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되고 부정적인 트랜스젠더 이미지의 출처는?

다큐멘터리 영화 <디스클로저>가 폭로하는 것

박주연 | 기사입력 2020/07/12 [14:15]

왜곡되고 부정적인 트랜스젠더 이미지의 출처는?

다큐멘터리 영화 <디스클로저>가 폭로하는 것

박주연 | 입력 : 2020/07/12 [14:15]

기사를 준비하고 있는데, 트랜스젠더 군인 변희수 하사의 ‘강제전역 취소’ 재심 요청이 기각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군인으로서 소명에 충실하고자 한 변 하사의 의지가 다시금 좌절된 건 물론이거니와, 한국은 여전히 트랜스젠더가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기 어려운 차별사회임을 보여주는 슬픈 역사의 장면이다.

 

어렸을 때 상상했던 2020년은 하늘을 나는 자전거를 타고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로운 세상이었다. 그런데 실제 2020년은 차별금지법조차 마련되지 않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벽이 높은 세상이다. ‘성전환 수술 없는 성별정정을 막아달라’는 국민청원 서명이 20만명을 넘길 정도로, 트랜스젠더를 바라보는 시선은 경계가 가득하다. 트랜스젠더 여성을 ‘여성’의 공간에 침입하는 자로 간주하며, 트랜스젠더 남성은 없는 존재로 무시해버린다.

 

그런데 사실 많은 사람이 트랜스젠더를 제대로 마주해 본 적도, 이야기를 해본 적도 없을 거다. 그렇다면 이런 ‘왜곡된 트랜스젠더 이미지’는 대체 어디서 온 걸까? 

 

▲ 다큐멘터리 영화 <디스클로저> 인터뷰에서 트랜스젠더가 스크린에서 재현되어 온 방식을 설명하는 배우들. 그러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어떤 기분이었는지 설명한다.     ©Netflix

 

다큐멘터리 영화 <디스클로저>(Disclosure, 샘 페더 감독, 2020년)는 그게 미디어의 영향이라고 ‘폭로’한다. 오랜 시간 미국의 영화/TV 스크린에서 트랜스젠더를 어떻게 ‘문제적으로’ 다뤄왔는지 추적하고, 그것이 트랜스젠더 당사자와 주변인 그리고 미국 사회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보여준다.

 

누가 ‘변태’, ‘연쇄살인범’, ‘사이코패스’로 묘사되는가?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영화 중에서, 1990년대의 대표적 스릴러 <양들의 침묵>(조나단 드미, 1991년)엔 연쇄살인범 버팔로 빌이 나온다. 그는 ‘여성’이 되고 싶어서, 여성들을 죽이고 그들의 가죽을 이용하는 사이코패스 트랜스젠더로 묘사된다.

 

공포영화의 고전으로 손꼽히는 <싸이코>(알프레드 히치콕, 1960년)에도 연쇄살인범 노먼이 여장을 하고서 여성을 죽이는 공포스런 장면이 등장한다. 히치콕 감독의 영향을 많이 받은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드레스드 투 킬>(1984년)에서도 ‘여장남자’가 여성을 죽인다.

 

이렇듯 할리우드 영화에서 트랜스젠더를 연쇄살인범, 사이코패스 같은 공포스러운 캐릭터로 그리는 방식은 오래 계속되어 왔다.

 

트래스젠더 배우 젠 리처즈는 친구에게 커밍아웃을 했을 때, ‘버팔로 빌처럼 되겠다고?’라고 들었던 걸 잊지 못했다. 재능있고 똑똑하며 교육도 잘 받았고 세상 물정 밝았던 사람조차 트랜스젠더에 대해선 굉장히 제한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 다큐멘터리 영화 <디스클로저> 포스터. 디스클로저(Disclosure)는 사람들이 몰랐던 이야기 혹은 비밀을 밝히는 폭로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 Netflix


미디어에서 아예 찾아보기 힘든 트랜스남성

 

미디어가 트랜스여성을 ‘사이코패스 여장남자’로 묘사했다면 트랜스남성은 오랫동안 아예 등장시키지 않았다.

 

미국에서 트랜스남성이 고정적인 배역을 통해 가시적으로 드러난 건 <엘 워드>(the L word, Showtime 2004~2009년 방영)에서다. 엘워드를 처음 봤을 때가 생생히 기억나는데, 시즌1의 1화부터 과감한 섹스 씬이 나왔다는 것 외에도 LA에서 ‘멀쩡히 잘 살고 있는’ 레즈비언들로 화면을 가득 채운 TV 드라마를 볼 수 있다는 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동성애자/성소수자는 불행하다’는 기저가 깔린 이야기를 주로 접했던지라 <엘 워드>의 등장인물과 이들이 엮어가는 이야기는 새로웠다.

 

그렇게 기념비적 콘텐츠인 <엘 워드> 시즌3부터 트랜스남성 맥스가 등장한다. 그는 제대로 된 의료시스템을 통하지 않고 암시장에서 테스트론을 구해 트랜지션(출생 시 지정된 성별을 자신의 젠더 정체성에 맞게 변화시키는 것)을 시작한다. 그리고 폭력적인 성향으로 변하고, 여성을 좋아하던 성적지향도 남성을 좋아하는 걸로 변한다. 물론 그의 성적지향이 애초에 바이섹슈얼이나 판섹슈얼이었을 수도 있다. 문제는 그의 이야기가 시청자들이 이입하기 쉽지 않을 정도로 들쑥날쑥 했고, 트랜스남성에 대한 오해나 편견을 가져올 수 있었다는 거다.

 

이렇게 맥스가 트랜스남성 캐릭터로 TV에 나오고 있을 때 실제 트랜지션을 하고 있었던 배우 브라이언 마이클 스미스는 그 이야기가 자신에게 문제적이었다고 말한다. 주변에 참고할 만한 트랜스남성이 없을 때, 미디어에 등장한 유일한 트랜스남성이 변화를 겪으며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인다면 그럴 수 밖에 없을 테다.

 

거기다 <엘 워드>는 트랜스남성이 ‘된’ 맥스를 배신자로 그린다. 작가 지크 스미스는 <엘 워드>가 트랜스남성을 레즈비언 커뮤니티를 버리고 페미니즘에도 반하는 존재로 묘사했다고 지적한다.

 

▲ <디스클로저>는 레즈비언 드라마 <엘 워드>가 트랜스남성을 부정적인 이미지로 묘사했다고 지적한다.   ©Netflix


‘시스젠더 남성’이 ‘트랜스여성’을 연기하는 문제

 

영화 <디스클로저>는 트랜스젠더가 미디어에서 ‘어떻게 그려지는가’라는 문제 말고도 ‘누가 표현하는가’라는 또 하나의 문제를 짚는다.

 

트랜스젠더 커뮤니티는 오랫동안 시스젠더(출생 시 지정된 성별과 자신의 젠더 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가 트랜스젠더 역할을 연기하는 것에 대해 지적해왔다. ‘배우는 어떤 캐릭터든 연기할 수 있어야 한다’며 그 주장에 반박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트랜스젠더 커뮤니티는 트랜스여성 역할을 시스젠더 남성이 연기했을 때 생기는 문제가 분명히 있다고 이야기한다.

 

미디어가 굳이 ‘남성’에게 ‘트랜스여성’ 역할을 연기하게 함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계속 저 캐릭터가 결국 ‘진짜 여성’이 아니라는 이미지를 전달한다는 거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뜨거운 오후>(시드니 루멧 감독, 1975년)엔 주인공 소니(알 파치노 역)의 부인으로 트랜스여성이 등장한다. 실제로 그는 굉장히 아름다운 여성이었다고 알려져 있음에도 영화 제작진은 그 역할을 남성배우 크리스 서랜든에게 맡겼다. 제작진은 처음에 트랜스여성인 엘리자베스 코피 윌리엄스와 오디션을 진행했지만, 그가 너무 ‘진짜 여자 같아서’ 그 역을 맡기지 않았다고 한다.

 

남성배우가 ‘헌신적으로’ 트랜스여성 캐릭터를 연기하면 늘 그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런 일이 계속 반복됨으로써 관객들은 결국 ‘트랜스여성은 남성이 연기하는 것’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뜨거운 오후>는 리온(트랜스여성) 캐릭터를 실존 인물과 달리 ‘남성배우’(크리스 서랜든)에게 맡겼다.


많은 트랜스여성이 ‘남자면서 여자인 척 한다’는 시선 속에서 폭력을 마주하고 심지어 죽임을 당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미디어의 재현은 문제적이다. <디스클로저>는 남성배우가 ‘트랜스다운 연기’를 하는 모습이 아니라, 트랜스여성이 스크린 안팎에서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트랜스젠더 미디어의 세계가 열리고 있다

 

TV드라마 시리즈에서 단역이 아니라 조연을 맡게 되었지만 첫 화 방송 때 자신의 목소리가 두 옥타브 낮게 설정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캔디스 케인의 이야기나 창녀, 콜걸, 매춘부1, 매춘부2 등의 역할만 하다가 ‘그게 내 한계인가?’라고 생각했다는 재즈문의 이야기 등. 트랜스젠더 배우들은 그들을 제대로 표현해낼 준비가 안 된 미디어 안에서 어렵게 버텨왔다.

 

TV 안에서 수없이 죽임을 당하면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노력한 트랜스젠더 배우들, 작가, 감독, 프로듀서가 있었기에 이제 조금씩 변화가 발견되고 있다.

 

<엘 워드> 종영 이후 약 10년 만에 리부트된 <엘 워드: 제너레이션 Q>(2019년~현재)에도 트랜스남성 캐릭터 마이카와 피어스가 등장한다. 트랜스남성 맥스를 부정적으로 그렸던 그 <엘 워드>가 다시 트랜스남성 캐릭터를 이야기에 담아낸 거다.

 

이번엔 트랜스남성 배우들이 트랜스남성 캐릭터를 연기하게 되었다. 그리고 백인이었던 맥스와 달리 마이카는 아시아인, 피어스는 흑인이다. 제작진들은 지적 받았던 내용들을 수용하고 트랜스 커뮤니티의 다양한 이야기를 더 진솔하게 담아내려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변화에 대해 트랜스 커뮤니티도 반기는 목소리를 냈다.

 

▲ 2019년부터 방영된 TV드라마 시리즈 <엘 워드: 제너레이션 큐> 포스터


2018년부터 방영 중인 TV드라마 시리즈 <포즈>(2018년~현재)는 미국 TV 역사상 가장 많은 트랜스젠더 배우가 등장하는 드라마로, 1980년대 후반 뉴욕의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와 볼문화를 다루고 있다. 트랜스젠더가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를 제대로 할 수 있게 된 시대가 온 거다.

 

<디스클로저>에 등장한 트랜스젠더들은 미디어가 트랜스젠더를 왜곡하고 괴롭히는 걸 보면서도, 한편으론 혼자인 줄 알았던 세상에서 자신과 같은 존재가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미디어는 중요하다. 하지만 더 이상 끔찍한 재현방식을 통해서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의 한계를 단정지어 버리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배우 젠 리처즈는 지금까지의 트랜스젠더 재현방식의 문제점을 해결할 간단한 방법이 있다고 말한다. “트랜스젠더 캐릭터를 더 만들면 돼요. 그러면 (지금까지의 부정적인 재현방식이) 중요하지 않게 될 거에요. 그게 전부가 아니니까요.”

 

지금 한국에서는 차별금지법 발의 소식이 들려오자, 왜곡되고 제한된 트랜스젠더의 이미지가 인터넷에서 떠돌고 있다. 이제 미디어 그리고 현실에서도 더 다양한 트랜스젠더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된 만큼 그런 이미지는 곧 도태될 거라 생각하지만, 더 열린 마음이 필요한 때다.

 

숙명여대에 진학하고자 했던 트랜스젠더 신입생이 겪은 혐오와 차별을 목격했을 때, “모든 사람은 저마다 유일무이하고 고유한 존재이므로 서로의 삶과 그 안의 고통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이해할 수 없으니 단절된 채로 살자는 것이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타인의 고유성을 향해 서로 계속해서 묻고 들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화여자대학교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 성명서 중, 2020년 2월 9일)이라며 목소리 낸 이들이 떠오른다.

 

이제 시작된 트랜스젠더 미디어 세계의 이야기를 듣고, 또 새로운 질문을 던질 때다.

 

*참고: 남북전쟁 이후, 노예제도가 폐지된 후에도 미국 사회가 흑인을 어떻게 차별하고 탄압했는지 세심하게 들여다 보는 영화 <수정헌법 13조>(에버 두버네이 감독, 2016)도 추천한다. 여기에서도 미디어의 흑인 재현 방식이 얼마나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쳐왔는지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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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ㅇㅇ 2020/07/19 [22:31] 수정 | 삭제
  • 오오 꼭 필요한 다큐가 나왔네!
  • -- 2020/07/19 [07:56] 수정 | 삭제
  • ↓착한 TERF는 죽은 TERF뿐
  • oo 2020/07/18 [10:45] 수정 | 삭제
  • 치마, 화장, 하이힐, 장발이라는 여성 외모 올가미를 깨면 되는 사안입니다. 그게 본질입니다. 치마 입는 남자, 화장 하는 남자, 하이힐 신는 남자, 장발 하는 남자로 살면 됩니다. 탈코르셋 운동 덕에 FTM은 저절로 해결이 되었죠. 전라도 사투리 하는 경상도 출생지인으로 살면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분이 구청을 방문해서 출생지를 전라도로 바꾸겠다고 하면 심리치료를 받으면 됩니다.
  • OO 2020/07/12 [21:05] 수정 | 삭제
  • 사막의 오아시스라는 말은 넷플릭스에서 디스클로저를 발견했을 때에 어울린다. 버팔로 빌 얘기 나왔을 때 소름이 쫙 끼쳤어요. 맞다 맞아.. 그랬지.
  • 버섯 2020/07/12 [16:25] 수정 | 삭제
  • 엘 워드 제너레이션 큐! 흐뭇해~ 트랜스캐릭터 잘 안보였는데 이제 좀 변화를 알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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