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통해, 퀴어로서 스스로를 직접 정의하는 사람

[페미니즘으로 다시 듣기] 새로운 음악, 새로운 목소리, 호프 탈라

블럭 | 기사입력 2022/01/31 [10:55]

예술을 통해, 퀴어로서 스스로를 직접 정의하는 사람

[페미니즘으로 다시 듣기] 새로운 음악, 새로운 목소리, 호프 탈라

블럭 | 입력 : 2022/01/31 [10:55]

2019년, 영국에서 갑자기 등장한 한 음악가가 음악 시장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그의 이름은 호프 탈라(Hope Tala). ‘호프’는 본명이고 ‘나타샤’라는 가운데 이름을 변형하여 ‘탈라’라고 붙였다고 한다. 1999년생으로 브리스톨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여 수석 졸업했고, 캠브리지 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밟으려고 했으나, 때마침 자신의 작품이 주목을 받자 본격적으로 음악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 곡이 바로 “Lovestained”이다.

 

▲ 1999년생 영국 음악가 호프 탈라(Hope Tala)가 음악 시장에서 주목을 받게 된 곡 “Lovestained”(2019) 뮤직비디오 중에서

 

이전 해인 2018년에도 호프 탈라는 [Starry Ache]라는 EP를 냈지만 크게 주목을 받진 못했다. 그러나 2019년 “Lovestained”라는 작품과 [Sensitive Soul]이라는 EP로 그는 단숨에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게 된다.

 

호프 탈라가 주목을 받은 가장 큰 이유는 물론 음악 그 자체였다. 보사노바 장르를 현재의 시점으로 풀어내는데 성공했고, 음색과 가사 모두 보사노바에 더없이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표현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알앤비의 문법을 더하여, 그는 새로운 보사노바를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영국 런던의 흑인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지니고 있지만, 남미의 음악을 깊이 있게 담아내며 보사노바의 미래로 평가를 받았다. 이 시기 영국 <보그>지와의 인터뷰에서 ‘대학 과정 말기에 나온 곡이 때마침 좋은 반응을 얻었고, 이제 음악에 집중하게 되어 기쁘다’고 말한 바 있다. 같은 인터뷰에서 이러한 이야기도 했다.

 

“음악을 통해 나를 표현하고, 여성의 언어를 사용하고, 동성애자라고 밝히는 것이 나 스스로에 대한 신뢰감을 갖는데 크게 기여했다. 사람들이 내 음악을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건, 내 섹슈얼리티를 오픈하도록 계속 영감을 준다. 14살에 난 내가 양성애자라고 생각했고, 음악과 책을 통해 내가 LGBTQIA+ 커뮤니티에 속해 있다고 느꼈다. 이제 난 그 일부가 되고 싶다. 젊은 퀴어들에게 그들이 다양한 형태의 예술을 통해 스스로를 직접 정의하는 것은 중요하기 때문이다.”

 

▲ 호프 탈라(Hope Tala)가 2019년 발표한 EP [Sensitive Soul] 자켓 이미지

 

호프 탈라의 가사는 굉장히 은유적이다. 그래서 일차원적으로 들으면 바로 뜻을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곱씹어볼수록 그 안에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영문학을 공부한 그는 셰익스피어식 글쓰기를 가장 좋아한다고 말한 바 있으며, 영향을 받은 작가로는 나이지리아의 페미니스트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Chimamanda Ngozi Adichie), 작가이자 영화 제작자, 선불교 승려인 루스 오제키(Ruth Ozeki), 소수자 인권을 위해 싸워온 작가 오드리 로드(Audre Lorde)와 마야 안젤루(Maya Angelou) 등을 꼽았다.

 

영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은유적인 가사를 쓴다는 점에서, 또한 문학가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점에서, 알로 팍스(Arlo Parks)와 비슷한 부분이 있다. 호프 탈라의 가사들은 풍부한 은유를 통해 퀴어의 사랑을 아름답게 표현해내고, 그러면서도 여성들에게 용기를 준다는 것이 특징이다.

 

행복으로 다시 빠져든다

당신이 나에게 더 많은 시간을 주기 때문에

나처럼 노래하는 삶을 살기 위해

당신은 기쁨으로 나를 나른하게 한다

그리고 나는 축복받은 기분으로 다시 빠져든다

당신은 정말 괜찮으니까

난 너와 함께 햇살 속으로 갈게

그리고 자정에 뒤로 건너갈 거야

-Lovestained 중에서

 

※Hope Tala - Lovestained M/V https://youtube.com/watch?v=CqCzXDPNX5Q

 

한편으로 호프 탈라는 래퍼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에게 크게 감명을 받았다고 하는데, 특이한 건 학부 논문 제목이 “켄드릭 라마의 [To Pimp A Butterfly]의 백인 관중의 존재”였다고 한다. (켄드릭 라마는 2010년대를 대표하는 음악가 중 한 명으로, 인종차별을 비롯하여 사회 부정의에 대해 비판적이면서도 철학적인 가사를 썼고, 2018년에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최초의 힙합 아티스트가 되었다.)

 

▲ 호프 탈라(Hope Tala)가 2020년 발표한 싱글 “All My Girls Like to Fight” 뮤직비디오 중에서

 

이후 2020년 호프 탈라가 발표한 곡이 바로 “All My Girls Like to Fight”라는 싱글이다. 이 곡은 은유적인 표현으로 여성도 싸울 수 있고, 특히 모이면 강한 힘이 된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가사도 매력적이지만 뮤직비디오를 꼭 봐야 하는데, 자신과 같은 흑인 여성의 힘과 주체성에 관하여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음악 저널리스트 샘 리디콧(Sam Liddicott)과 나눈 인터뷰를 보면 그 의미를 더욱 잘 알 수 있다.

 

“나는 대담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확실히 적극적인 사람이다. 항상 그래왔다. 나는 자기 주장을 하지 않는 유색인종 여성이 성공하거나 생존하는 걸 본 적이 없다. 물론 이 주장은 종종 지배적이거나 공격적인 것으로 오해 받고 여성, 특히 흑인 여성에게 매우 해로운 고정관념을 일으킨다. 그런 고정관념까지 이기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주장은 곡을 만드는 상황에서 내 소리를 보호하는데 특히 유용한 특성이다.”

 

난 널 힘들게 하는 게 좋아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고 생각했어

내 옛 연인들의 유령들

조용히 해, 소리내지 말고

왜냐면 내 여자들은 모두 싸우는 걸 좋아하니까

-All My Girls Like To Fight 중에서

 

※Hope Tala - All My Girls Like To Fight M/V https://youtube.com/watch?v=FWme81uDHiw

 

▲ 호프 탈라(Hope Tala)가 2020년 발표한 EP [Girl Eats Sun] 자켓 이미지

 

호프 탈라의 여정은 계속되고 있다. 그의 EP [Girl Eats Sun](2020)은 좀 더 풍부한 표현과 직접적인 이야기, 특히 유색인종 여성을 사랑하는 유색인종 여성인 자신이 겪어 온 이야기를 담아낸다. 그는 결코 이를 비극적이거나 유약하게 묘사하지 않는다. 지난 해 발표한 최근 곡인 “Tiptoeing” 역시 비슷한 맥락을 좀 더 빨리 읽어낼 수 있으면서도, 아름다운 묘사에 감탄하게 된다. 뮤직비디오만 봐도 그 매력이 충분히 전달될 것이다.

 

※Hope Tala - Tiptoeing (Official Video) https://youtube.com/watch?v=txSkcJavEVc

 

팬데믹 시기에도 그는 음악 작업을 계속했고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호프 탈라의 음악을 알게 되고 좋아하게 된 사람들은 전 세계에 생겨났고, 음원 플랫폼 스포티파이 내에서만 월 백만 명이 그의 음악을 듣는다. 음악적으로도 굉장히 훌륭한데 그 안에 담긴 의미나 그것을 드러내는 문장들도 너무 아름다워서, 호프 탈라는 앞으로 더 큰 존재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음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아직 정규 앨범이 없는 만큼, 그가 에너지를 한꺼번에 모아 더 큰 작품을 선보일 때 어떤 변화와 영향을 가져올 지 기대된다.

 

[참고 자료]

-미국 음악잡지 <롤링 스톤> “호프 탈라는 여름 아침의 노래를 만들었다”(엘리아스 하이트, 2019년 3월 22일)

-패션지 <보그 영국판> “호프 탈라의 [Sensitive Soul]은 당신의 여름 우울을 날려줄 것이다”(소이 킴, 2019년 8월 14일)

-미국 종합 문화 잡지 <콤플렉스> “호프 탈라는 자기 발견을 사운드트랙으로 만드는 가수다”(타라 아퀴노, 2019년 8월 15일)

-영국 매거진 <원더랜드>, “새로운 소음: 호프탈라”(2020년 9월 25일)

-미국 온라인 기반 문화 매거진 <유포리아> “인터뷰: 호프 탈라”(미키 핼러바흐, 2020년 11월 13일)

-영국 독립 문화 잡지 <레이디건>, “호프 탈라의 EP [Girl Eats Sun]은 영원한 바이브다”(2020년 11월 14일)

-남성 패션지 GQ 중동판, “나의 여성들은 희망을 좋아한다”(2021년 2월 7일)

-미국 독립 예술 잡지 <블랭크> “호프 탈라”(테네시아 카, 2021년 3월)

-음악 저널리스트 샘 리디콧의 블로그 ‘뮤직 뮤징스 앤 서치’, “스포트라이트: 호프 탈라”(2021년 4월 24일)

 

[필자 소개] 블럭: 프리랜서 디렉터, 에디터, 칼럼니스트.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국내외 여러 음악에 관하여 국내외 매체에 쓴다. 저서로 『노래하는 페미니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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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MK 2022/02/03 [14:55] 수정 | 삭제
  • 흑인여성에 대한 편견은 진짜 생각보다 심한 것 같더라구요. 아시아 여성에 대해서는 정반대의 이미지가 있고 그것도 심각하지만.. 자기주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자들은.
  • 구구 2022/01/31 [20:34] 수정 | 삭제
  • 영국 뮤지션인 줄 몰랐네요. All My Girls Like to Fight라니 멋지다
  • 보이스 2022/01/31 [12:30] 수정 | 삭제
  • 보사노바 좋아하는데 Lovestained이란 곡 진짜 매력적이다.. 목소리가 바람 같아요. 따뜻한 바람이 불어올 때 쯤 들으면 더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롤링스톤지에서 여름 아침의 노래를 만들었다는 표현을 쓴 걸 보니까 반가움이 두 배. 무슨 의민지 너무 알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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