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으로부터 탈출한 여성들의 ‘생계’는요?

<일-돌봄-연대에 관한 청년여성들의 질문> 생존자의 도전과 타협

| 기사입력 2020/11/16 [11:29]

가정폭력으로부터 탈출한 여성들의 ‘생계’는요?

<일-돌봄-연대에 관한 청년여성들의 질문> 생존자의 도전과 타협

| 입력 : 2020/11/16 [11:29]

*기자단은 7월, 한국여성노동자회에서 진행하는 “페미니스트, 노동을 말하다” 기획을 통해 만났다. 각자의 위치와 상황 속에서 ‘일’하며 보고 들었던 경험을 토대로, 우리 사회에서 ‘노동’을 이야기할 때 배제되는 사람들이 누구이며 삭제되는 관점이 무엇인지 묻고 논의했다. 그리고 우리의 문제의식을 함께 풀어낼 수 있는 여성들을 만나, 그들의 삶을 듣고 기록했다. “일-돌봄-연대에 관한 청년여성들의 질문”은 그렇게 탄생한 여덟 편의 기사이다. [한국여성노동자회 “페미니스트, 노동을 말하다” 기자단]

 

가정폭력 생존자의 경험 한가운데엔 ‘노동’이 있었다

 

폭력을 경험하고 기억하는 자, 생존자다. 사회가 이들을 위치시키는 자리는 대개 두 곳이다. 동정의 대상이 되거나, 영웅적 서사의 한 켠에 배치되거나. 그러나 양극단에서 생존자를 설명하는 것은 위험하다. 동정의 대상으로 바라보면 생존자에게 연민의 이미지를 투사하며 생존자의 새로운 목소리를 차단한다. 영웅으로 바라보면 그가 겪은 폭력을 극화시켜 더 격렬한 우승담을 들려주길 기대하며 이 또한 생존자의 다른 목소리를 차단한다.

 

내가 그랬다. 폭력이 있는 가정을 벗어나 살아가는 주체적인 사람. 가정폭력 생존자를 이해하는 나의 언어였다. 빈약한 언어만 가지고 있었기에, 폭력 피해자에게 “그런 일이 있으면 빨리 집을 나가야지!”라고 섣부른 조언을 했다. 자신이 겪은 폭력을 빨리 간파하지 못하는, 얼른 가정을 벗어나지 않는 이들을 보면 답답했다. 탈출해서 살아가는 사람은 멋져 보였다. 그렇게 가정에서 탈출하는 여정을 낭만화했다.

 

하지만 생존자의 이야기는 다층적이다. 폭력 앞에서도 탈출할까 말까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선택했다, 언어는 모두에게 동시에 주어지지 않는다. 생존자들은 자신의 경험이 가정폭력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기까지 오래 걸렸으며, 자신의 선택이 옳았던 건지 돌이켜보고 있었다. 그 경험의 가운데에는 경제적 자립을 위한 불안정노동이 교차하고 있었다.

 

내가 만난 생존자들이 가정폭력으로부터 탈출을 준비하는 과정으로서 겪은 노동, 가정에서 탈출해서 삶을 유지하고자 이어나가는 노동은 무수한 도전, 좌절, 그리고 타협의 연속이었다. 집을 떠날 거라 다짐하면서도 타협하고 싶다, 이 정도 가정은 나름 괜찮지 않을까, 대충 맞춰 살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피할 수 없다. 집을 떠나온 이는 ‘가정이 제공하는 경제적 안정감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본다. 가정으로부터의 탈주와 그 탈주에 성공하는 발판이 된 노동자로서의 삶. 그 사이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앵무 이야기: 나의 노동은 하루살이야

 

제주 사는 앵무(가명, 22)는 중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알고 지낸 친구다. 앵무의 진로, 미래의 꿈은 양육자에게 언제나 거부당했다. 간절함의 정도, 자신이 투자가치가 있는 존재인지를 스스로 증명해 보여야 했다. 남성 양육자의 폭력을 견뎌야 했고, 그를 왜 용서하지 못 하느냐는 여성 양육자의 비위도 맞춰야 했다. 반복된 폭력과 통제 속에서 앵무는 무기력과 우울을 학습했다. 앵무는 현재 대학에 다니면서 가정에서 탈출하고자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며, 자신이 원하는 학과로 편입을 준비하고 있다.

 

처음에 그에게 노동은 몇 년 뒤 빛을 볼지 안 볼지도 모르는 미래를 위한 노력 정도의 의미가 아니라 우울감과 무기력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창구였다.

 

“고3 때부터 노동을 시작했는데 그 전에는 노동이라는 게 내 인생에 없었잖아. 어떻게 보면 바로바로 보상이 오는 활동이란 말이야. 공부하면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되고 좋은 직업을 갖는다는 건 다른 세상 이야기고, 지금 내가 이렇게 해도 돌아오는 게 없는 것 같은 생활을 하다가 즉각 보상 오는 활동을 처음 해보니까 삶을 지속하는 거에 동기부여가 되었던 것 같아.”

 

그러나 그가 할 수 있는 건 대부분 불안정 노동일뿐이다. 앵무는 주로 카페 아르바이트, 음식점 주방 아르바이트 일을 했다. 이러한 노동형태는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는 직장이라기보다는 주로 주급을 받으며 3개월 단위로 교체되는 단기 노동이다. 그의 불안정노동은 즉각 보상을 주는 활동이지만, 바로 그것뿐이었다. 생활비, 등록금, 편입 준비 비용 전부를 감당하고 있는 그에게 이후 취직에 필요한 스펙을 쌓거나 미래를 위한 장기적 관점의 준비를 하는 건 불가능했다.

 

“아르바이트 하고 장학금 받으려고 공부하면 시간도 에너지도 없어. 학교 다니니까 오전, 오후는 불가능하지. 근데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니까 주말, 저녁도 불가능해져. 하루살이라는 게 장기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거? 일단 지금 당장 구하기 쉬운 일, 혹은 시급이 센 일 위주로 하다 보니까 이게 아주 급한 불 끄기만 하는 하루살이인 거지. 그게 하루살이 짓임을 알면서도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고. 진짜 자아실현, 나의 커리어를 위한 발판 이런 게 아니고 정말 수단 그 자체야.”

 

“심적으로 힘든 건 뭐냐면 나만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는 거? 이력서에 채워질 게 없는 그런 인생을 살고 있는 거잖아. 큰 뜻이 있거나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은 건 아니지만, 내 인생을 되돌아봤을 때 ‘내가 이뤄낸 거가 뭐지?’라는 질문에 선뜻 대답할 만한 게 없다는 거? 그런 게 슬퍼. 이런 나이대에, 이런 생애주기에, 나에게 돈이라는 거 외에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노동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게 안타깝기도 하고. 이런 노동을 할 필요 없는 환경에서 사는 동년배 친구들이 부럽기도 하고. 또 나 혼자 뒤처지는 것 같기도 하고.

 

미래를 위해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건 아니다. 누군가가 취직을 위해 자격증을 준비하고 해외연수를 다녀오고 직장 경험을 쌓는 동안, 앵무에게는 말 그대로 가정에서의 탈출을 위해 쏟아붓는 생존의 경험만이 있었다. 가정에서의 탈출을 위한 불안정노동은 그에게 자아실현이나 미래의 자립을 위한 여지를 남겨두지 않았다.

 

예정 이야기: 돈도 없고 시간도 없고 체력도…

 

예정(가명, 22)은 앵무와 함께한 오랜 친구다. 고등학교를 졸업 후 남성 양육자의 눈에서 벗어나고자 서울에 올라와 재수했다. 그의 거주지에 가정폭력 가해자인 남성 양육자가 불쑥 찾아오곤 했다. 그는 남성 양육자가 자신의 거주지를 알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싫었다. 현재는 남성 양육자와 모든 연락을 끊고 가정에서 탈출하여 대전으로 올라와 자립하며 살아가고 있다. 

 

▲ 예정이 살아가고 있는 자취방   ©촬영: 현


남성 양육자에게서 벗어난 그에게 생계는 당면한 현실이었다. 그는 월세부터 휴대폰 할부금까지 본인의 주급으로 충당하며 사는 자신의 삶이 처음에는 내심 자랑스럽기도 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탈출 후 생계를 위한 불안정노동이 자신에게 남기고 있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2년째가 되었어. 이제 곧 3년인데 ‘아, 나한테 남는 게 하나도 없구나. 아무것도 안 남는구나.’ 항상 다음 달을 걱정하면서 살지. 한 건 되게 많아. 집안 일을 하던 돈을 벌던 밥을 해먹던 한 건 굉장히 많은 데, 남한테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스펙도 되지 않아. 200% 마이너스지. 근데 집에 돌아가라? 그래도 난 안 돌아갈 것 같아. 못 돌아갈 것 같아. 고등학교 때부터 집이 잘 살았던 건 아니지만 굶어 죽을 걱정은 안 했는데… 아빠가 간섭했던 그때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거든. 뭐 욕심일 것 같기도 하고. 돈은 있었으면 좋겠는데, 밥은 굶기 싫은데, 아빠랑 있기도 싫고.”

 

가정에서 탈출해 자립하는 삶은 낭만적이고 진취적인 삶의 형태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밀하게는 선택의 결과에 대한 원망,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막막함이 교차한다. 예정은 가정폭력으로부터의 탈출과 그로 인해 피할 수 없었던 불안정노동이 자신에게 나쁜 순환고리를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하루를 위해 하루를 살아가면서도 그는 여전히 자신이 살아가는 삶의 지속성에 대해서는 의문스럽다.

 

“나쁜 순환고리라는 게. 난 집에서 나왔으니 돌아갈 데가 없으면서 경제적으로 드는 비용은 사회인 수준인 거지. 사회인의 경제적 능력은 없고, 수행하는 건 학생의 직책이고, 이 직책이 나중에 사회인이 될 결과에 영향을 미치니까 뭐 하나에 집중이 안돼. 학업, 아르바이트 끝. 그 외에 뭔가 하려면 심신이 지쳐서 뭘 하기가 싫고. 시간도 없고.”

 

“전체 소득에서 낼 건 너무 많고, 대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은데도 나는 개강총회 빼고 간 게 없거든. 누릴 수 있는 것도 하나도 못 누렸고. 항상 돈은 없고 시간도 없고 체력도 없고. 굶으니까 체력이 있겠어? 그냥 자는 거지. 무기력해지고 공부는 노동 강도가 올라갈수록 소홀해지고. 남들은 여행가라고 하던데 돈이 있겠어? 방학 동안 학생이 할 수 있는 게 많은데 난 똑같아. 일하고 생계에 쏟아붓고. 여행? 놀러 가는 것도 얼마 쓰나 그것만 생각하고 있고. 처음에야 좋았지만 해가 갈수록 이 생활이 언제까지 유지될지 걱정이 커. 근데 그만두더라도 난 돌아갈 데가 없어. 이 생활을 하긴 해야 해. ‘언제까지 버티지? 이거의 끝은 뭐가 있지?’ 내년부터 인턴도 해야 하고 알바도 그만둬야 하는데 그때는 어떻게 될까 하는… 뭐가 될까 진짜?”

 

내 환경을 객관적으로 보기가 힘들어

 

가정에서의 탈출을 위한 노동은 아이러니하게도 생존자의 탈출을 포기하거나 타협하게 했다. 앵무는 자신이 놓여있는 폭력을 객관화하기 어려워지면서 가정환경과 타협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시야가 좁아진 것 같아. 시급 높이 쳐주는 일, 빨리 구할 수 있는 일, 집이랑 가까운 일을 알아보니까. 어떤 직종이라는 게 확실하면 많이 알아보고 자소서도 쓰고 성장이라는 걸 할 수 있는 구직활동을 할 텐데, 좁은 시야로 일을 구하다 보니까 아르바이트 지원하고 합격하면 다음에는 구직활동을 할 필요가 없지. 일하고 돈이나 버는 거니까. 새로 생겨난 직업들은 뭐가 있는지 어떻게 취업할 수 있는지는 문외한이고, 그렇게 살다 보면 만나는 사람이 한정되잖아. 같이 일하는 사람, 손님, 학교 정도. 집. 그렇게 끝이란 말이야… 내 환경을 객관적으로 보려면 다른 비교군들이 많아야 하는데 인간관계나 시야가 좁아지니까, 이런 환경에서 키워진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계속 타협하게 돼. 갇히는 느낌.”

 

▲ 인터뷰이 앵무의 인터뷰 모습  ©촬영: 현

 

1년 전, 그가 잠시 상경하며 불안정노동을 멈추고 부모님과 떨어져 있던 시기에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자신이 겪었던 물리적, 언어적 폭력을 ‘폭력’이라고 언어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앵무는 가정으로, 노동현장으로 돌아가야 했다. 또다시 거리를 둘 수 없게 됐다.

 

“몸이 힘들면 잡생각이 안 들잖아. 이건 곧 생각이 없어진다는 거잖아. 현실과 미래에 대한 생각도 못한단 말이야. 빨리 누워 자고 싶으니까. 오늘만 이겨내자, 버텨내자 이런 생각을 자주 하면서 거기에 갇혀. 내가 미래와 환경을 꿈꾸면서 돈을 번다고는 하지만 현재에 속한 집단은 알바, 집, 학교잖아. 그러니까 그것들이랑 타협을 하게 돼. 그냥 지금처럼 돈 벌면서 다니는 대학 대충 졸업하고 아무 데나 취직해서 이 집에서 살다가 돈 모아서 나갈까? 아니면 이 가정환경도 썩 나쁘지 않지 않을까 하는 생각? 서울에 있을 때는 물리적으로도 부모님과 분리되어 있고 나랑 다른 가정환경에서 산 친구랑 같이 살고 대화하다 보니까 떨어져서 내 삶과 보호자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는데, 겨울에 집 내려와서는 나와 내 보호자와 환경을 분리하기가 힘든 거야.”

 

자신의 경험을 객관화할 수 있는 기회는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지 않는다. 차별과 폭력의 경험을 언어화하는 작업은 돈과, 학력 자본, 성별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생존자는 부당한 질문을 받는다. “어떻게 저런 폭력을 견디고 산 거지?”, “얼른 도망쳤어야지”, “지금까지 뭐하다 이제서야 말을 꺼내는 거냐?” 생계가 걸린 노동자, 모든 것이 자신의 탓으로만 귀결되어온 여성, 언어를 가질 기회조차 없던 사람의 맥락은 외면된다. 

 

선뜻 집을 나가라고 조언하지 못하는 이유

 

예정은 가정에서 탈출한 이후로 자신의 위치가 애매한 상태에 놓여있다고 보고 있다.

 

“근데 이제 아빠와 의절하면서 ‘집을 나가고 싶다’와 ‘집에 다시 못 돌아가는구나’가 겹쳐. 옛날부터 집을 나가고 싶어하긴 했거든. 지금은 약간 헷갈리는 게, 집을 그렇게 나가고 싶어 해서 결국 안 좋은 일이 일어난 건지, 아니면은 집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나를 나가고 싶게 한 건지. 결과적으로 둘 다인 건지. 지금은 돌아가고 싶어도 못 돌아가지. 이 부분이 나중에 애매한 포지션을 줘버렸어.”

 

“학교 다니면서 넌 왜 본가에 안 돌아가냐는 말을 오천 번 정도 들었거든. 일일이 설명할 수 없잖아. 대충 설명하지. (…) 고등학교 졸업 후에 대학 안 가고 취업하겠다고 하니 당장 엄마가 하는 말이 대학가라고 하더라고. 학생이라는 신분이 주는 혜택이든 주위의 시선이든 사회인과는 엄청 다르다는 거야.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 학생으로서 나는 만족해. 근데 학생이라는 혜택은 난 하나도 못 받는 것 같은데? 경제적으로는 사회인의 삶을 살고 있고 다 내가 알아서 해야 하는데, 학생은 또 학생대로 할 일이 있고. 사회인의 능력은 없지.”

 

▲ 가정에서 탈출한 뒤 지금까지 써 온 예정의 일기장   ©촬영: 현

 

그런 경험 때문인지 예정은 주변에서 양육자와의 불화를 겪거나 자립을 꿈꾸는 사람들에 대해서 조금은 다른 시각을 갖게 되었다. 성인이 되면 아르바이트로 용돈 벌이를 하거나 양육자와 싸워서 가출하겠다고 말하는 지인에게 현실적 충고를 하게 된다.

 

“대학에 오면, 스무 살 되면, 아르바이트는 해봐야 하지 않냐는 말을 많이 듣거든? 용돈은 내가 번다고 하는 멋있는 친구들, 아니면 부모님이랑 싸워서 집 잠깐 나왔다는 말 듣잖아. 원래 같으면 어느 정도는 본인이 하는 게 좋을 것 같지만, 가족에게 도움받을 수 있을 때 받는 게 좋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어. 웬만하면 집으로 돌아가라고. 돌아갈 수 있으면 나는 집이라는 혜택을 누리고 싶어. 가정이 제공하는 경제적 혜택을 하나도 못 누리고 있어서.”

 

집을 나와 살아가는 삶의 적나라한 모습을 알게 된 그는 자신과 비슷한 맥락, 가정폭력에 놓인 사람에게조차 선뜻 탈출을 권유할 수 없게 되었다.

 

“친구든 동생이든 탈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뭐라고 조언하기가 힘들어. 힘든 가정사가 누구든 하나는 있지만 그게 좀 일상적이거나 화해할 수 있는 거 감안해서 하는 건데, 도저히 안 나가고는 배기기 힘들 정도로. 근데 경제적인 거랑 비교했을 때 뭐가 더 손해가 클까 재게되더라고. 뭐 자유롭긴 하지. 아무도 영향을 미치지 않고 아빠가 내 위치를 모르는 게 너무 행복해. 그런데도 동생한테 집을 떠나라고 하기가 힘들어. 지금은 경제 상황이 더 안 좋아졌고, 엄마가 돈이 없으니 동생도 돈이 없고. 그렇다고 내가 줄 수도 없고.”

 

예정은 분명히 조금은 나아진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간섭과 폭력, 언제 들이칠지 모르는 불안감에 떨지 않아도 되기에. 그러나 그는 한켠에 고민의 여지를 남겨둔 듯하다. 정말로 버티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 돌아갈 곳이 없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있다. 집을 나가고 싶다는 소망에는 언제나 나가게 되면 돌아갈 곳이 없다는 절망도 함께 했다. 그에게 탈출의 경험은 강한 딜레마다.

 

생존자의 자립과 생계의 경계

 

생존자의 자립에 실망과 두려움만이 있는 건 물론 아니다. 그들에게는 자긍심이 있다. 생활력으로 살아가며 무던해지는 자신이 대견하다. 스스로 고민하고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진다. 이들은 탈출 후에 필요한 경비, 거주를 대비해서 계획을 짜며 살아가고 있다.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있기에 자신의 삶과 행동, 선택이 떳떳하다. 사회가 그려내는 생존자의 연약함, 씻을 수 없는 상처와 낙인으로 점철된 동정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이들은 연약하지 않다. 폭력을 스스로 폭력으로 의미화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신중함을 기했으며 이를 실천하는 능동적인 존재다.

 

“처음엔 되게 좋았어. 조금 자랑이라면 자랑이지. 힘들게 빠져나와서 대전까지 혼자 살고 있으니까. 누구는 장하다고도 하고. 처음에는 혼자 다 하면서 뿌듯함이라는 게 없지 않았어. (…) 지금 생활이 너무너무 싫으면서도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 무조건 마이너스인데도 근데 집에 돌아가라? 그래도 난 안 돌아갈 것 같아. 못 돌아갈 것 같아. 지금 생활이 너무너무 싫으면서도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 그 전은 더 싫거든. 경제적으로 힘든 건 정말 싫은데 그 전은 더 싫어. 그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 지금은 선택의 여지가 있으니까.”(예정)

 

“체념한 건지 겸허해진 건지 모르겠는데 일단 내 건강, 나의 육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강 상태에 비하면 정말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어차피 이런 생활을 천년만년 지속할 수 없는 걸 아니까 불안한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 근데 그래도 어쩌겠어. 살아남아야지. 난 살아 남을 거야. 꼭 혼자 살아남아야 해. 좋은 거이자 슬픈 거는 악바리가 된 거. 독하다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고 그렇게 독한 사람도 아닌 것 같지만, 독하다기보다는 무던한 거에 가까운 것 같네. 좋지만 슬퍼. (…) 아르바이트를 힘든 걸로만 하다 보니까 일머리라고 하는데 그런 게 좀 좋아진 것 같고. 어디를 가도 굶어 죽진 않겠더라.”(앵무)

 

▲ 학교에서 여성학을 공부하고 있는 앵무의 필기  ©촬영: 현

 

잊지 말아야 할 또 하나의 맥락이 있다. 생존자가 가정에서 탈출하여 시작한 삶과 그들이 직면한 사회가 어떠했는가 하는 것이다. 그들은 불안정노동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 불안정한 노동을 지속할 때 자기 돌봄의 기회와 안정된 일자리를 가지기 위한 준비는 계속해서 유예된다. 폭력에서 탈출하기 위한 불안정노동은 그들에게 자아실현, 원하는 삶을 고민할 공간을 남겨두지 않는다. 사회적 안전망은 일시적이거나 부재해 있다. 생계의 무거움이 그들을 타협으로, 막막함으로 내몬다. 생존자가 탈출해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자신을 다 갈아 넣는 것뿐이다.

 

맨 처음, 내가 생각했던 생존자들의 삶에서 ‘생계’는 빠져있었다. 여성의 독립과 주체적인 선택이라는 자긍심에 국한되어 그들이 실제로 살아가는 구체적 삶, 생존자가 혼자 해결해야 했던 불안정노동, 이러한 불안정노동에 엮여있는 빈곤한 삶은 놓치고 있던 것이다.

 

집을 떠나온 생존자는 ‘가정이 제공하는 경제적 안정감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본다. 앵무와 예정 두 생존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며, 여성의 자립과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연민과 낭만 없이 약자를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라는 또 다른 문제가 남겨졌다. 가정폭력에서 탈출한 생존자가 마주한 사회를 설명하기 위한 언어도 고민하게 되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스스로에게,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많은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자립과 타협, 동정과 영웅적 서사, 자유와 억압 그 간극에서 변주하는 생존자가 바로, 여기 있다.

 

*한국여성노동자회는 ‘페미니즘으로 노동을, 노동으로 페미니즘을’ 사유하며 성평등 노동의 가치를 확산시키는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2018년부터 회원모임 <페미워커클럽>을 통해 여성노동자들과 함께 우리 삶에 박혀있는 성차별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성평등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후원회원 가입 및 소모임 참여는 kwwa@daum.net 메일로 문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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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키코 2020/11/29 [17:08] 수정 | 삭제
  • 정말 대단하고 저의 일 같아서 공감됩니다. 저도 폭력가정에서 자랐고 그 탈출구로 결혼을 했는데 더한 폭력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아이를 낳으니 시작되는 폭력에 탈출하려고 해봤지만 사회안전망 자체가 없었어요. 애 놓고 이혼하라는데 이혼을 해주지도 않고 그냥 가출하는 방법 밖에 없는 상황에서 배우자는 언제든 제 등본을 떼볼 수 있구요. 결국 살인미수 당하고 전남편이 구치소에 있는 동안 최소한의 짐만 싸서 나왔어요. 경제활동을 못하게 하니까 신용도는 바닥이고 모아놓은 돈도 다 가져가니 있는게 없어서 고시원 살면서 콜센터를 다녔답니다. 그래도 좋은 단체에서 이리저리 알아봐주셔서 이젠 고시원 탈출 했어요. 저도 앵무님처럼 용기내서 일찍 탈가정 했다면 결혼이라는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았을텐데 용기 내시고 꿋꿋하게 사시는 것을 항상 응원합니다.
  • 부피 2020/11/25 [12:54] 수정 | 삭제
  • 젊은 1인가구의 사회안전망은 더욱 부실한것 같아요. 한부모가정지원, 노령연금 등의 정책에 비해서 젊은, 취약 가구를 위한 지원이 적은 게 참 속상하네요.
  • socio 2020/11/19 [00:33] 수정 | 삭제
  • 너무 공감돼요. 저는 대학생이고 가정폭력 집안에서 아직 탈출하지 못했는데, 어머니를 두고 집을 나올수없다는 마음에 진짜 집나올 결심도 못하긴 하지만 그래도 3년째 계속 아르바이트를 하고있어요. 학업과 병행하기 무척 힘드네요. 전 남들 대학생도 알바 다 하는거고, 내가 유독힘든건 내가 약해빠져서 모자라서 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안전하고 편안할수잇는 집, 그런공간이 없다는건 삶에 큰 타격인거같아요. 근데 또 정서적 지지라는것도 중요하니까 혼자사는게 무섭기도하고요. 가정폭력의 굴레, 딜레마인거 같은데 이런 기사들 목소리들이 점점 더 많아져서 언젠간 생존자들이 좀더 나은 삶을 살수있는 환경이 됐으면 좋겠어요ㅠㅠ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 람지 2020/11/16 [20:52] 수정 | 삭제
  • 그만큼 우리 사회가 사회적 안전망이 촘촘하지 못하고 가족에게 여전히 많은 게 전가되어 있다는 걸 보여주네요. 한 사람의 생계와 성장이 가정에 많은 게 달려있으면 가정폭력에서 벗어나기 더욱 어려워지죠.
  • 모를위 2020/11/16 [18:28] 수정 | 삭제
  • 이 글이 다룬 인터뷰이는 20대 초반으로 예상되는 여성 청년인데, 구체성에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가정폭력 생존자가 유사한 문제에 봉착하고 있지 않을까 싶네요. ‘가정이 제공하는 경제적 안정감이 있었다면 어땠을까’는 질문은 현대사회에서 가정의 역할이 뭔지 묻게 하는 것 같아요. 꼭 가정이 아니어도 그리고 가정폭력 생존자가 아니어도 경제적 안정감이 삶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고 누구나 필요로 할 테니까요.
  • cooni 2020/11/16 [15:53] 수정 | 삭제
  • 너무 슬프네요. 폭력과 인권의 문제가 생계문제와 떼놓을 수 없다는 것을 나도 집나와서 사회생활 해보기 전에는 잘 몰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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