳에서 오는 것"이라고 말을 이었다. “사람들은 파키스탄 여성들이 교육 정도도 낮은데다 농장과 집에서 죽도록 일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돈을 벌지 못하니까, 우리가 약하다고 말하죠. 하지만 우리는 약하지 않아요. 전 세계로 보내질 엄청난 양의 목화를 생산하고 그 가난 속에서 아이를 낳고 기르고 가족들을 먹여 살려요. 어떻게 그녀들이 약할 수 있겠어요? 우리는 전쟁을 일으키고 대량살상무기를 만들며 우쭐대는 사람들보다 훨씬 강해요.” “싸우고 공격하는 건 쉬워요. 정말 힘든 건, 그리고 진정으로 강한 것은 평화예요.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이 여성들을 억압하기 시작하면서 여자들은 집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게 되고, 여자아이들은 교육도 받을 수 없게 되었죠. 탈레반은 여자들의 온 몸을 차도르로 가리게 했죠. 얼굴까지 완전히 말이에요. 그렇게 되자 그녀들은 자신들의 집 안에 학교를 세워서 여자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발각되면 바로 탈레반에게 죽을 거라는 걸 알면서요. 그리고 전쟁 시에는 의사가 되어 다치고 병든 사람들을 돌보았지요. 그녀들이 바로 진정 강한 자들입니다.” 변화의 핵심에 있는 건 '교육' 메린이 말하는 평화란 유약하거나 부드러운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힘과 의지로 매 순간 지켜 나가야 할 ‘강한 것’이다. ‘지금 당장’ 누군가를 돕고 돌보고 살려내는 것, 그것을 위해서 나쁜 것들과 타협하지 않는 것, 차이들 사이에서 공통점을 발견하고 함께 살 길을 찾는 것이다. 그래서 평화에 대한 그녀의 관심은 국가 차원에 머물러 있지 않다. “현재 파키스탄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어요,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 사람들은 ‘저것 봐라. 우리가 핵무기가 있으니까 이제 다른 나라가 못 건드리지, 안 그러면 우리도 저렇게 당할 것이다’라고 말했지요. 그런 식으로 파키스탄은 파괴와 살상 밖에 할 수 없는 핵무기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은 겁니다. 우린 당장 전쟁이 아니라 학교와 교사가, 폭탄이 아니라 먹을 것이 필요한 데도요. 그렇게 핵무기로 지킨 평화가 대체 누구를 위한 평화란 말입니까.” 그녀의 나라는 빠른 변화를 겪고 있다. 전체 국민의 1/3 가까이가 무학(無學)이지만 젊은 세대들은 여성을 포함하여 폭넓게 교육의 혜택을 받기 시작했다. 의석에 여성 할당제를 실시하면서 이 정책에 반발하는 사람들에 의해 여성의원이 납치, 살해되기도 했지만, 이제 의회의 여성비율이 30%을 넘어섰다. 여성들도 더 이상 남편이 부인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부인에게 불을 지른다거나 염산을 뿌리던 관습들을 참지 않는다. 여자라는 이유로 참아왔던 부당한 일들에 대항해 이제 “그런 남자랑 살지 마”라고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가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계속 배우고 싶어하는 것은 이러한 변화의 핵심에 '교육의 힘'이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표현을 빌자면, ‘운이 좋아서’ 누리고 있는 지금의 특권에 대해 마땅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끔씩 그것을 떠올리면 진심으로 두려워지기도 하지만 그 두려움으로부터 도망갈 생각은 없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메린 첸던은 기자에게 “식민 지배와 전쟁의 기억, 그리고 현재 휴전중인 분단의 경험은 당신, 그리고 한국사람들 마음과 일상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남아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고 싶다”고 말했다. 길고 복잡한 얘기가 되더라도 꼭 듣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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