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캄보디아에서 온 여성 농업노동자들이다’

이주여성 농업노동자들의 국경 넘나드는 삶을 담은 20장의 사진

우춘희 | 기사입력 2021/05/31 [18:29]

‘우리는 캄보디아에서 온 여성 농업노동자들이다’

이주여성 농업노동자들의 국경 넘나드는 삶을 담은 20장의 사진

우춘희 | 입력 : 2021/05/31 [18:29]

많은 사람들이 이주노동자에 대해서 ‘돈 벌려고 온 동남아 외국인’ 정도로 생각합니다. 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서 이주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동남아’라는 말로, 한 범주로 묶기에는 16개국의 다양한 국가에서 노동자들이 한국에 옵니다. 이들이 있는 곳 시내에는 어김없이 ‘아시아 마트’가 들어서고, 대형 슈퍼 한쪽에는 아시아 음식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각국의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들어서기도 하지요. 이들의 문화는 지역 문화를 풍부하게 만들기도 하고, 이들의 소비는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은 자신의 방식대로 한국에서 적응해 나갑니다. 이주노동자를 차별하는 한국사회의 시선에 대해서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도 하죠. 이처럼, 이들은 엄연한 한국사회의 구성원입니다.

 

2019년 8월부터 2020년 7월까지 캄보디아와 한국을 오가며 찍은 사진 20장을 통해서, ‘이주의 과정’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들어오는 이주노동자들은 보통 4년 10개월까지 한국에 머물게 됩니다. 농번기에는 하루 10시간 넘게 일을 하고, 겨울철 농한기에는 일이 없기 때문에 본국에 돌아가 1달 정도 지내다 옵니다. 한국에 와서 사귄 같은 국적의 사람들과 함께 모여서 음식을 만들어 먹고, 외로움을 달래기도 합니다.

 

언론을 통해서는 이주노동자들의 한국에서 일하는 모습만 주로 접하게 됩니다. 그 단편적인 모습뿐만 아니라, 이들에게 국경을 넘나드는 삶의 여정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어깨에 고단한 희망이 한 줄 걸려있으며, 오늘도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할 일을 하는 이주노동자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보았습니다.

 

 <1> 프놈펜의 한 의류공장. 많은 청년여성노동자들이 퇴근 후 한국어 학원으로 향한다. (촬영: 우춘희)  


1. 캄보디아 프놈펜 외곽에는 중국의 의류공장이나 신발공장, 한국의 의류공장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습니다. 여기에서 20-30대 여성들이 일합니다. 이들의 월급은 2020년 기준 최저임금으로 190달러 (약 21 만원)입니다. 이곳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이 퇴근 후에, 한국어 학원에 가서 공부를 합니다. 많은 이들이 일년에 한 번 있는 고용허가제 한국어 시험을 준비하고, 한국으로 이주를 꿈꿉니다.

 

 <2> 트럭에 몸을 싣고 퇴근하는 여성들. (촬영: 우춘희)


2. 프놈펜 외곽에서 볼 수 있는 흔한 퇴근 풍경입니다. 의류공장이나 신발공장에서 일이 끝나면, 노동자들은 이처럼 트럭에 타고서 퇴근을 합니다. 포장이 되어있지 않는 도로에서는 먼지가 날리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렇게 자신의 스카프로 얼굴을 가려 먼지를 막곤 합니다.

 

 <3> 한국어 학원의 선생님과 학생들. (촬영: 우춘희)


3. 이곳은 한국어 학원의 모습입니다. “땀을 흘리다”, “기운이 없다”라는 단어가 칠판에 적혀있습니다. 검은색 옷을 입고 있는 선생님 또한 한국에서 배를 만드는 일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

 

 <4> 캄보디아의 추석, “프춤번” (촬영: 우춘희)


4. 한국의 추석과 비슷한 명절로 캄보디아에는 “프춤번”이 있습니다. 조금 다른 점은 추석이 음력 8월 15일이라면, 프춤번은 음력 8월16일부터 29일까지입니다. 이 때 지옥 문이 열리고, 조상님들이 밥을 먹기 위해 찾아온다고 합니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자신들의 7대 조상들을 기리며, 일곱 군데의 절에 찾아가서 조상님들을 위한 음식을 공양합니다. 이 많은 음식은 사람들이 정성 들여 준비하여 절에 공양한 음식입니다.

 

 <5> 프놈펜 국제공항. 이주하는 사람을 배웅하는 가족들 (촬영: 우춘희)


5. 프놈펜 국제공항입니다. 안에는 여권이 있는 사람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족과 지인들은 이렇게 문 밖에서 한국으로 가는 노동자를 배웅합니다.

 

 <6> 캄보디아와 한국, 양국의 국기가 붙은 점퍼를 입고 비행기 탑승수속을 기다리는 사람들 (촬영: 우춘희)


6. 프놈펜 국제공항 안의 모습입니다. 2020년 2월, 한국으로 떠나는 이주노동자들이 탑승수속을 위해 한 줄로 서있습니다. 검은 점퍼 앞 쪽에는 캄보디아 국기와 한국 국기가 조그맣게 붙어있고, 뒤에는 캄보디아어로 “캄보디아"라고 쓰여있습니다. 각각의 가방에는 각각의 사연과 꿈이 담겨있습니다.

 

 <7> 캄보디아 이주여성노동자의 일터 (촬영: 우춘희)


7. 고용허가제를 통해 매년 16개국에서 5만5천명의 이주노동자가 한국으로 옵니다. 2019년 기준, 그 중 캄보디아인은 7,773명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그 다음으로 네팔 국적의 노동자가 7,088명, 베트남에서 6,471명, 인도네시아에서 6,202명이 입국했습니다. 2020년에는 코로나로 인해서 전체 6,688명이 입국을 했고, 그 중 캄보디아인은 2,172명으로 압도적으로 그 수가 많았습니다. 이들은 전국의 제조업, 건설업, 농축산업 현장으로 갑니다.

 

 <8> 계약서에는 8시간, 실제 노동시간은 10시간 (촬영: 우춘희)


8. 깻잎을 따는 경우, 보통은 오전 6시 30분에 일을 시작해서 오후 5시 30분에 마칩니다. 점심시간은 1시간이지만, 어떤 사업장은 40분만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실제로는 하루 10시간 일을 하지만, 계약서에는 하루 8시간만 일을 한다고 적힌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9> 비 오는 노지에서 조심조심 깻잎 수확 (촬영: 우춘희)


9. 비닐하우스 안에서 깻잎을 따기도 하고, 이렇게 노지에서 깻잎을 따기도 합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깻잎에 빗물에 멍이 들지 않도록 더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깻잎의 상품가치가 떨어지면, 가격 또한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10> 물 호스 정리 작업. (촬영: 우춘희)


10. 고추밭 수확이 끝나고, 밭에 물을 주기 위해 설치했던 검은 호스를 정리하는 작업도  이주노동자들의 몫입니다.

 

 <11> 드디어 퇴근! (촬영: 우춘희)


11. 고단한 하루가 지나고 드디어 퇴근입니다! 보통 이주농업노동자들은 하루에 10시간 일을 하고, 한 달에 2번 쉽니다.

 

 <12> 좁고 더운 컨테이너 집 밖으로 나와 휴대폰을 확인하는 여성노동자. (촬영: 우춘희)


12. 이주노동자가 사는 컨테이너 집입니다. 계단을 올라가서 문을 열면 화장실이 먼저 보입니다. 그 화장실을 지나서 방문을 열면 왼쪽에는 부엌과 장롱이, 그리고 2-3명이 사는 공간이 나옵니다. 4-5평 남짓 공간에 화장실, 부엌, 방이 있어서 비좁습니다. 더운 7월에 선풍기로 생활하는 것이 답답하여 에어컨을 놓아달라고 했지만, 사장님은 알았다는 말만 하고 아직 에어컨을 달지 못했습니다.

 

사진에는 담지 못했지만, 이 집 바로 앞에는 비닐하우스가 있습니다. 그 안에서는 사장님이 노동자들이 따온 깻잎을 상자에 담는 포장작업을 합니다. 이곳에는 하루 종일 에어컨이 돌아가고, 이 시원한 바람은 깻잎이 더위에 상품가치가 떨어지지 않도록 막아줍니다. 니몰(가명) 씨가 저에게 한 마디 했습니다. “사장님은 우리보다 깻잎을 더 사랑하나 봐요.”

 

 <13> 고향음식을 함께 만들어먹으며 외로움과 고단함을 달래다. (촬영: 우춘희)


13. 가끔은 주변에 사는 캄보디아 노동자들이 모두 모여서 자신들의 고향음식을 같이 해먹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이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아시아 마트” 혹은 대형 마트 안에 “아시아음식” 코너가 생깁니다. 같이 음식을 먹으면서 타지 생활의 고단함을 달래기도 합니다. (5인 미만 집합금지 이전의 모습입니다.)

 

 <14> 한국에서 만난 연인의 조촐한 결혼식. (촬영: 우춘희)


14. 한국의 고용허가제는 가족 이주를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들 중에는 이곳에서 페이스북을 통해 만나거나, 혹은 캄보디아 식당에서 소개팅도 하며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5인 미만 집합금지 이전에 한 행사입니다.)

 

 <15> 고용허가 기간이 끝나면 돌아가야만 하는 시간. (촬영: 우춘희)


15. 한국에서 4년 10개월 동안 일을 하면, 이주노동자들은 본국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16> 체불임금을 받지 못한 채 돌아가는 미나 씨. 2020년 메이데이 행사에서, 한국은 이주민에게 어떻게 이렇게 차별적이고 잔인할 수 있냐고 항의했다. (촬영: 우춘희)


16. 일다 기사 “한국은 돈만 중시하고, 우릴 사람으로 보지 않아”(2021년 03월 22일자 https://ildaro.com/8998)에 소개된 미나 씨의 모습입니다. 사업주가 제대로 임금을 주지 않았습니다. 근로감독관의 조사를 통해 초과근무 때 받지 못한 체불임금과 연차수당을 포함해 3천3백만원이 체불되었다는 “체불임금 확인원”을 받았지만, 사업주는 끝내 지급을 거부했습니다. 결국 미나씨는 체불임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한 채 2020년 6월에 출국했습니다.

 

 <17> 고향으로 돌아와, 집에서 옷을 만들어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킴 레이 씨. (촬영: 우춘희)


17. 강원도 한 농장에서 4년 10개월 일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킴 레이 씨입니다. 남편도 한국의 제조업 분야에서 일하고 캄보디아로 돌아왔습니다. 지금은 4개월 된 아들이 있죠. 집 마당 앞에서 옷을 만들어 팔면서 생계를 이어갑니다. 레이 씨는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국에 가고 싶다고 말합니다.

 

 <18> 시골에서 도시의 공장으로, 캄보디아에서 한국으로, 다시 공장으로. 쏘콤 씨의 여정. (촬영: 우춘희)


18. 쏘콤 씨가 자신의 삶의 여정을 쭉 적어보고 있습니다. 18살 때 프놈펜에 와서 거의 10년 동안 여러 공장을 전전하며 일했습니다. 그러다 2012년에 한국에 와서 4년 10개월 동안 전라도의 몇몇 농장에서 일했죠. 캄보디아에 돌아가서 한국어 특별 시험을 보고 다시 한국에 오려고, 겨울 옷과 이불을 사장님 집에 맡기고 왔습니다. 그러나 그 해에는 한국어 특별 시험 계획이 없었고 결국 한국으로 가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다시 프놈펜 외곽의 의류공장에서 일을 합니다.

 

 <19> 한국의 농한기에 잠시 돌아온 고향, 어머니의 생일 잔치. (촬영: 우춘희)


19. 겨울에는 농장의 일이 많지가 않습니다. 이 때, 이주노동자들은 본국에 돌아가서 1-2달 지내고 옵니다. 이주노동자들은 캄보디아에서 약혼식과 결혼식을 하기도 하며, 어머니 생일 잔치를 마을사람들과 함께 모여서 성대하게 치르기도 합니다. 사진에서처럼 생일을 맞이한 어머니는 감사한 마음을 담아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 또한 빌기도 합니다.

 

 <20> 이주노동자들의 머리 위로 무지개가 펼쳐지길. (촬영: 우춘희)


20. 이주노동자들 모두는 자신만의 다양한 이야기를 갖고 있습니다. 자신이 지금 살고 있는 곳보다 조금 더 나은 곳이 있을까 하여 까치발을 딛고 기웃기웃 해봅니다. 우리 모두 그렇듯이. 이들의 머리 위에 고운 무지개가 드리우길 바랍니다.

 

※이 기사는 필자가 서울시 청년허브 공모연구 “코로나19로 인한 국경 이동의 제한이 이주민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통해 연구한 사례를 기반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또한, 마크장학금(Dr. Charles Mark Scholarship) 덕분에 캄보디아에서 현장연구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필자 소개: 우춘희. 현재 미국 매사추세츠 대학에서 사회학 박사과정 중에 있다. 캄보디아와 한국에서 현장 연구를 했다. 지금은 한국으로 이주한 캄보디아 이주농업노동자들에 관해서 논문을 쓰고 있다. 먹거리, 이주, 젠더에 관심이 있다. 2018년 사진전 <이주하는 그리고 보이지 않는>을 열었고, 2020년 <HYPHEN-NATION> 전시에 참여했다.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대중들에게 이주노동자들의 생생한 이야기들을 들려내고 싶고, 그 이야기의 힘이 사회를 바꿀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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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똔레삽 2021/10/08 [23:50] 수정 | 삭제
  • 고용주 입장으로서 지난 번 근로자 구할 때. 구직자가 캄보디아 사람 친구가 있냐고 연락 왔었고, 전화 통화까지 요청하면서 연락도 없이 면접에 불참하는 모습을 보면 캄보디아인이 좋은 모습만 보이는 것 같지는 않네요. 일하러 온건지 놀러 온건지..
  • heyeon 2021/06/13 [12:39] 수정 | 삭제
  • 일 마치고 돌아가는 뒷모습이 너무... 표정을 보지 않아도 자전거 탄 사진 한 장만 봐도 그 기분 알 것 같아요.
  • 미미 2021/06/05 [14:02] 수정 | 삭제
  • 채소를 살 때마다 예전과 같지 않을 것 같아요. 함께 숨쉬는 사람들을 기억하겠습니다.
  • 독자 2021/06/03 [19:37] 수정 | 삭제
  • 연재되는 기사들 참 고맙게 읽었습니다. 이번 기사는 총정리같은 느낌도 들고, 이전 기사들을 다 읽고나니까 꼭 사람들과 만난 것처럼 가깝게 읽히네요.
  • 둘리 2021/06/01 [00:33] 수정 | 삭제
  • 정말 사진의 힘이 크네요. 섬세하고 따스한 시선으로 포착한 이주 여성들의 모습에서 삶의 여정을 떠올려볼 수 있었습니다.
  • rashimi 2021/05/31 [23:34] 수정 | 삭제
  • 캄보디아에서 오래 일했었는데.. 프놈펜에서 저 광경을 매일 봤던게 생각나네요.. 그것이 싫어서 한국에 왔을텐데.. 한국이라곤 별다를게 없고... 10년전에도 그랬는데 아직도 변하지 않는 현실이 갑갑하네요. 사진 잘 보았습니다.. 논문도 궁금하네요... 의미있는 논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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