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소년범을 혐오합니다”라는 캐치 프레이즈는 드라마 <소년심판>이 공개되기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워낙 쟁쟁한 배우진들이 예고에 등장하기도 했고, 특히 그 출중한 배우들이 법복을 입은 채 엄중한 얼굴로 내뱉는 대사가 워낙 강렬하고 자극적이었던 탓도 있으리라. 대상이 누가 되었든, “혐오”라는 단어는 어쩐지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넷플릭스를 통해 지난 2월 공개된 드라마 <소년심판>은 그 캐치 프레이즈만큼이나 사회에 많은 파장을 불러왔다. 기존에도 치열한 논의가 있었던 ‘촉법소년’ 문제부터, 실제와는 거리가 있지만 판사들이 소년범 사건에 직접 뛰어드는 모습, 잔혹하게 묘사되는 각종 소년들이 저지르는 범죄와, 소년법에서 목표하는 교화와 그 사이 떠오르는 질문들까지…. 캐스팅을 떠나서도 어떤 방면으로든 화제가 되지 않기 어려운 소재다. 개인적으로도 재미있게 봤지만, 작품이 끝나고서도 끝나지 않을 소년들의 삶을 생각하면, 입 안이 조금 썼던 것도 사실이다.
촉법소년, 연령 하향으로 해결될 문제일까?
특히 <소년심판>은 이미 오랜 시간 심판대에 올라왔던 ‘촉법소년’ 문제를 첫 에피소드로서 직접적으로 다루며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실제 소년보호사건에서는 단독판사가 재판하고 소년보호사건과 형사사건을 병합해 재판하는 것 역시 불가하다. 하지만 극적 허용으로 드라마 내에서는 연화지방법원의 ‘소년형사합의부’라는 가상의 재판부가 존재하며, 사건에 대한 판사들의 개입도가 높다.
극 중 첫 에피소드인 ‘연화 초등생 살인사건’(2017년에 발생한 ‘인천 동춘동 초등학생 유괴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함)은 SNS를 통해 만나 연인 사이가 된 백성우와 한예은(각각 15세와 18세)가 초등학생 남아 윤지후를 계획적으로 토막 살인한 사건이다. 가해자 중 백성우는 소년법에 따라 형사처벌을 받지 않고 최대 2년의 보호처분을 받는 만 14세인 촉법소년에 해당한다.
실제로 백성우는 자신이 촉법소년임을 활용하여 진범인 한예은 대신 자수한다. 그리고 재판정에서 소리 높여 웃으며 외친다. “촉법소년이니까 감옥 안 간다, 신난다!” 굳이 일일이 묻지 않아도 <소년심판>을 시청하는 이들에게 많은 분노를 불러올 장면임을 예상할 수 있다. 이미 그 분노로 인해 소년법은, 촉법소년 연령은 오랜 기간 심판대 위에 올라와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대 대선에서 이재명, 윤석열, 안철수 후보 공약에는 공통적으로 촉법소년의 연령을 만 14세에서 12세로 하향하겠다는 소년법 개정이 포함되어 있었다.
대선 기간 가장 유력했던 세 후보의 공약에 포함될 만큼 촉법소년 연령 하향에 대한 요구가 드높았던 것은, ‘끔찍한 범죄를 저질러도, 그저 어리기 때문에 합당한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분노가 주요한 정서일 것이다. 실제로 아동청소년에게 “책임은 지지 않고 요구만 한다”고 말하는 이들은 책임의 영역에서 촉법소년 제도를 예로 들며 “책임”을 “형사처벌”로 치환해 아동청소년을 비난하기도 한다.
극 중 심은석 판사(김혜수 역)는 “그 나이에 감히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소년범을 혐오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촉법소년 제도는 정말 아동청소년의 책임 면피용으로만 쓰이고 있을까? 아동청소년이 형사 처벌을 받는 것을 ‘책임’의 영역으로 볼 수 있을까? 촉법소년 연령을 하향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실질적으로 어떤 의미일까?
촉법소년 연령을 하향하라는 요구는 결국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을 더 오래, 많이,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엄벌주의 강화에 대한 요구이기도 하다. 하지만 엄벌주의 강화가 재범 방지 효과를 보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다양한 해외 사례로서 증명되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2018년 8월 29일에 발표한 성명 ‘형사미성년자 연령을 13세로 낮추는 정책에 반대한다’에 실린 사례는 이와 같다.
“미국의 형사이송제도(미성년자라 하더라도 특정 범죄를 저질렀거나 재범의 위험이 크다면 소년법원이 아니라 형사법원으로 이송해 성인과 동일하게 처벌하는 제도. 2003년에는 31개 주까지 확대되었음)가 엄벌주의의 대표적 제도였지만, 형사 이송되어 성인과 동일하게 처벌받은 소년들은 소년법원에서 교육과 보호처분을 받은 소년범들과 비교하였을 때 이후 재범 범죄의 수가 더 많았고, 재범이 발생하기까지 걸린 시간도 더 짧았다. 더욱이 형사이송제도를 통해 이송되었던 소년범들은 대부분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하고 빈곤한 가정의 출신이었다. 결국 미국은 2004년부터 형사이송 연령을 다시 높이고 형사이송의 범위를 축소하는 정책을 선택했다.” 결국 엄벌주의가 장기적으로 재범 방지와 사회적 환경 개선에 효과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더불어 촉법소년 제도에 대한 구체적 이해 없이, 백성우의 일면적 대사를 통해 촉법소년을 악마화하는 것은 문제적이다. 살인을 저지르고, 촉법소년이기 때문에 낮은 처벌로 재판정 내에서 공공연히 기뻐하는 백성우라는 캐릭터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분노와 흥분을 불러일으킨다. 백성우가 극 중 유일한 촉법소년으로 등장하는 것은, 실제 재판대에 오른 촉법소년들이 백성우와 같은 생각으로 촉법소년 제도를 ‘악용’하고 있을 것이라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생산할 수 있다.
하지만 검찰에서 사건 처리된 전체 소년 범죄자 중 14세 미만 범죄가 차지하는 비율은 2008년 2.8%에서 2016년 0.1%로 지속해서 감소했다.(참고: [연합뉴스] "한국 형사미성년자 14세→13세 안 된다" 민변 등 유엔에 전달) 이와 같은 자료는 촉법소년이 현실적으로 “악용”되는 제도가 아님을 시사한다. 2019년 UN 아동권리위원회는 가입국가들에게 형사책임 연령을 최대한 유지하고, 오히려 상향할 것을 권고하며 아동인권에 대한 국제인권 기준을 강조하기도 했다.
‘소년은 혼자 자라지 않는다’
특히 미국의 형사이송제도를 통해 이송되었던 소년범들이 대부분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하고 빈곤한 가정의 청소년이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소년심판>에 등장하는 소년범들 역시 구체적 서사가 드러나지는 않지만, 대부분 불우하고 빈곤한 환경 출신이라는 것은 이들의 과거로 언뜻언뜻 등장한다. 쉼터에서 도망쳐 나와서도 여성 친권자에게 외면당하는 최영나, 또래 집단으로부터 장기적 폭력에 시달리는 곽도석 등등… 물론 불우하고 빈곤한 가정환경이나 폭력피해 경험 등이 범죄를 정당화하지는 않으며, 한편으론 빈곤층 시민들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강화할 수도 있다. 극 중 단편적 상황으로만 오버랩되는 소년범들의 가정사는 시청자들에게 ‘가정환경의 불우함과 빈곤’을 동정하는 시혜에 그칠 확률이 높다는 우려가 들기도 한다.
그러나 극 중 심은석 판사는 쉼터에서 도망쳐 생존을 위한 급전을 위해 성매매를 시도한 여성 청소년들에게 판결을 내리며, “소년은 결코 혼자 자라지 않습니다. 오늘 처분은 소년에게 내렸지만, 그 처분의 무게는, 보호자들도 함께 느끼셔야 할 겁니다.”라고 말한다. 이는 소년범들을 대해 ‘범죄를 저지른 건 네 선택이기 때문에 개인이 엄벌로서 책임져야 한다’는 이야기의 허구성을 드러내는 강력한 대사이기도 하다.
위 재판을 받은 여성 청소년들은 비교적 규정이 느슨한, 개인이 운영하는 쉼터에서도 담배를 피우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식사 자리에서 행패를 부리는 등 이른바 “불건전한” 태도를 이어간다. 그리고 이는 적은 예산으로 두 딸의 도움으로 혼자 쉼터를 운영해나가는 소장의 헌신적 태도와 대조되며 더욱 ‘영악하고 발랑 까진 아이들’의 이미지로 드러난다. 하지만 이러한 소년들의 이미지가 중심적으로 드러날 때, 결국 소년들은 왜 쉼터에서 ‘반항적 태도’를 보이는지에 대한 질문은 공백으로 남는다.
실제로 여성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쉼터에서 머무른 적이 있었던 활동가는, “쉼터 교사들은 모든 것에 이해할 수 없는 규칙을 세웠는데, 소지할 수 있는 물건의 종류부터 시작해서 주말에는 어디에 있을 수 있는지, 누구를 만날 수 있는지, 심지어는 내 몸을 내가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까지 규칙을 내세웠다.”라고 후기를 썼다.([위티] 허락은 필요없다 <나에게 필요한 건 허락이 아닌, "나의 성생활을 탓하며 불안을 나에게 떠넘기지 않는 사회"였습니다> 2020년 12월 15일, 피아)
극 중에서는 담배와 술 등으로 대표되었지만, “건전한 청소년에 대한 뚜렷한 상을 가진 교화 목적”의 쉼터에서 청소년들의 자유를 어디까지 제한했을지 상상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리고 이렇게 개인적 시간과 공간을 운용할 권리를 박탈당했음에도 소년범이라는 이유만으로 이조차 감지덕지로 여겨야 하는 여성 청소년들의 쉼터 탈출, 그 이후가 급전을 위한 성매매 시도로 이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성매매는 인정받는 학력도, 돌아갈 가정도 부재한 여성 청소년들에게 시간 대비, 가장 생존할 확률이 높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혐오’나 ‘심판’으로 설명되지 않는 삶
소년이 혼자 자라지 않는다는 심은석 판사의 대사는 한 에피소드에서 등장했지만, <소년심판>에 등장하는 모든 이야기를 관통하기도 한다. 소년은 혼자 살아가지 않기에, 혼자 변화할 수도 없다. 소년을 넘어 사회에 등 맞대고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들은 모두 홀로 살아가지도, 홀로 변화하지도 않는다. 소년범죄에 대한 판결은 개인에 대한 처벌 외에도, 소년범을 양산해내는 사회적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촉법소년 재범 방지에 대한 다양한 고민이 필요하며, 소년범에 대한 사법처벌만이 아닌 복지와 사회적 환경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 역시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처분의 무게는 보호자만이 아닌 사회가 함께 느껴야 한다.
<소년심판>은 소년범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는 동시에 불식시키기도 하는 다양한 장면과 요소를 담았다. 그렇기에 “웰메이드 드라마”이기도, “소년범을 악마화하는 드라마”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재판 과정에서 반말을 듣고, 진술권이나 변호사의 조력권을 온전히 존중받지 못하는 누군가의 ‘현실’이 있다. 어른의 시선에서 소년범을 조망하고 이해시키는 것 이상의 시도가 없었다는 한계도 있다. ‘어른이 납득할만한 소년범의 서사’에는, 청소년이 특정한 환경을 벗어나면 곧장 ‘불법적인 존재’가 되어버리는 현실에 대한 문제 제기가 없었다.
<소년심판>이 소년범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이끌어낸만큼, 청소년의 사회적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기를 희망한다. 구체적 현실에 발 딛고 있는 소년의 삶이, 손쉽게 ‘혐오’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필자 소개] 최유경. 여성 청소년의 삶에서 시작하는 변화를 만드는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에서 활동합니다. 나중 말고 지금, 청소년 시민들의 삶이 변화할 수 있도록 말하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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