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두려워하고 금지하는 ‘선생님’들에게 권하는 책

슬로베니아 그림 동화 『첫사랑』

안지혜 | 기사입력 2020/06/24 [11:00]

사랑을 두려워하고 금지하는 ‘선생님’들에게 권하는 책

슬로베니아 그림 동화 『첫사랑』

안지혜 | 입력 : 2020/06/24 [11:00]

스물여섯이 되는 생일날, 밤기차에 타고 있었다. 겨울 바다를 여행하기로 한 친구들 몇은 먼저 내려갔고, 나는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S와 만나 뒤늦게 출발했다. 자정이 넘은 어느 순간, S가 내 앞에 촛불이 켜진 작은 케이크를 내밀었다. 기차에서 불이라니, 얘는 어쩜 이런 일을 벌이나! 놀라서 화가 났다. 서둘러 촛불을 끄고 손으로 연기를 휘휘 저어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했다. S는 내 속은 모르는 듯, 언젠가 내가 예쁘다고 말했던 군밤 장수 모자를 내밀었다. 부끄럽게 선물을 건네는 S를 보자니 혀가 끌끌 차졌지만, 그보다 이 상황이 기가 막혀서 웃음이 났고, 무엇보다 고마웠다.

 

▲ 브라네 모제티치 글, 마야 카스텔리츠 그림 『첫사랑』 (박지니 역, 움직씨, 2018)


퀴어 페미니스트 출판사 움직씨에서 출간한 『첫사랑』. 작고 예쁜 그림과 판형이 눈에 띄어 무심히 펼쳤다가, 설레고도 애잔해서 여러 감정과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부산 바다를 같이 갔던 S도 떠올랐고,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느낀 어느 날 “하나님, 용서해 주세요. 용서해 주세요.”라고 썼던 내 창피한 일기장도 떠올랐다. 생각할수록 이불킥하며 고개를 파묻게 되는 지난 내 모습들이.

 

여섯 살 아이의 시선으로 그린 『첫사랑』

 

『첫사랑』의 주인공은 여섯 살 남자아이다. 아이는 시골 할머니 댁에 살다가 엄마와 단둘이 도시로 이사하게 된다. 낯선 환경과 동의할 수 없는 유치원 규칙들로 아이는 자꾸만 눈물이 터지고, 시골로 돌아가고 싶다. 그래도 견딜 수 있는 건 드레이크를 만나서다. 드레이크는 또래들 사이에 대장 노릇을 곧잘 하는데, 거친 친구들이 아이를 괴롭히지 못하게 지켜준다. 산책 중에 혹 아이가 뒤처지면 손을 내밀어 잡아주고, 아이가 소곤소곤 이야기하는 걸 잘 들을 줄 안다. 아이는 드레이크와 함께하는 것이 즐겁고 어느새 둘은 단짝이 된다.

 

아이의 꿈은 가수지만, 또래들한테 웃음거리가 될까 봐 늘 혼자 숨어서 노래를 한다. 그런데 드레이크 앞에서라면 용기가 난다. 파랗고 예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눈을 반짝이며 자신을 바라보는 드레이크를 보면, 아이는 기뻐서 더 신나게 노래를 부를 수 있다. 드레이크랑 있으면 세상에 둘만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니까.

 

그래서 유치원 뒤뜰 둘만의 수풀 공연장에서 드레이크를 위한 공연을 펼치기로 한다.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여자 가수처럼 빨간 스카프를 몸에 두르고 엉덩이를 살짝살짝 흔들며 높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데, 이 모습을 본 유치원 선생님이 아이들을 꾸짖는다. 마치 아이가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굳은 얼굴로 다시는 이런 놀이를 하지 말라며 혼내고, 두 아이를 감시하기 시작한다.

 

겨울이 되고, 아이가 감기에 걸려 일주일 만에 유치원에 나오게 됐다. 반가움에 들뜬 드레이크가 달려와 아이를 꼭 안아 주며 뺨에 뽀뽀하는데, 선생님이 달려와 두 아이를 떼어 놓고 소리친다.

“뭐 하는 짓이니? 그 애는 여자애가 아니야!”

 

▲ 브라네 모제티치 글, 마야 카스텔리츠 그림 『첫사랑』 중에서. (박지니 역, 움직씨, 2018)


나는 몇 살 때 아이 같은 기분을 처음 느꼈더라. 초등학교 4학년 때 제주도에서 전학 온 피부 하얀 남자아이가 비밀이라며 보여 준 발등에 티눈이 예뻐보였던가, 6학년 때 동네 전봇대마다 사람 구함 전단지를 붙이라는 아빠 심부름이 창피하고 괴로워서 도망치고 싶었던 때, 그거 재미있겠다며 같이 해 준 여자 친구가 멋있었던가, 아무래도 중학교 3학년 때 학교 옥상에서 이문세 노래를 낮고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불렀던 여자 친구한테 홀딱 반했던 게 가장 강렬한 감정이었던 것 같은데….

 

배타적 교리에 옥죄였던, 사랑과는 거리가 멀었던

 

어릴 적부터 교회에 다녔고, 교회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에 다녔다. 학교 다니기 전부터 어른들 구역예배에 따라가서 무릎을 손으로 치며 할렐루야 찬송가를 불렀고, 기도원에서 주여,를 외치며 통성기도를 하는 어른들 틈에서 기도를 했다. 청소년기가 되면서 교회에 대한 반감과 거부감이 생겨 주일을 지키지 않았지만, 원죄 의식이라든가 순결주의 같은 것이 오랫동안 나를 지배했다. 후에 해방신학과 민중신학을 조금 알게 됐지만 어릴 적에 박힌, 욕망에 대한 죄의식과 여성으로서 순종해야 한다는 보수적인 교리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스물넷 여름, 15박 16일 국토대장정을 하는 중이었고 몸은 고되지만 풀벌레 소리 개구리 소리 가득한 들길을 여럿이 함께 걷던 터라 누구에게라도 사랑에 빠지기 좋은 철이었다. 그때 같이 대장정 하던 사람 중에 내 이름을 기억해주고, 짐을 들어주고, 나무에서 버찌를 따서 건네주던 남자아이에게 가슴이 설렜다. 나는 그 남자애 뺨을 한번 쓰다듬어보고 싶다고 느꼈다. 까맣게 탔는데도 매끄러워 보이는 게 신기해서 만져보고 싶었다. 동시에 그런 내 마음에 죄의식이 따라왔다. 만지고 싶은 욕망은 상스러운 것이라고 막연히 배워왔으니까. 사랑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것, 상대가 원하는 대로 내어주는 아가페[agape]적인 것인데, 내가 뭔가를 바라는 마음이나 욕구를 가진다는 것은 죄를 짓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여성인 내가 스킨십의 욕망을 가지는 것은 더욱더.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이성애마저 자유롭지 못했던 나는 동성애에 대해서는 더욱 자유롭지 못했다.

 

내게 군밤 모자를 선물했던 S는 친구들에게 자신이 레즈비언이라고 커밍아웃을 한 상태였다. 나는 기차에서 S에게 받은 선물에 대해 어쩐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나는 혹시 S가 나를 좋아할까 봐 겁이 났던 것 같다. 동시에 S가 나를 특별히 좋아하는 친구로 여겨주기를 바라는 이중적인 마음까지.

 

S와 있는 게 재미있었다. S는 엘리엇 스미스의 음악과 영화 <헤드윅>(Hedwig And The Angry Inch, 존 카메론 미첼, 2000년. 트랜스젠더 록커의 이야기를 담은 음악영화로 LA비평가협회상, 선댄스영화제 감독상과 관객상 등 세계 유수의 영화제를 휩쓸며 화제가 되었던 작품)에 대해 들려줬고, 섬세하고 취향이 멋진 S가 내 말들을 주의 깊게 들어주면 어쩐지 나도 조금 특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기차에서 촛불을 켤 만한 대담함과 무모함이 때로 매력적이었고, 이십 대인 그때부터 ‘나중에 귀여운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소원을 말하는 모습이 재밌었다.

 

▲ 각기 다른 시대적 배경 속에서 살아가는 레즈비언 커플들의 삶을 그린 영화 <더 월 2>(If These Walls Could Talk 2, Martha Coolidge, Anne Heche, Jane Anderson, 2000) 중 한 장면. 아기를 가질 계획을 세우는 두 사람(샤론 스톤과 엘렌 드 제너러스).  ©2000 Home Box Office(HBO)


S의 집에서 영화 <더 월 2>(If These Walls Could Talk 2, 제인 앤더슨 외, 2000년. 서로 다른 시대를 사는 레즈비언 커플들의 모습을 담은 영화)를 보았고, 그때 S가 설명해줬던 개념들, 자신이 겪은 경험과 걱정들이 놀랍고도 슬펐다. 그런 S에게 특별히 더 가까운 친구로 있고 싶었기 때문에, S가 레즈비언이 아니길 바랐다.(아, 정말 이거야말로 참회한다.) 나는 S에게, 어떻게 스스로 레즈비언이라고 확신하는지 따져 물었다. 아닐 수도 있지 않느냐고, S가 느끼고 경험한 많은 감각과 내용을 무시했다. 그때 S는 아주 열심히 자신이 느끼고 경험한 것을 반복해서 들려주었고, 그럼에도 내가 자꾸 S의 말을 부정하자 더이상 말하기를 멈추었다.

 

S는 내 이중적인 마음을 짐작했을까. 어떤 시절이 지나, 지난 일들을 조금 떨어져서 볼 수 있게 되면 오히려 그때 내게 일어난 일들이 어떤 것이었는지 선명해지기도 한다. 돌이켜보면 S가 내게, 친구에게 갖는 것과 다른 종류의 감정을 가졌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S에게 특별한 애착을 가졌던 것 같다. 무엇보다 확실한 건, 배타적인 종교와 옳고 그름의 이분법에 옥죄어 있던 내가 S에게 아주 많이 무례하고 잘못했던 거구나, 알아차릴 뿐이다.

 

좀 우스운 이야기지만, 내게 기독교의 원죄 의식과 무엇도 욕망하면 안 된다는 금기를 깨뜨려준 건 고양이였다. 발톱이 있고 이빨이 있고 깜깜한 밤중에 눈이 빛나서 내게 늘 공포의 대상이었던 고양이가 내 삶에 평화로운 존재로 머물게 되면서. 그러니까 반려묘와 살게 됐고, 고양이가 내 얼굴에 자기 몸을 파묻고 고르릉 거리며 잠을 잘 때의 평화를 만나게 되면서 나는 자유로워졌다. 한 존재와 한 존재가 함께 숨을 쉬고 몸을 기대고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토닥이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얼마나 평화로운 일인가 체감하면서. 사람과 사람이 포옹을 하고 손을 잡고 쓰다듬는 것 역시 얼마나 아름답고 평화로운 일인가 생각하게 됐다. 교회가 말하는 사랑의 종류와 금기보다 고양이가 준 사랑이 내게 더 평화롭고 자연스러웠다.

 

종교의 이름으로 사랑을 금지하는 교단의 모습을 보며

 

『첫사랑』, 이 말랑말랑 예쁘고도 슬픈 책에 여러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건, 아직 내 안에 여러 모순이 부끄럽고, 내가 너무 후진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 기독교대한감리회 경기연회가 인천 퀴어문화축제에서 ‘성소수자’에게 축복식을 한 목사님을 교회 재판에 올린다는 뉴스를 보았다. 종교의 이름으로 교회가 사랑을 금지하고, 축복할 만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고 배척하는 일을 한 교단이 나서서 하겠다는 것이다. 화가 나서 가슴이 쿵쾅거렸다. 이 배척은 소수자에 대한 배척이기도 하고, 동시에 권력 집단이 인정하는 사랑의 모양과 같지 않은 사랑은 모두 무시하고 혐오하겠다는 것과 똑같으니까.

 

『첫사랑』에 나오는 선생님도 꼭 감리교단의 모습처럼, 힘으로 내리눌러 두 아이의 마음을 금지하려 든다. 아이와 드레이크에게 벌을 주고, 둘이 짝꿍을 하거나 산책을 하지 못하게 한다. 두 아이는 서로를 멀찍이서 바라볼 수밖에 없고, 그러다 드레이크가 이사를 가게 되면서 둘은 영영 헤어지고 마는데….

 

S와 따로 소식을 주고받지 못한지 몇 해가 지났다. 건너 건너 S가 동성 파트너와 결혼을 했고 한국 법이 아직 인정하지 않지만 저항하고 있으며, 건강하게 제 할 일을 잘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사이 나는 직업을 갖거나 잃기도 했고, 어떤 만남과 헤어짐을 겪으면서 성장하기도 했다. 내가 인지하지 못했을 뿐, 내 둘레에 아주 많은 다양한 성소수자가 이미 내 이웃이었고, 나 역시 다르지 않음을 느끼고 있다. 나이가 든 비정규직 노동자, 비혼 여성, 때론 몸과 마음이 아프기도 한 돌봄이 필요한 사람으로 나를 느끼고, 점점 더 소수자가 되어감을 느낀다. 지금 내가 놓인 자리가 불안하지만,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더 많이 보이는 선명함에 눈과 마음이 시원해지는 것도 느낀다.

 

그리고 오늘처럼 옛 생각에 머리가 아프거나 위로가 필요한 순간에는 파트너에게 나 좀 안아 줘, 하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됐다. 내 마음과 욕구를 죄라고 생각하지 않고, 소중하게 느끼고 표현하고 있다.

 

세상의 사랑의 감각과 감정, 관계의 모양은 다채롭고, 다채로운 것이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권력 집단이나 종교 집단이 정해놓은 똑같은 모양의 한 가지 감정, 감각, 형태로 사는 건 가능하지도 않지만 아름답지도 않다. 나는 이것을 너무 늦게 알아가고 있고, 그래서 그동안 내가 나를 무시했던 시간, 동시에 타인을 무시했던 시간이 미안하고 부끄럽다.

 

나는 그 애를 사랑했어요. 그 애도 아마 그랬을 거예요.

 

다행히 『첫사랑』의 아이는 회피하지 않는다. 드레이크와 헤어졌지만, 제 안에 들어온 마음이 사랑이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며, 무수히 많은 우정과 사랑의 여러 감각들을 삭제하고 살았던 나 자신에게 이제 더 부끄럽지 않고 싶다고 생각한다. 내가 내 마음에 부끄럽지 않아야, 다른 이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고 내 안에 있던 다정한 감각을 더 깨우치고 불러오며 살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내 사랑이 더이상 권력과 종교가 만든 기준과 말들에 갇히지 않기를 바란다. 앞으로 올 내 여러 사랑들을 모르는 척하지 않을 것이다. 눈감지 않아야지, 내 마음과 욕구들을 사랑해야지. 그래서 아무도 혐오하지 않아야지, 생각하며. 내 고양이의 고르릉 소리를 듣는다.

 

*필자 소개: 안지혜 님은 그림책 『숲으로 간 사람들』(김하나 그림, 창비, 2018)을 쓴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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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OY 2020/07/06 [18:07] 수정 | 삭제
  • 저도 너무 아끼고 좋아하는 책이에요.
  • 리스미스 2020/06/28 [15:27] 수정 | 삭제
  • 그림도 글도 진짜 예쁜 동화네요!
  • 2020/06/25 [15:59] 수정 | 삭제
  • 더월2 다시 보고 싶다. 두번째 에피소드가 개인적으로 넘 인상적이었던... 페미니스트들의 검열에 관한.. 요즘 분위기에서 보면 또 생각할 거리가 많을 듯.. 더월2 강추입니당..
  • 이타카 2020/06/24 [14:06] 수정 | 삭제
  • 이 책을 가지고 얘기를 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그래서 책도 읽고 자료도 좀 찾아보고 했습니다. 다들 아름답고 슬픈 그림책이라고 느낀 것 같아요. 제가 생각했을 때 특정 종교인들의 선동만 아니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성 간의 사랑과 연인 관계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있지 않은 것 같아요. 굳이 색안경을 씌워주는 선생님들이 문제죠. 꼰대같고 가엾은 어른들 같으니라구.
  • due 2020/06/24 [12:16] 수정 | 삭제
  • 첫사랑! 이 그림책 정말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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