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살해를 멈춰라”…멕시코의 페미니즘 열기

멕시코 여성 혁명가들부터 청년 페미니스트들까지

마츠모토 미오 | 기사입력 2021/01/15 [14:12]

“여성살해를 멈춰라”…멕시코의 페미니즘 열기

멕시코 여성 혁명가들부터 청년 페미니스트들까지

마츠모토 미오 | 입력 : 2021/01/15 [14:12]

여성을 상대로 한 끔찍한 범죄가 많이 발생하기로 악명 높은 멕시코. 그러나 이에 대한 여성들의 저항과 변혁의 운동도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멕시코 중부 북쪽의 사카테카스(Zacatecas)주에 살면서 통번역 일을 하고 있는 마츠모토 미오(松本未生) 씨가 멕시코 여성들삶과 저항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편집자 주]

 

‘페미니시디오’ 여성살해가 많이 일어나는 사회

 

멕시코는 지리적으로 북미에 위치하고 언어·문화적으로 중남미에 속한다. 인구 1억2천619만 명, 면적 196만 평방미터(한국의 19.7배)의 큰 나라다.

 

최근 십수년 간 나르코(narco, 마약 조직) 관련 흉악범죄가 증가해서 치안이 안 좋은 나라로도 유명해졌다. 멕시코에서는 흉악범죄 중에 특히 여성이 희생자가 된 사건을 ‘페미니시디오’(feminicidio,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로 인해 남성이 저지르는 살인)라고 부른다.

 

한 조사에 따르면 2020년 3월 16일부터 4월 30일 사이에 기록된 405건의 페미니시디오 중 65%가 범죄조직과 연루되어 있다고 한다. 마약 카르텔 간의 분쟁으로 상대편의 파트너나 가족에 대한 페미니시디오가 자행되고 있고, 메시지나 경고를 주기 위해 여성의 신체가 이용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범죄조직이 주로 활동하는 곳은 ‘마치스모’(El Machismo, 남성우월주의)의 영향이 짙은 지역이기도 해서,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괴롭힘 등 범죄도 다수 일어나고 있다.

 

▲ 길가에 붙어있는 ‘페미니시디오’에 대한 항의 스티커. “(여성을) 더이상 한 명이라도 줄이지 마라.” ©마츠모토 미오


세계여성의날 집회와 ‘여성 없는 하루’ 대규모 여성파업

 

한편, 멕시코의 정치와 의료 분야 등에서 여성들의 활약은 눈부시다. 세계경제포럼에서 발표한 2020년 멕시코의 젠더 격차 지수(Gender Gap Index, 젠더 평등 지수)는 25위로 한국 108위, 일본 121위보다 월등히 높다. 그 중에서도 정치 분야는 랭크 상위인 14위이다.

 

국회 하원 500의석의 48%인 241명, 상원 128의석 중 49%에 해당하는 63명이 여성이다. 이는 2002년부터 선거에 도입된 강력한 여성할당제의 결과인데, 2015년부터 여성 공천 비율을 50%로 상향했다. 2020년 기준 연방정부 부처의 40%에 해당하는 7개 부처의 장관직을 여성이 맡고 있다. 수도 멕시코시티 시장도 여성이다.

 

1975년에 ‘세계여성의날’이 공식 지정된 제1회 세계여성회의가 개최된 것도 이곳 멕시코다. 작년 3월 8일에 수도에서 열린 세계여성의날 집회에도 유례없이 많은 대규모 인원이 참가해 성황을 이뤘다.

 

그뿐 아니라, 다음 날인 9일에는 ‘여성 없는 하루’라는 타이틀로 여성들이 직장이나 대학 등 모든 곳을 보이콧하는 전국 파업이 진행되었다. 수천만 명이 참가했다. 연방정부 내각을 비롯해 각 부처, 광역 지자체, 대학, 민간 대기업 등 다수의 조직과 단체가 여성들의 파업에 지지를 표명했다.

 

▲ 필자 마츠모토 미오 씨. “멕시코는 여성살해 범죄가 많은 동시에, 평상시 일상에서는 여성이라는 사실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정도는 일본보다 덜하다. 이것이 현재의 멕시코라는 곳이다.” 


‘여성혁명법’을 만든 사파티스타 여성들

 

멕시코의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jército Zapatista de Liberacion Nacional, EZLN, 이하 ‘사파티스타’)과 페미니즘도 주목하고 싶다.

 

사파티스타는 1994년 1월 1일에 멕시코 남부 치아파스 주에서 무장봉기한 조직이다. 그날은 멕시코 국내의 중소영세기업에 타격을 줄 것으로 여겨졌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발효일이었다. 사파티스타의 대변인인 부사령관 마르코스(현재 활동명은 갈리아노, Subcomandante Galeano)는 본래 치아파스 주에서 살았던 원주민이 아니지만, 이 조직의 주체는 마야계 원주민족이다. 그들의 주장은 토착민이 토지를 빼앗기지 않도록 토지제도를 개혁하라는 등 아주 명확하고,, 그들이 내세운 수많은 슬로건은 매우 멋지다. 일상에 기반한 사회변혁을 호소하고 있다.

 

2019년 4월, 사파티스타의 자치구 중 견학 가능한 지역을 방문했다. 1994년 봉기로부터 벌써 25년이 지났지만, 그들의 존재와 운동이 지금도 발전, 지속되고 있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니 감동이 더했다. 자치구 내에는 병원, 학교, 모임 장소, 외부인용 상점이 있고 벽들은 그림과 메시지로 꾸며져 강하고 아름다웠다. 그 중에서도 라모나 사령관 등 여성을 그린 벽화가 눈길을 끌었다.

 

“여성의 게릴라 지도부 참여는 그 외 국가의 라틴아메리카 혁명과는 대조적이다. 사파티스타와 기타 게릴라 운동과의 주요한 차이는 ‘여성혁명법’이라고 불리는 젠더에 관한 요구가 투쟁의 플랫폼에 포함되어 있는 점이다”라고 어느 인류학자가 설명한 바 있다.

 

사파티스타는 멕시코의 농지 개혁과 정치 운동을 주장하면서, 10조로 이루어진 여성혁명법을 함께 주창하며 여성들의 변혁을 꾀했다. 노동과 교육, 출산 등에 있어서 여성의 자기결정권 획득, 폭력·학대의 거부 등이 담겨있다.

 

▲ 사파티스타(EZLN) 자치구 중 하나인 ‘Oventic’ 안에서. 벽에 적힌 말은 “존엄을 위한 여성사무실”이다. ©마츠모토 미오


2018년 3월 8일부터 10일까지 ‘투쟁하는 여성들의 정치·예술·스포츠·문화 국제집회’가 여성 사파티스타 주최로 개최되었다. 멕시코 27개 주와 세계 34개국에서 약 8천 명의 페미니스트가 참가했다. 여성만으로 운영된 이 행사는 당시 물결이 거세던 #MeToo 등 국제적인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사파티스타의 연대 표명이라고 해석된다.

 

사파티스타는 2007년 말과 2008년 초 사이에도 ‘여성 사파티스타와 세계 여성의 모임’을 주최한 바 있다. 당시에는 여성 사파티스타의 숫자가 아직 적어서 모든 실행을 여성이 맡지는 않았지만, 남성의 집회장 출입을 제한적으로만 인정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여성 사파티스타의 규모와 지위가 크게 향상됐다. 더불어 멕시코의 페미니즘 운동 전반이 크게 성장했고, 융성하면서 하나의 커다란 사회운동이 된 것을 실감한다.

 

오래 방치된 여성폭력에 분노…‘페미니스트들 집결’

 

지금 멕시코는 여성들의 분노와 저항의 목소리로 들끓고 있다. 여성들은 여러 사회운동의 현장에서 연대하며, 폭력과 혐오에 거세게 저항하고 있다.

 

2020년 9월 초, 멕시코 국가인권위원회(CNDH, 이하 ‘인권위원회’) 시설을 점거하고 여성에 대한 폭력과 범죄를 멈추라고 외친 여성들이 있다. 멕시코가 떠안고 있는 심각한 사회문제 중 하나는 어린이 실종이다. 그런데 멕시코 사회는 이에 대한 수색·조사를 오랫동안 등한시 해왔다. 어느 날 실종 어린이들의 어머니 세 명이 이에 항의했고, 인권위원회 위원장과의 면회 기회를 얻었지만, 서류 불충분이라는 이유로 주 차원에서 절차를 다시 밟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러자 그 중 한 여성이 사무실 의자에 자신의 몸을 묶고 시설에서 나가기를 거부하면서 항의했고, 이틀 동안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그곳에 집결했다. 사흘 뒤에는 페미니스트들이 시설 안으로 돌입, 직원을 내쫓고 인권위원회를 점거했다. 이후, 점거를 주도했던 실종자의 어머니들은 시설에서 나왔지만, 페미니스트들의 점거는 몇 달을 이어갔다. 점거단체는 인권위원회 시설을 ‘여성의 피난처’로 삼겠다고 밝혔다.

 

9월 28일은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단 보장을 위한 국제행동의 날’이다. 이날 멕시코 전국에서 임신중단 합법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있었다. 그 중 수도권 집회에서 여성 경찰관 44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 사건에 대해 클라우디아 세인바움 시장은 자신은 페미니스트이지만, 폭력행위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공언했다. 현재 멕시코에서 이유를 불문하고 임신중단이 합법인 곳은 수도인 멕시코시티와 오아하카주 뿐이다. 이곳마저 12주까지만 임신중단이 가능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 수도 멕시코시티에 있는 벨라스 아르테스 궁전 앞에서 열린 페미니스트들의 플리마켓. 뒤에 걸린 메시지는 “페미니시디오(여성살해)의 낙원 칸쿤” “경제적 폭력에 반대하는 여자들”이다.  ©마츠모토 미오


11월 9일에는 멕시코의 손꼽히는 관광지 칸쿤에 있는 킨타나로주에서, 24시간 동안 세 건의 ‘페미니시디오’가 발생했다. 페미니스트 약 2천 명이 칸쿤 거리에 모여들었고 여성살해 범죄에 대해 규탄했다. 그런데 경찰은 집회를 진압하면서 실탄을 발포했다. 피해는 공식적으로 집계된 바는 없지만, 적어도 기자 2명이 총에 맞아 부상을 입은 사건이 발생했다.

 

멕시코의 어느 대학 연구원은 “일련의 사건들은 우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정권이 오랫동안 여성에 대한 물리적·정신적·성적 폭력에 대해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는 점에 인내의 한계가 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으로 “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 적어도 수도는 시장의 공적 영향으로 인해 개방적이 되었다. 아직 불충분하지만, 10대-20대 여성이 항의하기 위해 거리에 나오는 모습이 든든하게 느껴진다”고도 덧붙였다.

 

-<일다>와 기사 제휴하고 있는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의 보도입니다. 마츠모토 미오 님이 작성하고 고주영 님이 번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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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름르미 2021/01/24 [21:22] 수정 | 삭제
  • 1/15 댓글처럼 저도 멕시코는 수십명의 여성들이 다같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사건도 발생할 만큼 페미사이드로 점철된, 여성인권이 너무 낙후되고 마약,폭력조직에 압도된 나라로만 여겨졌는데... 이 글을 보니까 더욱 입체적인 곳이겠구나, 멋진 여성들이 분투하고 있는 삶의 터전일테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도 역시 페미사이드 소식들은 너무 무섭네요...ㅠㅠ
  • 상어 2021/01/16 [15:09] 수정 | 삭제
  • 재밌게 읽었는데, 사파티스타 자치구에 대해 더 알고싶어지네요..
  • ㅇㅇ 2021/01/15 [20:32] 수정 | 삭제
  • 너무 흥미로운 내용이네요. 여성살해가 너무 심각해서 멕시코는 어떤 나라인가 싶었는데 한 단면만 볼 일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기사 읽고 페미력 솟는 기분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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