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하나 팔아본 적도 없는 여성들이 설 땅을 찾아야 하는 현실, 다른 나라 빈곤여성들은 어떻게 일자리를 만들었나.”
지난 20일,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이하 여성노동자회)는 ‘빈곤여성의 자립과 자활공동체 모델모색을 위한 인도, 일본 연수보고’ 워크숍 자리에서 7월, 9월 각각 일주일간의 일정으로 다녀온 연수내용을 발표했다. 이날 발표에선 특히 신용협동조합이 발달돼 있는 인도의 사례가 눈에 띄었다. 구로삶터자활후견기관 홍현희 실장은 ‘안나뿌나’, ‘세와’ 등 인도여성조직들의 활동을 보고하며, “인도의 생업대출 프로그램에선 여성들의 인식 교육, 셈 공부, 돈 버는 방법, 사회의식 교육, 평등한 부부관계 교육 등 교육프로그램이 특징적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주로 경제활동을 매개로 조직화돼있으며 지역 및 소그룹 단위로 집단화돼 있어, 이 집단이 지역 내 기초단위가 되고 지지그룹이 된다”고 소개했다. 빈곤여성을 위한 은행설립 ‘음식의 여신’이라는 의미를 지닌 ‘안나뿌나(Annapurna)’는 1975년 산업화 붐 속에서, 방직공장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음식판매 사업이었다. 이후 매출을 늘리면서 신용협동조합의 대부사업을 동시에 진행했다. 당시 인도여성들은 대부분 무학인데다가 별다른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돈벌이는 거의 불가능했다. 은행이 이런 여성들에게 돈을 빌려줄 리 만무했다. 은행에선 가난하고 문맹인 여성들에게 대출사업을 실시하는 것을 귀찮게 생각했다. 이 때 안나뿌나는 은행 측과 대출대행 사업을 협상, 현재 2십만명의 회원을 둔 신용협동조합을 운영하기에 이르렀다. 안나뿌나는 명확한 대출원칙을 견지하고 있다. 개인에겐 빌려주지 않는다는 것. 10~15명의 그룹에게만 대출해주며 반드시 창업 등 소득을 만들기 위한 활동에만 대출해준다. 또 너무 많이 대출해주면 배우자인 남편들이 소비하게 되는 현실을 감안, 첫 대출액은 적게 책정한다. 대출금에 대한 상환은 분할 상환이며 연대책임이다. 빈곤층 자영여성노동자 조직인 ‘세와(SEWA)’는 1974년 빈민여성들을 위한 은행을 설립했다. 글도 모르고 돈도 없는 빈민여성들은 은행설립 허가를 받기 위해 밤새도록 사인하는 연습을 하기도 하고, 남편이 갖고 도망가지 못하도록 깊숙이 숨겨둬 너덜너덜해진 쌈지 돈을 털어내는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대부분 사람들은 실패를 예상했지만 ‘세와’는 자금 회수율 90%를 자랑하며 20만명이 넘는 고객이 이용하는 은행으로 굳건히 자리 잡았다. 세와 은행은 철저히 가난한 여성들을 위해, 그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운영된다. 문맹인 여성회원을 위해 서명대신 사진으로 본인을 확인하며 번호표 대신 이름을 호명한다. 또한 농촌지역에 거주하거나 생업활동으로 은행에 오기 힘든 회원들을 위해 직접 직원이 방문해 돈을 회수하고 업무를 처리해주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인도는 아들을 낳으면 ‘노후보험’이 제공되기 때문에 아들을 낳기 위한 악습이 반복되고 있었다. 아들을 낳지 않는 경우 여성을 위한 노후보장 대책이 거의 없기 때문에 여성을 위한 보험이 절실히 요구됐다. 이에 세와는 1980년부터 본격적으로 건강보험을 비롯한 각종 보험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일방적이고 단편적 지원시스템 넘어서야 빈곤여성의 자립이 사회적인 화두로 들어선 한국의 상황에서 인도의 사례들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특히 빈곤여성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사업 창출자금 마련은 중요한 과제다. 아무도 여성을, 특히 빈곤여성을 신뢰하지 않는 사회에서 여성들끼리 모임을 조직해, 회원들의 자발적인 요구와 의지에 따라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는 활동이 필요한 현실이다. 홍현희 실장은 “인도와 우리나라의 상황은 많이 다르다”며 “현재 한국의 자활 사업은 매우 협소하며 수혜자 중심의 지원체계가 아니라 일방적이고 단편적인 지원시스템”이라고 지적했다. 덧붙여 “민간에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갖고 사업을 만들어내고, 이것이 국가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이슈화, 정책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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