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에게 침묵과 용서를 강요하지 않는 공동체를 바라며

『사랑하는 고양이가 죽은 날』이 가르쳐주는 것

안지혜 | 기사입력 2020/07/22 [09:56]

피해자에게 침묵과 용서를 강요하지 않는 공동체를 바라며

『사랑하는 고양이가 죽은 날』이 가르쳐주는 것

안지혜 | 입력 : 2020/07/22 [09:56]

고양이 함푸스가 죽었다. 함푸스가 옆집 지하실에 쓰러져 있었다. 어른들 이야기로는 차에 치인 채 지하실에 들어갔고, 거기서 생을 마감한 것 같다고 했다. 함푸스를 잃은 아이는 심장이 쾅쾅 뛰었다.

 

슬플 것 같은 도입부 내용이지만, 나는 용기가 필요할 때 이 책을 꺼내게 된다. 『사랑하는 고양이가 죽은 날』은 작은 섬마을에 일어난 고양이 사망 사건의 범인을 찾고, 애도하는 과정을 담은 그림책이다.

 

▲ 그뤼 모우르순 글 그림, 한주연 역 『사랑하는 고양이가 죽은 날』(원제: Tre Biler Og En Dod Katt) 찰리북, 2017


고양이의 죽음, 범인을 찾아 나선 아이들

 

사고 이후, 아이와 친구들이 모였다. 올레모튼, 토네, 동생 랏세 앞에서 아이는 슬픔과 당혹감에 고개를 수그리고 있지만, 분명하게 말한다.

 

“범인이 누군지 알고 싶어.”

 

맨 처음 이 책을 봤을 때, 이 대사가 주는 생경함과 후련함에 깜짝 놀랐다. 누가 잘못한 것인지,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정확히 알고 싶다는 인식과 외침이라니! 그동안 나는 이런 여자아이 캐릭터를 그림책에서 거의 본 적이 없다. 어디 캐릭터뿐인가. 나 역시 이런 외침은 감추는 데 익숙하다. 누군가 잘못했더라도 굳이 들추지 말고 넘어가는 것이 미덕인 사회에 살고 있지 않은가.

 

아이는 범인을 알고 싶다는 욕구를 검열하지 않았고,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이 섬에는 자동차가 딱 세 대뿐이니, 세 집을 직접 찾아가보기로 한 것이다. 알록달록한 망토를 두른 아이부터, 자전거 뒷자리에 곰 인형을 태운 막내까지, 아이들은 범인을 찾기 위해 바닷바람을 가르며 언덕을 내려간다. 모두 힘껏 페달을 밟으며 자전거를 타고 가는 이 장면이 어찌나 멋지고 근사한지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아이들은 가겟집 아저씨의 찌그러진 차를 살피는 것부터 수색을 시작한다. 자전거를 두고 ‘망할 똥덩어리’라고 고함치는 괴팍한 할아버지네 집을 거쳐, 섬 반대편 택시 기사 아주머니네 집까지 두루 방문한다. 과연 이 중에 범인이 있을까? 아이들은 마침내 범인의 자백을 듣게 되는데….

 

범인은 의외의 인물이다. 아이는 그렇게 될 줄 몰랐다는 범인의 변명에, 외친다. “고양이 살해범!” 나는 이 외침에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그간 무수히 보아 온, 피해자가 가해자를 향해 제대로 된 외침조차 못하게 하는 세간의 풍경을 보고 느낀 답답함을 대신 해소해 주는 기분이 들었다.

 

▲ 노르웨이 작가 그뤼 모우르순 그림책 <사랑하는 고양이가 죽은 날> 중에서


고양이 사망 사건을 대하는 마을공동체의 윤리

 

다음 날, 함푸스의 장례식이 열린다. 엄마와 아빠는 무덤 만드는 걸 도와주었고, 친구들은 금잔화와 데이지꽃을 가져왔다. 앞집 아주머니와, 한때 용의자였던 이웃들도 찾아왔다. 그런데 이 장례식에 올 수 없는 사람이 한 명 있다. 사고를 낸 사람, 가해자는 저 아래 길가에 그냥 서 있을 뿐이다. 누구도 여기에 오라고 부르지 않는다.

 

나는 이 장면이 정말로 근사하다고 생각한다. 가해자가 책임과 반성을 표현하는 것, 이웃들은 이웃대로 친하게 지내던 누군가를 저기 외따로 두는 불편함을 견디는 것, 이것이 고양이 사망 사건을 책임지는 마을의 윤리 아닐까.

 

지난 밤 아이의 엄마는 사고를 낸 이웃에 대해 “가여워라, 누구한테나 사정이 있단다. 그분은 가진 게 많지 않잖아. 가족도 없고.” 하고 말했다. 하지만 아이에게 용서를 강요하지는 않는다. 그건 함푸스를 잃은 아이의 인생에서, 언젠가 아이가 맞닥뜨리고 풀어가야 할 다른 종류의 숙제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지금 이 사고 앞에서 먼저 할 이야기는 따로 있다는 것이다.

 

피해자에게 용서와 이해를 구하기 이전에 먼저 잘못에 대한 진실이 밝혀져야 하고, 사태를 제대로 인식해야 하며, 정확한 사과와 상처의 치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 이를 마을 사람들도 알고 있는 듯 보인다. 그래서 ‘얘야, 누구나 실수한단다’라거나, ‘나도 과속한 적이 있어. 우리 중에 죄 없는 사람이 누가 있어’라고 말하는 어른은 없다. 아이에게 ‘우린 그분에게 신세를 많이 졌어. 얼마나 고마운 분인데.’라는 말을 하지 않는 정도의 윤리가 이 섬마을에는 있는 것이다.

 

사고를 낸 이가 다정하고 안쓰러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교통사고로 고양이를 죽게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그만큼의 명예가 실추되는 것을 불편하더라도 똑바로 보는 것. 그것이 이 섬마을 사람들에게 배운 애도의 윤리이다. 이 섬에서 고양이가 다시 차에 받히지 않고,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다 차에 치이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안전 조치이기도 하다. 그것이 결국에는 가해자가 이 섬마을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정직한 길이기도 하지 않은가.

 

장례식을 마친 뒤에야, 아이는 몇 날 며칠, 몇 년 동안 계속해서 아기 고양이 함푸스를 생각하며 울고 싶다는 마음을 발견한다. 슬픈 노래를 들으며 함푸스를 생각한다. 아이는 고양이의 죽음의 원인과 사건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분노와 슬픔을 그대로 표현한 이후, 천천히 애도의 시간을 만나고 있다.

 

▲ 그뤼 모우르순 작가의 그림책 『사랑하는 고양이가 죽은 날』(원제: Tre Biler Og En Dod Katt) 중에서. (찰리북, 2017)


그림책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에 나를 대입해보며

 

이 책은 노르웨이 그뤼 모우르순 작가가 어린 시절 겪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그림책이다. 1970년대의 노르웨이 섬은 이 정도의 윤리가 살아있었던 것일까. 나는 이 그림책에 나오는 여러 인물에 나를 대입해본다. 고양이를 잃은 아이, 아이의 엄마, 친구, 이웃, 교통사고 가해자까지.

 

인생이 늘 뜻하는 대로만 흐르지 않으니, 나는 어느 입장이든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무엇이 되지 않기를 바라기보다는 필요한 때 내가 소리치기를, 슬픔에 빠졌더라도 정확하게 보고 말하는 용기를 잃지 말기를, 그리고 ‘인간된 도리’라는 말로 피해자에게 화해를 강요하는 악은 범하지 않기를 바라기로 한다.

 

혹시 내가 가해자가 된다면 고통스럽더라도 내가 그것을 제대로 책임지기 바란다. 그러나 그 전에, 내가 가해자가 되지 않을 경계와 긴장을 갖기를 바란다. 내가 속한 사회가 내게 경계와 긴장의 메시지를 충분히 알려주기 바란다. 혹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가해자가 된다면, 내가 눈감지 않기를 바란다. 괴롭고 불편한 채로 그 가해와 피해를 정확히 바라보는 것이 사랑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필자 소개: 안지혜 님은 그림책 『숲으로 간 사람들』(김하나 그림, 창비, 2018)을 쓴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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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근두근 2020/07/23 [22:16] 수정 | 삭제
  • 이렇게 머찐 그림책이 있었다니.
  • 가을가을 2020/07/23 [22:16] 수정 | 삭제
  • 작가님 글 읽고 책을 샀습니다. 좋은 책 좋은 글로 소개해 주어 고맙습니다.
  • uchi 2020/07/23 [16:45] 수정 | 삭제
  • 나는 과연 얼마나 그런 불편함을 견뎌보았나, 그걸 견뎌내는 책임을 다해보았나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가해자를 두둔하지는 않았더라도 갈등회피형으로 살아온 것 같아서 내심 부끄러웠습니다. 그런데 그런 불편함을 견뎌주지 않으면 갈등과 미움과 억울함밖에 남지 않겠지요. 공동체는 불가능하겠지요.
  • ㅇㅇ 2020/07/23 [10:28] 수정 | 삭제
  • 그림도 너무 아름답다
  • 합정 2020/07/22 [15:10] 수정 | 삭제
  • 불편함을 견디는 것, 사랑의 책임. 오래 생각하고 싶습니다.
  • 2020/07/22 [12:39] 수정 | 삭제
  • 벌써 눈물이 날 것만 같아.. 정말 좋은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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