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밖 청소년…우리도 평안한 ‘집’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복지의 사각지대 ‘청소년 주거권’ 보장을 위한 제도적 방안 모색

박주연 | 기사입력 2021/02/27 [12:03]

집밖 청소년…우리도 평안한 ‘집’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복지의 사각지대 ‘청소년 주거권’ 보장을 위한 제도적 방안 모색

박주연 | 입력 : 2021/02/27 [12:03]

“저에겐 집은 숨 막히고 지옥 같은 공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목격한 제 친구들의 속사정은 이러했습니다. 저처럼 이유 없는 신체적 폭력을 겪은 친구, 아빠의 성폭력에도 어느 누구에게도 말 못 하고 가만히 있어야 했던 친구, 부모님의 계획대로 움직여야만 했던 친구. (기초생활)수급가구의 인원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서 머릿수만 채우는 느낌으로 여러 폭력에도 집에서 견뎌야 했던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그 친구들에게 집은 무섭고 적막한 공간이었습니다.”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수정 활동가와 그의 친구들에게 가족과 집이라는 공간은 따뜻하고 안전하지 않았다. 그는 “다른 사람들은 안전하고 편안한 곳이라고 말하는 집을, ‘아니, 우린 아니었어, 우리에게도 그런 집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바람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가족과 함께 하는 집이라는 공간이 모두에게 안전한 공간은 아니라는 건, 더 이상 숨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아동학대, 친족성폭력, 가정폭력이 무서운 말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끔찍한 현실이라는 걸 목도하는 요즘, 피해생존자로 탈가정한 청소년들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일이 시급해 보인다. 어떤 제도가 마련되어야 실질적인 도움이 될까?

 

거리 아웃리치 기관, 대안학교, 청소년 위기지원센터, 성폭력상담소, 대안 공동주거 등 다양한 청소년 지원 현장들과 청소년 주거권에 관심이 있는 연구자, 법률가 등이 함께 모여 2019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가 그 방법을 제시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 23일(화)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와 SH공사가 공동 주최한 <집 밖에서 집을 찾다-청소년 주거권 보장을 위한 토론회>에선 청소년 주거권 논의를 넓히는 것과 동시에 이를 현실화시키기 위한 정책 제안이 이뤄졌다.

 

쉼터가 아닌 주거를 지원하는 ‘청소년 주거복지센터’ 필요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제형 변호사(재단법인 동천)가 발표한 정책 제안은 크게 네 가지다. 첫 번째는 아동‧청소년 주거권을 보장하는 ‘청소년 주거복지센터’(가칭)를 설립하자는 거다. 센터가 필요한 이유는 현행법이 이 아동‧청소년들을 지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 23일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와 SH공사가 공동 주최한 "집 밖에서 집을 찾다-청소년 주거권 보장을 위한 토론회"에서 정제형 변호사가 제도적 문제점을 짚고 있다. (출처: https://youtu.be/iaAnV0TX7VA)


정제형 변호사는 “현행 청소년복지지원법에는 원가정에서 이탈됨으로써 일정한 주거가 없는 아동‧청소년에 대한 충분한 주거지원 규정이 없다”고 말했다. 또한 “현행 주거기본법은 ‘국민’에게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환경에서 인간다운 주거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탈가정 청소년을 완전히 포섭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니까 “주거지원이 없는 청소년복지, 청소년이 없는 주거복지”라는 거다.

 

정 변호사는 ‘위기청소년’에 대한 상담 및 복지제도가 있다고 하지만 “주거가 없는 아동‧청소년에게 쉼터를 연계하는 것 말고는 주거지원 업무를 수행하고 있지 않는” 상황이라는 점도 언급했다. 때문에 “청소년의 주거위기를 인정하고, 보편적 권리로서의 아동‧청소년 주거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위해 청소년 주거복지센터가 필요하다는 것.

 

이 센터는 단순히 쉼터를 연결하는 정도의 상담이나 지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거지원이 필요한 아동‧청소년이 주거권 보장에 관한 정책을 알고, 이해하고, 비교하여 자신이 희망하는 주거의 형태를 선택할 수 있도록 적절한 정보와 상담을 제공”한다. 또한 “주거를 위한 행정, 법률, 의료, 보건, 생활, 심리, 취업, 교육 등의 삶의 지원(복지서비스)을 주거를 기반으로 제공받을 수 있는 통합적인 지역 현장”을 만들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 아동양육시설은 집이 아니라 수용시설이다

 

정제형 변호사는 “수용시설인 현 아동양육시설(보육원)은 원가정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아동‧청소년의 주거대안이 될 수 없다”는 점을 꼽으며 시설 폐쇄도 제안했다.

 

현재 양육시설에서 “아동‧청소년의 일상생활, 교육, 표현, 종교, 거주이전 등과 관련한 자유가 광범위하게 침해”되고 있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정 변호사는 “아동양육시설 내 자유의 엄격한 제한은 인권침해로 이어진다”며, “매년 아동양육시설의 심각한 인권침해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다”고 말했다.

 

유엔(UN)에서도 그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2019년 9월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대한민국 제5‧6차 국가보고서에 대한 최종견해’를 통해 ‘구체적인 탈시설 계획을 통해 단계적으로 시설보호를 폐지하기 위한 적절한 인적, 재정적, 기술적 자원을 할당할 것’을 한국정부에 요구한 바 있다.” 하지만 “정부는 아동양육시설의 폐쇄 계획을 수립하지 않고 있다.”

 

무턱대고 시설을 폐쇄하라는 건 아니다. “청소년을 위한 주거정책이 아동양육시설 폐쇄 후의 대안이 될 수 있도록, 아동양육시설 폐쇄 계획을 고려하여 청소년 주거정책을 설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 많은 빌딩과 아파트, 빽빽한 다세대 주택들이 숲을 이루는 도시 서울. 탈가정 청소년들이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주거공간은?

 

청소년에게도 임대주택, 주택조합, 사회주택을…

 

시설에 머무는 동안에 일어나는 인권침해 등도 문제지만 청소년의 경우 “여전히 원가정 복귀 혹은 시설 수용의 관점으로 주거 또는 보호 정책이 설계∙운영”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쉼터나 시설로 가지 않고 노숙이나 가출팸(탈가정 청소년들이 채팅 등을 통해 만나 모텔 등에서 집단생활을 하는 것) 등을 선택하는 청소년들도 많다. 이런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서 청소년들의 목소리가 반영된 다양한 주거 대안이 나와야 하는 시점이다.

 

정제형 변호사는 “원가정과 시설 입소로 양분되어 아동‧청소년 주거권이 실현되지 않는 현실을 넘어 주거형태, 동거인 유무, 공유공간, 접근성, 주변생활환경 등을 고려한 다양한 주거 모델을 확립하고, 실제로 제공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발달장애인 아동을 위한 지원주택, 가정폭력 등의 피해경험이 있는 청소년을 위한 전환주택 등 아동‧청소년의 상황을 고려한 주거지원도 다양하게 마련되어야 한다”는 거다.

 

“주거지를 찾는 동안 또는 학업을 마치거나 취업할 때까지 임시로 머물 공간이 필요한 경우나, 자립 초기에 집중적인 지원이 필요한 경우에는 ‘전환주택’이나 기숙사 등 기한이 있는 주거”도 고려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전환주택에서는 자립 초기의 청소년을 위한 저축습관, 월세지불, 유지관리, 주거생활 등을 훈련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 이후에 “청소년이 자립으로 생애전환을 이루는 경우 공공임대, 매입임대, 주택조합, 사회주택 등 다양한 방식의 일정하고 적정한 주거가 보장”되어야 한다. 정 변호사는 이를 위해 “민간 기금(사회주택연계은행)을 활용해 주거급여 수급 청소년을 위한 사회주택 공급상품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은 시도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제안했다.

 

▲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에서 활동 중인 정제형 변호사가 "집 밖에서 집을 찾다-청소년 주거권 보장을 위한 토론회"에서 청소년 주거권을 위한 다양한 주거 방식에 대해 이야기 중이다. (출처: 청소년 주거권 보장을 위한 정책 토론회)


가구단위 보장을 원칙으로 하는 주거급여법 바꿔야

 

이런 제안이 현실화되려면 가구단위 보장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 현행 주거급여법을 바꿔야 한다. “개별가구의 구성에서 만30세 미만의 미혼자녀는 부모와 동일 보장가구에 포함되어 있어, 탈가정 아동‧청소년이 단독으로 주거급여의 수급 대상이 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예외가 없는 건 아니다. “원가정과의 관계 단절을 증명하고 원가정과의 생계 및 주거를 달리한다고 확인 받은 경우, 별도의 보장가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가족관계 해체의 증명, 주거급여를 받고자 하는 사람 명의의 임대차 계약과 전입신고 등이 필요”하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정제형 변호사는 “아동‧청소년의 탈가정 사유 중 압도적인 것이 아동학대와 방임”인 상황이지만 “많은 청소년이 부모를 신고하거나 피해를 입증할 증거를 남기지 못하며, 민법상 행위능력이 제한되는 아동‧청소년이 탈가정 후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기엔 법적, 현실적 제약이 크다”는 문제를 지적했다.

 

또한 “보건복지부 관할 아동복지시설을 퇴소한 청소년에게 제공되는 주거 등 자립지원이 여성가족부 관할 청소년복지시설인 청소년 쉼터를 퇴소한 이들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등, 관할부처별 지원 체계가 다르고 지원받을 수 있는 정도가 다르다는 문제”도 제기했다. 현장에서 혼란이 야기되고 있는 시스템을 일관성 있게 정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청소년 홈리스가 인정될 수 없는 구조도 변화가 필요하다. “노숙인복지지원법은 주거불안 상태에 놓인 포괄적 개념의 ‘홈리스’를 포섭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노숙인’을 만 18세 이상으로 규정하여 청소년 홈리스 개념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거리 위의 청소년들을 사각지대로 내모는 이런 정책도 이젠 바뀌어야 한다.

 

누구나, 언제든 최소한의 삶의 안정을 가질 수 있도록

 

10대 때 집을 나와 고시원, 하우스메이트를 거쳐 원룸에 정착했다는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이인 활동가는 청소년 주거권 논의가 “위기청소년을 구제해 주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당연한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주체들에게 권리를 되찾아 주는 자리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드러냈다.

 

▲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수정 활동가가 "집 밖에서 집을 찾다-청소년 주거권 보장을 위한 토론회"에서 자신의 경험을 공유했다.  (출처: https://youtu.be/iaAnV0TX7VA)


안전하고 편안한 공간을 찾아 헤맨 경험을 털어놓은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수정 활동가는 “출발선이 다르더라도 조건 없이 그 누구든, 동등한 위치에서 최소한의 삶의 안정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준비할 수 있도록 국가가 주거를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자기 자신, 주변과의 관계 그리고 사회를 돌볼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이야기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집은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기본이자 권리다. 주거는 기회나 운이 될 수 없다. 누구나, 언제든 집다운 집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그에 맞는 사회적 지원과 도움이 있어야 하고, 당연히 청소년들에게도 주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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