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의 시대, ‘과정이 드러나는 기술’을 공유하는 여성들<일-돌봄-연대에 관한 청년여성들의 질문> ‘여기공’ 대표 인다 인터뷰*기자단은 7월, 한국여성노동자회에서 진행하는 “페미니스트, 노동을 말하다” 기획을 통해 만났다. 각자의 위치와 상황 속에서 ‘일’하며 보고 들었던 경험을 토대로, 우리 사회에서 ‘노동’을 이야기할 때 배제되는 사람들이 누구이며 삭제되는 관점이 무엇인지 묻고 논의했다. 그리고 우리의 문제의식을 함께 풀어낼 수 있는 여성들을 만나, 그들의 삶을 듣고 기록했다. “일-돌봄-연대에 관한 청년여성들의 질문”은 그렇게 탄생한 여덟 편의 기사이다. [한국여성노동자회 “페미니스트, 노동을 말하다” 기자단]
집 고치는 여성들, ‘여기공’과의 만남
올해는 이상한 일이 많았다. 비가 아주 많이 왔고 5,000년된 캐나다 북극의 만년설이 사라졌다. ‘N번방’이라고 통칭되는 텔레그램을 통한 성범죄가 알려졌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성추행 피소 사실을 알게 된 후 자살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라는, 이제는 이름도 익숙한 전염병의 전세계적 유행이 모두의 일상을 바꿔놓았다.
그러니까 일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나약한 것인지, 다시 말하자면 우리의 일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지속불가능한 조건 위에 놓여있던 것인지 몸으로 느끼는 한 해였다. 그 어느 때보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자각을 하면서도, 이대로 사는 것조차 버겁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이대로’라는 것은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 또한 분명했다.
‘여기공 협동조합’을 알게 된 것은 그런 때였다. 여기공에서 운영하는, 여성들을 위한 주택수리과정 워크샵 <집 고치는 여성들>의 소개글을 통해서였다,
매력적인 소개글이었다. 홈페이지(her-e.com)에는 “여기공은 지속가능하고 안전하게, 모두가 삶에서 기술을 향유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 갑니다.”라는 글귀가 있었다. 지속가능한 기술, 안전, 여성, 그리고 삶. 지금 내가 느끼는 화두가 모두 연결되어 있었다.
어쩌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하는 우리의 일상과 얽혀있는 ‘기술’이 ‘여성’을 만나게 되면 무엇이 바뀌게 될까? 그렇게 전환된 기술은 지금 당면한 ‘삶의 전환’이라는 화두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궁금했다. 그래서 여기공의 대표인 인다 님을 만나보았다.
적정기술을 배운 세 명의 여성이 새 판을 벌이다
인다 님은 ‘기술’이라는, 여성에게 다소 낯설 수 있는 영역을 어떻게 만나게 되었을까? 인다 님은 대안학교인 하자작업장학교에서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 공동체의 필요에 맞게, 지역의 문화와 정치와 환경적인 면들을 고려하여 만들어진 기술)을 처음 만났다. 서울에서 혼자 사는 여성으로서 생태적인 가치들에 기반한, 지속가능한 자립과 삶의 전환에 대해 고민하는 와중이었다.
용접, 목공, 직조 등을 배우며 느낀 생산하는 감각은 ‘어? 우리가 할 수 있네?’라는 자신감을 주었다. 그 자신감은 자립의 감각이기도 했다.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여성으로서, 저는 원래도 기술에 대해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내 삶에 필요해서. 뭐가 있을 때마다 누구를 불러야 될지 그 선택지에서 너무 막막하잖아요. 돈이 없으면 수리공을 못 부르고, 그러면 가족단위에서 해결해야 하는데 나는 지금 서울에서 여성으로 혼자 살고 있고. 그런 것들에 대한 무의식적인 갈증이 있었던 거죠. 그런데 적정기술을 배우면서 ‘어, 이거 잘 배우면 생각보다 너무 많은 것을 해결할 수 있구나.’ 알게 됐어요.”
하지만 자립과 삶의 전환이라는 구체적인 목표를 놓고 기술을 배우면 배울수록, 인다 님과 동료들은 그 기술을 둘러싼 문제들을 보게 됐다. 기술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남성이었고, 지역살이를 위한 적정기술의 영역 역시 대부분 귀농귀촌한 이성애 부부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들이 인다 님을 비롯한 동료들을 보는 시선은 아주 무례하지는 않았지만 “어떻게 이십대 젊은 여자애들이…”라는 걱정과 우려를 감출 수 없었다. “아, 여성들이 이걸 배우기 위해서는 새로운 판이 필요하구나.” 자연스러운 깨달음이었다.
여기공은 대표인 인다 님을 포함한 세 명의 여성들이 꾸린 새로운 판이다. 여성과 기술, 그것을 연결하는 장으로서 ‘공’을 결합해 여기공이라는 이름이 되었다.(이때 공은 순환하는 원의 이미지를 가진 기호이자 플랫폼으로서 공(空), 공동체의 공(共), 공유의 공(共), 그리고 장인의 공(工) 모두를 의미한다.)
현재 두 명의 멤버가 더 합류한 여기공은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여성들을 위한 기술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모든 이들이 자신의 몸에 맞는 도구를 사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사이즈의 작업 도구를 구비한 메이커 스페이스를 조성하며, 여성기술자들을 네트워킹한다. 또 이러한 활동을 뒷받침하기 위해 담론을 연구하고 기술문화 콘텐츠도 기획한다.
하지만, 인다 님은 여기공에게 기술이 무엇인지, 여기공이 기술을 통해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사람들이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는 일은 어렵다고 한다. 이 어려움은 어쩌면 기술을 말하는 것의 어려움과도 닮았다. 내가 매일 사용하는 스마트폰부터 옷까지, 기술은 우리의 일상에 밀착되어 있다. 하지만 그 기술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기존의 기술은 어디서부터 출발해서 어디로 가는지를 보여주지 않고 결과물만 보여주는 형태에요. 예를 들어 스마트폰을 만드는 기술이라고 하면 우리는 그냥 스마트폰을 만나잖아요. 스마트폰을 만드는 자원이 어디서 나왔고, 이걸 누가 어떤 과정으로 조립했고, 어떤 단계의 유통을 거쳐 내 손에 왔는지 보이지 않아요. 이렇게 기존의 방식이 ‘완성되어 있는 기술’에 주목했다면 저희는 ‘과정이 드러나는 기술’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과정이 드러나야만 내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니까요.”
“오, 이게 되네!” 기술이 여성의 삶에 미치는 영향
이런 점에서 여기공과 인다 님에게 기술이란,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이자 그 과정을 들여다보는 ‘눈’이다. 그렇게 숨겨진 기술의 과정을 펼쳐놓고 꼼꼼하게 들여다보면, 기술은 사람과 환경과 사회구조가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는 일종의 퍼즐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여성은 그 퍼즐을 이루는 분명한 한 부분이면서도 기술을 이야기하는 담론에서는 보이지 않는, 일종의 잃어버린 고리다. 그 고리를 연결하기 위해 여기공은 기술을 다루는 사람과 사용하는 사람으로서 여성을 구체적으로 ‘감각’하고자 한다.
지난해 여기공은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여성기술자 일곱 명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여성’과 ‘기술’이 삶에서 만날 때 어떤 서사가 그려지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마치 조각보를 만들듯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엮어가면서 인다 님은 여성기술자들이 살아온 다양한 삶의 장면을 만날 수 있었다. 남성 위주의 현장에서 겪는 차별부터 출산 이후 변화한 몸에 맞춰 사용하는 기술을 바꿔갔던 경험까지, 이렇게 촘촘하게 쌓인 이야기는 그동안 들어보지 못한 여성기술자들의 구체적인 경험을 드러냄과 동시에 여성들이 다양한 사회적 역할을 가질 수 있다는 것 또한 보여주었다.
“강릉에서 공예를 하는 선생님이 계세요. 원래는 CNC라고, 기계가 자동적으로 나무를 잘라주는 자동화 기계를 쓰지 않고 엄청 큰 공구들을 쓰셨대요. 그런데 직접 다루는 공구들은 진동이 되게 심해요. 출산 이후에 작업을 몇 백 개씩 하니까 관절이 다 무너진 거예요. 어느 날 운전을 하는데 갑자기 손가락 관절이 끊어질 것처럼 아파서 손목으로 운전을 하며 돌아오셨대요. 출산 후의 몸에 대해서 당사자조차 인지를 못 하셨던 거죠. 그런 것들에 대한 교육을 안 받으니까요. 지금은 CNC 기계로 컷팅을 하고 민화로 그림을 그려서 수유등을 만드세요. 본인이 아이를 기르면서 밤에 등이 필요한데 전선이 있으면 너무 위험하니까 건전지로 껐다 켤 수 있는 수유등을 개발하셨어요. 나무는 찍어내되 그림은 직접 그리는, 최선을 찾은 거죠.”
인다 님에게 맨 처음 기술을 배우면서 느낀 감각이 자립의 감각으로 다가왔던 것처럼, 기술은 우리의 일상을 구성하는 것들을 아주 구체적인 감각으로 만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인다 님과 여기공은 “기술을 만나는 감각의 과정을 교육이라는, 잘 구조화된 경험으로 녹이고자” 한다. 그렇게 “몸으로 겪은 경험과 감각은 여기공이 생각하는 기술에 대해 백마디 말을 하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직접 다가갈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다 님은 그걸 여성들을 위한 집수리 워크샵 <집 고치는 여성들>을 하면서 느꼈다.
“<집 고치는 여성들>을 통해 느낀 첫 번째는 ‘오, 되네’ 라는 경험인 것 같아요. 기술을 순서대로 배웠을 때 전동드릴을 잘 다루는 게 사실 어렵거든요. 저는 전동드릴 배울 때 1년 배웠는데, 이 분들이 3개월 하시고 마지막 날에 큰 홀을 뚫는 것까지 하셨어요. 안전교육을 철저히 하고 장비를 몸에 맞춰서 드리고 못해도 된다는 걸, 자신의 컨디션에 따라서 하라고 알려드리니까 다들 너무 잘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것 봐, 여성이건 혹은 어떤 신체적인 조건을 가진 사람이건, 가르치는 사람이 순서대로 잘 알려주면 충분히 잘할 수 있었잖아.’ 라는 성취감이 올라왔어요.”
기술을 잘 다룰 수 있게 된다는 말의 의미는, 도구를 이용해 빠르고 과감하게 과제를 해낼 수 있게 된다는 말보다는 ‘호흡을 조절할 수 있게 된다’는 뜻과 비슷하다.
“예를 들어 용접은 고체가 액체가 되어서 서로를 붙이는 작업이기 때문에 몸이 굳거나 마음이 급하면 절대 못해요. 주변의 소음과 불꽃, 1,000도가 넘는 온도에 노출되어 있는 거니까, 여기서 숙련도는 힘을 빼되 일정하게 호흡을 조절할 수 있는 내 마음과 몸의 컨트롤이거든요. 어떤 점에서는 여성들이 용접을 배우기 더 쉽다고 얘기하기도 해요. 물론 개별 성향 차이가 존재하지만, 여성들과 용접 교육을 하면 급하게 하려고 하기보다는 자신의 두려움을 깨는데 집중하는 분들이 더 많다는 것을 느껴요. ‘내가 빨리 쟤보다 잘해야지’ 하며 비교하기보다는 자신의 감각에 집중하는 기술을 습득해나가는 것이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나와 공간과의 관계, 타인과의 관계를 변화시킨 경험
수강생들은 ‘내가 머무르는 공간과 나와의 관계성이 바뀌었다’는 피드백을 많이 준다. 인다 님이 <집 고치는 여성들> 워크숍이 잘 한 기획이라고 느끼는 이유다. 그런데 이러한 경험은 단지 집을 수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기술의 습득 그 자체에서만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저희 수강생들 중에서는 이미 여러 가지 기술에 대한 자격증을 따신 분들도 계세요. 늘 남성 선생님들 사이에서 뭔가 빨리 하라는 주문을 받거나, 혹은 기술을 배우기도 전에 ‘여자애가 여기 왜 왔어?’ 이런 언어들을 들으셨던 거예요. 그러니까 스스로를 가리고 ‘저 사진 찍지 마세요.’ 하게 되는 거죠. 그런데 이 공간에 와서 사진 찍어도 되냐, 당신이 동의하지 않으면 안 찍겠다, 이렇게 물어봐 준 경험, ‘안전한 만큼 하세요’, ‘무리하지 마세요’ 하면서 기술을 순서대로 배울 수 있는 경험을 하게 된 거예요.”
“수강생 중에 개인정보에 예민하셨던 분이 있어요. 수업이 끝날 때쯤 이사를 하게 되어서 이사 간 집에서 타일을 한 번 해봐야겠다 했는데, 하필 함께 수강한 짝꿍이 타일 자격증이 있는 분이었어요. 그래서 ‘어? 그래? 그럼 내가 가서 도와줄게.’ 그러니까 옆에 있는 분이 ‘전 영상 찍는 걸 좋아하는데 가서 영상 찍어도 돼요?’ 그러니까 또 그 분의 짝꿍은 ‘너도 가니까 나도 갈래.’ 그래서 갑자기 열네 명 수업에서 일곱 명이 그 분 집에 간 거예요. 본인도 어처구니가 없는 거죠. 자기는 개인정보에 정말 예민한 사람인데 자기 집을, 나의 가장 안전한 공간을 사람들에게 오픈한 거잖아요. 본인도 놀라고 저도 놀라고. 이게 되는구나.”
인다 님이 전해준, <집 고치는 여성들>을 수료한 여성들의 이야기다. 때때로 여성에게 기술은 마치 내가 기술을 정복하거나 기술에게 정복당하거나, 양자택일의 선택지만 주어진 위협적인 얼굴로 다가온다. 어떤 면에서는 내 몸도, 자연도, 타인도,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기술을 배우는 과정에서 몸으로 겪은 ‘안전한 공동체’는 나와 나를 둘러싼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만든다. 그렇게 달라진 관계가 다시 나와 내 공간이 맺는 관계 또한 변화시킨다.
나의 몸, 나의 주변, 그 밖의 누군가를 구체적인 이야기와 감각으로 경험하고 서로 연결될 때, 우리의 일상 또한 전혀 다른 가능성으로 새롭게 열리게 된다. ‘잘’ 조직된 기술과 공동체는 그 구체적인 이야기와 감각을 만나고 서로 오가는 문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인다 님이 <집 고치는 여성들>을 통해 느낀, 또 하나의 “이게 되네”의 경험이다.
소비하는 도시 서울을 떠나, 의성으로 ‘지역살이’ 준비
이러한 경험을 안고 인다 님과 여기공은 경상북도 의성에서 새로운 일들을 벌려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서울에 있는 청년들을 지역으로 보내는, 서울시의 ‘넥스트 로컬’이라는 지원사업을 통해서다. 인다 님에게 ‘지역살이’는 기술에 대한 생각보다 먼저 가지고 있던 화두였다.
“일련의 경험들이 있어요. 서울에 있으면 어떤 좋은 프로젝트를 해도 지속성이 안보이더라고요. 이 가치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도 많이 없을뿐더러, 안다 하더라도 그 지속성을 누구도 보장해줄 수 없는 거예요. 또 나에게 보이지 않는 영역의 것들을 소비하는 것이 점점 더 두려워져요. 그런데 서울은 그 무엇도 밖에서 가지고 오지 않으면 생산할 수 없는 구조라고 생각해요. 내가 먹는 것, 쓰는 것, 그런 것들을 최대한 우리 동네, 우리 지역 안에서 해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니 자연스럽게 지역사회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지역살이는 마음만 가지고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인다 님은 누구보다 이 점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의성은 인다 님이 일찍이 떠나온 곳, 고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개별적인 여러 상황이 좋은 방향으로 맞물렸다. 같이 활동했던 동료인 세모 님은 의성의 중간지원센터에서 일을 시작했다. 의성에서 당시 ‘넥스트 로컬’을 담당했던 공무원, 그 이후 만났던 중간지원조직의 센터장 등의 분들과도 놀랍게도 마음이 잘 맞았다. 마치 “우주적으로 뭔가 모이는” 것 같았다. “가도 될까?” 여러 번 확인할 때마다 모든 것들이 “어, 가도 돼” 라고 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의성을 활동과 삶의 터전으로 생각하면서, 인다 님은 스스로와 여기공을 “여성학이나 인권에 대한 인지가 있는 젊은 여성들과, 그런 것들은 전혀 없지만 지역 내에서 삶의 지혜가 있는 어른들이 만날 수 있는 완충지대”로 만들고자 한다. 이때 완충지대란 비유적인 의미이기도 하지만 명확하게 특정한 공간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성들에게 기술을 가르칠 수 있는 메이커 스페이스와 그러한 문화가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는 문턱 낮은 사랑방처럼 말이다.
“공간은 물리적인 영토가 확정되는 거잖아요. 이 공간에서 조금 다른 경험을 하고 싶게 하는 장치들을 두고 싶어요. 지금까지 계속 얘기했던 몸의 경험과 같은 맥락이에요. 이론으로 ‘여러분 페미니스트가 되십시오’는 필요하지만 그것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서로 존중도 해보고, ‘이런 것도 해보세요, 이런 것은 여러분을 해치지 않아요’ 제안할 수 있는 공간을 운영해보고 싶어요. 이때 ‘해치지 않아요’가 말이 아니라, 이 공간에서 관계를 맺으며 몸과 마음으로 느끼는 안전함이 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약속들을 하는 거죠.”
여가공이 꿈꾸는 공동체
인다 님은 지역살이를 위해 필요한 공간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불특정다수, 익명의 누군가를 추상적으로 상상하는 게 아니라, 누가 여기에서 살 것인지 아주 구체적으로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한다.
“기존에 보지 않았던, 누가 여기에서 살 것인지 아주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역시 구체적인 방안들이 보여요. 예를 들어서 저의 고민은 지역사회에 산부인과를 어떻게 들여오지? 심리상담을 어떻게 하지? 또 여성주의 모임이 하나라도 있어야지, 그거 하나도 없이 비혼 여성들이 어떻게 있겠어요. 근데 또 누군가는 육아와 출산 모임이 있어야 하고, 그러면 그들이 겹쳐진 영화 모임도 있어야 하고. 이렇게 특정한 이 사람이 계속 안전함 안에서 살 수 있도록 안전장치들을 만드는 것이 공동체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여성의 삶에 정말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 놨을 때 지역살이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러기 위한 의료와 복지를 지역사회에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당장은 불가능하더라도 늘 염두에 두려고 해요.”
공동체에서 살아갈 구체적인 개인의 구체적인 서사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깨달음은 무수히 실패한 공동체들의 사례를 살펴보면서 얻은 결론이다. 그 ‘실패한 공동체’에는 인다 님이 속해있던 공동체 또한 포함된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의성을 떠나왔기 때문에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처럼, 인다 님에게 새로운 관계와 전망, 심지어 이에 대한 자신감 역시 공동체의 무너짐 속에서 만들어졌다.
“참 불행하지만 운이 좋게도 공동체가 실패하는 경험을 몇 번 했어요. 이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였던 이들, 정말 우연적으로, 뭐라고 규정하기 어려운 자신들의 맥락으로 모였던 이들과 함께 싸워낼 때 느꼈던 연대감과 커뮤니케이션이 저한테는 큰 울림을 줬어요. 이들과 부정적인 경험도 긍정적인 경험도 하면서 조심스럽게 관계성을 만들어 왔고요. 그런 점에서 공동체가 무너져도 그 결과를 무너진다, 유지한다의 두 개로 볼 수는 없는 것 같아요. 그 무너지는 것 안에서도 어떤 마주침과 태동의 에너지는 어디에나 늘 있었고, 그래서 여기공이나 다음 스텝을 너무 우울하지 않게 준비했던 것 같아요. 오히려 무너짐의 경험이 있어서, 낙관만 있는 게 아니라서 자신감이 있는 것 같아요. 포기할 수 있는 가능성도 늘 열어두고 있고요. 그랬을 때 또 도전할 수 있는 힘이 생기지, 막 빳빳하게 성공한 공동체를 만들거라! 한다면 어려울 거예요.”
일상의 에너지를 비축하는 일
인다 님에 의성에서 해나갈 활동을 본격적으로 준비하는 올해, 2020년은 우리 모두에게 특별한 감각을 갖게 한 해였다. 인다 님 또한 이제는 싸울 시간도 없는, 해야 할 것들을 꾸준히 해나가는 시간만 보내면서도 ‘우리는 정말 낭떠러지에 와 있구나’하는 위급한 감정을 느꼈다고 한다. 나 역시 일상의 조건은 매일 변하는 것 같으면서도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기에는 그 관성이 너무나 굳건한 것 같고, 조금씩의 변화를 일궈나가기에는 변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나 거대한 폭력으로 매일의 작은 삶들을 집어삼키고 있는 것 같은 느낌 때문에 무력감에 빠지기도 했다.
“그래서 일상의 에너지, 개인의 에너지를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절실하게 느껴요. 왜냐면 우리는 살던 대로 살면 안되니까. 살던 대로 살 수 있는 에너지는 물론이고, 내가 살던 것에서 조금 변하는 것까지의 에너지를 개인이 어떻게 비축할 수 있을까, 혹은 그것을 위해서 혹은 사회나 공동체가 무엇을 해야 할까, 그런 고민을 정말 절실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결론적으로는 더 문턱을 낮추게 되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여러분 채식합시다’가 아니라 ‘자신의 일상에서 에너지를 잘 비축하며 조금씩 육식을 줄여나갑시다’ 라고 말하게 되요. 이 시기를 잘 버틸 수 있는 자신만의 최선을 찾아보자는 거죠. 많은 사람들이 일상을 지키고 자신의 에너지를 잘 비축해서 그 에너지로 변화를 꿈꾸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최근에 참 많이 해요.”
인다 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근본적인 전환이 곧 근본적인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오히려 변화의 힘과 새로운 전망은 단절되었다고 생각했던 것들의 사이를 촘촘히 살펴보며, 감춰져 있던 연결의 고리를 다시 발견하고 복원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인간과 자연, 몸과 머리, 여성과 기술이라는 이항대립에서부터 도시와 지역, 나와 너까지 추상적이고 위계적으로 이어진 이분법 사이에 이미 존재하는 구체적인 이야기를 길어올리다 보면, 차이를 차이대로 감각하되 그리하여 오히려 연결의 가능성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라는 낙관의 실마리도 얻었다.
이러한 낙관의 느낌은 명쾌하기보다는 오묘하다. 이 오묘함은 우리의 일상에 녹아 들어있다. 무너짐 속에서 새로운 태동의 계기를 만나고, 머뭇거림 속에서 숨을 고르는 방법을 찾아내고, 조심스러운 탐색으로부터 서로에게 안전한 관계의 모양을 만들게 된 인다 님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이 모든 매일을 우리의 힘으로 엮어 내어 오늘의 내일, 인다 님이 그랬듯 “참 불행하지만 운이 좋게도”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또 어쩌면, 아마도, 그럴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한국여성노동자회는 ‘페미니즘으로 노동을, 노동으로 페미니즘을’ 사유하며 성평등 노동의 가치를 확산시키는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2018년부터 회원모임 <페미워커클럽>을 통해 여성노동자들과 함께 우리 삶에 박혀있는 성차별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성평등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후원회원 가입 및 소모임 참여는 kwwa@daum.net 메일로 문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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