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죄와 무고죄의 관계, 문제는 ‘최협의설’이다

‘강간죄’ 요건을 폭행 협박이 아니라 동의 여부로 개정해야

박주연 | 기사입력 2022/06/11 [18:23]

강간죄와 무고죄의 관계, 문제는 ‘최협의설’이다

‘강간죄’ 요건을 폭행 협박이 아니라 동의 여부로 개정해야

박주연 | 입력 : 2022/06/11 [18:23]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성범죄 처벌 강화. 무고죄 처벌 강화”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성폭력 피해자를 옥죄는 무고죄에 대한 두려움을 더 강화시킨다는 비판에 대해선 “무고죄를 엄격하게 적용해 해석하면 성범죄 신고 위축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이 공약이 “공정한 양성평등 공약”이라고 했다. 정말 그럴까?

 

윤석열 대통령이 이야기했던 “성범죄 처벌 강화”와 “무고죄 처벌 강화”는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측면에선 일맥상통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법 체계 안에서 누가 성범죄의 ‘진짜’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의 문제를 살펴보지 않고, 처벌만 강화하겠다는 단순한 방식은 크나큰 왜곡을 만들어 낼 위험이 크다고 관련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그런 위험을 줄이고, 우리 사회가 정말 논의해야 할 질문과 답을 찾는 자리가 열렸다. 지난 9일 ‘강간죄’ 개정을 위한 연대회의가 <무고죄 강화? 진짜 필요한 것은 강간죄 개정이다>라는 제목의 이슈 토크를 주최한 것이다. 2019년 구성된 ‘강간죄’ 개정을 위한 연대회의는 형법상 강간죄 구성 요건을 ‘폭행, 협박’이 있었는가 여부가 아니라 자유로운 ‘동의’ 여부로 변경하기 위해, 전국 208개 여성인권운동단체와 전문가가 함께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연대체다.

 

▲ 6월 9일, 한국성폭력상담소 유튜브 중계로 진행된 이슈 토크 <무고죄 강화? 진짜 필요한 것은 강간죄 개정이다> 현장 ©‘강간죄’개정을위한연대회의  

 

폭행, 협박과 저항 여부를 묻는 ‘강간죄’ 왜 문제인가

 

먼저 들여다 봐야 하는 것은 강간죄가 어떻게 성립되고 있는지이다. 박아름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의 설명에 따르면 “강간죄는 형법 제297조에 있는 법”으로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 징역에 처한다고 쓰여 있는 죄”이다. 아직까지도 “강간죄가 성립하려면, 피해자에게 저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 협박이 있어야 한다(최협의설)”는 판례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강간죄를 판단할 때 저항을 불가능하게 할 정도의 폭행이나 협박이 있었는지, 다시 말해 피해자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저항했는지를 묻는 현행법 체계에서 성폭력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인정받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거기다 가해자들은 오히려 피해자를 무고죄로 역고소하며, 성범죄를 없었던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박아름 활동가는 2016년도 유명 연예인 이OO 성폭력 그리고 무고 역고소 사건을 예시로 들었다. 이 사건에서 성폭력 원 사건은 불기소되었고, 피해자의 무고죄 재판은 1심에서 무죄, 2심에서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1심에선, 의사에 반하는 성관계가 맞았던 것 같다. 그랬을 가능성이 있다. 성폭력인지 아닌지, 폭행 협박에 의한 것까지는 확인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피해자 입장에서는 이것이 원치 않는 성관계였기 때문에 강간죄로 신고했을 수 있겠다고 판단을 했고, 사실을 다소 과장한 정도로는 허위 사실이 아니고 본인이 그것을 진심으로 믿었기 때문에 무고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허위성에 대한 인식이 없는 경우엔 무고죄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2심에선 “내심에 반하여 또는 설득에 못 이겨 마지못해 성관계가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있지만 폭행 협박은 없었다”고 봤고, “강간죄가 폭행, 협박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성폭력이라는 것은 상식이기 때문에 폭행, 협박이 없었는데도 원치 않는 성관계였다는 이유로 신고했다는 것 자체가 무고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강간죄가 폭행, 협박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성폭력이라는 것은 상식”이라는 재판부의 판단과 달리, 현실의 여성들은 거의 전부라 할 수 있는 96.7%가 ‘동의 없이 이루어진 성관계는 성폭력’(2021년 성적 동의에 대한 인식 및 경험 조사 결과, 한국성폭력상담소)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이 커다란 차이에 주목해야 한다. 여성들이 겪는 성범죄의 현실과 뒤떨어진 법 제도의 틈 사이에 무고죄가 파고 들어오기 때문이다.

 

▲ 2019년 9월 28일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진행된 <강간죄 개정을 위한 총궐기> 현장 중 (사진 촬영: 혜영)

 

박아름 활동가는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를 통해 무고로 역고소를 당한 피해 상담 사례를 조사해 본 결과, “2018년 1월 1일부터 2022년 4월 30일까지의 전체 성폭력 상담 횟수 26만건 중 무고 상담 피해 횟수는 2,146건”이었으며 “그 중에서 사례를 확인할 수 있는 70건의 사례를 분석해봤더니, 75.7%가 폭행 협박이 없는 성폭력 사건에 대한 무고죄 고소였다”고 했다. 결국 현행법 상 강간죄로 성립되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즉 폭행 협박이 없는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들은 오히려 가해자로부터 본인이 무고죄로 역고소를 당하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성폭력 가해자들의 무고 역고소 남발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성폭력의 경우에는 피해자 진술이 유죄 판결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범죄 유형이고, 혐의없음으로 불기소 비중이 높은 범죄이기 때문에 무고가 문제되는 비율이 다른 범죄보다는 훨씬 높은 편”이라고 짚었다. “단순히 같은 시기의 범죄 건수들을 비교하는 것으로 계산했을 때, 2017년 기준 전체 범죄 중 무고 건수의 비율이 0.32%인데, 성폭력 범죄의 경우는 1.5~1.6% 정도”다.

 

이에 대해 김정혜 부연구원은 “성폭력이 젠더 기반 폭력”이고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강간 통념, 성역할 고정관념 등이 성폭력 사건뿐만 아니라 성폭력 무고 사건의 처리 그리고 판단 모두에도 영향을 줄 수 있고, 강간 통념이나 성역할 고정관념이 강할수록 강간죄를 무죄로 보는 경향, 무고죄를 유죄로 보는 경향이 높아진다”고 했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의심과 비난이 존재하고, 그것 때문에 피해자는 침묵하게 되고 그로 인해서 다시 성폭력 근절을 방해하는 악순환의 구조”가 존재한다는 거다. 그리고 “이 순환 구조를 이용하는 것이 무고 역고소”다.

 

무고 역고소가 실제 무고여서가 아니라 성폭력 피해자를 압박하는 방식으로 남발되고 있다는 건, 관련 분석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 김정혜 부연구원에 따르면 “2018년 성폭력무고 처리 건수를 봤을 때, 전체 사건 중 고소, 고발에 의한 사건이 약 70% 정도의 비중이었지만, 고발 사건 중에서는 기소가 한 건도 되지 않았고, 고소 사건 중에서는 7.6%만 기소가 됐고, 84%는 기소되지 않고 불기소로 마무리가 되었다.”

 

▲ 이슈 토크 <무고죄 강화? 진짜 필요한 것은 강간죄 개정이다>에서 “성폭력범죄에서의 무고죄 적용의 현실”을 발표한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발표 자료 중. 성폭력 가해자에 의한 무고죄 역고소가 남발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소된 사건 또한 모두 유죄 판결을 받는 게 아니다. “전체 기소 사건 중에서 6.1%는 무죄로, 고소 사건의 15.5%가 무죄로 종결되었다.” 통계를 들여다 보면 “1년 평균 성폭력 무고 고소 사건 중에서, 그러니까 가해자 측에서 고소한 사건으로써 유죄가 되는, 인정되는 사건은 1년 평균 25.4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무고죄로 처벌 받는 사람이 별로 많지 않으니 처벌을 강화해도 괜찮지 않냐고 생각할 이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김정혜 부연구원은 “성폭력 무고 엄벌을 표방하는 입법과 정책은 (수사기관의 조사 과정에서) 성폭력 무고 인지 수사, 성폭력 가해자의 무고죄 활용 증가에 기여”할 것이라고 크게 우려를 표했다. 신고와 수사 과정에서 성폭력 피해자를 억압하고 법적 대응을 어렵게 만드는 지금의 상황을 더 악화시킬 것이라는 얘기다.

 

“동의 여부가 아닌 강제성에 기반하여 성폭력 범죄를 다루는 구조는, 무고죄 처벌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김 부연구원은 지적했다. 이야기는 다시 ‘강간죄 성립 요건이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무고죄 처벌 강화가 아니라, ‘강간죄’ 개정해야 할 때

 

강간죄 성립 요건을 폭행 협박이 아니라 ‘동의없음’으로 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사실 새로운 주장이 전혀 아니다. 또한 여성들만이 이것에 동의하는 것도 아니다.

 

추지현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2020년 여성가족부의 ‘청년의 생애과정에 대한 성인지적 분석과 미래 전망 연구’ 자료를 토대로 “성범죄 가해자로 지목될 두려움이 있다는 청년 남성(만 19세~34세)은 21.9%에 불과”하며, 청년 남성 중에서 가해자 지목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는 사람이 78.1%라는 점을 강조했다. 또 “성적 행위에 대한 처벌의 기준은 동의 여부가 아니라 폭행, 협박이어야 한다(현행법)고 동의하는 사람은 35.6%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청년 남성들의 60%가 넘는 과반수가 폭행, 협박 요건이 강간죄를 구성하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추 교수는 이런 결과를 분석하며 “일부 돌출된 노이즈를 보이는 ‘남초’ 사이트를 중심으로, (여성)혐오를 이용한 정치가 편향된 정보를 등에 업는 정책을 가지고 오게 만들었다는 점”을 비판했다. 청년 남성은 실제로는 다양한 집단인데, 디지털 담론을 중심으로 페미니즘에 적대적인 집단에 청년 남성의 대표성을 부여한 정치권에 책임을 물은 것이다.

 

한편, 이날 이슈토크에서는 ‘동의’ 여부로 강간죄 성립 요건을 개정하는 것에서 더 나아간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되었다. 이하영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대표는 “동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동의가 피해자의 입을 막는, 결국 또다시 성폭력의 책임이 전적으로 피해자에게 귀결되는 ‘동의’가 되지 않기 위해서, 무엇을 ‘동의’로 볼 것인지 더 많이 말해야 한다”고 화두를 던졌다. 언제나, 누구나 ‘동의/비동의’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너무나 다른 위치와 권력을 갖고 있는데, 각각의 개인을 평등하고 동등하다고 허구적으로 상정하고, 그 사이에 계약과 동의가 마치 합리적인 것처럼, 그래서 ‘동의’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 것처럼 치부해 왔던 관행에 대한 비판”도 필요하다는 것. 이하영 대표는 동의에 대한 이야기가 개인에 대한 책임 지우기가 되지 않기 위해서 “동의를 말할 때 ‘동의가 가능한 구조’를 함께 말해야 한다”는 것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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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른 2022/06/12 [11:24] 수정 | 삭제
  • 가해자가 정당성 얻으려고 피해자에게 무고 남용하면 처벌조항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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