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차별을 금지하지 않으면, 고통은 대를 잇는다

유년의 트라우마를 그린 그래픽노블 『바늘땀』

안지혜 | 기사입력 2020/07/03 [19:12]

지금 차별을 금지하지 않으면, 고통은 대를 잇는다

유년의 트라우마를 그린 그래픽노블 『바늘땀』

안지혜 | 입력 : 2020/07/03 [19:12]

그림책 『도서관』(The Library, 데이비드 스몰 그림, 사라 스튜어트 글, 1995)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엘리자베스 브라운의 책 덕질기’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은 엉뚱한 캐릭터, 문장의 강약과 넉살, 디테일하면서도 웃음이 나는 장면 포착!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 데이비드 스몰 그림, 사라 스튜어트 글, 1995년 작품 『The Library』(도서관) 중에서. by David Small & Sarah Stewart

 

나는 특히 말미 장면이 흥미로웠다. 책이 쌓이고 쌓여 침대도 무너지고 책장도 무너지고 현관까지 막아버리자, 엘리자베스 브라운은 가진 전부를 기부한다. 도서관을 만든다. 그리고 이어진 결론이 “엘리자베스 브라운은 친구네 집으로 이사했고, 꼬부랑 할머니가 될 때까지 친구와 오래오래 잘 살았어요.”(Elizabeth Brown Moved in with a friend And lived to a ripe old age.)다!

 

노년의 두 여성이 벽난로 앞에 앉아 책을 읽으며 웃고 있는 일러스트가 함께 있다. 어린이들이 주로 보는 걸로 인식되는 그림책은 전통적 가족주의를 담은 장면이 많은데, 여성과 여성이 함께 산다는 이미지를 보는 것만으로 해석이 풍부해진다. 내겐 독서광 비혼 여성의 노년 서사로 읽혔다.

 

최근 그래픽노블 『바늘땀』을 읽었는데, 작가가 『도서관』을 그린 데이비드 스몰(David Small)이라는 걸 알고 조금 놀랐다. 『바늘땀』(이예원 옮김. 미메시스)은 가족의 정서적 학대로 트라우마에 시달린 아이의 성장기이자 탈출기인데,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다.

 

가족의 학대로 상처투성이인 ‘나’

 

『바늘땀』의 화자인 ‘나’는 여섯 살, 늘 침묵과 전운에 휩싸인 집에서 살고 있다. 엄마는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 툭하면 문짝을 후려치듯 닫고 혼자 방에 숨어서 흐느끼거나 속내를 알 수 없는 분노에 빠져있다. 의사인 아빠는 모르는 척 방관하고, 지하실로 내려가 샌드백만 때릴 뿐이다. 형은 시끄럽게 북을 두드리고 ‘나’는 자주 아프다.

 

▲ 데이비드 스몰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그래픽노블 『바늘땀』(이예원 옮김, 미메시스)


‘나’는 미국에서 자동차 산업이 한창 부흥하는 시기의 공업 도시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났다. 의사들은 과학의 전사이자 영웅처럼 보였고, 엑스선이 어떤 병이건 말끔히 치유할 기적의 광선이라고 믿었다. 아빠는 부비강과 소화계가 약했던 ‘나’를 치료한다며 엑스선을 수차례 쏘았다.

 

열한 살 때 ‘나’는 목에 혹이 발견된다. 엄마는 걱정은커녕 병원비가 든다느니, 찬물을 끼얹었다느니 하며 ‘나’를 비난한다. 지인들은 서둘러 병원에 가라고 당부하지만 정작 엄마아빠는 자동차와 가구를 사들이느라 ‘나’의 치료를 보류한다. ‘나’는 삼 년 뒤에야 수술을 받는다. 간단한 혹 제거술이라고 했는데 깨어보니 갑상선과 성대 한쪽이 사라져 있다.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퇴원 2주 뒤 ‘나’는 우연히 엄마가 쓴 편지를 발견한다. ‘내’가 암에 걸렸었고 엄마와 아빠가 비밀로 했다는 것. 그리고 엄마는 ‘내’가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반복되는 악몽과 밤 공포증에 시달린다. 실험실 포르말린 병에 담겨있는 태아가 뒤쫓아 오는 꿈, 동굴에 갇히는 꿈, 헤매다가 당도한 곳이 무너진 폐허인 꿈. ‘나’는 학교의 권유로 상담을 받게 되고,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현실을 직면한다. 그리고 그 즈음 엄마가 레즈비언인 걸 목격한다. 또, 그동안 차마 발설할 수 없었던 외할머니의 정신 질환이 세상 밖으로 드러난다.

 

열여섯 살이 되던 해, ‘나’는 집을 나오고 차라리 덜 외롭다. 서른 살, 엄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에 간다. 엄마의 임종을 마주한다.

 

고통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

 

기묘한 심리스릴러 같은 이 책을 보고, 호기심이 생겨 작가의 인터뷰를 뒤졌다. 작가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재현하는 것이 어려워서, 피해왔다고 했다. 엄마를 그리는 중에도 화면 속 엄마가 자신의 목소리를 빼앗을 것 같은 불안에 휩싸였고, 실제로 발작처럼 식사하는 도중에 자기 목이 어릴 적 그때처럼 부풀어 오르는 걸 경험했다. 그런데 그는 오히려 마음의 고통이 몸으로 드러났던 그 순간, 자신이 더 제대로 고통을 직면해야 함을 느꼈다고 했다. 그래서 이 책을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고.

 

작가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몇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고통을 기록하는 일이 고통의 전파가 아니라 고통과의 화해가 될 수 있을까? 그건 어떻게 가능한 걸까?

 

▲ 데이비드 스몰 지음, 이예원 옮김, 『바늘땀』(미메시스) 중에서.


누군가 고통에 빠져있다면 데이비드 스몰이 청년기에 그랬던 것처럼, 차라리 홀로 오래 거리를 배회하며 시간이 가기만을 기도하는 게 비책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엄기호 씨가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의 앞 챕터에서 말한 것처럼, 너무도 이해받고 싶은 것이 고통의 속성이지만, 고통은 말하면 할수록 온전히 전하거나 이해받을 수 없어서 더 괴로워지고, 주변 관계를 무너뜨리고, 가까운 이들마저 멀어지게 하니까.

 

그런데 스몰은 여섯 살의 자신과 그때의 어머니를 그래픽노블 안에 그려 넣으면서, 새로운 눈이 생겼다고 했다. 여섯 살 아이에게는 어른들이 거대해 보이는 게 당연하다는 것. 동시에 엄마 역시 불행했고, 그것에 대해서는 아이인 내가 책임지거나 이해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 새로 보였다고.

 

『바늘땀』의 맨 뒤에는 작가의 부모 사진이 실려 있다. 작가는 거기에 썼다. 지난날을 돌이켜 볼 여유가 생긴 뒤 가족사를 뒤적거려 본 결과, 과묵하고 까다롭게만 보였던 엄마가 조금 다른 빛으로 보인다고. 엄마는 자신이 인지한 것 이상으로 심장과 허파가 많이 아팠다는 것, 또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내가 아니라 어머니였다면 레즈비언으로서의 일생에 더 많은 지면이 할애됐을 거라고. <아무도 그녀의 눈물을 듣지 못했다. 심장은 세상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하염없이 흐느끼는 분수와 같다.> 에드워드 달버그의 글이 자꾸 생각난다고.

 

고통을 발설하는 것 자체가 치유나 예술은 아니지만, 고통이란 것이 아주 사적인 동시에 보편적이기도 해서, 그것을 어떻게 드러내느냐 하는 것이 화해의 비책이기도 한 것 같다. 거기까지 가는 데는 또 얼마나 긴 여정이 될지 아직은 겁이 나지만 말이다. 그런데, 데이비드 스몰의 부단한 트라우마 극복과정이 있기 전에, 그러니까 고통와 예술의 상관관계보다 먼저 따져야 할 것은 고통의 이유와 책임에 관한 것이 아닐까?

 

가정폭력의 가해자, 엄마가 겪은 고통

 

『바늘땀』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좋아하는 어린 ‘나’는 앨리스의 금빛 머릿결을 흉내 내며 노란 두건을 쓰고 밖에 나갔다가, 동네 아이들한테 호모, 변태라고 놀림 받으면서 쫓긴다. 이해할 수 없는 시선의 폭력 속에서 어린 ‘나’는 자기만의 굴을 파고 들어갈 수밖에 없다. 마치 엄마가 자기만의 굴을 파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 데이비드 스몰 지음, 이예원 옮김, 『바늘땀』(미메시스) 중에서.


여섯 살 ‘나’와 엄마는 봄방학 기간을 외할머니 댁에서 보내기로 한다. 단둘이 몇 시간 국도를 달린다. 저녁 어스름이 될 즈음, 운전을 하던 엄마는 평소와 달리 이야기를 시작한다. 가족사를 털어놓는다. 엄마와 할머니는 아버지 집안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것. 엄마는 집 밖 오두막에서 태어났고 심장 박동 소리가 나지 않아 죽은 줄 알았다는 것. 알고 보니 왼쪽에 있어야 할 심장이 오른쪽에 기형으로 있었다는 것. 엄마가 열 살 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그 뒤 할머니는 시가의 더 심한 박대를 받았다는 것 등등.

 

어쩌면 그날 엄마는 어린 아들과 단둘이 친정에 나들이 가면서 마음이 조금 말랑해진 건 아니었을까. 갑갑한 집에서 탈출한 기분이 들지 않았을까? 원치 않는 아내로서의 역할, 엄마로서의 책임감을 강요하는 집에서 빠져나온 해방감에, 그날은 평소 말하지 못하고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조금 꺼내놓았던 건 아닐까.

 

그 뒤, ‘나’는 할머니에게 공포감을 느낄만한 일을 겪는다. 엄마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게 묻다가, 내가 할머니에 대한 두려움을 말하려 하자 서둘러 입을 손으로 막는다. 불안한 듯 두려운 듯 주변을 살피고, 다시는 그런 말 하면 안 된다며 무서운 얼굴을 보인다. 엄마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외할머니의 정신 질환을.

 

만약 당시 사회에서 정신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 과장과 왜곡이 만연하지 않았다면 엄마는 외할머니가 치료받을 수 있게 나서지 않았을까. 정신 질환을 앓는 사람의 딸로 살아가야 하는 공포, 박대 받고 고생해 온 어머니가 또 다른 손가락질을 받을 것 같은 공포. 그것이 없는 사회였다면, 엄마는 할머니가 그렇게까지 나빠지기 전에 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엄마는 자신의 심장병과 성소수자라는 정체성 때문에 아버지의 집안에서 버림받고 경제적인 빈곤에 시달리며, 외할머니의 병과 불행에 시달리며 내내 불안하게 살았던 건 아닐까. ‘정상가족’의 테두리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채 살아가면서 느끼는 슬픔과 괴로움이 아이를 방치하고 소비에 기대어 살게 한 것은 아닐까.

 

만약 그때 사회에 여성과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금지되어 있었다면, 엄마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원하는 방식으로 가꿀 수 있었을 것이다. 일자리를 구하고, 좋아하는 사람과 사랑을 나누며, 조금 다른 모습의 가족을 꾸렸을지도 모른다.

 

차별금지법은 이 공동체의 미래

 

이 작품이 확실하게 보여주는 건, 사회가 차별을 조장하면 그 고통은 대를 이어 계속된다는 점이다. 세대와 세대뿐 아니라 형제와 친구에게도 전이된다. 사회복지이론에서는 한 사람의 문제는 적어도 3대까지 영향을 끼친다고 본다. 너무도 당연하지 않은가. 우리는 모두 어떤 식으로든 이어져 있어서, 연결되고 영향받으며 살아간다. 그래서 인디언 세네카 족이 7대를 내다보며 살림을 하고 정책을 세웠다는 게 오히려 합리적이다.

 

『도서관』을 함께 만든 사라 스튜어트(Sarah Stewart)는 데이비스 스몰의 아내인데, 그 역시 어릴 적 알콜중독자 가정에서 폭력에 시달리며 자랐다. 그때 탈출구 중 하나가 도서관에 숨는 거였고, 『도서관』은 그때의 이야기가 씨앗이 되어 다른 시점에서 명랑하게 다시 쓴 이야기이다.

 

이 부부 작가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자신들의 고통을 스스로 간신히 헤쳐 나오고 있지만, 이들이 겪은 폭력은 개인이 죽을 것 같은 고통을 견디며 극복해야 할 문제로 두어선 안 된다.

 

지난달 29일,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했다.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 정부 입법안부터 17대~20대에 이르기까지 국회에서 수차례 차별금지법 제정안이 발의됐지만, 평등을 원치 않는 세력의 압력으로 번번이 폐기됐다. 소수자와 약자의 삶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차별을 금지하는 법 제정을 우리 사회는 13년간이나 미뤄온 것이다.

 

차별금지법은 지금 당장 차별받고 있는 당사자들에게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사는 이 공동체의 미래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도서관』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두 사람은 하루도 빠짐없이 도서관으로 산책을 갔고요. 좋아하는 책을 찾아서 읽고 또 읽었답니다.”(They walked to the library Day after day, And turned page... after page... after page.) 두 여성은 나무들이 뻗어있는 산책로를 나란히 걸으며 책을 읽고 있다. 그 뒤로 고양이 세 마리가 뒤따른다.

 

『도서관』은 『바늘땀』보다 이십여 년 전에 나온 책이니, 작가가 아직 자신의 목에 난 바늘땀 상처와 화해하기 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마지막 장면이 엄마를 의식했던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조금은 문화적 허영이 있는 엄마가 동성의 애인과 함께 책을 읽고 산책하며 살기를 바라는 희망은 아니었을까 하고. 누군가는 내 상상이 과하다 할지 모르나, 독자의 특권으로 나는 이런저런 공상을 해본다.

 

*필자 소개: 안지혜 님은 그림책 『숲으로 간 사람들』(김하나 그림, 창비, 2018)을 쓴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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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elp 2021/11/18 [05:49] 수정 | 삭제
  •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Temp/AQsYnR 알콜중독과 가정폭력으로 인해 고통받는 가정과 이웃들의 생명과 안전을 부디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 돌멩이 2021/04/21 [00:39] 수정 | 삭제
  • 잘 읽었습니다..
  • 동성애막아주세요 2021/02/05 [16:47] 수정 | 삭제
  • 아무리 미화해도 동성애는 에이즈의 주범입니다 가슴아픈 가정사의 해결책이 동성애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동성애의 해악과 에이즈의 말로가 얼마나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지는 아예 감춰버리고, 차별 혐오표현이라 낙인 찍는 것이야말로 다수를 차별 하고 자유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것입니다 동성애를 공교육에서 가르치려는 발상은 마땅히 지탄받아야 될 것입니다 우리아이들 에이즈 걸려 고통스럽게 죽게 만들지 마십시오 국가차원에서! 국가기관이! 적극 나서서 동성애를 막아주십이오!! 우리아이들에게 동성애를
  • 뭉땡이 2021/02/04 [23:09] 수정 | 삭제
  • 너무나 안타까운 내용이라 가슴이 아프네요... 하지만 모든 사람들. 모든 가정에는 각기 다른 아픔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렇다고 그 아픔의 원인을 사회로 돌리고 누군가가 가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힘든 환경 가운데서도 얼마든지 옳은것을 선택할수 있고 역경을 이기려는 노력을 할수 있지요.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않아서 저런 아픔이 있다고 작가는 너무 포장하고 있어요.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힘과 희망을 주며 함께 살아야 하지만 동성애가 보건의료적으로 너무나 큰 문제가 있는 것을 문제는 가리고 인권이니 괜찮다고 말하는 것은 속임수지요.
  • 별꽃 2021/02/04 [20:17] 수정 | 삭제
  • 헤괴한페미나즘 괴물 감성팔이 지겹다
  • 별꽃 2021/02/04 [20:16] 수정 | 삭제
  • 페미니즘은 원래 좋은 의도로 시작되었으나 이제 가족을 해채하는 거대괴물로 변질되었고 자연질서를 벗어나 수십가지 성이 있다는 해괴한 이데올로기로 어둠속을 헤매고 있다
  • 힐링 2021/02/04 [20:04] 수정 | 삭제
  • 학대가 되물림 되고있는것이 가슴아프네요. 정신이 온전치못한 엄마를 통해 부모의 정체성에 혼란이 되어 그릇된 성정체성을 가진 아픈 엄마가 자녀를 다시 학대하는 내용이네요. 레즈비언이 아니였어도 학대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은 가정구조이네요. 이런 가족의 구조적 문제를 차별금지법이 해결할 수 있다는 결론은 너무도 황당합니다. 이 가족은 할머니 아니면 그 이전의 부모부터 치료가 필요하고 이웃의 관심이 필요한 것이 우선인 것 같습니다.
  • 역차별법 2021/02/04 [20:04] 수정 | 삭제
  • 차별금지법이 정말 모두를 위한 법이라면 왜 역차별을 야기할 수 있는 법안의 내용을 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성은 이미 인간이 태어날 때 부터 생물학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 입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과학적 사실을 말하는것 조차 혐오의 표현으로 몰아간다는것은 차별이 아니라 자유의 침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은 아픈것입니다. 그것을 공감해주고 각종 성병의 원인이 되는 성적 취향을 공감해주고 받아드려주는 것만이 사랑이 아닙니다. 전 정말로 묻고 싶습니다. 차별금지법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모든 동성애나 양성애의 취향을 가지고 있는 분들의 질병까지 책임지실 겁니까? 적어도 차별금지법 제정을 외치는 분들은 그들의 아픈 이면까지도 감당하면서 지지해야된다고 생각합니다. 차별금지법을 찬성하시는 여러분들, 정말 그들을 위해서 법안을 만들기 원하신다면 그전에 동성애로 인해 성병에 걸린 분들을 봉사해서 몸으로 실천해서 돕고 온 다음에 외치십시오.
  • 꽃순이 2021/02/04 [19:56] 수정 | 삭제
  • 포괄적차별금지법(일명 평등법)을 반대한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묻지도따지지도말고 차별을 금지하고 차별하면 벌이뒤따르는 조항들이 있다 금전적이든 감옥살이든말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개별법으로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 많이있다 바람직한방향은 우대해주고 좋지않은 모습들은 하지않도록 다르게 대우해주어야 좋은사회가 될수있다고 본다 최근 동성애가 옹호조장되고있어 청소년 청년층들이 에이즈에 상당히많이걸리고있고 이에비례해서 이 병의 약값과 관련병의 치료비, 이들의 복지비로 천문학적 세금이 지원되고있다 또 출산율은 세계최저수준이다 우리나라의 미래가 암담해 걱정이다 인구절벽이 현실이기때문이다 한여자와 한남자가만나 가정을이루고 아이들을 낳아야 사회가 지속될수있다 정상적인것을 정상이라고 권장해야한다
  • ㄱㄴㄷ 2021/02/04 [19:22] 수정 | 삭제
  • 그럴듯한 말로 현혹하지 마시길. 차별금지법 제정의 실체를 교묘히 속이는 것에 속지 맙시다
  • 지키자 2021/02/04 [18:51] 수정 | 삭제
  • 타당한 비판도 못하게 하는 차별금지법 반대합니다.
  • 바로** 2021/02/04 [18:44] 수정 | 삭제
  • 동성애는 치료 할 대상임, 차별금지법은 또 다른 차별을 가져 와요.
  • 허작 2021/02/04 [18:42] 수정 | 삭제
  • 재밌는 동화책 소개인줄 알았는데 차별 금지법에 대한 내용이네요. 성소수자 아픔을 무척 미화시켜 얘기하니 차별 금지법이 아주 나쁜 법 처럼 보이네요. 차별금지법 반대는 일반인을 위한겁니다. 보통 사람의 인권보호를 위한것이죠. 사실 우리나라에선 성소수자를 위한 법이 많이 있습니다. 인권위원회에서 보호도 많이 해주고 있지요. 그러니 차별금지법을 꼭 제정하는것이 나라를 위한 것처럼 미화하는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 2021/02/04 [18:30] 수정 | 삭제
  • 차별 금지법. 말만 좋게 보이지 억울하게 처벌 받아도 괜찮으신가요.
  • 2021 2021/02/04 [18:18] 수정 | 삭제
  • 차별금지법 반대합니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자유를 금하게 하는 역차별 법안입니다.
  • 생각하는시민 2021/02/04 [18:14] 수정 | 삭제
  • 차금법 반대합니다 차금법을 감성적인 면으로 기준을 잡으면 안됩니다 법과 질서를 무너뜨리고 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다수의 많은 사람의 자유의 표현을 막을수가 충분히 있습니다 싫다라고 반대한다고 말하면 직장에서 쫒겨날수있고 벌금이나 감옥에 갈수있기 때문이죠 공산주의 법이라고 볼수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표현의자유를 막으면 안되는겁니다 법제화해서는 안된다는겁니다 당신들의 눈에는 소수만보이고 다수의 법과 질서가 무너지는건 안보이는겁니까 감성팔이 그만하세요 역겹습니다
  • 러블리 2021/02/04 [18:08] 수정 | 삭제
  • 정신질환은 치료받아야할 것이지 다른사람에게 그 병을 이해하도록 강요하고 처벌함으로써 정상인을 역차별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자신들의 가치관을 법제화해서 다른사람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공산주의자들이 하는 짓이지요. 감성팔이 그만하십시오.
  • 차별금지법반대 2021/02/04 [18:06] 수정 | 삭제
  • 차별은 당연히 금지되어야 합니다. 장애, 성별, 나이 등으로 인한 차별은 계속 개선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을 차별 항목으로 넣는 것은 반대합니다. 그건 개인의 선택과 행복을 넘어 개개인의 건강, 행복 나아가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 이른봄 2021/02/04 [18:05] 수정 | 삭제
  • '도서관'의 두여성을 레즈비언 이라고 보는 시선이 어이없다.여러가지 이유로 노년에 함께 사는 여성들이 가끔 있다. 그들에게 실례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작가 어머니의 불행의 원인이된 선택 불가능한 심장병과 자신의 선택인 동성애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장애자 차금법은 이미 존재한다. 차별금지법을통과시켜 에이즈 확산의 주범인 동성애를 옹호하는 일이야 말로 다음세대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게 될것이다.
  • 유니유니 2021/02/04 [18:03] 수정 | 삭제
  • 동성애는 에이즈의 주 원인 입니다
  • 차금법반대자 2021/02/04 [18:03] 수정 | 삭제
  • 차별금지법의 역차별 당하고 고통받을 수 있는 입장도 제발 고려해주시길 바랍니다. 누가 이기적인 건지 제발 똑바로 알고 인식하시길 바랍니다.
  • 날으는곰 2021/02/04 [17:54] 수정 | 삭제
  • 저는 여자대학교에 남학생이 다니는것은 싫습니다. 또, 자기 마음대로 성을 바꿨다고 여자 탈의실에 남자가 들어오는것도 싫습니다. 아무리 감성 자극하며 글을 써도 사실은 이런것입니다. 이런게 싫다고 말하면 벌금내고 말한 사람이 차별받는것이 차별금지법입니다.
  • 평등이 2021/02/04 [17:52] 수정 | 삭제
  • 어떤 차별을 말하나요 나는 이성간의 사랑을 좋아하고 동성애는 싫어한다고 하는 표현도 안되나요 자연스러움이 좋다고 하는 말도 안되나요 우리아이들은 그런사랑 않했으면좋겠다는 바람도 않되나요 그들은 상처받고 우리는 상처 않받나요 평등을 말하면서 특권을 누리려하네요
  • 별꽃 2021/02/04 [17:48] 수정 | 삭제
  • 페미니즘은 좋은 의미로 시작됐지만 지금은 변질되었고 가정의 질서를 흔드는 거대괴물이 되었다. 젠더 이데올로기 개념에까지 이르러 이기주의 절정이 되었다 어두운면을 유난히 비틀어 사회악의 개념으로 쏟아놓고 부정족 차별 정서를 부추기고 함께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 Psd 2021/02/04 [17:47] 수정 | 삭제
  • 차별과 폭력은 이 세상 사람에게 있으면 안됩니다. 누구나 귀하니까요.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라면 그건 평범하게 사는 사람를 역차별하는것입니다. 본인에겐 그것이 바람이길 원하지만 그것으로 이 사회 가정 질서가 무너지거나 나라에 에이즈가 전염된다면 해악입니다. 사랑이란 언어로 우리 사회와 가정이 무너집니다.
  • 2021/02/04 [17:41] 수정 | 삭제
  • 가정의 문제를 다루는 많은 소설이 등장하지요. 그런데 그 해답이 그러니 그런 가정을 보편화합시다!(인정하고 포용하고 허용하자)로 가면 안될 일이지요. 안타까움을 알기에 그런 가정이 생기지 않도록 정상적인 가정을 만들 수 있도록 제도와 법을 만들어야죠. 차별금지법으로 불우한 가정이 생기는걸 방치하면 될까요? 가정은 남여의 결혼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이고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일입니다.
  • 푸르 2021/02/04 [17:40] 수정 | 삭제
  • 오히려 조상 때부터 지켜오던 순리적이고 도덕적인 전통을 무너뜨리려는 역차별을 우려하는 마음에서 반대하는 한 시민의 입장을 표현해 봅니다.
  • 해달이 2021/02/04 [17:35] 수정 | 삭제
  • 차별금지법 반대 합니다. 이런 좋은글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헷갈리게하는 책들 관심 없구요. 당신들의 엄마가, 할머니가, 딸이 성소수자고 동성애 라면 떳떳 하시겠어요. 책까지 내보시지 그러세요
  • 2021/02/04 [17:35] 수정 | 삭제
  • 우리나라에서는 성소수자라해서, 여성이라고해서,장애인이라고해서, 인종이 다르다고 해서 선거,대중시설 이용 등에 차별을 가하지 않습니다. 실생활에서 누리는 불편함 등이 있다면 고용 등 세부적인 내용에서 보장을 받을수 있는 개별적 차별금지법이 있습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필요없다고 생각됩니다. 오히려 각 개인의 의사표시를 혐오,차별이라고 매도하여 법적인 제재를 가하는 역차별이 일어날 것이고 사회적 혼란은 더 심해지겠지요
  • 분별 2021/02/04 [17:31] 수정 | 삭제
  • 이건아니죠 겉은 인권하지만 자세히 보면 역으로 차별하며 동성간 육체적 사랑을 주장하는자들의 특권입니다 에이즈 발병률도 높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병을 일으키고 바로 서야 할 가정이 무너질 수 있기에 이제까지 막은 것입니다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각 가정의 집에있는 자녀들에게 상당히 부정적영향을 끼치므로 막아야 합니다 제발 아이들을 건들지 말아주세요 왜 금지단어가 있다고 글등록을 막을까요 민주주의에서 그 이유를 묻고싶습니다
  • ransom 2021/02/04 [11:21] 수정 | 삭제
  • 차별금지법 반대자입니다. 국민건강권은 인권보다 더 큰 개념이고, 동성애는 에이즈 주원인입니다. 가정과 사회를 파괴하고 에이즈 환자를 양산하는 동성애를 괴이하게 옹호하는 차별금지법 반대합니다. 레즈비언 커플은 이혼률도 높은 데이터를 보면 결코 행복하고 정상적인 게 아니란 걸 알 수 있죠.
  • 이리오 2020/07/10 [19:57] 수정 | 삭제
  • 좋은 글 감사합니다..
  • $# 2020/07/10 [11:21] 수정 | 삭제
  • 두 만화를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 독자 2020/07/08 [18:56] 수정 | 삭제
  • 작가님들과 이 글을 쓴 작가님의 따뜻함이 느껴져서 요운이 남네요!
  • 먼데이 2020/07/05 [10:44] 수정 | 삭제
  • 작가들이 참 존경스럽다. 이런 글도 해독이 안되는 분이 있다니!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본인들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알까요..
  • 오네시모 2020/07/04 [20:48] 수정 | 삭제
  • 아버지가 알콜 중독자인 한 형제가 있었습니다. 형은 나중에 커서 절대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 되었고, 동생은 커서 아버지와 같이 알콜 중독자가 되었습니다. 후에 형에게 왜 술을 마시지 않는가?하고 물었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살아온 삶은 보며 살아온 내가 어떻게 술을 마실 수 있겠습니까?" 동생에게는 왜 술을 그렇게 마시게 되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동생은 " 어릴 때 아버지가 늘 술을 마셨는데, 내가 어떻게 술을 안마실 수 있겠습니까?" 하고 답하였다고 합니다. 억울한 환경을 타고나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자세와 마음입니다. 세상은 참 불공평합니다. 그 불공평함은 너무 복잡해서 단순히 기울어진 운동장을 반대로 기울여서 모든 것을 바로잡는 것과는 많이 다릅니다. 세상은 평평하기 보다 울퉁불퉁해서 억지로 한 방향으로 기울이면 오히려 다른 곳에서 억울한 사람이 더 많이 생길 수 있습니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것은 기사제목처럼 고통을 끊을 수 있는 궁극의 해법이 아닙니다. 오히려 또 다른 차별과 소외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 raisin 2020/07/04 [15:26] 수정 | 삭제
  • 너무 가슴아픈 이야기네요. 두 작가님들에게 존경의 마음을 보내고 싶어요.. 차별과 폭력의 대를 물리지 말자는 메시지에도 공감합니다!
  • 호명 2020/07/04 [07:51] 수정 | 삭제
  • 보았던 책인데도 다시 떠내서 보고 싶에 만드는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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