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정당이 집권? 이곳에선 먼 미래가 아니다

[기후위기 시대의 정치! 독일 녹색당 이야기]⑥

손어진 | 기사입력 2021/09/04 [18:20]

무지개 정당이 집권? 이곳에선 먼 미래가 아니다

[기후위기 시대의 정치! 독일 녹색당 이야기]⑥

손어진 | 입력 : 2021/09/04 [18:20]

※ 기후변화와 후쿠시마 원전사고,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정당’으로 떠오른 독일 녹색당. 환경만이 아니라 페미니즘과 다양성, 반식민주의와 열린 사회를 향한 정치를 추진해온 독일 녹색당 이야기를, 독일에서 지속가능한 삶과 녹색정치를 연구하고 있는 김인건, 박상준, 손어진 세 필자가 들려준다. [편집자 주]

 

녹색당은 환경만 생각한다? 독일 녹색당은 무지개당

 

2020년 5월 유럽연합 기본권리기구(FRA)에서 유럽 주요 30개 국가의 약 14만명 성소수자를 상대로 다섯 개 항목의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1) 일상에서의 개방성, 2) 지난 5년간 폭력 경험. 3) 지난 1년간 증오범죄 및 괴롭힘 경험, 4) 피해로 인한 결과. 5) 증오범죄 후 신고여부에 관한 것이다.

 

독일 레즈비언게이협회(LSVD)에 따르면, 이 조사에서 독일 성소수자의 경우(1만6천여 명 참여) 약 45%가 공공장소에서 파트너와 자주 혹은 항상 손을 잡는 것을 피하며, 24%가 폭력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특정 장소에 자주 가지 않고 있다. 특히 이들의 다수가 대중교통이나 도로에서 폭력을 당할 수 있다는 위협을 느낀다고 응답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 5년간 5~11%의 성소수자가 폭력을 실제 경험했다고 답했다. 특히 트랜스*[태어날 때 주어진 성별(지정성별)과 이후 정체화한 성별이 동일하지 않는 것으로,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를 포괄하는 의미]의 경우 10%, 인터*[성선(난소, 정소)이나 성염색체, 성호르몬, 성기 가운데 하나 또는 다수가 일반적으로 분류되는 여성/남성 특질과 다르게 태어난 사람]의 경우 11%로, 전체 성소수자 중에서도 이들에 대한 폭력이 가장 심각하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 녹색당은 성별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 등과 상관없이 모두가 동등한 권리와 자유를 누리고 자기 결정을 할 수 있으며, 자신이 결정한 성별/정체성을 어디서나 인정받을 수 있으며, 이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열린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성별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뿐만 아니라 연령, 출신, 민족, 종교, 장애여부 등에 따른 차별을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차별금지법의 경우, 독일에서는 1998년 녹색당과 사민당 연립정부가 유럽연합의 반차별 지침에 따라 차별금지법(ADG)을 제정하려고 했으나, 기민/기사당과 자민당의 반대로 입법에 실패했다. 이후 2006년, 기민/기사당과 사민당 연립정부는 기존의 차별금지법안을 일부 수정해 일반평등대우법(AGG)을 제정했다. 일상 생활이나 경제 영역에서 출신, 성, 종교, 나이, 장애여부, 성별 정체성, 성적지향 등에 따라 차별 받지 않도록 하는 포괄적인 법안이다.)

 

녹색당은 LGBTI의 권리뿐만 아니라 자녀가 있는 ‘무지개 가족’의 동등한 권리를 위한 기본적인 구조를 만들고자, 의회 내 다양한 법안을 제출하고 있다. 또한 동성애를 혐오하고 트랜스젠더를 적대하는 문화를 바꾸기 위해, 전국적인 행동과 캠페인을 조직하고 진행하고 있다. 독일 외 국가들에서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정당이나 단체들과도 연대해, 그 곳에서도 동성혼, 차별금지법 등이 제정될 수 있도록 협력하고 있다.

 

▲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 인터*를 위한 퀴어한 녹색당. 독일 통계청 2020년 설문에 따르면, 독일 인구의 약 7%가 퀴어 스펙트럼에 속한다고 답했다. 독일어는 대표적으로 성의 구분(여성, 남성, 중성)이 있는 언어인데, 성별을 구분하지 않으려는/혹은 모든 성별을 포함하려는 시도로 단어 뒤에 *를 표기한다. (출처: 녹색당 연방의회 원내교섭단체 홈페이지)


‘정상성이란 없다’ 제3의 성, 인터섹스 인정하라

 

2018년 12월, 독일 의회는 여성이나 남성이 아닌 제3의 성을 공식 인정하는 법안을 승인했다. 한 해 전인 2017년 11월,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여성에도, 남성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의 성 정체성도 보호되어야 한다”며 2018년 말까지 모든 공문서에 여, 남 외에 ‘제3의 성’을 표기하도록 법제화할 것을 의회에 명령한바 있다.

 

사실 독일은 2013년부터 여성이나 남성으로 정체화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성별란을 빈칸으로 남겨둘 수 있도록 했다. 출산한 자녀가 ‘간성’(인터섹스)인 경우(당시 독일에서 한 해 간성으로 태어난 아이는 150~340명에 달함), 출생신고서를 작성할 때 성별을 선택하지 않고 이후에 아이가 성별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인터섹스(intersex)로 남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문제였다. 2016년 9월 ‘제3의 성’ 법제화를 위한 시민단체인 드리테 옵치온(dritte Option, 세번째 선택)의 대표 반야(1989년 생)는 “인터섹스로 성별을 바꾸게 해달라"며 헌법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한 바 있었다. 반야는 공문서상에선 여자이지만, 염색체 분석에서 X염색체가 하나뿐인 터너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2017년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반야의 의료기록을 전제로 제3의 성을 인정한 것이다.

 

인터섹스의 기본권 보장 이슈를 의회로 가지고 온 것은 당연 녹색당이었다. 녹색당은 이미 2011년부터 출생 신고서를 비롯해 공문서 성별란에 남녀로 구분하지 않도록 할 것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간성 아동의 생식기 제거 및 수정을 금지할 것, 간성 아동/청소년과 그 부모, 성인들을 위한 자문 및 지원 서비스를 지원할 것, 학교 생물학/사회/윤리 과목에 간성이라는 주제를 필수로 포함할 것 등을 주장해왔다.

 

트랜스섹슈얼법 개정 요구, 성별과 이름 정정 요건 낮춰라

 

현재 녹색당은 ‘오직 당사자만이 스스로의 삶을 결정할 수 있다’는 원칙을 가지고 논바이너리, 인터*, 트랜스* 개인이 성별 및 이름을 변경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 등을 포함해 기존의 트랜스섹슈얼법(Transsexuellengesetz)을 개혁한 자기결정법(Selbstbestimmungsgesetz)을 통과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독일에서 트렌스젠더의 성별 정정이 인정된 것은 2006년이었지만, 2011년까지도 트랜스젠더가 성별을 정정하기 위해서는 생식능력을 제거하거나 ‘성확정 수술'을 할 경우에만 가능했다. 현재 독일에서 트랜스 개인이 성별을 바꾸기 위해서는 정신과 진단을 받고 여러 가지 의료 증명서를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 최소한 3년 동안 일상생활 어디에서나 커밍아웃을 했는지, 또 두 명의 상담사에게 자신이 바꾸고자 하는 성에 대해 수용하고 있는지와 지속하고자 하는지 등에 관해 상담을 받고 그 검토 보고서를 법원에 제출해야 하며, 최종 결정은 법원이 하게 되어 있다.

 

이에 녹색당은 일부 유럽국가들과 같이(스웨덴 2012년, 덴마크 2014년, 몰타 2015년, 아일랜드 2015년, 노르웨이 2016년, 벨기에 2018년, 아이슬란드 2019년) 스스로 자신의 성 정체성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할 것,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간소하고 투명한 절차에 따라 성별 및 이름을 변경할 수 있도록 기준을 낮출 것, 만14세부터 법정대리인의 개입 없이 성별 및 이름을 변경할 수 있게 할 것, 공문서에 성별 공개를 금지할 것 등을 주장하고 있다.

 

베를린에서 트랜스 논바이너리(Non-binary)로 살고 있는 카이*(독일에서는 보통 여성 이름과 남성 이름이 분명히 구분된다. 카이*는 논바이너리로 정체화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이름을 특정 성별이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바꿨다. 성별을 구분하지 않으려는/혹은 모든 성별을 포함하려는 시도로 이름 뒤에 *를 표기하고 있다.)는 한 인터뷰에서 “녹색당은 독일 의회에서 퀴어들을 대표하는 가장 강력한 정당 중의 하나이다. 트랜스젠더의 인권을 무시하는 현재 트랜스젠더법은 개혁되어야 하며, 그것이 내가 독일 녹색당의 젠더 전문 기관인 ‘군다 베르 너 연구소’(Gunda-Werner-Institut)에서 일하고 있는 이유이다”라고 말했다. 카이*는 유방절제 수술과 호르몬 치료와 같은 트랜지션을 위한 의료 서비스 비용을 자신이 논바이너리(Non-binary)라는 이유로 거부하고 있는 보험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놓은 상태이다.

 

▲ 독일 최초의 트랜스젠더 여성 의원인 테사 간세르(Tessa Ganserer). 2013년부터 바이에른 주의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간세르 주의원은 녹색당 퀴어위원회 대변인이자 LGBTIQ 정치가이다. 2019년, 테사라는 이름의 여성으로 살 것이라고 공식 발표한 그녀는 현재 트랜스젠더법에 명시된 추가 절차 이행에 따른 법적 이름 및 성 변경을 거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올해 초부터 바이에른 주의회에서 그녀는 Tessa Ganserer로 불리고 문서화되고 있지만, 9월 선거에 연방의원으로 출마해 선거용지에 찍히는 이름은 Markus (Tessa) Ganserer이다. 테사 간세르라는 이름이 찍힌 선거 포스터 앞에서 간세르 의원의 모습. (출처: Tessa Ganserer 의원 홈페이지)


보수 정권에서 통과한 ‘모두를 위한 결혼’ 제도

 

2017년 7월, 독일에서 동성 결혼이 가능하게 됐다. 보수 기독교 정당인 기민당 정부에서 통과가 된 동성 결혼 제도는 그동안 다양한 파트너십을 위한 녹색당의 의회 내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녹색당은 1994년 “모두를 위한 혼인”(Ehe für alle) 법률안을 최초로 의회에 제출했다. 보수 정당의 반대 속에서 2001년 녹색당과 사민당 연립 정부는 동성 동반자를 법적인 파트너로 등록할 수 있는 법안(시민 파트너십)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이 법으로는 동성 커플이 혼인에 준하는 세금 혜택을 받거나 아이를 입양을 할 수는 없었다.

 

2004년 녹색당과 사민당은 동성 결혼 허용 법안을 발의했지만, 역시 반대가 거셌다. 2017년에 녹색당은 사민당과 좌파당과 함께 또 한번 동성 결혼 허용 법안을 제출했다. 당시 9월 총선을 앞두고 녹색당은 기민/기사당의 유력한 연정 파트너로 거론되었는데, 녹색당은 연립정부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동성 결혼 허용안을 반드시 포함시킨다는 입장이었다. 결국 이 법안은 기민/기사당 의원들의 표를 얻어 과반을 넘어 통과되었다.(총 630표 중 찬성 393표, 반대 226표, 기권 7표. 기민/기사당 소속 의원 309명 중 75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지난 30년 동안 총 30번이 넘는 시도 끝에 거둔 수확이었다.

 

동성혼이 허용되었지만, 독일 사회에 성소수자들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여전히 남아 있다. 녹색당은 독일의 성소수자 82%가 성적지향을 이유로 차별을 경험하고 있음을 상기시키며, 일부 보수 정치인들이 동성혼 반대 헌법소원 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에 대항해 계속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 2017년 7월, 수십 년 간의 투쟁 끝에 연방의회에서 통과된 ‘모두를 위한 결혼’ 법안. 연방의회에서 녹색당 의원들이 축하하고 있다. “서로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권리가 있습니다. 성적 지향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은 존중되어야 합니다.” (촐처: 녹색당 연방의회 원내교섭단체 홈페이지)


이 밖에도 녹색당은 이성애 관계에서 결혼한 경우와 마찬가지로, 여성이 자녀가 있는 여성과 결혼할 경우 파트너의 자녀를 의붓자녀 입양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자동으로 법적 부모가 되는 방식으로 친자관계법을 개혁하고자 한다. 동성 부부가 아이를 갖고 싶어한다면 인공 수정에 대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 체계를 갖추기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나아가 결혼과 상관 없이 서로를 책임지고자 하는 두 사람의 권리 또한 결혼한 커플과 동등하게 보장될 수 있도록 하는(혼인관계에서 받는 세금 혜택 등) 시민파트너십 개정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

 

증오범죄를 낳는 혐오를 예방하기 위한 노력

 

녹색당은 독일의 일부 극우 정치가들과 종교인들이 성소수자들의 권리와 존엄성을 부정하며 공개적으로 하고 있는 차별과 혐오의 발언들이 증오 범죄를 낳을 수 있다고 강력히 경고하고 있다. 실제로 학교, 축구 경기장, 특정 영화의 장면 혹은 음악의 가사 등에서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구호들이 등장하며 성소수자들의 일상을 위협하고 있다.

 

녹색당은 사회 곳곳에서 적지 않게 표출되고 있는 동성애 혐오와 트랜스 젠더에 대한 편견과 적대감에 맞서, 다양성을 수용하는 “다양한 삶” 캠페인을 전국적으로 확대하고자 한다. 학교 및 대학에서의 교과 내용에 LGBTI 에 대한 내용을 포함해 다양성에 관한 교육을 진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퀴어 청소년(그 중에서도 레즈비언, 양성애자 10대 여성들, 농촌 지역에 살고 있는 청소년)이 학교와 가정에서 겪는 차별과 폭력, 커밍아웃의 어려움, 이로 인한 자살 위험에 대해서도 주목한다. 그러면서 이들을 위한 상담 및 개별 지원, 부모들을 위한 상담 센터 등에 연방정부 및 주정부, 학교와 청소년협회 등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미 연립정부를 여러 번 거쳤고, 올해 있을 연방선거에서 총리 배출을 희망하는 녹색당. 이제 녹색당이 없는 독일 사회는 상상할 수 없다. 퀴어는 우리 사회 어디에나 존재한다. 모두의 권리와 차별 없는 사회를 위한 녹색당의 의회 내 정책적 노력과 지역 사회, 학교 등과 함께 진행하고 있는 운동은 많은 사람들이 동등한 권리를 누리며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회 속에 드러내 살 수 있도록 만들어오고 있다.

 

[필자 소개] 손어진. 정치학을 전공했고, 베를린에서 독일/유럽연합의 R&D 정책분석을 하고 독일 녹색당 싱크탱크인 하인리히 뵐 재단 자료도 번역한다. 독일 녹색당의 정치적 역동을 경험하고 싶어 독일에 왔다. 움벨트(Umwelt) 모임 소속으로, 베를린의 녹색정치와 환경, 여성, 이민자 영역에서 다양한 만남을 통해 존재의 확장을 경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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