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디에 속해 있는지 헤맨 적 있는 사람이라면[박주연 기자의 사심 있는 인터뷰] 연극 ‘240 245’의 박은호, 전서아“‘240 245’는 경계에 관한 이야기다. 정확히는 240은 작고 245는 큰, 애매한 신발 사이즈를 지닌 배우 박은호가 지나온 숱한 경계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제5회 페미니즘 연극제 선정작으로, 지난 7월 28일부터 31일까지 나온씨어터에서 공연된 ‘240 245’(이사공 이사오)가 막을 내렸다. 작년 여름 신촌극장에서의 초연에 이어 이번 재연에서도 ‘240 245’의 매력은 빛을 발했다. “한국과 중국, 한국어와 중국어, 바이링구얼이자 바이섹슈얼인 박은호. 아마추어 연극인이라고 해야 할지 프로 연극인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는 박은호”의 경험과 이야기는 여전히 뜨거웠다.
극 중 은호가 마주하는 경계는 하나가 아니다. 어렸을 때 중국으로 건너 가서 마주한 경계는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비전공 연극인으로 연극을 시작했을 때도, 남성 혹은 여성과 연애를 했을 때도 그랬다. 심지어 신발 사이즈마저 240과 245 사이. “한 정수와 다른 정수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유리수와 무리수가 존재한다. 실수, 허수까지도.” 그렇지만 현실은 그 사이에 존재하는 것들을 쉽게 배제한다. 그렇기에 은호는 경계 사이에서 헤매고 방황한다. 감히 무언가를 욕망하지도 못한 채.
작품의 초연과 재연을, 운 좋게도 모두 관람한 관객으로서 ‘240 245’의 이야기를 더 널리 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어떤 경계를 가로질러 본 적 있는, 경계 사이를 흔들리며 걸어본 적 있는, 내가 속하는 곳이 어딘지 헤맨 적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밖에 없는 이 이야기를 만든 박은호(출연, 대본도움)와 전서아(작, 연출)을 만났다.
-‘240 245’는 실제 인물인 박은호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시작된 작품이잖아요. 이걸 공연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해요.
서아: 시작은 작년 봄이었어요. 은호 배우가 신촌극장에서 공연을 하기로 했고, 그걸 위해 텍스트가 필요한 상황이었죠. 은호 배우랑 ‘어떤 걸 할까’ 수다 떨다가, 연극을 (학교에서) 전공하지 않은 비전공자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말이 나왔어요.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쓰다가, 여기서 조금 더 확장되거나 층위가 생길 수 있는 이야기가 덧붙여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은호 배우와 저의 접점인 경계인으로서의 이야기를 더 넣게 되었고, 그렇게 대본이 완성되었어요. 두 달 간의 수다 끝에.(웃음)
-‘이사공 이사오’의 주요 플롯이 경계인으로서의 경험인데요. 저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속해 있는 어떤 곳에 속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종종 받는지라 공감 되는 부분이 많았어요. 은호 배우님은 스스로 경계인이라는 자각을 한 순간이 있었나요?
은호: 어렸을 때 중국에 건너가서 20살 때 한국에 돌아왔어요. 초중고를 다 중국에서 다닌 거죠. 내가 여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어떤 느낌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초등학교 5학년 때인가? 학생들에게 (소년선봉대) 입단 제의서를 뿌릴 때였어요. 모두 그 제의서를 받아 가는데 저한텐 ‘넌 괜찮아. 넌 여기 사람 아니잖아’라면서 안 주더라고요. 그때 확실히 깨달았어요. 난 여기 사람이 아니라는 걸. 학교생활 정말 열심히 했거든요. 중국에선 부반장, 반장 개념이 소대장, 중대장, 대대장 이런 건데 그런 역할도 도맡아서 했고요. 그랬는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더라고요.
한편으론 한국인들과도 경계를 느꼈던 것 같아요. 전 중국학생들이 다니는 학교를 다녔는데, 한국인들이 다니는 학교도 있었거든요. 그 학교 앞을 지나야 할 때 돌아가게 되더라고요. 왠지 내 모습이 촌스럽다고 느껴졌거든요. 빨간 스카프를 목에 두른 소선대원(小先隊員)의 모습이었으니까요. 이상하게 그 학교 앞만 지나가면 어깨가 막 수그러들었어요. 여기도 저기도 속하지 않는 그런 기분, 그게 첫 기억인 것 같아요.
-그게 이후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줬을까요?
은호: 어딘가에 속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나한테 뭐가 어울리지?’ 이게 아니라, ‘이쯤 되면 내가 욕심 내도 되는 건가?’라며 주위를 많이 살폈던 것 같아요. ‘난 이걸 좋아해, 이건 내 취향이야’라고 하면 되는데, 그게 아니라 ‘남들은 저런 걸 하네?’ 이러면서 집었던 걸 괜히 내려놓는다거나… 그런 순간들이 많았던 거죠. 주변 시선을 과도하게 신경 썼던 것 같아요. 예전에 썼던 메모 보면 ‘연습실에서 눈알을 제일 빨리 굴리는 게 나인 것 같다’고 썼더라고요.
-대본을 만드는 방식은 어땠나요?
서아: 이야기를 나눴고, 거기서 나온 키워드를 가지고 대본을 쓰기 시작했어요. 또 은호 배우가 쓴 메모를 저한테 공유하면, 그 메모를 토대로 대사를 쓰기도 했고요. “나는 내 욕망을 축소시켜 바라보아야 했다. 경계인은 그런 것이다.”라는 대사도 은호 배우 메모에서 가져온 거에요.
은호: 사실 전 서아 작가가 말한 대사가 제가 쓴 메모인 줄 몰랐어요. ‘내가 쓴 말이구나, 내가 이런 생각을 했었구나’ 싶어서 너무 신기했어요.
-완성된 대본을 처음 봤을 때, 은호 배우님은 어땠어요?
은호: 그저 눈물이 흘렀죠. 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 이유가 뭘까 고민이 많았거든요. 내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작업을 하면 재미있을 것 같긴 한데, 사실 이건 사적인 거고 나나 관심 있어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데 무대 위에 올려도 될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대본을 읽고, 내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들과 합쳐지면서 확장된 걸 보고 감동했던 기억이 나요. 굉장히 사적인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어쩌면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쓴 메모들을 읽을 땐 종종 ‘아, 지긋지긋하다’ 싶을 때도 있었는데(웃음) 이제 무대 위로 올라간다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묘하기도 했고 좀 애틋해지기도 했고요. 정말 처음 겪는 감정이었어요.
-서아 작가님에게도 좀 다른 경험이었을 것 같아요. 이전의 ‘오르막길의 평화맨션’, ‘인어’, ‘커튼’에서 작가 혹은 연출 경험이 있지만, ‘240 245’는 실제 인물이 기반이 된 픽션이고 그 인물이 등장하는 작품이니까요.
서아: 이전과는 굉장히 다른 작업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한 사람의 사적 서사를 어디까지 공연화 할 것인가 고민이 많았거든요. 조심스러운 부분도 많았고요. 박은호라는 사람이 ‘은호’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가지고 무대에 올라갔을 때, 관객들이 당연히 ‘이 이야기가 진짜인가?’부터 생각할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무대 위에서 배우 박은호가 (이 이야기로 인한) 모든 책임을 다 지지 않을 수 있을 만큼 제 이야기를 섞는 걸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또 은호가 만난 세계와 사람들이 너무 납작하게 보이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썼어요. 예를 들어 극 중에서 어떤 인물이 나쁜 사람 혹은 적으로 표현되었을 때, 진짜 박은호의 인생과 결부될 위험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최대한 주변 인물들이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도록 표현하는 게 중요한 부분이었어요. 배우가 무대에서 공연을 했을 때, ‘이건 내 이야기이지만 내 이야기인 것만은 아니야’라고 말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많이 두려고 했죠.
-작업의 성격상 창작자로서 윤리적인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었을 것 같아요.
서아: 솔직히 말하면, 은호 배우의 메모를 대본에 텍스트화 할 때 ‘내가 이 사람의 인생을 도둑질 하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 적이 있어요. 이걸 어디까지 써야 할까 고민할 수 밖에 없었죠.
-그 과정에서 어떤 합의점을 찾았나요?
서아: 은호 배우의 메모에서 ‘야, 너도?!’라고 느껴진 부분만 쓰는 방식을 택했어요. 나도 100% 공감하는 부분만 대본으로 가져왔거든요.
-배우님에게도 부담이 있었을 것 같아요. 픽션이 더해졌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이야기에서 출발한 거고, 은호라는 이름도 그대로 썼으니까요. 무대 위의 은호와 무대 밖의 은호의 경계에 대한 논의도 많이 했을 것 같은데요.
서아: 은호와 ‘은호’의, 정말 지독한 싸움이었죠.(웃음) 초연 때는 제가 연출이 아니었고 재연 때 연출로도 함께하게 되었는데, 처음부터 제가 강조한 부분이 ‘이건 당신의 이야기가 아니고 픽션’이라는 거였어요. 은호 배우가 작품과 거리두기를 할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할 수 있길 바랬거든요. 연습 내내 <이사공 이사오>의 이야기를 내 이야기나 은호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 이야기’라고 지칭했고요. 그걸 엄격하게 지키려고 했어요.
은호: 굉장한 부담이었어요. 그럼에도 할 수 있었던 건, 처음부터 확실하게 이 이야기는 픽션이라는 걸 서로 합의하고 시작했기 때문이에요. 그걸 통해 느끼는 안전한 감각이 있었어요. 초연 땐 그런 구분짓기가 잘 안 됐거든요. 그래서 연습하는 내내 울기도 했고…. 그 때 썼던 메모를 다시 보니까 내가 너무 외로워 보이더라고요. 재연 때는 처음부터 연출이랑 그 부분을 확실히 하고 가서 그런지 마음이 나아졌던 것 같아요.
-초연에서 재연으로 오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어떤 부분이고, 왜 달라지게 되었나요?
서아: 이번 재연은 제5회 페미니즘 연극제 선정작이었어요. 페미니즘 연극제에서 작품 공모할 때 “당신이 상상하는 미래를 기다립니다”라는 말이 있었거든요. 그런 부분도 고려했던 것 같아요. 초연은 ‘은호’라는 인물의 자기 발화와 자기 긍정에 포커싱을 뒀던 것 같은데, 이번엔 은호 자신에게 벗어나서 더 많은 여성, 경계인들과 함께 미래로 나아가는 주제를 담으려고 했죠. 대본에서 ‘나’를 ‘우리’로 바꾼 것도 많아요. 관객들이 자신을 ‘은호’로 느낄 수 있도록 하려고 했고, 엔딩의 대사와 연출도 바꿨죠. 은호 배우한테도 조금 더 힘을 가지고 시작했으면 좋겠다고 부탁했어요. 이번 공연에선 ‘은호’가 자기 발화를 하는 걸 넘어서, 이 이야기를 끌고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은호: 배우로서 수행하는 지점에선 확실히 불안감의 정도가 줄었다는 게 가장 큰 차이고요. 연출 말대로, 초연에선 자기 발화에서 자기 긍정으로 나아가는 방향이었는데 이번엔 훨씬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어떤 미래로 가는 방향으로 조정했죠. 초연 땐 엔딩 때 나 혼자 (무대 밖으로) 나간다는 느낌이 강했거든요. 이 사람들은 여기 있고 나는 간다는 그런 느낌? 이번엔 관객들을 하나하나 보며 가자고 얘기했고, 나는 간다는 느낌이 아니라, 내가 먼저 나가긴 하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도 함께 갈 것이라는 감각이 있었어요. 그게 굉장히 큰 차이였던 것 같아요.
-작품 속에 ‘중립’이라는 말이 나와요. 사실 일상 생활에서 자주 쓰는 말은 아닌데 연극인들은 자주 쓰는 말인가봐요. 중립이라는 건 대체 어떤 의미인가요?
서아: 연극하면서 자주 쓰는 말인 거 같긴 해요. 연출이 배우에게 ‘중립 상태로 있어줘, 중립 상태로 퇴장해줘’ 이런 말을 하곤 하죠. ‘중립 상태로 퇴장해줘’라는 건, 퇴장한다는 목적 외에는 어떤 것도 표현하지 않는 상태를 원한다는 거 같은데, 사실 이게 참 어려워요. 배우가 무대 위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무언갈 하고 있는 거라…. 어렵죠, 저도 잘 모르겠어요.(웃음)
다만 이런 생각은 해요. 중립이 끊임없이 유동하는 것이라는 생각이요. 그러니까 중립을 하려면 계속 변화하는 것 사이에서 움직이면서 가는 거지 어떤 하나의 상태를 그냥 굳어지게 유지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것이 경계인으로서 삶의 중립이 아닌가 싶기도 해요.
-작품에 재미있는 포인트들도 많아요. 두 분은 준비하면서 어떤 부분이 재미있었는지 궁금해요.
은호: 전 극도의 남성성을 수행하는 모습이요. 모 연극영화과 남대생 연기 부분이랑 햄릿비언(햄릿+레즈비언) 장면. 햄릿비언에선 눈물을 머금고 사랑하는 여자에게 모진 말을 내뱉고 있는 나에 취한 연기가 되게 재미있었어요. 연출님도 굉장히 마음에 들어 한 부분이었죠.(웃음)
서아: 웃기려고 만든 장면들이에요. 모 연극영화과 남대생 연기 부분은, 어떤 경계의 안쪽에 있는 사람의 확신 같은 걸 좀 비꼬려고 한 거고요. 햄릿비언 도입부엔 연출적인 모든 힘을 끌어모았어요.(웃음) 음악과 영상과 배우의 연기, 이 모든 것을 한 큐에 웃기겠다는 일념으로 만든 장면이거든요. 음향 디자이너에게 ‘아침 드라마 같은 음악을 만들어 달라’고 했고, 무대 디자이너에겐 햄릿비언이라는 글자 영상도 비장하고 압도적인 느낌으로 만들어 달라고 했는데, 그게 다 잘 됐던 것 같아요.
-제가 작가님한테 극본집 내달라고 했었는데(웃음) 그 정도로 좋은 대사가 너무 많았어요. 특별히 좋아하는 대사가 있나요?
서아: “꼭 같이 살아서”라는 대사요. 이번에 새로 추가된 대사인데요. 그 대사가 저에겐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던 것 같아요. 세상이 이상하잖아요. 그래도 어쨌든 죽지 말고 같이 살자는 말을 관객들에게 하고 싶었고, 그 말을 듣는 관객들의 모습을 보고 싶었어요.
은호: “그냥 가, 그냥 가도 돼”요. <이사공 이사오>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걸 딱 한 마디로 이야기 하라고 한다면 전 이걸 선택했을 것 같아요. 작품 속에서 과거의 ‘은호’에게 그 말을 하는 게 정말 좋았어요.
서아: 우리가 과거의 어떤 일들을 다시 써 내려갈 때, 과거 입장에선 제가 미래잖아요. 그러니까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를 구하려는 행위랑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그것을 함으로써 실은 우리가 미래를 바꾸고 있는 상황일지도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가, 그냥 가도 돼”라는 말이 발화됐을 때, 미래의 나인지 과거의 나인지 모를 누군가가 나에게 다시 돌려주는 말이 되는 거죠.
은호: 예전엔 ‘과거에 발생한 일에 대해 상상을 덧붙이는 게 어떤 의미가 있냐’는 입장이었는데, 이번 작업을 하면서 그 생각이 좀 변했어요. 상상함으로써 미래를 바꾼다는 건, 결국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할지 적어도 선택할 수 있다는 거니까요. 과거의 은호는 아직 울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그냥 가도 돼”라는 말을 덧붙이는 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사공 이사오>의 은호는 이제 성장했을까요?
서아: 성장했다고 확신해요. 마지막에 은호가 신발을 벗고 걸어 나가잖아요. 아마 큰 유리 조각을 밟는 등의 아픔이 있을 거에요. 하지만 은호한테 길이 사라지거나 혹은 원하는 길이 아닌 다른 길로 향하는 선택은 이제 없지 않을까 생각해요. 적어도 땅에 발을 붙이고 걸어가는 행위 자체가 성장이라고 봐요.
은호: 은호는 정말 큰 성장을 했죠. 초연 때만 해도 신발 없이 갈 자신이 없었어요. 그래서 서아 작가가 발바닥에 붕대를 감는 장면을 넣어줬거든요. 근데 재연 땐 맨발로 걸어나갔잖아요. 그렇게 걷다가 발바닥에 상처가 나는 일도 분명히 있겠죠. 아파서 울 수도 있지만, 적어도 자기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 잊지 않고 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두 분은 어떤 성장을 했는지도 궁금하네요.
서아: 스스로도 큰 성장을 했다고 봐요. 예전에는, 아니 작년까지만 해도 누군가의 편에 서 주는 게 사랑인 줄 알았거든요. 근데 이 작업을 통해서 자기 자리에 정확하게 서 있는 것, 그러면서도 상대방을 놓지 않는 것이 사랑일 수도 있다는 걸 배운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사람이 내 옆에 없다 하더라도, 계속 어딘가에서 살아가거나 나아가고 있다는 것에 진심으로 응원하게 될 때 제 자리도 지킬 수 있게 된 것 같고요.
은호: ‘프로 배우’가 되겠다고 생각했던 결연한 다짐이나 생각을 내려놓은 것이 성장 아닐까 싶어요. 또 무언가 기꺼이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 것도요. 예전엔 ‘내가 감히 이런 걸?’ 이라는 생각이 앞섰거든요. 요즘엔 내가 좋아하는 것, 사랑하는 걸 표현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어진 것 같아요. 그리고 상대의 마음에 따라서 내 마음의 크기를 조절하지 않게 되었다는 게 제일 큰 성장이 아닌가 싶어요.
-<이사공 이사오>에 공감한 관객 후기들 보면 ‘나도 은호였다’는 말들이 보이더라고요. 무대 밖 많은 ‘은호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서아: 먼저 이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로 흡수해 줘서 너무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이 이야기를 받아들여줘야 자신의 이야기가 되는 거니까요. 리허설 때 한번 “우리가 별 같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밤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은 같아 보이지만 사실 같은 별이 아니잖아요. 다 다른 별이고, 또 멀리 떨어져 있죠. 하지만 하나의 망으로 연결되어 있잖아요. 그걸 잊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은호: 관객 후기 보면서 신기했어요. 사실 우리 둘한텐 이게 하루에 4~5시간씩 연습한 이야기잖아요. 그렇게 하다 보면 좀 무뎌지는 면이 있기도 한데, 이 이야기를 본 사람들이 각자 해석한 걸 보니까, 이 이야기가 정말 ‘이야기’가 되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외롭지 않다는 생각도요. 우리 함께 계속 살았으면 좋겠어요.
-다음 작업이나 앞으로의 계획도 궁금합니다.
은호: 8월 27일, 28일 이틀 동안 ‘2022 코미디캠프: 파워게임 - 코캠 프린지’에 참여해요. <보는 연습>이라는 작품이고요. 10월엔 <허우적>이라는 작품에 배우로 참여할 것 같아요. 둘 다 지금아카이브와의 작업이에요.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사공 이사오>를 하면서 중국 연태에서 살 때 생각이 많이 났거든요. 기회가 된다면 다시 거길 가서 느낀 바를 엮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서아: 제가 관심 가지고 있는 건, 지방에 살던 퀴어가 서울로 상경해서 겪는 이야기에요. 그 안에서의 성장과 익명성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면 어떨까 싶어서 인터뷰나 리서치를 해 보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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