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입장하기 전까지 표현의 자유는 없다”

유니브페미 ‘캠퍼스 혐오표현 새로고침 F5’ 프로젝트

노서영 | 기사입력 2020/10/04 [16:56]

“모두가 입장하기 전까지 표현의 자유는 없다”

유니브페미 ‘캠퍼스 혐오표현 새로고침 F5’ 프로젝트

노서영 | 입력 : 2020/10/04 [16:56]

대학 페미니스트 공동체 유니브페미는 지난 4월 7일,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 측에 ‘여성혐오성 게시물에 대한 윤리 규정을 마련하라’고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한 이후, 본격적으로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 내 혐오표현 대응을 위한 F5(새로고침)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 4월 7일, 에브리타임의 사업장 주소인 홍대입구역 2번 출구 케이스퀘어 앞에서 에브리타임에게 N번방 2차가해·여성혐오성 게시물에 대한 윤리규정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유니브페미

 

혐오할 자유가 아닌 토론할 자유, 기계적 평등이 아닌 실질적인 평등이 보장되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기꺼이 상상하고 ‘새로고침’하기 위해 24명이 모였다. 10월 5일, 4개월 동안 기획지원팀, 모니터링팀, 미디어팀, 법률팀으로 구성된 프로젝트 각 팀원들이 ‘X’ 버튼 대신 ‘F5’를 선택하기 위해 매주 연구하고 활동한 기록이자 결과물인 책 『캠퍼스 혐오표현 새로고침 가이드』 발간을 앞두고 있다.

 

대학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 ‘음란물’ 논란에서 빠진 것

 

1999년 서울대 ‘스누라이프’, 성균관대 ‘성대사랑’ 등 각 대학의 총학생회나 몇몇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학교를 대표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들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이들 중에는 아직도 높은 이용률을 자랑하는 경우도 있지만, 2010년대 모바일 시대가 열리면서 어플리케이션 형태의 온라인 커뮤니티가 보편화되었다.

 

시간표 어플리케이션으로 2010년에 출시된 에브리타임은 익명 커뮤니티, 강의평/시험정보 공유, 학점계산기, 책 중고거래까지 서비스 범위를 넓히며 전국 398개 캠퍼스 452만 명의 이용자를 보유한 대형 커뮤니티로 성장했다. 에브리타임은 2018년 앱스토어에서 무료 전체 부문 1위를 기록하고, 앱 사용 빈도에서도 1위에 오를 만큼(“20대가 가장 자주 쓰는 앱은 '에브리타임'?” <한국경제> 2018년 3월 16일자 참조) 대학 생활에 있어 ‘필수 앱’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온라인 공간의 특성과 익명성, 삭제 시스템의 문제 등으로 인해 그동안 여러 논란의 중심에 섰다.

 

에브리타임이 언론에 등장하기 시작한 건 2014년부터다. 초기에는 수강 신청에 유용한 서비스로 소개되다 2015년부터는 줄곧 ‘인기’라는 수식어와 함께 ‘○○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스북 페이지(대학교 대나무숲이란, 각 대학 재학생 혹은 졸업생이 직접 만드는 것으로 페이스북에 각 대학의 재학생, 졸업생 혹은 타 대학생들이 익명으로 글을 올리는 공간이다. 대체로 인간관계, 연애, 진로, 토론, 연예 관련 글이 게시된다)와 나란히 학내 여론의 장으로 인용되었다. 이때부터 학교 비리, 교수의 막말이나 군사주의적 학과 문화, 여성혐오적 연구기획 등이 논의되며 학내 고발의 장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 9월 15일 페이스북 라이브로 진행된 기획포럼 “온라인, 백래시, 혐오표현” 첫 번째 발제 ‘대학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와 백래시’ 중 한 슬라이드. 에브리타임에 대한 소개가 적혀 있다.  ©노서영

 

2016년, 게시판 기능 활성화로 어플리케이션 시장의 강자로 주목받게 되면서부터는 여남공학 대학의 커뮤니티 내에서 성관계할 상대를 구하는 ‘프리19’ 게시판 문제가 기사화되었다. 커뮤니티를 경유한 만남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원나잇스탠드를 한 상대 여성의 실명과 사진을 공개하는 등 국내 최대 불법촬영물 공유사이트였던 ‘소라넷’과 거의 유사한 행태가 벌어졌다는 게 문제였다.

 

<대학생 김정민(가명·24)씨는 “한 모임방을 통해 만난 이성들은 대부분 ‘야톡’이라는 걸 한다”며 “야톡 끝에 한번 만남을 가지고 ‘이건 아니다’ 싶어 연락을 끊으려고 했더니 카카오톡에 ‘야톡’한 내용을 신고하겠다고 협박했다”고 말했다. ‘야톡’은 성적인 묘사와 나체 사진 등 이미지를 주고받는 채팅을 말한다.> (“‘은밀한’ 시간표 어플 ‘에브리타임’”, 서울경제, 2016년 7월 6일자)

 

에브리타임이 ‘불건전한 만남’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비난받게 되자, 개발진은 커뮤니티 정보공유 기능을 분리해 새 어플 ‘캠퍼스픽’을 출시했다. 그러나 ‘프리19’ 게시판만 없어졌을 뿐 ‘모두의 연애’ 게시판이 그 기능을 이어받았고, 에브리타임에서도 ‘성인게시판’, ‘만남의 광장’, ‘구인게시판’ 등 학교마다 다른 이름으로 비슷한 양상이 되풀이되었다.

 

2019년 6월에는 ‘심야 시간대 나체 인증사진’이라는 키워드로 한 공학 대학의 에브리타임 게시물들이 뉴스에 방영되며 경찰이 내사에 착수하겠다고 발표하는 바람에 커뮤니티 전체가 발칵 뒤집힌 일도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음란물’이라는 표현에 담긴 성 보수주의적 함의 안에서 그에 대한 법적 처벌이 논란이 되었을 뿐, 어떤 차별적 구조하에 누군가의 성적 자유는 보장받아 마땅한 것이 되고 누군가의 성적 자유는 착취의 대상으로 쉽게 전락하고 마는지는 논의되지 않았다.

 

그 결과, 우리는 2015년부터 2020년까지 끊이질 않고 있는 ‘대학 단톡방 성희롱’과, 불법촬영 또는 그루밍(grooming)과 유포 협박을 통한 디지털 성폭력을 대표하는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마주하고 있다. 3개월 전, 변호사를 중개해주는 법률서비스 ‘로톡’ 사이트의 성범죄 분야 상담사례로 올라온 다음의 문의에서, 이것이 대학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넘어서는 문제임을 확신하게 된다.

 

<‘대학 익명 커뮤니티 어플 '에브리타임'에 약 일주일간 여러 차례에 걸쳐 도용 음란 사진(성기 포함)을 올렸습니다. 에브리타임은 익명 커뮤니티 어플이지만 가입할 때 대학 합격증과 본인인증을 하여 해당 대학 재학생만이 이용할 수 있고, 운영진에서 그 정보를 보관합니다. 제가 올린 게시판은 '성인게시판'으로, 다른 게시판에서 말하기 쑥스러운 성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게시판입니다. 당시 분위기는 여러 명의 사람들이 자신의 몸 사진 혹은 도용된 음란 사진을 올리며 사람들의 반응을 즐기고, 수십 명의 사람들이 거기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저는 남성이지만 매번 여성을 사칭하여 사진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올릴 때마다 10초씩만 올려두고 바로 글을 지웠습니다. 그런데 오늘 캡쳐를 통해 며칠간 자료를 수집했고, 이것을 신고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저를 특정한 통보가 아니라 불특정다수에 대한 통보였습니다. 만약 신고가 접수된다면…> (<로톡> 성범죄 분야 상담사례 중에서)

 

조명받지 못했던, 혐오표현의 해악

 

여남공학 대학의 에브리타임에서 문제가 되는 건 ‘성인게시판’만이 아니다. 가장 널리 이용되는 ‘자유게시판’에도 같은 학교의 여학생, 타 대학 여학생, 여성 청소년, 여성 연예인, 여성 가족구성원, 길에서 만난 여성 등을 성적 대상화하며 성희롱하는 글이 많았다. 어쩌면 커뮤니티 전반에 깔린 남성중심적 문화가 이처럼 평등하지 못한 ‘구인게시판’을 만들어냈다고 말하는 편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대나무숲이나 에브리타임의 주류 문화 역시 사회의 다른 영역과 마찬가지로 남성중심적이라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난 것은, 2016년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을 계기로 여러 대학에 여성주의 학회와 모임이 연달아 생기고 활동을 펼쳐가면서부터였다. 학과에서 승인받은 여성주의 기초강연 행사 포스터를 에브리타임 홍보게시판에 절차를 지켜 올리자마자, 신고 누적으로 게시물이 자동으로 삭제되고 포스터를 게시한 계정은 3개월간 이용정지 처분을 받기 일쑤였다.

 

학내 페미니스트들은 직접 에브리타임에 자신의 생각을 밝히기도 하고, 성차별적 게시글에 댓글을 달아 설전을 벌이기도 했지만, 결과는 비슷했다. 오프라인에서는 한편의 사람들이 활발하게 성평등을 위한 모임을 조직하는 동안, 온라인에서는 또 한편의 사람들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공론장의 문을 봉쇄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 에브리타임에서의 여성혐오적 게시물과 댓글을 폭로하는 대자보 10장이 모두 무단철거 및 훼손된 현장 사진. 2018년 성균관대 총여학생회 재건 모임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 가나>는 “에브리타임의 혐오 발언보다 고발 자보가 창피하다는 당신에게”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새로 작성하고, 형사 고발했다. (출처: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 가나' 페이스북 페이지)

 

페미니스트들은 대안적 공간으로 뛰쳐나왔다. 2018년 ‘연세대 남자들의 사상과 가치관(연남사)’이라는 이름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필두로, 수많은 대학에서 연남사를 패러디한 페이지가 개설되었다. 페미니스트들은 에브리타임에서 통용되는 성차별적 발화들을 에브리타임 밖으로 끄집어내 전시하면서 대항했다. 매번 개선을 약속해놓고도 ‘신고 누적으로 인한 자동 삭제시스템’을 고수해온 에브리타임에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만, 자동 삭제시스템이 없는 더 넓은 대안적 공간의 존재만으로 충분히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2018년 상반기, 누적된 단톡방 성희롱 사건들과 전국적인 미투 운동, 그리고 홍대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으로 시작된 ‘혜화역 시위’로 한국 사회가 페미니즘 대중화 국면을 맞았을 때, 공학 대학의 에브리타임도 말 그대로 ‘폭주’했다. 이제 삭제되는 건 커뮤니티에 올린 페미니스트들의 게시물만이 아니라, 중앙대자보판에 고정시킨 대자보였다. 대자보를 찢는 이들의 주장이나 근거는 포털 기사 악성댓글과 유사했지만, 차이점은 에브리타임의 모든 이용자가 학교라는 동일한 생활공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대자보 다음으로 찢기는 것이 우리가 되지는 않을까’, 학내 여성주의 활동은 위축되고 있었다.

 

그해 여름부터 이듬해까지 총여학생회가 ‘(남성)역차별의 온상’으로 지목되며 직격탄을 맞았다. 무너지지 않고 맞서는 대학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이 있었지만, 총여학생회 또는 페미니즘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표명하는 것은 개개인에게 너무 큰 용기를 필요로 했다. 연대 서명에 동참한 학생들의 이름이 대자보판에 수록되는 것이 아니라, 에브리타임으로 옮겨져 평가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총여를 지키려는 활동가와 연대자에 대한 신상정보 캐기와 억측, 근거 없는 비방, 폭력 예고가 이어지는 동안 누군가는 출석이 불리는 강의실에서 두려움에 떨었고 누군가는 공개 지지를 철회해야 했지만 학교도, 학생회도 신경 쓰지 않았다.

 

총학생회를 비롯한 학생대표자들에게 학내 페미니스트들은 눈앞에서 말하는 실체가 아니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모욕적으로 묘사되는 ‘그분들’ 세 글자였다. 오프라인에서는 아무도 나서지 않았지만 ‘역차별’만이 차별로 이해되고, 페미니즘에 대한 반동이 곧 운동으로 인정되었다. 학생 총투표로 총여학생회 폐지가 결정되자 “총여 함락 기념으로 국산 야동 봐야지”, “지금 총여 잔존 세력 경영관 앞에 있는데 진압봉으로 때리고 구둣발로 짓이겨야 함”, “차례대로 하나씩 몰아내자” 하며 남아있는 학내 여성주의 모임 리스트를 나열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수많은 총여학생회 활동가들이 총여 폐지의 주역으로 에브리타임과 그곳의 여론만을 학생회원의 의견으로 받아들이는 학생대표자들로 꼽을 만큼 백래시(backlash, 사회의 진보적 변화에 대한 기득권층의 반동)가 심화되고 총여학생회가 폐지되던 그때, 혐오표현의 수위는 절정에 달했고 에브리타임에는 폐지 찬성론자만이 입장권을 획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올해 1월, 육군이 성전환 수술을 마친 변희수 하사에게 심신장애 ‘전역’ 판정을 내렸다. 이후 변 하사의 싸움을 보며 용기를 얻은 트랜스젠더 여성 A씨의 숙명여자대학교 합격 소식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다. 곧바로 트랜스젠더 여성의 여대 입학을 두고 온·오프라인에서 격렬한 반대가 일었다. 공학 대학에 비해 여성혐오로부터 자유로운 듯했던 여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여성의 안전이라는 명목으로 트랜스젠더에 대한 편견과 혐오표현이 쏟아졌다.

 

‘여성의 안전은 트랜스젠더의 안전과 유리되지 않는다’며 트랜스젠더 여성의 여대 입학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A씨는 결국 입학을 취소해야 했다. A씨를 지지하는 여대 내 학생회나 인권 동아리들 중에는 공학대학의 여성주의 모임들처럼 에브리타임에서 사이버불링(Cyber Bullying, 온라인에서의 비방과 괴롭힘)을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다 얘네한테 학교 뺏긴다, 그 전에 쫓아내야 한다”라는 선동은 어디서든 통했다.

 

여대에서 트랜스젠더는 공학에서 페미니스트만큼이나 불온하고 위협적인 존재였고, 명백하게 소수자였으며, 그렇기에 노출되는 혐오표현에 취약했다. 각자의 학교에서 딱 한 걸음 더 내디뎠던 사람들은 바로 그랬다는 이유만으로 공론장에서 목소리 낼 수 없게 되었고, 백래시는 혐오표현과 차별을 경유해서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총여학생회와 트랜스젠더의 존재가 수십 번 찬반 토론에 부쳐지는 동안 ‘혐오표현의 해악’은 그만큼 조명받지 못했다.

 

구성원이 아니라, 차별을 차단하라

 

같은 학교의 구성원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폐쇄적인 온라인 익명 공간은 내부적으로는 보수화되기 쉽고, 외부적으로는 일반화되기 좋다. 그러나 학내 최대 익명 커뮤니티의 일정한 역할과 순기능 또한 수행되어온 상황에서, 이를 폐쇄성과 익명성의 문제로만 본다거나 ‘커뮤니티 폐쇄’ 혹은 ‘신규 커뮤니티 개설’만이 대안이라고 할 수는 없다. 더 큰 문제는 이제 강의마저 온라인으로 이루어지는 캠퍼스에서 지금까지와 같이 온라인 상의 혐오표현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면, 학내 소수자 구성원들의 정당한 권리가 계속해서 침해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법학자 제러미 월드론에 따르면, 혐오표현 규제는 모욕, 불쾌감, 상처를 주는 말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포용의 공공선과 정의의 기초에 관한 상호 확신의 공공선을 지킨다.(홍성수, 『말이 칼이 될 때』 참조) 공론장이 무너진 학생사회에 유일하고도 조악하게 조성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학내 소수자들이 실질적으로 배제되고 있는 지금, 학교와 학생회는 차별과 혐오로부터 모든 구성원의 권리를 보장해야 할 책임이 있다.

 

▲ 7월 21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앞에서 '온라인 혐오표현에 대한 제대로 된 심의 기준을 마련하고, 에브리타임과의 차별금지협약을 체결하라'고 요구하는 기자회견. 제목은 “우리를 삭제하는 대학 내 500가지 혐오표현을 고발합니다”였다.  ©유니브페미

 

혐오표현 규제의 필요성을 주장할 때면 언제나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반론이 돌아온다. 우리는 묻고 싶었다. 표현의 자유를 외치는 그 자리에 입장할 수 없는 사람들의 표현의 자유는 어디로 갔는지를. 지금 그 공론장은 공론장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토론이 가능한 조건에 있는지를.

 

2011년 인권활동가, 법률가, 학자들이 함께했던 ‘표현의 자유를 위한 연대’가 국가보안법과 보수정권의 시위·언론 탄압에 맞서 발간했던 「표현의 자유를 위한 정책 제안」에서도 ‘차별에 근거한 혐오적 표현 규제’가 언급되었으며, 2019년 UN은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을 위협하는 혐오표현은 표현의 자유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미국 시카고 대학은 ‘차별금지선언(Non-discrimination Statement)’를 마련했고, 영국 옥스퍼드 대학은 ‘평등 정책(Equality Policy)’를 채택하고 있다. 위 대학들의 경우 공통적으로 접근성과 비밀 보장이 확보된 신고 절차를 갖추고, 사건의 예방을 위한 교육이나 피해자의 회복을 위한 치유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마련해두고 있다. 이는 혐오표현 규제 방안이 징계나 처벌만은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그리고 혐오표현이 무분별하게 받아들여지고 재생산되지 않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대학 차원의 결단과 공적 선언이 필수적임을 의미한다. 또한, ‘표현의 자유’ 개념의 역사를 공유하면서 무분별한 혐오와 구분하거나, 개념 자체를 새롭게 재정립하려는 학교 공동체 차원의 시도가 선행되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대학이 ‘인권센터’를 설립 또는 개편하면 그 이름에 교육부가 가산점을 주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인권센터가 물리적 폭력뿐 아니라 차별과 혐오표현에 대해서도 대응과 예방을 할 수 있도록 사립대학을 포함한 모든 대학에 혐오표현의 개념과 대응 및 예방에 대한 의무를 규범화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다. 이때 쟁점은 모든 학내 구성원을 규범 안에 포괄할 수 있는 적용 범위 설정과, 혐오표현에 대한 사후적 대응뿐 아니라 예방의 의무를 명시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는 각 대학에서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가 말하기 시작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을 다시 열기 위한 출발점이자, 공동체에서 더 이상 ‘구성원’이 아니라 ‘차별’을 차단하기 위한 시도로서 논의되어야 한다.

 

또한, 사립대학뿐 아니라 에브리타임과 같은 기업에도 온라인 혐오표현 문제에 대한 책임을 부과해야 한다. 유튜브나 페이스북, 트위터와 비교해도 한국의 포털이나 에브리타임과 같은 커뮤니티는 규모가 커져 플랫폼을 통한 수익을 독점하면서도 괴롭힘이나 혐오표현에 대한 규정이 미비한 상황이다. 국가는 차별금지법과 더불어 플랫폼의 자율규제를 실질적으로 촉진할 수 있는 공동규제 법안을 제정해야 한다. 방송통신위원회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통해 국내 망을 이용하는 서버나 채널에서 발생하는 혐오표현에 대한 제대로 된 심의기준을 마련해 삭제 지원뿐 아니라, 다양화된 대응 및 예방책을 강구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불평등과 모욕을 넘어 더 많은 표현의 자유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이들이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온라인 캠퍼스를!

 

유니브페미는 10월 5일 서울혁신파크 공유동 다목적홀에서 “코로나 시대, 온라인 캠퍼스를 다시 쓴다”라는 제목의 F5 프로젝트 책자 발간회 행사를 연다.

 

▲ 유니브페미 F5 프로젝트 책자 『캠퍼스 혐오표현 새로고침 가이드』 발간행사 포스터. 2020년 서울시 성평등기금 공모사업으로, 10월 5일 저녁 7시부터 서울혁신파크 공유동 다목적홀에서 열릴 예정이다. 유니브페미 홈페이지(https://univfemi.campaignus.me)와 SNS(@univfemi)에서 참가 신청할 수 있다. 

 

『캠퍼스 혐오표현 새로고침 가이드』에는 유니브페미 모니터링팀이 2월부터 9월까지 약 25개 대학에서 에브리타임 내 혐오표현을 모니터링한 결과를 분석한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 혐오표현 모니터링 결과 보고서」와, 최근 몇 년 사이 온라인 커뮤니티, 단체대화방에서 범람하는 혐오표현으로 수많은 갈등이 유발되며 진통을 겪어온 대학에서 실질적으로 혐오표현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기획지원팀의 「대학 혐오표현 예방·대응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담겨 있다.

 

또 법률팀이 수차례의 세미나와 법률 자문을 통해 작성한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의 혐오표현에 대한 입법적 대응방안」은 혐오표현을 사용한 개인에 대한 형사처벌을 지양하고 플랫폼 소유주의 책임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 대학이 주어진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어떤 법적 조치가 필요한지를 모색한 결과다. 마지막으로는 기획지원팀과 법률팀이 작성하고 미디어팀이 6월과 7월에 제작한 「에브리타임 커뮤니티 새로고침 가이드라인」과 「에브리타임 내 명예훼손/모욕성 게시물 법적대응 매뉴얼」이 실렸다.

 

새로고침 가이드라인은 자동삭제시스템에 대한 보완 및 윤리규정 마련 요구에 묵묵부답인 에브리타임을 대신해 직접 써본 커뮤니티 이용규칙이다. 또 매뉴얼은 그런 에브리타임에서 혐오표현과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사이버불링 등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던 개인 및 단체가 활용할 수 있는 법적 대응에 대한 내용이다.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더라도, 이용자의 관점으로 만든 이용규칙이 환대의 커뮤니티를 구상하는 플랫폼 소유주와 이용자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법적대응 매뉴얼도 복잡한 절차와 진행 비용 걱정에 좌절했던 사람들에게 가닿을 수 있다면 좋겠다.

 

덧붙여, 혐오표현과 표현의 자유 논쟁이 대학만의 사안은 아니다. 창작물, 게시물이 있는 곳이라면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 없이 어디서든 논쟁은 시작될 수 있고 이미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2020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휩쓸고 두 번째 비대면 학기를 맞이하는 우리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모두가 입장하기 전까지 표현의 자유는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대학과 사회가 차별과 혐오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천명하기를, 그리하여 이 사회에 숨 쉬며 접속해있는 모든 이들이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코로나 시대 온라인 캠퍼스를 다시 쓴다. (노서영/유니브페미 F5 프로젝트 사업위원장)

 

*이 글은 유니브페미에서 9월 15일 개최한 기획포럼 <온라인, 혐오표현, 백래시>에서 글쓴이가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와 백래시」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내용을 수정, 보완한 것이며, 유니브페미 F5 프로젝트 책자 『캠퍼스 혐오표현 새로고침 가이드』의 「들어가며」 편에도 실립니다. 책자 신청 및 발간회 참가 신청 링크 http://bit.ly/f5guidebook

이 기사 좋아요
  • 도배방지 이미지

  • ㅇㅇ 2021/03/04 [20:30] 수정 | 삭제
  • 사상이 현실에 어긋나면 사상을 다시 숙고하고 전제를 고칠 생각을 해야하는데 현실이 사상에 맞지 않으니까 현실을 사상에 맞추겠다고 다른 사람들한테 내 사상만이 정의라고 강요하는 꼬라지... 표현의 자유는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하는데 국회의원도 정당도 아니고 사회초년생도 되지 못한 대가리에 피도안마른 애새끼들이 니 자유가 있니 없니를 논하는 꼬라지라니.... ㅋ 웃기다 정말. 한 몇십년 더 지나서 세대가 바뀌고 나서 이 기사에 나와있는 사람을 애써 현실부정할거 생각하니 애잔하다 애잔해.
  • ntlals 2020/12/23 [23:30] 수정 | 삭제
  • 우리 생활 속에서 이런 일들이 구석구석 일어나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고, 알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우리 사회를 더 아름답고 정의롭게 만들기 위한 운동들 및 정보들을 알게 되서 좋았습니다!! 앞으로도 이 움직임들을 응원하겠습니다!
  • 독자 2020/10/09 [15:41] 수정 | 삭제
  • 저도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던 사람인데 이 글 읽고보니 설득이 되네요. 오히려 혐오가득한 커뮤니티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막고 있다는 것에 공감합니다.
  • k h l 2020/10/07 [04:05] 수정 | 삭제
  • 한국의 대학에서 페미니스트들이 고립감을 많이 느끼고 사상검열과 신상털기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 새삼 끔찍하다.
  • 리폼 2020/10/04 [23:19] 수정 | 삭제
  • 에브리타임 문제를 잘 설명해주셔서 이제야 이해가 되었습니다. 유니브페미 지지합니다. 응원합니다!
  • OO 2020/10/04 [22:29] 수정 | 삭제
  • F5 가이드 저도 받아보고 싶네요. 대학에서 총여학생회라는 중요한 기구가 폐지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분노했습니다. 이 글을 읽고 나니 n번방이 우연히 만들어진 게 아니고 수많은 가해자들이 성착취를 습관처럼 즐기고 있는 헬조선에서 대학이라고 예외는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백래시는 한발이라도 평등을 향해 더 나아가려는 사람들을 늪처럼 과거로 잡아끌겠지만.. 페미니스트들의 정의가 끝내 변화를 가져올 거라고 믿고 연대하고 싶어요.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