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을 말하는 연극, 과정도 달라야 하지 않을까?

아픈 몸, 무대에 서다⑪ 아파도 미안하지 않은 세상을 ‘함께’

조한진희(반다) | 기사입력 2020/09/21 [08:27]

인권을 말하는 연극, 과정도 달라야 하지 않을까?

아픈 몸, 무대에 서다⑪ 아파도 미안하지 않은 세상을 ‘함께’

조한진희(반다) | 입력 : 2020/09/21 [08:27]

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를 기획·제작하며 마음에 세운 원칙이 있다. ‘목적과 과정이 분리되지 않는 작업이어야 한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말은 넘치지만 실제 삶이 그러한 경우는 드물다. 인권을 말하는 작품은 많지만 그 과정에서 인권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도 빈번하다. 완벽하게 올바른 것은 불가능하지만 최소한의 원칙을 정하고 지켜내고 싶었다. ‘장애인 접근권’과 무대 뒤 ‘스태프들의 노동권’을 지키는 환경을 만들며 연극을 제작하겠다고 다짐했다.

 

배우의 건강권과 농인 관객의 접근권이 충돌할 때

 

연극 공연 후 온라인 관람이 시작되자, 수어통역 화면의 화질이 매끄럽지 않다는 의견이 들려왔다. 대사를 수어로 전달받아야 하는 농인들에게는 연극 감상에 불편한 일이다. 예상한 일이었고, ‘선택’이었다. 공연 전날 무대 리허설을 하면서 조명의 조도를 맞출 때, 한 시민 배우가 너무 밝은 조명에 쇼크가 올 수 있다며 자신의 몸 상태를 설명했다. 조명감독은 무대 위 조도 자체를 전반적으로 낮게 했고, 조명을 켤 때도 서서히 밝아지는 방식으로 속도를 조절했다. 농인 관객의 시각 동선을 고려해 무대 바로 옆에 선 수어통역사의 조명도 일정 정도 무대 조명과 맞춰서 진행했다.

 

▲ 공연 전날 리허설에서 무대감독이 배우와 조명의 밝기가 적절한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무대 위에 한 명의 배우가 앉아 있고 그 앞에 무대감독이 서 있다.)  ©다른몸들

 

그러다 보니 화면에 수어통역사의 표정이 섬세하게 담기지 않았다. 예산과 시간이 더 있었다면 좋은 화질을 구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조명 조도를 맞추면서 우리는 처음으로 시민배우의 빛과 쇼크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됐고, 공연은 20시간이 채 남지 않은 상태였다. 연극 공연 무대 촬영용으로 2대의 카메라를 배치했고, 수어통역용 카메라는 영화도 촬영한다는 화질 좋은 휴대폰 카메라를 배치한 상태였다. 무대 촬영용 카메라와 달리 수어통역용 카메라는 적은 빛에 상대적으로 취약했다. 새로운 카메라를 구할 시간도 없었고, 이미 제작비가 천만 원 넘게 초과되어 빚으로 쌓여있는 상태에서 예산을 더 배치하기도 어려웠다.

 

선택을 해야 했다. 당연히 무대 위 배우의 안전과 건강을 우선으로 했다. 그다음에 수어통역 화면 화질이 연극 대사를 전달받는데 큰 방해가 될 정도인지 조언을 구했다. 화질이 아쉽지만 대사 전달에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라는 의견을 들었고, 그대로 진행했다.

 

사실 장애인 문화접근권, 특히 문자나 수어통역은 내겐 익숙한 분야라, 문제없이 잘 될 거라고 그리고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2005년에 “시민방송 RTV 시사다큐: 나는 장애인이다!” 연출자로 활동할 때도, 다큐 제작이 끝나면 항상 자막과 수어통역 작업을 했다. 15년 전인 당시는 한국에서 장애인 문화접근권 논의가 본격화되던 시기였고, 내가 속해 있던 ‘다큐인’은 가장 최전선에서 그 담론을 주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몇 년 동안 동료들과 여러 고민과 공부를 함께 했었다. 이후에도 장애인권 영상이나 장애인 미디어교육을 지속해왔던 터라, 이번 작업을 준비하면서도 연극 분야가 워낙 장애인 접근권이 떨어지는 영역인 만큼 더 잘 준비하려고 많은 공을 들였다.

 

연극은 수어통역 영역에서도 매우 고난이도의 통역에 해당한다. 따라서 경험 많은 수어통역사와 연극의 기획 의도부터 최근 수어통역 환경과 영상 구현까지 다양한 소통을 하며 진행했다. 대본이 나오자마자 수어통역사에게 전달하고, 연습실에서의 전체 리허설 장면도 동영상에 담아 미리 전달했다. 수어통역사들도 모든 내용을 사전에 전달받았음에도, 무대 리허설 때 직접 공연장에 방문해서 배우들의 대사를 객석에서 혼자 통역하며 열정과 책임감을 보였다. 드물게 진행되는 연극 무대 수어통역인 만큼 수어통역사들도 이번 연극에 대한 애정과 연대의 마음이 깊은 듯했다.

 

▲ 연극 온라인 관람 영상 중 문자통역과 수어통역이 포함된 버전 화면 갈무리. (연극 화면 오른쪽에 수어통역 화면이 보이고, 하단에는 문자통역 자막이 보인다.)  ©다른몸들

 

공연 내내 수어통역사들은 손뿐 아니라 표정과 온몸으로 배우들의 대사를 전달하고자 노력했다. 공연을 마친 후 배우들도 탈진 상태였지만, 수어통역사들도 단시간에 엄청난 에너지를 사용한 이후의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문학을 다른 언어로 번역한다는 게 재창작이듯, 수어통역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연극 영상을 편집하는 과정에서도 여러 논의 속에서 수어통역 화면 크기와 배치 위치를 결정했다.

 

이렇게 수어통역을 위해 몇 주 동안 여러 사람이 애썼는데, ‘화질’ 때문에 온라인으로 연극을 관람하는 농인 관객들에게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 한계가 발생한 것이다! 아쉬움이나 허탈함이라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었다. 다양한 소수자의 특성을 존중하며 나아갈 때, 이번처럼 빛에 예민한 건강약자인 배우의 특성과 농인을 위한 수어통역 전달 조건이 ‘충돌’하기도 한다.

 

어떤 한계에 부딪혔는지 기록하고 공개하는 이유

 

연극은 아픈 몸과 살아가는 시민들을 공개 모집해서 각자의 이야기로 만들어진 무대였다. 통상의 연극처럼 대본을 자세히 써서 줄줄 외우고, 연기 연습을 해서 올리는 무대가 아니었다. 다양한 워크샵을 진행하면서 몸을 좀 더 자유롭게 만들고, 각자의 질병 경험 중 일부를 장면화해서 무대 위에서 표현하는 형태였다. 통상 연극에서 배우가 극 중 캐릭터가 되어가는 과정이 연습이고, 그것을 무대 위에서 표현하는 게 공연일 것이다. 반면 우리 연극은 시민 배우의 몸에서 주저함이나 수치심을 덜어내고, 그것이 덜어내진 자리에 자부심과 저항의 몸짓을 채워 무대 위에서 기꺼이 자신의 아픈 몸과 삶을 드러내는 것에 가까웠다. 그 과정에는 시간과 기다림이 필요했다.

 

연극 홍보를 위해 아무리 늦어도 2주 전에는 보도자료를 배포해야 하는데, 그때까지 최종 대본이 나오지 않았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을 준비하려면 이 또한 늦어도 2주 전에는 대본과 무대가 완성되어야 했지만, 최종 대본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장면 구성이 확정 됐을리 없다. 보도자료는 공연에 대한 구체적 내용 없이 공연 일정과 기획의도 만으로 배포됐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은 포기하는 ‘선택’을 했다.

 

연출자와 이야기했던 일정이 한참 넘어가고 있었지만, 재촉하지 않았다. 기획 당시부터 연극 준비과정이 공연을 위한 일방적 준비가 아니라, 참여자들에게 의미 있는 과정이어야 하고 그들의 몸 속도가 존중되는 시간이어야 함을 연출이나 스태프들에게 강조했었다. 공연이라는 결과도 중시했지만, 그렇다고 시민배우들이 건강이나 정서적 호흡에 무리 되는 연습 일정을 진행해서는 안 됐다. 공연을 목표로 진행되는 연극 워크샵이었지만, 시민배우로 참여하는 이들에게는 자신의 몸과 과거의 경험을 다시 살아내는 치유의 시간이었다.

 

▲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의 박수 속에 배우들이 인사를 하고 있다. (6명의 배우가 무대 위에서 두 손을 위로 들고 박수를 치고 있다.)  ©다른몸들

 

공연 준비가 각자의 아픈 몸을 만나고 치유하는 과정이라면, 그 결과로서 공연이 나오는 방식이길 바랐다. 사실 이것은 문장으로서는 멋지고 매끈하지만, 현장에서 그것을 구현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그럼에도 이번 연극에서 실제로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시민들과 플레이백시어터(Playback Theater, 대본 없이 관객의 이야기를 즉흥으로 극화하여 상연하는 연극 )를 기반으로 연극 워크샵을 해온 연출자의 노력이 큰 몫을 했다. 그리고 이런 시간이 너무나 절박했던 혹은 소중했던 시민 배우들이 열정적으로 자신을 열어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다. 다행히 노력과 열정이 만나 결과적으로 훌륭한 공연이 되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은 진행하지 못했고, 대중 보도를 통해 질병권 운동을 좀 더 확장하는 데는 한계가 발생했다.

 

다양한 소수자의 인권을 동시에 보장하며 나아간다는 것은 삶의 많은 문제가 그렇듯 계속되는 선택 위에 놓이는 일이며, 자본과 시간의 한계에 반복적으로 부딪치는 일이다. 자본의 한계는 시간으로 극복되거나, 시간의 한계는 자본으로 극복 가능한 경우가 많은데 소수자들은 둘 다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연극을 준비한 우리도 그랬다. 이 현실에서 한계에 좌절하기보다, 한계를 인정하고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길을 함께 모색하는 것. 그게 우리가 ‘선택’해야 할 태도이며 지향일 것이다.

 

특히, ‘아쉬움이 많았지만 최선을 다했다’거나 ‘어쩔 수 없었다’는 말로 끝나지 않는 게 필요하다. 어떤 한계에 부딪혔는지 설명하고 기록하는 게 중요하고, 그 또한 ‘선택’이었음을 인정하는 게 필요하다. 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한다는 것은 각 소수자의 필요와 특성에 맞춰 제공해야 하는 편의를 병렬적으로 늘려가면 되는 일이 아니다. 소수자 각자의 현실은 다양하게 ‘교차’하고, 서로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은 앞서 말했듯 ‘충돌’하기도 한다. 정해진 방향으로 열심히 달리면 되는 일이 아니라, 파도 위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며 균형을 잡는 행위와 같다.

 

서로의 소수자성을 존중하고 인권을 보장하려는 현실이 때로 충돌할 때, 우선순위를 두고 ‘선택’을 하게 된다. 그 우선순위가 ‘정치성’이며, 그리고 우선순위를 바꾸는 게 정치이고, 우선순위를 바꾸는 것을 넘어 더 많은 우선순위를 실현시키는 것 혹은 우선순위의 의미를 재해석하는 게 사회운동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번 연극에서 건강약자인 배우들의 건강을 우선순위에 두고 선택했다. 그리고 동시에 장애인접근권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으나 한계가 발생했고, 만약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 같다. 즉 지금도 더 나은 대안이 무엇이었을지 고민을 진전시키지 못했다는 뜻이다. 이 고민을 이렇게 기록으로 남기고 공개해서 대중들과 함께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 무대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스태프들의 노력으로 공연이 올려질 수 있다.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라는 제목을 배경으로 무대 위에 빈 의자가 놓여있다.)  ©다른몸들

 

‘노동시간 준수’ ‘NO 무임금노동’ 스태프 노동권

 

연극을 제작하면서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한 또 하나는 스태프들의 노동권이었다. 인권을 말하는 작품의 제작과정에도 인권적 실천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었다. 무대나 스크린 위에서 인권을 말하고 있지만, 정작 그 무대나 스크린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스태프들의 인권은 쉽게 부서지는 것을 무수히 보았다. 연극 기획 단계부터 스태프들의 노동권이 지켜질 수 있도록 몇 가지 규칙을 정했다. 이를테면 노동 계약(제안)할 때 노동시간을 정확히 명시하고, 법정 최저임금을 준수하고, 노동 완료 후 늦어도 일주일 안에 임금을 지급하고, 아무리 가까운 사이더라도 무임금 노동은 없다는 규칙들이다.

 

당연히 지켜야 하는 원칙이지만, 연극계는 말할 것도 없고 사회운동 영역에서도 종종 문제가 발생한다. 너무나 자원이 적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개인의 열정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연극계 저임금과 체불은 최근 몇 년 사이 통계로도 입증되고 있다. 예술 분야의 임금체불 중 42.9%가 연극계이다. 문화예술계 임금체불 중 500만 원 미만이 73.2%로 대부분을 차지했고, 이 가운데 100만 원 미만도 22.1%나 된다.(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영주 의원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예술인복지재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 2018년 10월) 이런 소액 체불은 노동자에게 타격이 적다는 의미라기보다, 문화예술계 저임금 노동환경을 반영한 현실이라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이번 연극에서 조명 등 스태프들을 섭외할 때, 출근해야 하는 일자별로 출퇴근 시간을 명시하고, 임금은 법정 최저임금 혹은 그 이상으로 책정했다. 진행 지원 스태프로 결합한 지인 등은 임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무임금 노동은 없다는 원칙하에 모두 임금을 지급했다. 매우 전문 영역이라고 명칭되는 스태프 인건비의 경우, 적정임금이거나 저임금은 아니라는 자문을 받고 금액을 협의했다. 그리고 공연 종료 이후에는 음향오퍼부터 진행지원까지 전 스태프에 대해 다시 점검했다. 계약시 제시했던 노동 총 시간을 모두 맞췄고, 노동 종료 후 늦어도 3일 안에 임금 지급이 완료되었다.

 

그리고 이번 연극을 기획하며, 처음으로 나의 임금도 책정했다. 건강이 어느 정도 회복된 이후 복귀하면서 지난 몇 년간 사회운동 영역에서 여러 대중 사업, 행사 등을 기획하고 진행했다. 그러나 한 번도 활동비(임금)를 받은 적이 없었다. 한국의 운동 사회는 특이하게도 상근자 중심 문화이기 때문에, 상근을 통해 일정한 활동비를 받지 않는 활동가들의 경우 애매한 위치에 놓이는 경우가 잦다. 나 또한 건강 때문에 상근 형태로 활동하고 있지 않다 보니, 주로 강의, 원고, 지원사업 프로젝트 수행 등이 주 수입이 된다. 그런데 이렇게 다양한 대중 사업이나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다 보면 종종 악순환이 발생한다. 즉, 그렇게 활동하는 시기에는 바빠서 초청 강의나 외부 요청 원고를 쓰지 못하고, 수입이 거의 제로에 가깝게 된다. 아무튼 이번 연극에서는 처음으로 나에게 임금을 책정했고, 스스로 잘했다 싶었다.

 

▲ 연출자가 배우들의 무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출자가 무언가를 설명하는 모습이 보이고 배경에 스태프 한명이 뿌옇게 보인다.)  ©다른몸들

 

돈이 있어서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무척 어려운 일이었고, 지금도 어렵다. 노동시간을 지키기 위해서는 더 계획적으로 일을 해야 하고, 한 번씩 포기해야 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그리고 빚더미에 올라앉게 됐다. 애초 아픈 몸들과 작업하는 것에 대해서 회의적 반응이 많았는데, 지난해부터 이번 연극으로 꾸준히 냈던 다양한 지원사업에 모조리 떨어졌었다. 그러다가 공연을 한 달 앞두고 아름다운재단에서 제작비 일부를 겨우 지원받게 됐다. 연극 제작비가 총 1,600만 원 정도 들었는데. 아름다운재단에서 지원받은 게 500만 원, 여기저기서 후원받은 게 약간, 나머지는 빚이다. 사회운동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소셜펀치>에 올려놓은 목표액 950만 원을 성공해야 빚 없이 이번 연극을 마무리할 수 있다.

 

빚이 점점 쌓여가자 주변에서 걱정이 이어지고, 나도 슬슬 걱정이 시작됐다. 현금으로 교환할 수 있는 물건이 뭐가 있을지 집안 구석구석을 살펴보기도 하고, 청약통장을 담보로 하면 신용등급이 낮아도 대출이 가능하고 심지어 저금리로 은행 대출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해 두기도 했다. 불안함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스태프들의 노동권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연극을 기획 제작한 것에 조금의 후회도 없다.

 

사실 떠올려 보면, 돈이 있다고 정당한 임금을 지급하는 것도 아니다. 강의료나 원고료 같은 것을 봐도, 돈이 없는 단위들에서 오히려 강사료와 원고료를 더 열심히 책정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일다 같은 가난한 매체에서 원고료를 열심히 책정하는 것도 그런 사례다.) 예산 있는 곳들이 더 황당하게 구는 경우도 자주 봤다. 지자체에서 전액 지원을 받는 기관에서 강의가 끝난 이후에 강사료를 깎거나, 이런저런 재단에서 재능기부를 일방적으로 무례하게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노동에 대해 제대로 된 임금을 책정하지 않고 지불하지 않는 것, 그게 바로 착취다.

 

제대로 된 임금을 지급하지 못하면 미안함이라도 표해야 하는데, 너무나 당연시하는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저었던 경우도 많았다. 단순히 임금을 적절히 책정하고 지급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그 당연시하는 태도들, 부끄러움을 모르는 모습이 지긋지긋했다. 성폭력이나 위계폭력이 나쁜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노동권을 지키지 않는 것도 ‘부정의’다. 평등과 해방을 말하면서 성폭력이나 위계폭력 가해자인 것도 이중적 모습이지만, 평등과 해방을 말하면서 타인의 노동권 침해를 당연시하는 것도 이중적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빚을 어쩌려고 하냐는 말에, 걱정과 안심을 동시에 했다. 기획 제작자로서 빚을 어쩌나 싶었지만, 스태프 노동권을 지켜주었다는 것에 안심했다. 스태프들의 인건비를 깎기보다는 홍보를 열심히 해서 더 많은 관객이 연극을 볼 수 있도록 하자는 계획이었다. 그게 스태프들의 인권을 지키는 일이고, 질병권(疾病權) 운동을 확장시키는 일이라고 여겼다.

 

▲ 공연을 위해서는 조명, 음향, 설치, 소품 등 수 많은 스태프들의 노동이 필요하다. (무대 위에 한 배우가 춤을 추고, 배경에 소품을 든 또다른 배우가 보인다.)  ©다른몸들

 

연극의 한 요소인 ‘관객’의 자리

 

다행히 연극을 본 관객들의 뜨거운 홍보 덕분에 입소문을 타고 온오프 누적 관객이 약 800명이 됐다. 의대나 간호대 등 대학을 중심으로 공동체 상영 신청도 들어오고, 인권단체에서 교육용으로 상영하고 싶다는 문의도 들어온다. 아마 10월 31일 온라인 상영이 끝날 때 즈음이면 제작비 빚도 다 갚을 수 있을 것 같다. 공동체 상영 신청은 장기적으로 계속 받을 계획이라, 어쩌면 이후 또다른 프로젝트를 위한 종잣돈이 마련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희망도 조심스럽게 가져본다.

 

하지만 알고 있다. 누구나 이런 시도를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이런 무모해 보이는 시도가 빚잔치로 끝나지 않을 확률은 매우 낮다. 그럼에도 이런 사례가 만들어지면, 다른 이들도 용기를 내 볼 수 있고, 그에 대해 관객들도 조응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앞서 설명했듯 소수자의 안전과 편의제공 같은 현실이 충돌할 때, 상당 부분 자본으로 ‘극복’ 가능하다. 스태프들의 노동권 보장도 마찬가지다. 물론 자본이 있다고 해서 둘 다 자동으로 보장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물적 토대가 어느 정도는 있어야 가능한 실천들이다. 책이든 연극이든 결국 마지막 완성은 독자이며 관객이다. 관람뿐만 아니라 예리한 평가와 비평들이 작품에 대한 관객의 자리를 넓히며 완성시킨다. 관객들이 이런 시도를 멈추지 않는 작품들을 계속 완성시켜 주길 바란다.

 

질병권 운동의 일환으로 기획 제작한 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에 ‘관람’으로 화답함으로써, 아파도 미안하지 않은 세상을 향한 무모한 프로젝트를 ‘완성’시켜 준 관객들에게 깊은 고마움과 연대의 마음을 전한다. 아파도 미안하지 않은 세상을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 만들어 가고 있음을 뜨겁게 느끼고 있다.

 

※ ‘아픈 몸들의 목소리’로 만든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기획자와 배우들의 기록 연재를 마칩니다. 건강과 질병, 몸과 소수자의 권리에 대해 새로운 화두를 던져준 필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온라인 토크 with 조한진희”

○ 일시: 9월 24일(목) 저녁 7시 (문자 및 수어통역 제공)

○ 신청: https://url.kr/pGVPR7

 

- 연극 온라인 관람 예매 https://socialfunch.org/dontbeso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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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맥아 2020/09/28 [21:06] 수정 | 삭제
  • 수어통역사 분들의 노동에 관한 얘기가 나오니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노동권도 접근성도 건강권도 고민하고 논의하는 과정 자체가 소중하게 느껴지네요, 인권에 대해 단지 병렬적인 생각만 해선 안 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는 글이었어요.
  • pandora 2020/09/22 [19:58] 수정 | 삭제
  • 그래서 온라인 화면이 어둡게 보였던 거군요. 무대 뒤에서 공연을 함께 만드는 분들을 생각해보게 되어서 좋네요..
  • 멋진 2020/09/21 [14:03] 수정 | 삭제
  • 아, 뒷얘기가 많았군요. 재정적으로 가장 문제겠지만 가능한만큼이라도 논의하면서 앞으로 공연계의 표준이 됐음 좋겠다는 희망을 가져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