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범죄’가 아니라 ‘페미사이드’ 미수 사건이죠

‘페미사이드 없는 일본을 만드는 모임’ 미나모토 나츠키 인터뷰

가시와라 토키코 | 기사입력 2022/04/29 [19:11]

‘묻지마 범죄’가 아니라 ‘페미사이드’ 미수 사건이죠

‘페미사이드 없는 일본을 만드는 모임’ 미나모토 나츠키 인터뷰

가시와라 토키코 | 입력 : 2022/04/29 [19:11]

일본에서는 2021년 8월, 수도권 전철 오다큐선 차량 안에서 여자대학생이 면식 없는 30대 남성의 칼에 찔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다른 승객들도 칼에 찔려 열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가해자는 “6년 정도 전부터 행복해 보이는 여성을 보면 죽여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었다.

 

대학생인 미나모토 나츠키(皆本夏樹) 씨는 이 사건을 ‘여성’이라는 이유로 자행하는 살해, ‘페미사이드’(femicide) 미수 사건이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페미사이드 없는 일본을 만드는 모임’ 발기인이 되어 여성에 대한 증오범죄의 실태를 밝히고, 대책과 예방책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 2021년 8월 오다큐선 전철에서 발생한 여성혐오 살인 미수 사건을 계기로 ‘페미사이드 없는 일본을 만드는 모임’을 만든 미나모토 나츠키(1998년생) 씨.  ©오치아이 유리코

 

#행복해 보인다는 이유로 우리를 죽이지 말라

 

사건 다음 날, 도쿄에 있는 페미니스트 서점을 찿아갔더니 서점 안에 이번 사건의 경위와 ‘페미사이드’에 대한 글이 적혀 있었다.

 

“집에 돌아가 직접 이것저것 조사하면서, 이 사건은 단순한 ‘묻지마 범죄’가 아니다, 배경에는 미소지니(misogyny, 여성혐오)가 있고 성별을 이유로 한 폭력이라는 것을, 페미사이드(femicide)라고 명명함으로써 가시화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정폭력 범죄의 경우도 가정폭력이라는 말이 생기고 나서야 처음으로 실태가 명확해지고, 대책이 강구되었잖아요.”

 

2012년, 세계보건기구(WHO)의 보고서에 ‘페미사이드’가 기재되었고, 최근 유엔에서도 대책과 감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다. 프랑스, 멕시코 등 사회문제화 된 나라들도 있다.(관련 기사: “여성살해를 멈춰라”…멕시코의 페미니즘 열기 https://ildaro.com/8943)

 

미나모토 씨는 지금까지도 SNS를 통해 성차별에 대해 문제 제기하는 글을 올려왔지만, “나를 아는 사람들이 지켜주는 공간 안에서 얘기해봤자 별 의미가 없다. 뭔가 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먼저 떠오른 것이 한국에서 2016년에 한 남성이 면식 없는 여성을 혐오 살해한 ‘강남역 살인사건’이었다. ‘그녀가 나였을지도 모른다’고 느낀 수많은 여성들이 살해 현장 부근으로 나와서 피해자를 추모하는 포스트잇 메시지를 붙였다.

 

이번 사건이 일어난 지 이틀 후, 미나모토 씨는 범행 장소와 가까운 역 구내에 메시지 몇 개를 써서 붙였다.

 

#StopFemicides

#행복해 보인다는 이유로 우리를 죽이지 말라

 

여성에겐 일상적인 공포…그저 무사히 집에 가고 싶다

 

또 다른 방법은 없을까. 사건으로부터 일주일 후, ‘페미사이드 없는 일본을 만드는 모임’을 만들었다. 그리고 ‘오다큐선 사건을 계기로 페미사이드 실태조사와 대책을!’ 요구하는 온라인 서명운동(Change.org)을 시작했다. 과거 10년 간의 페미사이드 실태조사, 가해자 조사, 그리고 성평등 백서 제작 등을 요구했다.

 

같은 시기, 여성들에게 하이힐을 강요하는 문화를 폐지할 것을 주장하며 #KuToo 운동을 벌인 이시카와 유미 씨와, ‘용납하지 않는다! (평화)헌법개악 시민 연락회’에서 활동하는 히시야마 나호코 씨가 도쿄 신주쿠역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관련 기사: 목소리 내는 여성들에 대한 혐오와 린치를 멈춰라 https://ildaro.com/9227) 미나모토 씨는 이 집회에 참가해 서명을 독려하는 발언을 했다.

 

한 달 동안, 페미사이드 실태조사와 대책을 요구하는 서명에 참여한 사람은 약 1만7천 명. 그것을 내각부 남녀공동참획국장과 법무성에 제출했다. ‘페미사이드 없는 일본을 만드는 모임’은 기자회견을 열기로 하고, 서명에 동참한 단체이기도 한 Voice Up Japan ICU, Speak Up Sophia, 일본청년협의회 젠더정책위원회 등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모임들과 함께 목소리를 높였다.

 

“일상적으로 만나는 ‘치한’과 성희롱, 성폭력의 연장선상에 페미사이드가 있습니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폭력을 마주하는 일 없이, 그저 무사히 집에 가고 싶습니다.”

 

또 최근 일본에서는 대학입학 시험 날, 시험장을 향하는 수험생을 노린 ‘치한’ 범죄가 일어나는 것에 대해 항의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미나모토 씨는 그날이 인생을 좌우하는 날이기 때문이 아니라, 어떤 날이든 ‘치한’ 행위는 비열한 것이며 문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성차별에 단호해지고, 약자의 소리에 귀기울여야

 

예전에는 “젠더나 페미니즘에 대해 특별한 이유 없이 피했었다”는 미나모토 나츠키 씨.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대학교 3학년 때 다녀 온 유학 생활이다. 수업 중에 성차별적인 발언을 한 남학생에게, 여학생과 남학생 모두 야유를 보냈다. “아, 이렇게 해도 되는구나. 원래 이렇게 해야 했구나…, 했어요.”

 

유학에서 돌아와 대학에서 젠더학 수업을 수강했다.

 

“저의 이야기를 학문적으로 배우는 경험이 처음이었어요. 고등학생 때부터 교과서나 책을 읽어도 피부에 꽂히는 느낌은 없었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서양의 백인 남성이 중심인 학문에서 제가 주변화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페미니즘을 배우자, 언어화되지 않았던 다양한 과거의 일들이 떠올랐다. 왜 나는 자신이 여자라는 점도, 주변 여성들의 행동거지도 마음에 들지 않을까, 왜 엄마는 직장일도 집안일도 육아도 혼자서 떠맡았을까, 왜 내 몸이 내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 2020년 12월 6일, 도쿄 시부야에서 <살해된 노숙인 여성을 추모하고, 폭력과 배제에 항의하는 집회>가 열렸다. (‘신종코로나 재난 긴급액션’ 아마미야 카린 제공 사진)

 

미나모토 씨는 한편으로 스스로의 위치가 갖는 ‘권력성’과도 항상 마주하며 행동한다. 이번 서명에서는 페미사이드의 대상에 다양한 입장에 놓인 여성들을 포함하고 싶어서 섹스워커 여성, 트랜스 여성, 외국인 여성을 명기했다. 작년에는 일본에서 처음 열린 트랜스젠더 행진과, 도쿄 시부야구의 노숙인 여성 살해사건 1주기 추모 집회에도 참여했다.

 

(※시부야구 노숙인 여성 살해사건이란? 2020년 11월, 도쿄 시부야에서 코로나19 사태로 노숙인이 된 60대의 여성이 벤치에서 잠을 자던 중, 쓰레기를 줍던 40대의 한 남성 주민에게 살해당했다. 가해자는 ‘이물’(노숙인)을 제거하고 싶었다고 했다. 관련 기사: 코로나 시대, ‘빈곤’으로 인해 죽지 않는 사회를 https://ildaro.com/8989)

 

“여성 노숙인이 살해되었을 때에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나와 비슷한 상황의 여성(대학생)이 칼에 찔리자 반응을 한 거잖아요. 나 자신의 이중잣대를 반성했습니다. 주변화된 사람은 목소리를 내기 어렵고, 누구도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들의 동료가 될 수 있을지, 계속해서 생각하며 행동하고 싶습니다.”

 

-<일다>와 기사 제휴하고 있는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의 보도입니다. 고주영 님이 번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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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 2022/05/01 [13:12] 수정 | 삭제
  • 자기 마음이 불행한 사람은 타인이 행복해하는 걸 보면 부러워할 수도 있고 비뚤어진 사람이라면 얄미워할 수도 있겠죠. 근데 죽이고 싶어한다는 건 약자에 대한 혐오범죄의 동기이겠구나 싶어 소름이 끼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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