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 성차별 고용 사태, 재발방지책은 있는가?

‘고용 성차별 시정 정책도, 전문 기구도 부재’한 현실 지적돼

박주연 | 기사입력 2020/10/07 [18:26]

아나운서 성차별 고용 사태, 재발방지책은 있는가?

‘고용 성차별 시정 정책도, 전문 기구도 부재’한 현실 지적돼

박주연 | 입력 : 2020/10/07 [18:26]

대전MBC에서 근무하던 두 명의 여성 아나운서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채용 성차별’을 진정한 건 작년 6월 18일이다. 이들은 “대전MBC가 정규직 아나운서로 남성을, 프리랜서 아나운서로 여성을 채용하여, 여성 아나운서들이 남성 정규직 아나운서와 본질적으로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임에도 임금, 연차휴가, 복리후생 등에서 불리하게 대우 받는 것은 성별을 이유로 한 차별행위”라며 시정을 요구했다.

 

이후 두 아나운서는 라디오 프로그램 하나를 남겨두고 대전MBC의 각종 프로그램에서 하차 통보를 받았다. 하차 이유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도 없었다. 사실상 부당 업무 배제였다.

 

여러 시민단체들이 대전MBC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고, 국가인권위원회의 제대로 된 판단을 요청하는 서명도 진행했다. 진정을 낸 유지은 아나운서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참고인 진술을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대전MBC의 대응은 더뎠다. 결국 ‘대전MBC 아나운서 채용성차별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발족되었다. 그리고 올해 6월, 국가인권위원회는 ‘대전MBC 채용성차별 대책 마련, 진정인 정규직 전환 대책 마련, 위로금 지급, 본사 차원 재발방지대책 마련’의 내용을 담은 권고안을 발표했다.

 

▲ 6월 18일, 서울 MBC 본사 앞에서 열린 ‘대전MBC 아나운서 채용성차별 인권위 권고 이행촉구 기자회견’ ©한국여성노동자회

 

9월 16일, 대전MBC는 ‘국가인권위의 성차별 인정 결정에 동의하지 않으나, 정규직 전환 수용, 위로급 지급 불수용’이라는 답변을 내놨다. 인권위 권고안이 일부 수용된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여전히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와 같은 채용 성차별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 건, 우리 사회에 “고용 성차별 시정 정책이 부재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9월 28일 정의당 강은미 의원실과 정의당 여성본부, 그리고 ‘대전MBC아나운서 채용성차별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주최한 <대전MBC 아나운서 채용 성차별에 대한 국가인권위 권고와 의미> 토론회에서 주요하게 논의된 내용을 짚어본다.

 

대전MBC 아나운서 채용은 ‘직접차별, 간접차별 모두 해당’

 

대전MBC는 여성을 계약직/프리랜서로, 남성을 정규직으로 고용한 게 ‘성차별’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지적에 동의하지 않았다. “제도적 문제에서 비롯되거나 의도된 것이 아님”을 밝힌다며 “앞으로 이와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유념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국가인권위는 대전MBC가 모집 단계에서부터 성별에 따라 고용 형태를 달리한 ‘차별의사가 있었다’고 보았다. 이소라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 연구위원장이 인권위의 판단에 대해 네 가지 근거를 설명했다.

 

첫째 “1997년부터 여성 아나운서가 필요한 시기마다 정규직으로 채용하지 않고, 고용형태를 변경하여 계약직으로 채용”했으며, “이러한 경향은 2000년 이후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심지어 2006년 여성 정규직 아나운서 승진과 여성 계약직 아나운서 1 인의 감소로 여성 아나운서가 필요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시기에도 정규직 모집을 하지 않았다.”

 

둘째 “반면, 남성 아나운서가 필요한 시기에는 정규직 아나운서를 모집, 공고하여 남성을 채용"했다.

 

셋째 “2014년부터는 계약직 아나운서 모집을 중단하고 프리랜서 아나운서로 고용형태를 전환했는데, 프리랜서 아나운서는 모두 여성을 채용했다.”

 

넷째 “2018년에 남성 아나운서의 다른 부서 발령으로 공석이 발생하자, 정규직 아나운서 모집공고를 통해 정규직 아나운서로 남성을 채용”했다.

 

▲ 대전 MBC 고용형태별 남녀 아나운서 채용 현황. 이소라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 연구위원장의 ‘대전 MBC 아나운서 채용성차별 사건의 법적 쟁점과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의 의미’ 발제 자료 중.

 

그러니까 대전MBC는 기존 아나운서 보직에 여성이 필요한 경우에는 계약직 또는 프리랜서로, 남성이 필요한 경우에는 정규직으로 고용형태를 달리하여 모집·공고하였다. 이에 따라 계약직, 프리랜서 자리에는 여성이, 정규직 자리에는 남성이 채용되었다.

 

이소라 연구위원장은 “그렇기 때문에 인권위는 설사 대전MBC의 주장대로 차별 의사가 없었다 하더라도, 199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 신규 채용된 정규직 아나운서 4명이 모두 남성이고, 계약직 15명과 프리랜서 아나운서 5명 등 비정규직에는 예외 없이 여성이 채용된 것은 오랜 기간 지속된 성차별적 채용 관행의 결과라고 지적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인권위는 정규직과 프리랜서 아나운서라는 고용형태 자체만으로는 유·불리를 판단하기 어렵다면서, 진정인들이 처한 방송환경과 근로여건, 급여 및 복리후생에서의 실질적인 처우 등에 대한 종합적인 비교도 실시”했다.

 

그 결과 “정규직 아나운서와 다른 임금 체계를 적용 받은 결과, 1 년차 정규직 아나운서가 받은 연봉보다 5년차, 2년차 경력을 가진 진정인들의 수입이 더 적었고, 진정인들은 몇 년을 일하건 동일한 출연료를 지급 받는데 비해 정규직은 근속연수가 반영되어 기본급과 상여금이 상승하므로 그 격차는 더 커질 수밖에 없었으며, 승진에 따른 임금 인상도 기대할 수 없었다는 점, 기타 정규직에게 제공되는 복리후생 혜택도 얻을 수 없었다는 점이 드러났다.”

 

이 연구위원장은 “인권위의 조사와 판단은, 이 사건이 차별 행위에 해당함을 분명히 한 것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대전MBC는 성별에 따라 고용 형태를 달리할 의도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채용 시 성별 균형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가인권위는 성별을 직접적인 이유로 하지 않고 외관상 중립적으로 보이는 모집 행위였다 하더라도 상당 기간 고용형태별로 성별 간 현격한 격차가 발생한 것에 대해 정당한 사유를 제시하지 못하는 한 차별에 해당된다고 하여 ‘간접차별’의 법리를 적용, 차별 행위에 해당함을 분명히 하였다.”

 

뿐만 아니라 “인권위원회는 여성 또는 남성 아나운서를 일정한 숫자로 유지하면서 어떤 성별의 아나운서 수요가 발생했는지에 따라 정규직 또는 프리랜서 고용 형태가 결정되었던 것에 대해 ‘모집 단계에서부터 차별 의사가 있었던 것’으로 보았고, 고로 이 사건의 채용 행위가 ‘직접차별’에도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고용 성차별’ 소송 건수는 왜 이렇게 적을까?

 

애초에 방송국에서 이런 채용 성차별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던걸까? 대전MBC는 어떻게 여전히 이 사건을 채용 성차별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있는걸까? 고용 성차별을 금지하는 남녀고용평등법(1988년부터 시행되었으며 1999년부터는 ‘간접차별’도 포함)도 있는데 말이다. 

 

구미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행법이 채용 성차별을 방지하지 못한 이유로 1)고용 성차별 시정 정책의 부재 2)고용 성차별 관련 전문기구의 부재 3)채용 차별에 대한 기업의 낮은 인식 4)방송업계(및 기업)의 뿌리 깊은 성차별 문화와 관행 5)노동조합의 역할과 관심 부족을 꼽았다. 고용 차별을 시정하는 정책과 전문기구가 미비하고, 만연한 성차별 문화로 인해 기업의 인식 또한 낮으며, 노조의 관심도 크지 않다는 복합적인 이유가 작동하고 있다는 거다.

 

제도적 문제에 대해서 구미영 연구위원은 “미투 운동 이후, 여성노동단체에서 ‘여성의 직장 내 취약한 지위가 성희롱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하고 있음에도, 고용노동부의 여성노동 정책에서 고용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정책으로 작동하는 건 AA제도(사회적 소수자에게 고용기회를 제공하는 ‘적극적 개선조치’를 의미)밖에 없다”고 말했다.

 

제도가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성차별 고용에 관한 소송도 매우 적을 수밖에 없다. 1988년 남녀고용평등법 시행 이후부터 2012년까지 확인한 성차별 소송은 32건에 불과하다. 그 후로 추가된 판결도 10건 미만이다.

 

또 2010년부터 2017년까지 고용노동청에 접수된 성차별 사건 접수 건수는 매년 18~46건밖에 되지 않는다. 그나마 “2018년 이후에는 미투 운동의 영향으로 고용노동부 익명신고센터에 접수된 건수가 년 100여건을 넘도록 증가하였으나,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미국의 경우, 강력한 권한을 가진 고용기회균등위원회(EEOC)에 접수되는 진정 건수가 연평균 약 2만5천건 내외이고, EEOC에서 노동자를 대리하여 고용차별 소송을 제기한 경우도 연평균 약 100건 정도에 달한다. 영국의 잉글랜드, 웨일즈, 스코틀랜드에서 1년간 고용심판소에 제기된 성차별 사건은 2018년 1천369건, 2019 년 2천279건이다. “인구 및 경제 규모의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한국의 고용상 성차별 관련 신고나 소송 건수가 현저히 적은 상태”다.

 

구미영 연구위원은 국내에서 고용 성차별 시정제도가 작동하지 않는 원인으로 “간접적인, 구조적인 고용차별의 판단기준이 없거나,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꼽았다.

 

“대전MBC가 남성 아나운서의 결원 시에는 정규직 채용을 하고, 여성 아나운서의 결원은 계약직이나 프리랜서 채용을 통해 충원한 것처럼, 고용 성차별의 양태는 명시적인 차별보다는 통계적 격차와 같은 간접증거나 정황증거를 바탕으로 판단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는데, 그에 대한 대응방안이 없다는 것이다.

 

구 연구위원은 “차별시정 제도의 실질적 작동을 위해서는 간접증거나 정황증거를 통해 차별을 판단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성과 직권조사 권한을 가진 차별시정기구 마련해야

 

더불어 “고용차별은 일반 근로감독관이 판단하여 조사하기에 어려운 주제이고, 임금체불처럼 일상적으로 나타나는 분쟁이 아니라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일선 근로감독관이 차별로 인식하고 판단하기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구미영 연구위원은 “노동위원회가 고용 성차별 사건을 관할한다면, 미국 EEOC나 캐나다의 연방인권심판소를 모델로 하여 고용차별 사건의 조사와 판단 관련해 전문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구조적 차별로 그 지속성, 반복성이 큰 경우에는 사회적 영향이 크기 때문에 차별시정기구가 직권으로 조사하여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EEOC는 100인 이상 민간기업 및 연방정부와 5만불 이상의 조달계약을 체결한 50인 이상 기업으로부터 성별, 인종별 고용 및 임금 현황 정보를 제출받는다. EEOC는 이 데이터를 상시적으로 분석하여 고용에서의 큰 격차가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기업에 대하여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에서 직권으로 성차별을 조사할 수 있는 곳은 국가인권위원회가 유일한데, EEOC와 같은 기업 데이터 접근 권한은 부족하다”는 커다란 한계가 있다고 구 연구위원은 지적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인권위원회나 고용노동부(또는 노동위 차별시정전문위)가 기업별 임금 및 고용현황 데이터를 미국과 같은 방식으로 활용하도록, 관련 법령을 개정하는 방향으로 검토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성차별 사건은 EEOC와 같은 전문성이 축적된 기구에서 조사, 판단해야 한다는 지적은 20여년 전부터 계속되고 있다”고 덧붙인 구미영 연구위원은 “노동위원회 차별시정전문위에서 고용 성차별 사건을 판단하든, 차별금지법(안)을 바탕으로 국가인권위가 구속력 있는 성차별 사건 결정을 내리든, 전문성 있는 인력을 적정한 규모로 운영하는 것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젊은 여성’ 원하는 방송업계 성차별 문화 바꿔야

 

법제도 못지 않게 기업의 인식과 문화를 바꾸는 부분도 들여다보아야 한다. 구미영 연구위원은 “기업들이 흔히 ‘고객의 요구와 수요에 맞추기 위해’ 채용에서의 성별 불이익이 허용될 수 있다고 믿고 있지만, ‘고객의 선호가 성별 분리채용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점은 국내 법령의 해석이나 해외의 법령, 판결례 등을 통해 확립된 고용차별금지 법리”라고 설명했다.

 

“국가인권위 결정례, 남녀고용평등법 해설 자료 등에서도 고객의 선호, 수요가 성차별 정당화하는 합리적 이유가 될 수 없음을 오래 전부터 밝혀왔다”고 말한 구 연구위원은 “공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방송국에서 고객의 선호를 이유로 한 채용차별이 존재하는 현실을 무겁게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 ‘방송현장사이다’ 유튜브 [무늬만 프리랜서 ①] "채용 성차별 문제 제기, 돌아오는 건 하차 통보?" 대전MBC 유지은 아나운서의 증언! 중   ©출처: https://youtu.be/P8t6NaSY0i4

 

이번 사건과 같은 “채용 성차별이 방송업계의 뿌리 깊은 성차별 문화, 관행의 존재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도 지적되었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의 미디어 성차별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7개 전국채널 저녁 종합뉴스 여성 앵커는 10명 중에서 8명이 30대 이하이고, 남성앵커는 10명 중에서 9명이 40대 이상이다. 이 조사는 앵커의 고용형태는 포함하지 않았다는 한계가 있으나, 젊은 여성과 중년 남성으로 구성된 뉴스룸의 구조가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노동조합도 변화를 꾀해야 한다. “캐나다, 유럽 등과 달리 한국에선 고용 성차별을 주요 교섭 의제로 다루지 않고 있지 않는 점이 문제”다. 물론 “KEC, 기륭전자, 콜텍 등 중요한 고용 성차별과 임금차별 소송이나 진정 사례는 노조에서 주도적으로 제기하여 진행한 경우”도 있다. 구미영 연구위원은 “대기업이나 공공분야 노조에서 우선적으로 사업장 내 성별 격차에 대한 정보를 사측에 요구하고, 개선 방안을 ‘노사 교섭 의제’로 삼으려는 노력”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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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일의앤 2020/10/12 [11:32] 수정 | 삭제
  • 용기 내어 문제제기해주신 아나운서분들과 지지자들에게 참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 ㄷㄱ 2020/10/08 [07:59] 수정 | 삭제
  • 채용현황을 보니 명확하게 차별이 드러나는데, 업계 관습 운운하는걸 보면 공중파가 왜 최근 부진한지 알 수 있는 일면이네요.
  • 윤희 2020/10/07 [19:52] 수정 | 삭제
  • 대놓고 성차별하고도 처벌받지 않고 변명만 늘어놓았네요. 결론. 한국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 추행, 폭력은 거의 처벌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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