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커뮤니티의 ‘농담’이 모두를 웃길 수 있기를[박주연 기자의 사심 있는 인터뷰] 카메라로 ‘운동’하는 사람, 김일란따뜻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던 올해 봄, 유튜브 연분홍TV 채널을 통해 웹 시트콤 <으랏파파>가 공개되었다. 연인과 이별 이후 허전한 빈집에 청소년 성소수자 혀크를 하우스메이트로 들인 ‘레쓰-비언’ 부치 고현미와, 그들이 삶에 들이닥친 쌀차비. 퀴어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으랏파파>는 퀴어계의 대세 아이콘 이반지하가 극본을 썼다는 사실부터 주목을 끌었다.(관련 기사: ‘나는 역사적 사건이야’ 퀴어아티스트 이반지하의 전설 https://ildaro.com/8987) 이반지하 가라사대 “다큐하는 애들”인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가 기획, 연출한 작품이다.
연분홍치마는 이제 다른 노선(?)을 타는 것인가 싶었는데, 최근 멤버들 소식을 보면 그렇지도 않다. 성소수자 자식과 부모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너에게 가는 길>(변규리 감독, 2021)이 국내외 영화제에서 연이은 수상 팡파르를 울리고 있다.(관련 기사: “자식의 커밍아웃이 날 성숙한 시민으로 변화시켰다” https://ildaro.com/9036) 이지윤(빼갈) 감독과 넝쿨 PD의 신작 다큐멘터리 <내가 춤출 수 없다면>은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피치&캐치에서 상을 수상하며 제작 지원금을 획득했다. 김일란 감독의 신작 다큐멘터리 <에디와 앨리스> 또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프로덕션 피치 최우수 프로젝트로 선정되어 제작 지원금을 받았다.
고양이들이 반겨주는 연분홍치마 사무실에서 <으랏파파>를 연출한 김일란 감독과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며 궁금증을 해소하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의 대화에선 “농담”과 “생존(버티기)”이라는 중요한 화두가 대두되었고, 콘텐츠의 홍수 시대 창작 윤리, 새롭게 준비 중인 다큐멘터리와 딱 3편만 공개된 <으랏파파>의 후속 이야기 또한 엿들을 수 있었다.
“멤버들 모두 열심히 하고 있어요. 영광스럽게도 좋은 소식들이 이어지고 있죠. 변규리 감독의 <너에게 가는 길>은 다음 달 극장 개봉 예정이고요. 그만큼 힘들기도 해요. <으랏파파> 할 땐 제작비도 벌어야 해서 다들 투잡하고 그랬거든요.”
-‘연분홍치마하면 다큐멘터리’가 떠오를 정도로 다큐 필모그래피가 탄탄한데요. 2019년, 유튜브에 연분홍TV를 런칭하고 예능 쇼를 표방한 <퀴서비스>(퀴어들의 고민을 해결해 주는 서비스 본부)를 시작했잖아요? 단편 웹 드라마 <애기레즈의 고백법>과 웹 시트콤 <으랏파파>도 만들었는데, 다큐를 하다가 이런 재미 위주의 콘텐츠를 만들게 된 이유가 너무 궁금합니다.
“유튜브 같은 플랫폼을 활용하면 사람들과 조금 더 가깝게, 그리고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좀 더 쉽게 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연분홍치마의 영상 운동을 연장해서 시도해 보자는 생각이었죠. 다큐멘터리 만들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지점이, 극장에서 관객으로 만난 사람들을 광장에서 시민으로 만나고, 투쟁 현장에서 연대자로 만나게 되는 ‘감정적 이어짐’에 대한 것이거든요. 특히 퀴어 관객을 어떻게 만날 것인지에 대해서 항상 고민해왔어요. 조금 더 일상적인 공간, 요즘으로 치면 온라인 공간이죠. 그 곳에서 만날 수 없을까 생각하게 되었어요.
또 한편으론 퀴어 커뮤니티의 농담 만들기를 하고 싶었어요. 농담이라는 게 사회운동의 최전선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같이 웃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든다는 게 정말 어려운 운동이더라고요. 누구도 불쾌하지 않은 농담을 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일이요. 그래서 퀴어 커뮤니티에서 나누고 있는 농담을 비-퀴어들에게 전달하면서 함께 웃을 수 있는 농담을 만들어 보기로 했죠.”
-그 농담 만들기라는 게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전 흔히 말해 ‘노잼’ 인간이어서 농담 잘하는 사람들이 너무 신기해요. 타고난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퀴서비스> 진행자인 에디 님도 재미있는 농담 잘 하잖아요? 농담만큼 커뮤니티성이 강한 것도 없는 것 같아요.”
“전제가 같아야 웃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전제를 만든다는 게, 말하자면 우리 입장에선 ‘내러티브 운동’인데요. 어떤 사회적 서사가 통용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예를 들면, 코로나19 이전엔 누군가가 장례를 가족장으로 한다 그러면 ‘왜?’라는 질문이 따라왔어요. 일반적이지 않다고 여기니까 거기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는 거죠. 근데 지금은 가족장이 ‘이상’하거나 ‘특별’한 게 아니에요. 전염병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부르는 장례식을 할 수 없다는, 납득할만한 사회적 서사로 맥락을 얻었기 때문이죠. 코로나19 때문에 문화가 바뀌었고, 그래서 더 이상 해명하지 않아도 되는거죠.
이렇게 사회적 서사를 만드는 게 우리의 운동인데, 그 정점에 농담이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전제가 동일해야 모두가 웃을 수 있으니까요. 어떤 (사회적 소수자) 커뮤니티의 농담을 폐쇄적인 농담이 아니라, 커뮤니티 밖의 사람들과 함께 웃을 수 있도록 그 농담의 전제들을 확장시켜 나가는 게 사회운동 아닌가 싶어요. 우리가 그걸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욕심을 좀 냈는데… 정말 쉽진 않더라고요.”
-<퀴서비스>도 한번 (젠더퀴어 당사자들이 지적한 부분에 대해 수정하고) 재편집본을 올리는 일이 있었잖아요. 콘텐츠 제작하면서 고민이 많겠구나 싶었어요.
“연분홍TV가 엄청 파급력이 있는 채널은 아니지만, 퀴어 커뮤니티 안에선 또 영향력이 있으니까요. 콘텐츠 보는 분들도 그런 걸 알기 때문에 의견들을 주셨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수정하는 과정이 힘들진 않았어요. 오히려 당황스러웠던 건 <퀴서비스> 18~19화로 「시국 트랜스 T-타임」을 업로드하고 난 뒤였어요. 故 변희수 하사 강제 전역 문제, 숙명여대 합격자 A씨의 입학 포기 사건 등을 다루며 트랜스젠더 이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영상이었는데요, 참가자들이 한 말이 (커뮤니티 바깥의 사람들에 의해) 무맥락화, 탈맥락화되어 비난을 받았거든요. 당사자들은 괜찮다고 했지만, 저는 운동을 어떻게 해 나가야 하는지 다시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고, 대응 매뉴얼 같은 게 필요하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퀴어 이슈들을 다루면서 농담을 만들어 간다는 목적이기 때문에 시의적인 것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어요. 트랜서젠더 혐오 이슈도 다루고, 한동대와 장신대에서 벌어진 호모포비아 사건들도 다루고, 선거 땐 정치 이슈도 다뤘죠. 재미도 있었어요. 반응이 오는 걸 보는 것도 좋았고요.
1년 넘게 콘텐츠를 만들었는데, 지금은 좀 쉬고 있어요. 계속하고 싶은 의지도 있고, 욕심도 있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지만, 제작비 마련이 어렵다는 것이 큰 이유죠. <퀴서비스> 만들려고 알바 했어요. 연분홍치마는 연대 활동도 하고, 각자 작품도 해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하니까 힘들었죠. 유튜브에서 수익이 나려면 콘텐츠가 계속 쌓여야 하는데, 그걸 버텨낼 힘이 없는 거죠.”
-요즘 그래도 새로운 OTT 플랫폼들이 생기잖아요. 다들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도 한다 그러고요. 제작 지원을 받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요.
“저희도 계속 시도는 하고 있어요. <으랏파파>라는 시트콤도 만들었고, 주변 반응도 좋거든요. 다들 후속 편은 언제 나오냐고 물어보죠. 이반지하 작가랑 후속편에 대한 이야기도 어느 정도 구상해놨어요. 까메오로 누가 나오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했고. 저희도 만들고 싶어서 새로운 플랫폼에도 문을 두드리고 있는데… 이걸 전담할 인력이 없다는 게 아쉬움이죠.”
“연분홍치마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의 기본적인 태도는, 다큐멘터리라는 장르 자체가 타인의 삶을 빌려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는 걸 인지하는 거에요. 그렇기 때문에 타인의 삶에 대한 존중 없이 다큐를 만들 수 없죠. 그게 제1원칙이에요. 그 다음에 해야 하는 건 ‘동의를 어떻게 구할 것인가’죠. 대상이 된 사람들이 내가 해석한 자신의 삶에 대해 동의할 것인지의 부분이 있는데요. 전 (상대가) 나의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도 작품을 만들 순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그 상대가 자신의 삶을 재가공한 사람에 대한 신뢰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러니까 엄청난 합의가 필요해요. 자신의 삶에 대한 해석의 자율권을 창작자에게 준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신뢰의 과정이 있어야 하는 거고, 고도의 합의가 있어야 하는 거죠.”
-픽션의 경우는 다를까요? 과도한 PC(정치적 올바름)함이 창작을 해친다, 표현의 자유를 해친다고 이야기하는 창작자들도 있는데요.
“픽션 또한 누군가의 삶을 빌려오는 것이지 않나요? 실존인물이 바로 앞에 있는 것과 이 세상 어딘가에 살아 있을 것 같은 사람을 대하는 건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삶을 다룬다는 건 픽션과 논픽션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상상력의 영역이라는 것도 아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잖아요? 정치적 올바름은 내용이 아니라 형식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올바르다’라고 하는 걸 기계적으로 따라가는 게 아니라,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하는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그 질문을 형식화해 나가는 게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그런 과정이 있어야 창작이고 예술인 거잖아요. PC함이라는 건, 하지 말아야 할 금기가 아니에요. 금기라고 생각하니까 자꾸 나의 상상력이나 표현력을 제한하는 방해꾼이라고 여기는 것 같은데, 오히려 상상력을 더 확장할 수 있는 지표라는 거죠.”
“그런 게 우리의 꿈이죠. 그래서 퀴어 친화적인 제작 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고, 퀴어 촬영 스텝들도 양성하려고 있어요. 퀴어 친화적인 환경에서 퀴어 제작진들과 퀴어서사가 담긴 콘텐츠를 만들고 그것이 퀴어 관객들에게 가닿는, 순환의 고리를 만드는 게 궁극적 목표에요. <으랏파파>도 그런 시도죠.”
-신작 이야기도 묻지 않을 수 없는데요. 물론 이제 막 시작 단계이긴 하지만, <에디와 앨리스>라는 작품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두 명의 트랜스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인데요. 한국 사회에서 벌어진 트랜스젠더 혐오 사건들을 접하면서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었어요. 이전에 영화 <3xFTM>을 만들면서 트랜스 남성의 이야기를 담은 적이 있긴 하지만, 아쉬움과 미련 같은 게 남기도 했고요. 트랜스 여성에 대한 좀 다른 재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전히 미디어에서 여성에 대한 재현도 빈약하지만 트랜스 여성 재현은 더 빈약하니까요.
공부를 하다가 알게 된 게 있는데, 젠더(Gender)와 장르(Genre)의 어원이 같더라고요. 라틴어로 낳다, 제작하다 등의 뜻을 가진 ‘Gen’이요. 젠더라는 게 사실 장르화 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걸 한번 표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인공 중에 한 명인 에디 님과는 아는 사이였고, 그런 고민을 하던 중에 또 다른 주인공인 앨리스 님을 만나게 되었죠. 이들의 이야기를 담으면 좋겠더라고요.”
-완성된 영화는 내년, 내후년에 볼 수 있을까요?
“2023년 정도엔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 때 다시 또 인터뷰 할 수 있다면 좋겠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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