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미니즘에 대한 왜곡과 공격이 심각한 백래시 시대, 다양한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로 다시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백래시 시대, 페미니즘 다시 쓰기” 스무 편이 연재됩니다. 이 기획은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지원을 받아 진행됩니다. [편집자 주]
청소년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
처음 페미니즘을 접했을 때, 나는 청소년이었고 무척 화가 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니던 학교는 너무 폭력적인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학교에서 ‘예민하고 기가 센 여학생’으로 낙인찍힌 지 오래였으며, 남자애들은 짜증 났고, 교사들은 두 배로 짜증 났다. 도대체 이 총체적 난국을 해결할 방법은커녕 실마리도 찾지 못해 갑갑해 한 지 오랜 기간이 지난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서 우연히 만난 페미니즘은 혀 밑에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던 말들을 명쾌하게 정리해주는 새로운 언어였다. 내가 여성으로서 겪었던 차별, 폭력, 혐오가 내 개인의 탓이 아닌 구조적 결과라는 것이, 꼭 나를 구원하는 말하기 같았다. 그래서 부지런히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강연을 들으러 다녔다. 감옥 같았던 기숙사에서 주말마다 탈출해 열렬히 페미니즘과 인권 문제를 탐독하는 것이 그 당시의 유일한 해방감이었다.
그렇게 나는 사명감을 가지고 공부했다. 당시엔 페미니즘에 더 깊숙이 침투하는 것이, 내 삶을 정당화할 유일한 방법인 것 같았다. 언제나 설명하지 못하고 찜찜하게 묻어만 두었던 경험과 내 삶을 설명할 수 있다는 건, 이전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에 진입한다는 건, 들뜨고 신나는 일이었다. 페미니스트가 되는 일이 필연적이고 절대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나날들 속에서, 가끔은 날 구원한 페미니즘이 도로 날 화나게 만들기도 했다. 나는 페미니스트였지만, 동시에 청소년이기도 했다. 뭐라도 알고 싶어서 더듬더듬 알아낸 여성주의 학자의 강연 장소에 가면, 여기서 내가 제일 어리다는 확신이 날 기죽게 만들었다. 페미니즘 책모임에 가서 잔뜩 내 의견을 얘기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당신이 뭐라고 말하는지는 잘 듣지 않았지만, 나에게도 너같이 열심히 책을 읽던 시절이 있었다’는 식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동등한 페미니스트 동료이기보다는 그저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청소년이었다.
행사에 뒷풀이가 있을 때 당연히 동반되는 내 몫의 맥주 한 잔에도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이걸 마셔야 하는지, 마셨다가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닌지 혼자 땅굴을 파다가 끝내 잔을 내려놓았다. 어리기 때문에 내 말은 쉽게 무시되었고, 때로는 어린 내가 이 공간에 공존하는 것 자체가 불법적으로 느껴졌다.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만으로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라고 지레 짐작했지만, 페미니스트들이라고 모두가 청소년을 존중하거나 동료로 여기는 것도 아니었다.
이런 시간들을 지나다 보니, 때로는 아무도 내가 어리다고 뭐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나는 내 나이가 너무너무 미워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페미니스트가 되는 건 멋지고 쿨하고 좋은 사람이 되는 일이었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더 먹지 않는 내 나이는 어디에서도 멋지고 쿨하고 좋다고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나는 인정받는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었다.
우리의 말하기를 이어가는 ‘위티’
그러다 만난 곳이 내가 지금 활동하고 있는 위티였다.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는 스쿨미투를 계기로 2019년 창립한 청소년 페미니즘 단체로, 나는 단체의 창립 과정에 함께한 활동가다. 광활한 페미니스트 세계를 맴돌다 만난 위티에서 나는 이전보다 ‘덜’ 기죽었다. 대부분이 내 또래였고, 대부분이 학교를 싫어했고, 대부분이 페미니즘을 안 지 오래되지 않았다는 동질감이 빠르게 활동가들 간의 편안한 관계를 만들었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나와 비슷하다고 여겨지는 이들 사이에서 나는 더이상 진짜 나를 들킬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우리는 각자의 이야기와 장면을 향유하며 웃고 떠들고 화내고 욕했다. 외로운 여학생이었던 우리의 이야기에는 비로소 곁이 생겼다.
하지만 그것이 위티의, 내가 하는 운동의 전부는 아니었다. 위티의 ‘청소년 페미니즘’ 운동은 나에게 완전히 새로운 세계관이었다. 청소년 페미니즘 운동은 주류 페미니즘에 나를 맞추지 못해 안달했던 시간들을 지나, 내 세계와 언어를 새롭게 구축할 수 있다는 상상력이었다. 어린이가 어른만큼 해야 하는 세상이 아니라, 미성숙한 그대로도 괜찮은 세상이 필요하다는 위안이었다. 온통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내가 겪었던 외로움을 이해하는 말하기였고, 청소년을 대신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과 함께 말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어리고 미성숙하고 판단력이 없는 서로를 그 자체로 존중하겠다는 약속이었다.
물론 이 시간들이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우리의 말을 우리가 배신하는 시간들 역시 그림자처럼 존재했다. 가장 아름답고 튼튼하게 건설했다고 생각한 공동체는 쉽게 무너지기도 했다. 나도 청소년이었지만, 청소년과 함께 활동하는 일은 너무 어려웠다. 위티 내에서 기존에 청소년들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고자 했던 시도는, 이들이 일상 속에서 권한과 책임을 가져본 적이 없다는 현실 속에서 실패를 거듭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책임’은 ‘부여’라는 일방적 관계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매일같이 단체를 뒤흔드는 사건이 일어났고, 나는 청소년을 어디까지 존중하며 함께 활동해야 하는지 가늠하기 시작했다. 상대의 미성숙함이 싫었고, 그걸 존중하지 못하는 내가 싫었다. 그냥 어려서 그렇다고 퉁치고 싶었다. 청소년들과 함께하는 방법에 대한 선례나, 조언도 없었다. 아무도 청소년들과 함께 활동하는 방법에 대해, 청소년들과 함께할 때 벌어질 수 있는 사건에 대해, 문제를 대면했을 때 우리가 시도할 수 있는 방법과 대안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다. 누구도 쉽게 시도하지 않는 일이기 때문에 가졌던 자부심이 있었는데, 사실은 아무도 쉽게 시도하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건 뼈아픈 일이었다.
나는 우리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백은선 책 제목 인용)
남들과만 싸웠던 것도 아니다. 사실 활동을 시작하고서 나와 가장 많이 싸운 건 바로 나 자신이었다. 다른 단체의 활동가들이 있는 연대체 회의라도 가면, 여기서 내가 가장 어리고 저 사람들은 모두 나를 무시하고 있을 거라는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쳐 좀처럼 곁을 주지 않았다. 청소년 활동가인 나를 초대해놓고선 ‘청소년 입장 금지’ 행사를 논의하는 페미니스트 동료들 앞에선 북받쳐 엉엉 울고선, 또 악에 받쳐 “애처럼” 울어버린 나를 욕했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싫었고, 청소년을 ‘친구들’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싫었고, 평일 오전 10시에 청소년들을 데리고 와 달라고 요청하는 ‘페미니스트’들이 싫었는데, 이들을 모두 미워하기엔 너무 힘들어서 별 수 없이 그냥 어린 나를 욕했다.
겉으로는 어려도 괜찮느니, 미성숙을 존중해야 한다느니 뻔지르르하게 떠들어놓고서는 사실 나는 나이주의와 능력주의에 잔뜩 버무려진 인간이었다. 종국엔 이게 다 우리가 ‘어린애’들이어서 일어난 일인 것 같았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나 자신을 ‘어린애’라고 불렀다.
그런데도 계속했다. 계속 청소년들을 만나려고 노력했고, 페미니스트들과 대화하려고 노력했고, 어린 나를 여전히 미워하면서도 좋아하려고(최소한 싫어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왜냐하면, 나는 어느 날 등장한 ‘노키즈존’이 싫었기 때문이다. 노키즈존은 실수할까 봐, 민폐가 될까 봐, 위험할까 봐, 사건이 벌어질까 봐 누군가의 출입 자체를 금지하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내가 함께 만드는 공간이 어떤 위험의 ‘가능성’ 때문에 누군가를 추방하는 공간이 될 수는 없었다. 어리다고 기회를 박탈하고, 미성숙할까 봐 도전을 만류하고, 실패할까 봐 권리를 빼앗는 사회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려고 위티를, 청소년 페미니즘 운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는 청소년 페미니즘 운동 속에서 나를 용인받았다. 2015년경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에도 2030 여성 위주의 페미니즘 문법 속에서 나는 “인정받는”, “규범에 들어맞는”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었다. 그런데 페미니스트들의 규범 그 자체를 무너뜨리자는, 어리고 잘 몰라도 동료로 대우하자는 시도 속에서는 나도 똑같은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었다. 내가 그런 시간들을 앞서 용인받았기 때문에, 아름답지만은 않아도 계속해서 확장과 환대를 시도하는 일을 ‘계속하는’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가진다고 느꼈다.
‘언니’들이 지켜주는 페미니즘?
최근엔 이런 광경을 봤다. 트위터에서 자신을 청소년이라고 밝히는 한 트위터리안이 “페미니즘 운동 너무 싫다”고 멘션했다. 그리고 또 다른 성인으로 추정되는 트위터리안은 그 멘션을 인용하며 ‘언니들이 너희 성인 돼서 안전하게 밤길 돌아다닐 수 있도록 노력 중이잖니’라고 적었다.
나는 활동하면서 정말 많은 페미니스트들을 싫어하게 되었다. 아무리 유명하고 잘나고 공부를 많이 한 이들이더라도 청소년을 과거로 취급하고, 동료로서 여기지 않는 이들에겐 밥맛이 뚝 떨어졌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그들의 ‘언니성’이 싫었다. 꼭 자신을 언니라고 부르지 않더라도, 청소년은 ‘가르치거나 교정해야 하는 대상’으로 한정 짓고 ‘동등한 동료 시민’으로서 여기지 않는 행동은 모두 자신이 페미니즘에 대해, 삶과 결정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는 ‘언니’임을 전제한 행위와 말하기였다.
그렇기 때문에 저 멘션을 보고 속상했다. 원 트윗의 청소년 트위터리안은 왜 페미니즘 운동을 싫어하게 되었을까? 그의 삶의 어느 부분이 페미니즘과 불화했을까? 그 이유를 묻거나 진지하게 논의해주는 동료는 있었을까? 나는 그의 말이 ‘페미니즘 운동을 싫어했다는’ 이유만으로 납작하게 짓눌리지 않으면 좋겠다. 페미니즘 운동이 성역으로서 수호되거나 “‘성인 여성’만의 안전한 밤길 쟁취”에 그치지 않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SNS에서도, 오프라인에서도 누군가를 지켜주자는, 누군가의 미래를 위해서라는, 누군가가 허락하는 ‘언니들의 페미니즘’을 본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페미니즘 운동은 누군가가 허락하거나, 점유하거나, 수호하는 일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청소년을 지켜야 한다고 얘기하는 그 어떤 페미니스트라도 청소년에게 지킴 받기만을 원하냐고 물어봤을까? 청소년은 가만히, 아무 일도 말도 하지 않고 보호받는 것만을 원할까? 개인이 다른 개인을 선의로 ‘지키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여성 청소년들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주체적인 힘을 가질 수 있도록, 사회 전체에 우리가 동등한 동료 시민이라는 믿음과 합의가 필요하다.
동료 청소년 단체인 청소년인권운동연대 활동가 지음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좋은 어른이 많은 세상이 아니라 나쁜 어른을 만나더라도 두렵지 않은 세상을 만들고자 합니다.” 유명한 페미니즘 격언처럼 ‘어린 여성은 영원히 어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나이를 먹어야 강력해지는 것이 아니라, 어린 여성인 그 모습 자체로도 강력할 수 있을 것이다.
페미니즘은 곁을 살피는 일이다
이쯤 써놓고 나니 나는 페미니스트가 되기 전에도, 후에도 여전히 화가 많은 것 같다. 페미니즘이라는 게 누굴 미워하는 일인가, 싶을 정도로 누군가를 많이 미워했다. 하지만 동시에 이 미움들에 매몰되지 않으려고도 노력했다.
내가 배운 페미니즘은 미움을 확장했지만, 동시에 사랑과 돌봄 역시 확장했다. 내 곁에 있는 가난하고 어리고 사랑하는 친구들을 살필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특히 청소년 운동을 하며 내가 운 좋게도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청소년 친구들(사전적 의미의 진짜 ‘친구’다)을 만났는지 알면, 어떤 사람이 어리다는 이유로 자신의 말상대조차 될 수 없다고 여기는 청소년 혐오자들은 배가 좀 아플 거다.
가끔은 청소년이 아닌데 왜 청소년 운동을 하느냐는 시선과 질문을 받는다. 누군가는 이제 비청소년이 되었기 때문에 청소년 운동을 떠난다. 하지만 나는 우리의 삶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청소년의 삶이 나아지는 만큼 페미니스트의 삶이, 성소수자의 삶이, 여성과 장애인과 이주노동자의 삶이 나아진다고 생각한다. 청소년의 삶이 나아지는 만큼, 내 삶이 나아진다고 생각한다.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의 삶이 추방당하고 차별당하는데, 그게 비청소년인 내 일이 아니라고 선을 그을 수가 없다. 내가 우연히 안전한 집 안으로 들어왔다고 해서, 뒷사람 면전에서 문을 쾅 닫아버리고 싶지도 않다. 누군가를 쫓아낸 그 집에서 나는 필연적으로 안전하거나 행복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페미니즘은 곁을 살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폭력적이고 불평등한 삶이 당장은 나와 연관이 없어 보이더라도 응시하고 연대하며, 거기 괜찮은 거 맞냐고 한 번이라도 물어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필자 소개]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의 유경. 청소년 페미니스트로서 청소년 시민들과 함께 말하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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