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파는(selling) 대신 항해한(sailing) 기록[페미니즘으로 다시 듣기] 즈네 아이코, 믹스테잎으로 시작된 여정즈네 아이코(Jhené Aiko)를 처음 알게 된 건 2011년 그의 첫 무료 공개 앨범 「Sailing Soul(s)」을 들었을 때다. 그 시기에는 믹스테입이라는 이름으로 앨범을 무료로 공개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즈네 아이코는 그 중에서도 두각을 드러낸 음악가였다. 당시 미국 알앤비 음악은 대부분이 2000년대에 유행했던 팝 스타일의 안정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었고, 앨범 무료 공개는 주로 래퍼들이 했지 보컬이 제작하여 배포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러한 가운데 즈네 아이코는 자신만의 색깔을 보여주었고, 30만 다운로드를 넘길 정도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앨범 제목은 영혼을 파는(selling) 대신 항해하겠다(sailing)는 의미를 담고 있다. 보통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영혼을 판다’는 비유는, 예술가적 정체성이나 자존심을 내려놓고 상업적인 것에 집중한다는 의미로 쓴다. 그렇게 영혼을 판 작품 중에는 성공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즈네 아이코는 이 때 이후로 영혼을 파는 작품을 한 적이 없다. 왜냐면 이미 아주 어릴 때, 영혼을 팔아 상업적인 성과를 내고자 대중음악 업계에 뛰어들었지만 처절한 실패를 맛보았기 때문이다.
10대 시절 그는 언론플레이의 희생양이 되었다. 당시 소속사가 그녀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실제로는 아무 관계도 없는 다른 음악가와 친척이라는 듯한 소문을 냈는데, 그렇게까지 하면서 주목을 받게 만들고자 했지만 결과적으로 성과가 나지 않아 결국 회사에서 방출 당했다. 그런 일을 겪었던 2003년 즈네 아이코는 10대 중반이었고, 음악적 가능성을 채 확인하기도 전이었으며, 학업을 계속 이어가고자 했던 시기였다.
2008년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즈네 아이코는 딸을 출산했다. 10대 시기에 이미 인생에서 많은 경험을 겪은 그는 20대 초반이 되던 시기에 비로소 자신의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앨범의 제목이 Sailing Soul(s)가 된 것이다.
첫 무료 공개 앨범을 통해 영혼을 항해한다고 얘기했던 것처럼, 즈네 아이코는 이후 10년이라는 기간 동안 정말 말 그대로 자신의 영혼을 항해한다.
첫 정규 앨범 발매를 앞두고 2013년 발표한 EP 「Sail Out」은 상대적으로 거칠게, 자유분방하게 만들어진 무료 공개 앨범 이후에 등장했다. 또 2014년 발표한 첫 정규 앨범 「Souled Out」은 자신의 이야기인 동시에 한 여성의 성장과 진화, 관계로부터 얻은 교훈을 담은 콘셉트 앨범이었다. EP는 무료 공개 앨범과 정규 앨범 사이에서 음악적으로는 좀 더 다듬어진 모습, 한 개인으로서는 좀더 성숙해지는 과정을 보여주었고, 앞선 두 앨범 이후 발표한 정규 앨범은 긴 여정을 지나 한 챕터를 마무리하는 갈무리라고 볼 수 있다.
*Jhené Aiko EP 앨범 「Sail Out」 수록곡 가사 번역(HiphopLE) https://hiphople.com/album/12200813
「Souled Out」 앨범에서 가장 대표적인 곡은 “Spotless Mind”다. 긴 시간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했고, 변화에 익숙해지며 오히려 계속 낯선 곳을 향해 가는 자신의 모습을 담았다. 동시에 그런 자신과 닮은 이를 사랑했던 기록도 담겨 있다. 관계와 변화, 삶이 성숙해지는 과정을 앨범 전반에 담았기에 이 한 곡은 앨범 전체를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Jhené Aiko “Spotless Mind” 가사 번역(DanceD) http://danced.co.kr/xe/index.php?mid=translation&page=314&document_srl=46904
그에게 연애, 즉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는 삶에서 굉장히 큰 요소였다. 물론 인생에 연애가 전부는 아니지만, 즈네 아이코는 그 과정과 결과에 큰 영향을 받았다. 자신이 쓴 곡의 내용처럼 그는 첫 정규 앨범 발매 이후에도 한 곳에 정착하지 못했고 계속 낯선 곳을 향해 갔는데, 이는 관계에 있어서도 그랬지만 삶 전반에 있어서 그러했다. 이를 엿볼 수 있는 앨범이 2017년 나온 「Trip」이다.
“Trip”의 의미 중 하나는 약물로 인해 겪는, 일종의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환각을 얻거나 정신을 잃는다는 속어 trippin’ 역시 여행(trip)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동시에 여기서 여행은 정신적, 육체적 여행도 의미한다. 이미 전작 「Souled Out」이 즈네 아이코의 자아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두 번째 정규 앨범은 좀 더 나아가 자신의 내면을 깊이 보여주고자 하는 작품이다. 스물 두 곡이나 되는 앨범의 규모 안에 그는 약물로 얻은 경험뿐 아니라 즈네 아이코라는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를 이야기하였고, 함께 작업하고 싶었던 이들도 많이 초대했다.
「Trip」 앨범 발매 전, 갤로어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여성이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것에 관하여 이렇게 이야기했다. “여성이 남성만큼 섹슈얼리티에 자신감을 가지지 못할 진짜 이유는 없다. 그건 상식이다. 내 조언은 거울을 보고 우리는 남성과 동등하며 남성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할 수 있다고 깨닫는 것이다. 우리는 그 이상도 할 수 있다. 남성들이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우리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그만큼 이 앨범은 스스로에게 솔직하고, 스스로를 솔직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미국사회에서 흑인 여성의 삶을 진득하게 기록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즈네 아이코 앨범 「Chilombo」(2000년) 라이브: https://youtube.com/watch?v=WhI40vjAjU0
그리고 지난 해, 즈네 아이코는 세 번째 정규 앨범 「Chilombo」를 발매했다. 이 앨범은 한층 더 솔직하다. 자신이 겪었던 사건과 그때 느낀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냈고, 동시에 흔들리는 스스로를 긍정하며, 결국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게 된 지금의 모습을 보여준다. 앨범은 작업 당시 겪었던 이별이 주된 키워드지만, 오히려 그 이후 과거와 달리 “더 이상 혼자 있는 것이 두렵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옆에 누군가가 있어야만 하는,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앨범은 앞선 두 작품보다 훨씬 밝고 힘이 있다.
첫 앨범이 자아를 찾아 나섰다면 두 번째 앨범은 스스로를 탐험했고, 이제 세 번째 앨범을 통해 그렇게 만나고 알게 된 스스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즈네 아이코의 여정을 보며, 마치 가까이 두고 아는 사람처럼 속내까지 들여다보게 되었고 늘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항상 자신이 지나온 시간과 현재를 정규 앨범에 투영하고, 꾸준히 3년 단위로 작품을 발표하며, 그 과정이 어딘가 힘겨워 보이면서도 아름답기에, 즈네 아이코의 세 장의 앨범은 구술생애사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뮤지션의 자취이자 역사로서 큰 의미로 다가온다.
*즈네 아이코 「Chilombo」 수록곡 가사 번역(HiphopLE) https://hiphople.com/album/16833898
즈네 아이코는 2020년 「Chilombo」 앨범을 통해 백만 장 판매라는 상업적 성과 외에도 그래미 시상식에서 올해의 앨범, 베스트 프로그레시브 R&B 앨범, 베스트 R&B 퍼포먼스 총 세 개의 부문에 후보로 올랐다.
처음 무료 공개 앨범을 냈을 때 ‘얼터너티브 알앤비’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사람 중 한 명이었지만, 크게 주목을 받았던 남성 음악가에 비해 그에 비견되는 음악적 혁신을 보여주고도 상대적으로 그만큼의 조명을 받지는 못했다. 2014년 발매한 「Trip」 역시 사이키델릭이라는 장르를 알앤비 음악에 적극적으로 가져오며 뛰어난 음악적 성과를 냈지만, 그만한 대우나 수상을 얻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는 음악적으로 앞서 있다. 세 번째 앨범은 대부분 프리스타일(정교하게 곡을 쓰는 것이 아니라 녹음 당시 즉흥으로 연주하는 것) 형태로 작업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즉흥성을 통해 지금까지 쌓아온 내공을 자연스럽게 보여주었고 앨범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
*즈네 아이코 「Chilombo」 앨범 수록곡 “Speak” M/V https://youtube.com/watch?v=EOWvbD2lPzI
어느덧 그가 첫 무료 공개 앨범을 발표한지 10년이 지났다. 즈네 아이코는 10주년을 기념하여 약간의 수정을 거쳐 정식으로 「Sailing Soul(s)」을 공개했다. 2011년 당시에는 드레이크(Drake), 칸예 웨스트(Kanye West)라는 유명한 음악가가 참여하여 화제가 되었지만, 2021년 버전에서 그들은 이제 없다. 그 이유가 좀 더 자신의 이야기로 채우고자 한 것이든, 혹은 트럼프를 지지한 칸예 웨스트나 혼외자녀를 숨기고 부정했던 드레이크의 행보, 가치관이 자신의 생각과 달라서든, 그 선택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다.
10년 간 꾸준히 완성도 높은 음악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해온, 그리고 단단해지는 모습을 통해 팬들에게 위로와 용기와 연대하는 마음까지 만들어 준 즈네 아이코라는 뮤지션을 나는 앞으로도 계속 지지하고 응원할 것이다. 평론가들은 ‘솔직함’이나 ‘용기’와 같은 단어로 그를 이야기하고는 하는데, 나는 이제 그것을 ‘지혜’라고 말하고 싶다.
*미 공영방송 NPR 프로그램 Tiny Desk Concert 라이브: https://youtube.com/watch?v=XVMJXZYgNfc
[참고자료] -미국 갤로어 매거진, “즈네 아이코는 업계의 비밀병기다”, 2017년 5월 17일 -미국 라디오 프로그램 브렉퍼스트 클럽, “즈네 아이코가 빅 션과의 콜라보, 새 앨범, 그가 실제로 어떤 종류의 매니아인지 이야기하다”, 2017년 1월 23일 -미국 <올드 골드 앤 블랙> 매거진, “즈네 아이코, 힐링, 알앤비와 함께 사운드를 통합하다", 잉 쑤 2021년 3월 11일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의 신문사 <데일리 캘리포니안> 블로그, “세계 여성의 날에 당신을 여왕처럼 느끼게 해줄 플레이리스트”, 오즈게 테르치오글루 2020년 3월 6일 -미국 노이지 매거진, “메간 디 스탈리온과 같은 래퍼들은 새로운 페미니스트 규범을 쓰고 있다”, 테일러 호스킹 2019년 8월 21일
[필자 소개: 블럭. 프리랜서 디렉터, 에디터, 칼럼니스트.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국내외 여러 음악에 관하여 국내외 매체에 쓴다. 저서로 『노래하는 페미니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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