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여자가 암이라니” 이런 반응은 이제 좀

아픈 몸, 무대에 서다② 나의 일상이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쟤(정지혜) | 기사입력 2020/07/08 [10:35]

“젊은 여자가 암이라니” 이런 반응은 이제 좀

아픈 몸, 무대에 서다② 나의 일상이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쟤(정지혜) | 입력 : 2020/07/08 [10:35]

※ 질병을 둘러싼 차별, 낙인, 혐오 속에서 살아가는 ‘아픈 몸들의 목소리’로 만든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배우들의 기록을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 8번의 항암 치료 직후 환자복을 입은 모습이 스님 같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나의 주도로 친구들과 스튜디오에서 부처가 된 컨셉으로 사진을 남겼다. (스튜디오 글래머샷 촬영)


아플 수밖에 없는, 그치만 아프면 내 탓이 되는 사회

 

늘 아프고 피곤한 몸과 마음 상태였지만, ‘사회생활’을 하면 당연히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레토릭을 우스갯소리처럼 하면서 실제로도 내면화할 수밖에 없는 게 내 현실이었다. 지친 노동과 인간관계, 그리고 짐짓 평등한 척했던 위계의 폭력에서 비롯된 상처와 피로와 무기력. 번아웃을 겪으면서도 고장 난 몸과 마음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나의 상태에 적응해버리는 게, 이 사회를 살아내는 일종의 버티기 작전이었다.

 

무던하게 참아내는 게 나름 장점인 줄 알았는데 아픔을 잘 감지하지 못할 만큼 고장 나 있었다. 게다가 나는 프리랜서로, 어디가 아픈지 정확한 검사조차도 부담이 되는 재정 상태로 살고 있었다. 아픔이 질병이 땅! 땅! 하고 재판 결과처럼 판정되어 버릴 미래의 막막함을 자꾸 외면하며 남몰래 모로 누워 베개를 눈물로 적시는 날들이 자꾸만 쌓여갔다. 걷잡을 수 없이 아픈 몸이 되면 ‘무능력한 사람’이라고 평가되는 사회에서, 아파서 쉬고 싶은 나의 마음이 ‘능력 없음’과 ‘의지박약’으로 치부될까 굉장히 두려웠다.

 

결국, 걷잡을 수 없게 되었을 때야 나는 비로소 병원을 갔다. 그리고 부담감, 불안함, 두려움 속에서 작은 쉼을 마주할 수 있었다. 이마저도 모친이 강권해 들어 둔 사보험에 의지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예술계열에서 일하는 30대 페미니스트 프리랜서 여성으로 살면서 아플 수밖에 없었던 나는, 심각하게 아프고 나서야 집중치료를 위한 잠시의 쉼을 통해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로부터 조금 해방될 수 있었다. 그리고 아픈 몸과 삶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이 생겼다.

 

치료보다 더 고된 건, 사회가 아픈 몸을 대하는 태도

 

오랜 병원 생활을 경험하면서 ‘젊은 여성 환자’가 겪은 여러 에피소드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았다. 마냥 웃고 넘길 수 없거나 피곤함이 몰려오는 상황들이었다. ‘젊은데 아픈 여자’에게 쏟아지는 ‘불쌍하다’는 전형적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저 나름의 삶을 살아내는 ‘그럴 수도 있는 삶’이 되고 싶었다.

 

우선은 나 또한 아픈 몸으로 사는 삶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없음을 인정해야 했다. 그리고 아파도 괜찮고, 잘 아플 수 있는 삶을 위해 무엇을 말해야 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프다는 것은 ‘잘못한 것’ 혹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 말이다. 왜 아픈지 그 원인을 찾아서 자책하거나 원망하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쓰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미디어나 책에서 강조하듯, 음식과 생활을 완전히 바꿔야 깨끗하게 낫는다는 이상적인 지침 이외의 것을 찾고 싶었다. 그러니까 내가 잘못해서 병에 걸렸으니, 내가 모든 것을 바꿔야 나을 수 있다는 자기계발적인 가치관과 정상성의 기준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아픈 사람들에게 필요한 ‘아픔과 함께하는 일상과 삶의 철학’에 대한 이야기는 찾기 어려웠다.

 

몇 년 전 병원에 입원했을 때 침대에 누워 SNS와 책을 통해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를 틈틈이 찾아봤다. 암환자의 일상을 이야기하는 채널이 유튜브와 웹툰 등에 이제 막 등장하기 시작했을 정도로, 아픈 사람들의 일상과 삶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보는 게 쉽지 않았다. 아마도 대부분은 아픈 사람들을 불편하게 느끼고, 아픈 게 나의 일이 아니길 바라며, 아픈 타인의 불행을 자신의 건강과 비교하는 식으로 대상화시키고 있어서가 아닐까. 누구든 아플 수 있으며, 예전의 건강한 상태로 돌아가지 못할 수 있음에도 말이다.

 

건강한 몸은 날씬하고 아름다운 몸과 등치되기도 한다. 반면, 질병은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비극의 장치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다. 아플 수밖에 없게 만드는 사회에서 왜 아픈 삶의 스펙트럼은 이리도 눈에 띄지 않는 것일까. 많은 아픈 사람들이 각자의 스펙트럼으로 다양하게 삶을 영위하고 있는데 말이다.

 

병과 함께하는 삶이 슬픔과 좌절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아픈 나의 몸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처음으로 기획한 것이 있다. 바로 항암 치료 때문에 빠지는 머리카락을 삭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하던 일이 예술 기획이다 보니, 주변 예술인 동료를 모아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서 나의 삭발식을 생중계하는 퍼포먼스를 기획했다.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는 슬픔과 눈물 범벅의 삭발식이 아닌, ‘그냥 빡빡이 여성이 된 암환자 라이프’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굉장히 긴장되는 순간이었지만 생중계를 통해, 나의 상태를 몰랐던 사람들에게 일일이 설명하는 대신 한 큐에 나의 구체적인 상태와 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암환자의 스테레오타입에서 벗어난 나의 삶의 태도에 생각보다 많은 응원을 보내왔다.

 

▲ 삭발 퍼포먼스 인스타 생중계 캡쳐.


그 이후로도 환자 택스(tax)가 잔뜩 붙은 비싼 항암모자나 답답하고 관리도 힘든 고가의 가발을 꼭 선택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에, 최대한 다른 선택지가 있는지 찾아보았다. 주로 해외 경우긴 하지만 긴 스카프를 ‘터번’처럼 만들어 휘휘 두르고 다니는 모습을 참고해 겨울에는 주로 터번을 쓰고 다녔다. 다른 계절에는 약해진 피부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만 모자 또한 최대한 내 마음에 드는 베레모를 쓰고 다니기도 했다. (물론 까까머리인 나는 매우 종교적인 모습으로 보이고, 베레모를 쓴 나는 인사동에서 자주 볼듯한 인상이었지만 말이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나 또한 그랬을 테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당황스러워하고 너무 조심스러워했다. 익숙하지 않은 모습의 나, 환자인 나에게 어떤 말을 건네야 하는지, 어떻게 대해야 할지 혼란스러워했다. 우리가 아픈 사람에게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한 정보나 교육을 받은 게 거의 없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놀라웠다.

 

이렇게 항암 기간을 보내는 동안 큰 힘이 되어준 게 있었는데,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에서 연재된 ‘반다의 질병관통기’였다. 그 연재를 통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건강권’에서 더 나아가 ‘잘 아플 권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난해 그 연재가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조한진희, 동녘)라는 책으로 출판되었다. 북토크에 참여해서 저자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들으며, 나도 아픈 몸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었다. 그 용기를 가지고 나는 여성의 몸에 대해 자신의 경험을 말하는 CBS ‘말하는 몸’이라는 팟캐스트에 출연했다. 아픈 여성의 몸을 향하는 시선에 대해 이야기하고 ‘맘껏 아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했다.

 

질병 경험으로 연극을 만들다!

 

시간이 지나며 점점 건강에 차도가 생겼다. 더불어 치료 중심의 보험제도가 이후의 삶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현실을 알게 되었다. 특히 집중적인 항암치료 이후는 암에 대한 직접 치료가 아니라는 이유로 보험 지급도 현저히 줄어들었기 때문에, 나는 다시 임금노동으로 뛰어들어야 했다. 하지만 아픈 여성에게는 제약이 너무나 많았다. 나조차도 내가 얼마나 일할 수 있을지, 어떤 직업을 가질 수 있을지 그 기준을 경험하고 알아내기가 어려웠다.

 

▲ 항암치료 중에 선물 받은 스카프로 터번을 둘러 병원 외래를 다녔다.   ©쟤(정지혜)


그즈음 마침, 아픈 몸을 가진 낭독극 참여자를 찾는다는 기사를 보았다. 각자 자신의 질병 경험을 가지고 연극을 만든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신청서를 작성했다. 그렇게 모인 여섯 명의 아픈 몸 동료들은 저마다 아픔의 형태는 달랐지만, 아픔의 경험만으로도 많은 공감대를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낭독극이라고 모집되었기에 ‘읽으며 표현하는 공연은 많이 어렵지 않겠지?’라고 가볍게 생각해 막연히 뛰어든 공연이었다. 그런데 빠빠(연출가)의 ‘나를 활짝 열어야만 하는(?) 작업방식’이 처음엔 당혹스러울 따름이었다. 단지 아픈 이야기뿐만 아니라 나의 삶 자체를 스케치북에 그려 표현하고 공유하는 것부터, 책상을 다 밀어놓고 공간을 휘젓고 다니며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고 땀을 내며 이전엔 해 본 적이 없는 것들을 경험했다. 이야기를 하는 것뿐만 아니라 정말 내가 제대로 뛰어들어 나의 심상을 온몸을 사용해서 끊임없이 창작해 표현해내야 하는, 그러면서도 모두가 귀 기울이고 함께 참여해서 만들어야 하는 작업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과정은 예술치료의 방법론이 많이 쓰인 작업이었다. 나를 포함해 아픔을 견뎌오면서 많은 것들을 내면에 수렴하는데 익숙한 아픈 몸들의 참가자들은, 평소에 표현해보지 못했던 감정과 상태를 자기 스타일로 표현해내는 훈련이 마냥 어색하기도 했다. 음악을 느끼는대로 몸으로 표현하고, 많은 것에 갇혀있고 나아가지 않는 분노와 같은 감정을 극대화해서 표현하는 것에 익숙해지는데 꽤나 오래 걸렸다. 하지만 점점 그 방식에 빠져들어 조금씩 대담해지는 나와 우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렇게 다양한 즉흥표현 훈련을 연극의 코앞에 다가올 때까지 연습했다. 작업 중반이 더 지나서야 우리는 드디어 공연에 올릴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본격적으로 생각해내고 있다. 그래서 더욱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연극을 통해 아픈 삶의 고민과 선택지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하고, 기대가 되기도 한다. 어쩌면 나는 앞의 훈련들을 통해 이미 조금은 내 이야기를 할 실마리를 찾았을지도 모르겠다.

 

아픈 몸들 이야기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코로나19라는 세계적인 팬데믹 속에서 감염병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이기적인 시선을 피부로 느끼는 시대다. 바론 그런 점에서 아픈 몸의 이야기는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여전히 아픈 몸이라서 구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신청한 공공 일자리 사업에서도 ‘사업을 완수해야 할 만큼 건강해야 한다’는 규칙을 발견하고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그래서 더더욱 나는 어떻게든 아파도 미안하지 않게 살 수 있는 나의 이야기를 하고, 아픈 몸으로 잘 살아내기 위해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끊임없이 말할 것이다.

 

이쯤 되면 우리가 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에서 대체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지 독자들이 조금 더 궁금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힌트는 지금까지의 나의 이야기 속에 있을 것이다. 만약 이 글을 읽고 우리의 작업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각자 아픈 몸의 일상, 노동, 돌봄 등을 구체적으로 상상해보고, 이 연극이 주는 이야기에 접속해보는 것은 어떨까. 여전히 외출이 두려운 아픈 이들은 온라인 관람을 통해 마음껏 우리와 연결될 수 있다.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온라인 관람 예매 https://socialfunch.org/dontbesorry

*다른몸들 페이스북 페이지 https://facebook.com/damom.action

 

글쓴이: 쟤(정지혜) 자신에게 더 집중할 수 있는 홀로되기에 대해 고민하고 그것을 즐기고자 하는 예술 프로젝트와 기획을 하다가, 생각지 못한 타이밍에 유방암과 그 주변의 전이된 암을 발견하고 4기 유방암 만성질환자로 살아가게 된 암 생존자. 여성의 장기적인 노동과 기술, 노동을 대하는 태도와 환경 등을 여성 베테랑을 통해 알아보는 WSW(We are Still Working; wsw.or.kr) 프로젝트 공동대표. 병의 호전보다는 아픈 몸과 함께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독립적인 삶을 살기에 집중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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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란 2022/12/13 [21:11] 수정 | 삭제
  • 쟤님의 부고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 216 2022/12/09 [14:17] 수정 | 삭제
  • 부고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공감 2020/07/09 [12:54] 수정 | 삭제
  • 멋지다! 힘난다!!
  • ! 2020/07/08 [18:29] 수정 | 삭제
  • 맞아요. 저는 병원에 갈 때마다 세상에 아픈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도 단절된 시공간을 사는 것 같은 소외감을 느낍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죠. 건강중심 사회라는 말이 정확한 것 같아요. 연재 너무 반가워서 댓글 남깁니다~
  • 현현현 2020/07/08 [18:07] 수정 | 삭제
  • 퍼포먼스가 너무 유쾌해요ㅋㅋ 연극 너무 기대됩니다 앞으로의 행보도 응원할게요!
  • sunflower 2020/07/08 [16:11] 수정 | 삭제
  • 해바라기 꽃이 밝게 피었습니다. 창문 밖을 보며 이 기사를 읽고 내 마음에도 해바라기 꽃이 피었습니다. ^^
  • 예리 2020/07/08 [14:02] 수정 | 삭제
  • 컨셉사진 너무 유쾌해서 힘 나요!!!!!
  • 머글 2020/07/08 [12:53] 수정 | 삭제
  • 퍼포먼스 넘 멋져요! 질병은 외모의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에 외모차별이나 복장규제가 심한 한국에서는 특히 환자들이 맘편히 아플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아픈 몸에게 외모스트레스까지 주는 세상이 답답했는데 이렇게 멋진 컨셉사진과 퍼포먼스라니요!! (두손 모으신 세 분 보면서 빵터졌어요. 유쾌하시다 ㅋㅋ)
  • 홀홀 2020/07/08 [11:11] 수정 | 삭제
  • 컨셉사진 유쾌하네요. 아픈 시간 역시 내 삶의 일부이자 과정으로 만드는 모습,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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