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이 멈춘 코로나 시대, 음악인의 삶을 말하다

<코로나 시대 살아내기> 감염병 상황에서 중단되는 직업을 가졌다는 건

오지은 | 기사입력 2020/11/10 [19:21]

공연이 멈춘 코로나 시대, 음악인의 삶을 말하다

<코로나 시대 살아내기> 감염병 상황에서 중단되는 직업을 가졌다는 건

오지은 | 입력 : 2020/11/10 [19:21]

※ 코로나 시대를 ‘살아내고’ 있는 다양한 목소리를 담습니다. 지금 그리고 코로나 이후, 이들의 목소리가 묻히지 않는 사회를 함께 만들어가길 바라며 기획하였습니다. [편집자 주]

 

예술가로서 내 직업이 끝나는 순간은 언제일까

 

음악과 글쓰기를 그만두게 되는 상황에 대해서 자주 상상해왔다. 전업 뮤지션이자 작가로 살아온 지도 십 년이 더 넘었다. 내가 얼마나 운이 좋은 케이스인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 운이 언제까지나 이어질 것이란 보장이 없기에, 내가 언제까지 해나갈 수 있을지 궁금하고 걱정되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쓰고 싶은 것이 없어지는 상황이다. 창작력이 바닥나는 상황. 예술가라고는 해도 기본적으로 뭔가를 만들어서 시장에 가져다 파는 사람이라고 쭉 생각해왔다. 세상에는 예술가에 대한 다양한 정의가 있겠지만 나의 경우는 그렇다. 만들 것이 없어지면 장사도 자연히 끝나는 것이다.

 

왜인지 앨범을 처음 만들 때부터 배추 농사하는 사람을 떠올렸다. 배추 농사를 지어본 적은 없지만 크고 튼실하고 맛있고 신선한 배추를 키우는 상상을 막연하게 하곤 했다. 그리고 완성된 음악을 홍보할 때면 그 배추를 장에 내다 파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이 외면해도 나는 내 배추를 열심히 키웠고 나름의 맛에 자신 있으니까 괜찮아 하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음악에 공감하고 좋아해 줄 땐 모든 걸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장에서 번 돈을 다시 농사에 투자하여 더 멋진 배추를 기르고….

 

매력 없는 비유일진 몰라도 내 직업에 대한 내 머릿속 구조는 이랬다. 최대의 관심사는 배추를 잘 기르는 것이었다. 그런데, 더는 내 밭에서 배추가 자라지 않는다면? 그때가 내 직업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이런 경우도 있다. 아무도 더는 내 배추를 사주지 않는다면? 무슨 이유에든 나의 좌판에 더는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다면? 그때도 내 직업은 끝이 난다. 정리해서 말하자면 내 작품에 대한 대중의 소비가 끝나면 작품으로 벌어들이는 내 수입도 끝이 나는 것이다. 다른 직업을 가지고 창작을 계속 해나가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몹시 어려울 것이다. 회사에 다니며 배추 농사를 짓기 힘든 것처럼….

 

이렇게 다양한 상황을 상상해왔지만, 전염병이 변수로 등장하게 될 줄은 몰랐다. 

 

▲ 작년, 오지은 연말콘서트 “겨울의 빛” 공연 사진.   ©유어썸머


인디 뮤지션은 어떻게 돈을 버냐고?

 

잠시 현재 한국의 인디 뮤지션의 수입 구조에 대해 얘기를 해야겠다. 지루하거나 징징거림으로 느껴질까 걱정이 된다. 한국은 예술가에게 몹시 엄격한 시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너는 하고 싶은 일을 하니까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하는 의사나 회사원에게는 그런 말을 하지 않지만. 그리고 어디까지나 나의 경험을 적은 것이라 시야가 좁은 것에 대해서도 미리 사과드린다.

 

내가 파악한 것은 이렇다.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가 중심이 되면서, 앨범 판매를 주 수입으로 하던 구조는 완전히 끝이 났다. 씨디는 현재 거의 굿즈의 개념이다. 음악은 핸드폰으로 듣지만 소장 욕구로 씨디를 구매하는 케이스가 대부분이다. 나만 해도 음악은 유튜브 뮤직으로 듣는다. 솔직히 너무 편리하다.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

 

그럼 너에게도 더 많은 기회가 생긴 것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모르는 음악을 더 쉽게 찾아 들을 수 있는 시대가 온 것 아니냐고, 더 홍보하기 쉬운 시대가 온 것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만, 세상은 그렇게 달콤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슬프게도 지금의 구조는 많이 가져가던 사람이 더 많이 가져가는 구조다. 차트 중심이라서 그렇다. 유명한 곡이 더 유명해진다. 음원 수입이나 저작권 수입이 상당한 뮤지션도 있겠지만 소수일 것이다. 정확한 통계를 얻기 힘들지만 한 곡을 한 번 스트리밍 할 때 뮤지션에게 가는 금액이 3원이라고 들었다. 어지간한 히트곡 외엔 정산도 받기 힘들다. 정산 최소 금액을 초과해야 지급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배추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듯, 모종값, 땅값, 비룟값, 노동력이 들듯, 음악을 만드는데도 돈이 든다. 많이 든다. 나의 경우, 집에 간단한 녹음실을 갖추고 있지만 한 곡을 완성하는데 최소 150만 원 정도를 쓴다. 열 곡이면 1,500만 원이다. 쓰고 있는 나도 아득하다. 좋은 시절에는 들이는 만큼 벌 수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세상 탓을 할 마음은 없다. 세상은 빠르게 바뀌고 사람들은 적응하기 위해 고생을 한다.

 

미래가 보장되는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은 정말 적다. 모두가 험한 바다를 헤쳐나가고 있다.

 

자. 그러면 대체 뮤지션들은 어디서 수입을 얻는가. 공연과 행사다. 다행히 음악을 사랑하고 필요로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앨범을 만든 후에 단독 공연을 하고 운이 좋으면 행사도 한다. 그렇게 앨범의 제작비를 메꾸고 생활을 한다. 공과금도 내고 쌀도 사고. 앞에도 말했지만 난 운이 좋아서 살금살금 잘 지내 올 수 있었다. 작년까지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집합 금지 명령. 단숨에 수익을 발생시키는 구조가 무너졌다. 행사들이 취소되고 앨범을 홍보할 창구가 사라지고 공연을 열 수 없게 되었다. 그냥 다 닫혀버렸다.

 

이 와중에 단독 라이브공연 비하인드

 

나에게는 예금이 있었다. 십몇 년간 이 일을 하면서 조금씩 모은 돈이다. 가끔은 잘 벌기도 하고 가끔은 못 벌기도 해서 변동은 있었지만 그래도 일정 금액 수준으로 유지가 되었다. 살다 보면 갑자기 아프거나 큰돈이 들어갈 일이 있다. 많은 순간 불안했지만, 예금을 생각하면 나는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곤 했다. 내심 뿌듯함도 있었다. 버티기 힘든 업계에서 이만큼 버틴 스스로에 대한 대견함도 있었다. 열심히 살아온 증거처럼 느껴졌다.

 

올해 초부터 예금을 야금야금 쓰기 시작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벌이가 줄어들어도 밥은 먹어야 한다. 하던 대로 싱글을 2개 제작했다. 그게 내 직업이니까. 돈이 굉장한 속도로 줄어들었다. 공연 겸 북 토크가 몇 개 들어왔다. 그리고 막판에 취소되었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해야 하나? 생각했다. 내기로 한 책이 두 권. 일단은 원고 쓰기에 집중해야 했다.

 

▲ 올해 겨우 작게 열 수 있었던 쇼케이스 사진.   ©유어썸머

 

그런 와중에 단독 공연을 준비했다. 그게 내 직업이니까. 누군가에게 라이브공연은 인생에 그다지 필요 없는 것, 사치, 상황이 좋지 않다면 제일 먼저 그만둘 취미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엄연한 직업이다. 불쑥 억울한 생각도 들었다. 코로나가 심해지면 재택근무를 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회사에 출근한다. 직업이니까. 지하철도 버스도 탄다. 술집에도 간다. 하지만 공연장은 안된다. 말을 하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하지도 않고 앉아서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어도 안 된다. 정서상 안 된다. 아, 이 직업은 비상상황이 오면 제일 먼저 중단 당하는 직업이구나.

 

큰 공연장에서는 공연을 할 수 없어 작은 곳을 골랐다. 좌석 간격도 넓혔다. 좌석수가 적다보니 1회 공연으로는 수익이 나지 않아서 처음으로 하루 2회 공연을 계획했다. 그리고 공연 이틀 전 스태프 중에 발열자가 생겼다.

 

공연을 준비하면서 우리는 여러 번 만났다. 오랜 시간을 같이 있었다. 검사 결과는 다음 날 오후에 나온다고 했다. 발열자는 감염자와 접촉을 한 적은 없지만, 감염자가 발생한 동네에 간 적이 있다고 했다. 만에 하나 그가 감염되었다면? 내가 이미 무증상 감염자라면? 공연을 강행했다가 병을 관객에게까지 퍼트리게 된다면? 내가 병에 걸리는 공포, 병을 퍼트린다는 공포와 미안함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나와 업계에 쏟아질 비난이 두려웠다. 인디 공연장에서 감염자가 나왔다고?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완전히 다 금지시켜. 업계 전체에 큰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만약 음성이라면? 그냥 해프닝이라면? 그렇다고 해도 공연은 중지시켜야 했다. 왜냐하면 음성 결과를 받았을 때 취소 공지를 올리기는 너무 늦기 때문이다. 공연을 보기 위해 지방에서 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차편과 숙소를 취소할 시간적 여유는 주어야 한다. 무조건 취소 공지를 바로 올려야 했다. 

 

발열자가 있다는 이야기는 더 큰 불안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자세한 사유는 적지 못했다. 다행히 큰 불만의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 시국에 공연을 하기로 해놓고 직전에 제멋대로 취소하냐는 비난은 있었다. 그 사람의 눈에는 내 변덕으로 보였을 것이다.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그 스태프는 음성이었다.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비용이 들었다. 많은 사람의 시간을 사용했다. 하지만 언제 공연을 다시 열 수 있을지 그 시점에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난처했다. 다행히 그 다음달 상황이 완화되어 공연을 열 수 있었다. 감사히도 사람들은 예매를 다시 해주었다. 함께 준비하느라 고생한 연주인들에게 페이를 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다음 공연은 언제가 될지 모른다. 언제 상황이 나빠질지, 무슨 공문이 내려올지 모르는 채로 준비를 할 순 없기 때문이다.

 

온라인 공연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많은 뮤지션이 시도를 한다. 나 또한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쉽게 시도하지 못했다. 모두의 눈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나 또한 그렇다. 유튜브를 틀면 기가 막히게 녹음되고 촬영된 라이브를 볼 수 있다. 자연스럽게 피아노 하나만 놓고 찍은 라이브처럼 보이는 클립들도 요모조모 뜯어보면 굉장히 공이 많이 든것이 보인다. 여러 대의 카메라, 그리고 스태프, 좋은 장비로 세심하게 녹음된 음원과 정성스러운 후가공. 나에게는 그 일을 벌일 정신적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직감했다. 아 코로나가 끝나면 공룡만 살아남을지도 모르겠구나. 한동안 벌이가 없어도 될 정도의 여유자금이 있고, 제작비가 있고, 제작비를 회수할 수 있는 탄탄한 팬층이 있고, 온라인 공연 등을 기획할 수 있는 인력과 장비와 자금이 있고, 한동안 쉬어도 녹슬지 않는 이름값이 있는 뮤지션들. 그 외엔 정말 큰일 났구나. 내가 어느 케이스에 들어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예술의 가치를 질문하지 않는 사회를 산다는 건

 

가을이 되고 결국 예금이 바닥이 났다. 음악을 시작하고 처음 보는 잔고였다. 저작권료도 들어오고 인세도 들어왔고 다른 일도 했지만 부족했다. 친구들이 돈을 빌려주겠다고 했다. 그건 싫었다. 대출을 알아보았다. 어느 불안한 새벽에 충동적으로 카드론을 받았다. 줄곧 1등급이던 신용등급이 쑥 떨어졌다. 따져보니 이자도 비싸길래 바로 돈을 갚아버렸다. 

 

더 뒤져보니 카카오 비상금 대출이라는 것이 있었다. 한도는 300만 원. 그래. 300만 원은 바로 빌릴 수 있어. 그럼 조금은 버틸 수 있어. 그럼 그다음엔? 어떻게 버티지? 이사를 가야 하나? 집값이 싸다는 지역방으로 가야 하나? 그렇게 해서 버텨야 하나? 무엇을 위해? 빨리 다른 길을 찾아야 하나? 다른 직업을 얻는 상상을 해보니 나는 무경력의 마흔 살이었다. 음악을 만들고 글을 썼던 내 경력이 구직활동에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 이 와중에 작업실을 얻었습니다. 무슨 생각이었을까요. 여하튼 더 열심히 일하게 된 건 사실입니다.  ©오지은

 

영국의 재무부 장관 리시 수낙이 한 인터뷰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 뮤지션들과 예술계 사람들은 이제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한다고. 그 말을 들은 샬라탄스라는 유명 밴드의 리더인 팀 버제스는 가디언지에 기고를 했다. 타이틀은 다음과 같다. ‘예술은 럭셔리한 취미가 아니고 수많은 사람들의 밥줄입니다.’

 

그걸로는 충분하지 않았는지 영국 정부는 이런 공익광고도 했다. 발레리나가 토슈즈를 고쳐 신는 사진 옆에 들어간 문구는 이랬다. 그녀의 다음 직업은 사이버 관련일수도 있다(단 그녀가 아직 모를 뿐). 당연히 영국의 많은 문화계 사람들이 분노했다. 정부는 잘못된 발언이었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SaveTheArts 라는 해시태그가 돌았다. 

 

아마 영국은 한국보다 문화에 대한 관심과 대접이 더 나은 편일 것이다. 비틀스와 오아시스의 나라니까. 그런 영국이 이 정도라면 한국은 어떨까. 나의 직업의 가치는 이 나라에서 과연 얼마나 될까. 예술계뿐만 아니라 많은 업계가 힘들다. 여행 업계도, 자영업자들도 너무 힘들 것이다. 대량 해고의 소식이 들려온다. 어디선가 공연 좀 못 본다고 죽어? 하고 발끈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하지만 팀 버제스 말이 옳다. 예술은 내 취미였던 적이 없다. 밥줄이다. 비난이 무서워 해시태그 운동은 못 하겠지만.

 

다음은? 내년은? 우리의 운명은?

 

아마 새로운 음악은 계속 등장할 것이다. 아주 멋진 뮤지션이 탄생할 것이다. 그는 아주 멋진 앨범을 만들어 낼 것이다. 생태계가 건강하다면 그는 더욱 성장하여 더 멋진 음악을 들려줄 것이다. 생태계가 건강하지 못하다면? 아르바이트에도 레슨에도 한계는 있다. 1집, 운이 좋으면 2집에서 끝이 날 것지도 모른다. 이런 말을 하면 내가 1호선 광인이 되는 기분이다. 멸망을 중얼거리는 노파가 되는 기분이다. 애써 감추고 싶어 하는 사실을 들추는 불편한 사람이 되는 기분이다. 

 

누군가는 돌파구를 찾아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두가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가? 그냥 길이 깔려 있으면 안 되는 걸까? 운이 좋고 요령이 좋은 사람만 잠시 버티다가 다시 다른 사람으로 교체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일까? 

 

▲ 오른쪽은 2년 반을 함께한 강아지 흑당이, 왼쪽은 집에 온지 고작 3주가 넘는 고양이 꼬마. 둘의 모습을 보는 시간이 가장 순수하게 행복합니다.   ©오지은


다행히 나의 예금은 조금 회복되었다. 신기하게도 죽겠다 싶으면 들어오는 돈들이 있다. 나의 예술가 생활은 연장되었다. 곧 나올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쓰고 있던 원고가 있어 다른 책을 한 권 더 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다음은 모르겠다. 내년은 정말 모르겠다.

 

할 말이 없어지는 상황을 두려워했다. 창작력이 바닥나는 상황을 두려워했다. 외면당하는 상황을 두려워했다. 그게 문제가 아니었는데.

 

[필자 소개] 오지은. 2007년 앨범 <지은>으로 데뷔. 총 다섯 장의 앨범을 냈으며 산문집책 『익숙한 새벽 세시』(2015), 공저 『괜찮지 않을까, 우리가 함께라면』(2020)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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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깍두기 2020/11/22 [15:57] 수정 | 삭제
  • 이 글은 왜 이렇게 마음을 울릴까요...
  • 오공아빠 2020/11/12 [13:28] 수정 | 삭제
  • 예술계에 종사하는 스탭입니다. 모두가 어려운 이시기에도 무대에서 자신의 가치와 희열을 느끼고 금전적인 어려움과 별개로 항상 희망을 가지고 사는 진정한 아티스트의 모습을 본것 같아 마음의 위안을 얻고 갑니다.
  • 물고기 2020/11/10 [22:40] 수정 | 삭제
  • 오지은 같은 뮤지션이 있어서 참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글을 보게되다니 ㅠㅠ 너무 슬프다. 유튜브로 지은님 음악 급재생중. 지은님 노래를 듣다 보면 위로를 받는 느낌이라 예술의 가치가 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 vivijaya 2020/11/10 [20:21] 수정 | 삭제
  • 코로나가 이 시대의 민낯을 여러모로 보여주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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