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태어난 어머니는 ‘모성’에 갇히지 않는다

[만만찮은 그녀들의 이야기] 손 없는 색시

심조원 | 기사입력 2022/05/08 [11:51]

새로 태어난 어머니는 ‘모성’에 갇히지 않는다

[만만찮은 그녀들의 이야기] 손 없는 색시

심조원 | 입력 : 2022/05/08 [11:51]

옛이야기에는 여성이 일생 동안 겪을 수 있는 가부장제 폭력의 수많은 사례가 있다. <손 없는 색시>는 부모로부터 끔찍한 학대를 겪고 살아남은 여성의 생존기다. 아버지가 딸의 손목을 작두로 댕강 자르는 대목에서는 몸이 오그라든다. 이렇게 피가 철철 흐르는 이야기가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은 가족제도의 폭력성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 잔혹한 이야기 속에는 세 명의 어머니가 있다.

 

<잇날에 한 사람이 딸을 하나 낳고 상처를 했는데... 재혼을 해논께 재혼한 오마이가 돌아와가지고, 그래 참 딸을 그래 몹시 부리먹어요.> (한국구비문학대계 1983년 대구 김음전의 이야기)

 

처음 등장하는 어머니는 주인공의 계모다. 옛이야기에서 계모는 생모가 아니라기보다 모성의 다른 면을 나타낼 때가 많다. 어머니는 체액인 젖을 주고, 똥오줌을 비롯한 가장 내밀한 몸의 비밀을 공유하는 최초의 타인이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의 첫사랑은 어머니를 향한다. 스스로 생존하지 못하는 아이는 온몸으로 ‘목숨을 걸고’ 사랑한다. 그런데 어머니는 아이만을 위해 준비된 사람이 아니며, 어머니 말고도 다양한 얼굴이 있다. 그녀는 가부장제 가족제도 안에서 모성을 구실로 양육과 보살핌을 떠맡아야 하는 약자며, 모성을 앞세워 가혹한 폭력을 휘두르는 괴물이 되기도 한다. 이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인물을 옛이야기에서는 계모라고 한다.

 

<가만 어마이가 본께, ‘조기이 우짠 솜씬지 솜씨가 그렇기 있어. 그것 참 안 되겠다.’ 싶어가주고 그래, 적 아바이한테도 이얘길 했어. “저게 집, 우리 집구식이 핀할라만 (...) 저 딸을 손목을 탐박 끊어 가주고 내쫓아 뿌리소.”> (김음전의 이야기)

 

<(쥐를) 잡아 가지구서는 껍데기를 호루루루 벗겨서 인저 고 전실 딸 치마 속에다 넣구 (,,,) “저년 시집갈 때가 되구 그래니까 서방질을 해서 애 있나보다.” 그래더래유. (...) 그래서 아버이가 한 날은 (...) 작두를 새파랗게 갈아다 놓구 (...) “양반에 집에 이런 법이 없다. (...) 이년아, 여기 손 넣어라.” 그래더래유.> (한국구비문학대계 1982년 경기도 용인 오수영의 이야기)

 

양반 집 안주인인 어머니가 가부장에게 부여받은 책임과 권력은 딸에 대한 단속이다. 계급사회일수록 하층 계급의 여성은 성적으로 착취되고, 상층 여성은 성적으로 구속되기 마련이다. 양반의 딸은 남달리 돋보여도, 성적 매력을 어필해도 안 된다. 친족을 비롯한 주변의 성인 남성들과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다면 진실이 어떻든 징벌감은 언제나 어린 여성의 몸이다. 딸을 ‘매섭게 가르치는’ 것은 ‘뼈대 있는’ 집안을 위한 일이므로, 어머니는 ‘함부로 손을 놀리지 못하도록’ 가부장의 시퍼런 칼날을 동원한다.

 

<배는 고푸구 (...) 요렇게 담 밑에를 이렇게 쳐다보니까, (...) 그냥 배가 이만큼 한 게 주렁주렁 달렸는데, (...) 고 담에를 올라가설람에 (...) 이 닿는 대루 그냥 한 입 베어 먹구, 뚝 떨어뜨리구, 한 입 베어 먹구 뚝 떨어뜨리구 이랬대유.> (오수영의 이야기)

 

부모로부터 돌이키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채 추방된 딸은 세상과 소통할 길을 찾지 못하고 굶주린 짐승처럼 남의 집 담장을 넘는다. 야무지던 손대신 이빨을 드러내고 닥치는 대로 물어뜯지만 허기는 채워지지 않고, 자기처럼 상처 입은 열매들만 늘려갈 뿐이다. 그녀는 속수무책으로 누군가의 손에 들어간다.

 

<그 참 선비가 글을 좌알잘 일으키다가 (...) 본께 손이 없는 기라. 두 손이. 그래 팔을 탁 검어지미성, (...) 딜꼬 드갔어. 디리고 드가가지고 (...) 빅장에다가 (...) 처녀를 버썩 들어다, 안어다 놓고 문을 탁 닫았분다. (...) 밤으로는 디리고 자고 낮으로는 언제든지 밥을 믹이고 고래 인제 자꾸 감추고 감추다가 그러구로 한 인제 참 한 달 되가는기라 (...) 

그래 인자 오마이가 이야기를 해가주(...) 머리 빗기서, 땋아서, 세수 시키서, 옷 갈아 입히서 아 요래 분칠꺼지 해서 앉히냈다가 고마 그 아들하고 미느리하고 마 머리를 얹히 좄어.> (이하 김음전의 이야기)

 

주인공은 살아남기 위해 극단적인 수동성을 선택한다. 섹슈얼리티를 대가로 먹여주면 받아먹고 품어주면 안길 뿐, 관계에서 아무것도 주도하지 않는다. 전략은 크게 성공한 듯이 보인다. 가출 소녀가 유복한 집의 며느리가 됨으로써 가부장제 가족제도 안에 자리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극심하게 기울어진 관계에서 강자가 베푸는 온정은 기댈 것이 못 된다.

 

<이 총각이 고마 (...) 과게하로 가는 기라. (...) 근 일 년이 다 돼간께로 (...) 달떡겉은 아들을 낳아났어. 하도 하도 어마이가 좋아가주고 (...) 서울 아들한테 편질 했어.

“야야, 야야, 너 간 후로(...) 세상에 달떡겉은 아들을 낳았다. 어서 어서 과게해가주고 니리 온너라.”

(...) 배달이 그거를 울러미고 인자 (...) 주막에 가서 (...) 자는데, 주막재이가 (...)

“아이구 야야, (...) 눈도 코도 없고 두리 두리 뭉시이 겉은 거로 낳아났다. 이거 우예야 되겠노?” 이래 편지를 떠억 써가주 옇었어. (...) 

(총각이 받아보고) ‘아이구 우리 어무이가 빈했는강, 암만 두리두리 뭉시이 겉은 걸 낳아도 이래는 안 할 낀데. (...)’ 싶어가주고 또 편지를 쓰기를 

“오무이, 오무이, 두리두리 뭉시이나따나 날 가도록 나뚜이소. 뭐 눈도 코도 없는 째본따나 날 가두룩 나뚜이소.” 이래 했는 기라.

(...) 이기 니러오다 또 거어 잤는기라. (...) 고 여자가 또 디비가주고 (...)

“아이구 어무이, 그까짓거 두리두리 뭉시이 겉으마 뭐하겠입니까? 눈도 코도 없이마 그 뭐하겠입니까? 내쫓아 뿌리이소.” 이래 써가주 옇었는기라.>

 

편지는 남편과 시부모 사이에서 오갈 뿐, 며느리는 아무런 발언권이 없다. 그들의 공론장에서 그들의 잣대로 평가되고 거명될 뿐이다. 당사자가 배제된 공론은 쉽사리 왜곡된다. 뒤바뀐 편지를 구실로 그녀를 다시 벼랑 끝으로 내몬 사람은 온정적이던 시어머니다. 첫 번째 어머니가 가부장의 칼로 딸의 손목을 자르게 했다면, 두 번째 어머니는 아들의 말을 앞세워 며느리의 등에 손수 핏덩이를 업혀 밀어낸다. 그들이 독점한 언어의 네트워크는 칼보다 강한 권력이므로 굳이 피를 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무기력과 침묵은 색시를 지켜주지 못했다.

 

<가다가 가다가 (...) 새암 가에 가가주고 (...)

“하이구 모도 물 이로 왔는데 미안하지만 물 좀 주이소.” 칸게,

“아이구, 세상에 이이키 좋온 아 아기에다가, 왜 이런 좋은 인물에 왜 손이 없느냐?” 카미성 그래 물 좀 떠주고, 아아 니라가주고 젖 믹이서 입히주고 이라거덩. 그래주고 그 인자 (여자들이) 드갔는데, (...) 딴 데 가다가 생각해도 그 새암에 가 그 물 좀 더 묵고 지와여(싶어요). (...) (사람을 기다리다가) 그 새암에 풍덩 빠져서 보이 (...) 양손이 허여이 달리가 있어서, (...) 검어쥐고 땡기 보고 이래도 그 손이 꿈쩍 없거등. ‘아이구 세상에’ 아아는 막 뒤에서 막 울고 (...)>

 

색시가 되살아난 곳은 왁자지껄한 우물가다. 일하는 여성들의 시선은 어머니처럼 따뜻하며, 도움은 현실적이다. 차가운 우물물에 정신이 번쩍 든 색시는 함께 추락하던 아이에게 뜨겁게 ‘손을 내민다’. 모성을 되찾으며 다시 살아난 주인공은 이야기 속의 세 번째 어머니다.

 

한편 신랑은 뒤늦게 아내의 뒤를 따른다. 벼슬자리를 버리고 엿장수가 되어 여러 해를 떠돌고 나서야 달라진 아내를 알아본다는 이야기도 있다. 색시는 인생을 걸고 찾아온 남편을 아이의 아버지로 받아들여 잘 먹고 잘 살았다고 한다. 그녀는 우물가의 여성들과 손을 잡고, 손을 뻗고 손에 넣으며 어머니의 역사(계모繼母)를 다르게 이어갈 것이다. <연재 끝>

 

▲ 이야기의 주인공은 부모로부터 끔찍한 폭력을 겪고 손을 잃었지만, 우물가에서 만난 일하는 여성들이 내민 손을 잡고 다시 살아나 새로운 이야기를 써 간다. 출처:pixaby

 

[필자 소개] 심조원. 어린이책 작가, 편집자로 이십 년 남짓 지냈다. 요즘은 고전과 옛이야기에 빠져 늙는 줄도 모르고 살고 있다. 옛이야기 공부 모임인 팥죽할머니의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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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와플 2022/05/14 [14:30] 수정 | 삭제
  • 여자들의 역사는 기록으로 남지 못했지만 우물가에서 이야기로 전해져 오늘날에도 빛을 비춰보라 하네요. 구전되는 소리를 옮겨준 분들도 고맙고, 빛을 비춰준 작가님에게 감사드립니다.
  • 고롱이 2022/05/10 [12:19] 수정 | 삭제
  • 옛이야기 들려주는 할머니들을 떠올리며 읽은 글들이에요. 좋은 이야기들 새롭게 들려주셔서 정말 좋았습니다.
  • 호두 2022/05/09 [21:30] 수정 | 삭제
  • 아니, 연재 끝이라니 아쉬워요. 팥죽할머니 이야기를 너무 재밌게 읽고 팬이 되었습니다. 이번 이야기 슬프면서도 희망적이네요.
  • ㅇㅇ 2022/05/09 [00:31] 수정 | 삭제
  • 계급이 낮은 여성은 성적으로 착취되고 계급이 높은 여성은 성적으로 구속된다 정말 명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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