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미투’ 내부총질 취급하는 자는 누구인가

피해자 편에 서는 법[法] 로펌 대표변호사의 초임변호사 성폭행 사건

이은의 | 기사입력 2022/08/21 [19:15]

‘변호사 미투’ 내부총질 취급하는 자는 누구인가

피해자 편에 서는 법[法] 로펌 대표변호사의 초임변호사 성폭행 사건

이은의 | 입력 : 2022/08/21 [19:15]

※지난 몇 년간 한국 사회에서 첨예한 논쟁이 된 성폭력과 미투 사건들을 맡아 해결해 온 이은의 변호사의 기록, ‘피해자 편에 서는 법[法]’을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2021년 5월, 한 로펌의 대표변호사가 초임변호사를 업무상 위력으로 수차례 성폭행한 사건에 대한 언론 보도가 있었다.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고 나면 로펌이나 유관 기관에서 6개월간 실무수습을 거쳐야 정식 변호사로 활동을 할 수 있다. 피해자는 로펌에서 실무수습을 마치고 정식 입사한 지 몇 달 되지 않아 대표변호사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가해자는 사무실이나 재판을 오가는 업무차량을 범행 장소로 이용했다.

 

변호사를 꿈꾸며 열심히 노력해 얻은 자리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은 피해자는 바로 신고에 나설 수가 없었다. 하지만 피해는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았다. 약 한 달가량 성폭행이 이어졌다. 더는 견딜 수 없었던 피해자가 퇴사를 결정했다. 하지만 가해자는 피해자를 찾아와 성폭행을 했다. 그 후로도 연락이 왔고 만남을 종용했다.

 

피해자는 첫 성폭행 피해를 입고 정신과 치료와 심리상담까지 받고 있었지만, 고소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다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공포가 거꾸로 용기를 내도록 만들었다. 자신이 아니어도 누군가 피해를 입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결국 피해자는 고소를 결심했다. 이때가 2020년 12월이었다.

 

변호사계 미투, 누가 변호할 것인가

 

나는 대부분의 업무 일과를 성폭행 사건과 함께 보내지만, 이 사건 피해자를 마주하고 이야기를 듣는 것은 한층 난감하고 고통스러웠다. 피해자가 피해를 입을 당시 처했던 ‘그때’의 입장이나, 고소를 결심하며 처한 ‘지금’의 입장이 너무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소를 하고난 후 겪게 될 여러 어려움들이 그려졌다.

 

사건의 성격상, 대형 로펌을 선임하거나 변호사 단체나 여성단체에 도움을 구할 법한 사안이었다. 피해자는 로펌 대표이자 법조이력이 긴 가해자가 수사기관이나 법원에 영향력이 있는 지위에 있다는 생각으로 불안해했다. 또한 보수적인 변호사 업계에서 이 사건 고소로 생길 파장이나 자기가 입게 될 2차 피해에 대해 걱정했다. 업계를 겪어본 사람이라면, 입지가 취약한 청년변호사라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 불안과 걱정을 딛고 낸 피해자의 결심이 단단했다.

 

문제는 나였다. 여성가족부 무료법률지원 사건을 하던 중에 스토킹을 겪기도 했고, 유튜버 양예원 씨 미투 사건을 맡으면서 온갖 악플 세례를 받았던 직후였다. 도와 달라, 함께하자, 손 내미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막상 그런 분쟁의 복판에서 쏟아지는 공격을 받는 순간엔 다들 몸을 낮췄다. 총성이 난무한 전장을 홀로 뛰어가듯 하는 날들이었다. 게다가 변호사 미투 사건은 피해자의 어려움만큼 피해자의 변호사가 감당해야 할 부담이 큰 사건이었다. 사건을 맡아야 할지 고민이 깊었다.

 

솔직히 말해서 변호사의 입장에서 보면 공보다 욕을 많이 먹을 게 뻔한 사건이었다. 가해자가 변호사이니 사건을 풀어가는 것이 녹록잖을 것은 당연지사고,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법조계 안에서 ‘내부총질’ 취급 받을 것이 뻔했다.

 

이보다 몇 해 전, 성폭행 사건 상담이 예정되어있던 오후 복판에 같은 사무실을 쓰던 변호사가 큼지막하게 유리창이 난 변호사실 안에서 성관계하는 상황을 목격했던 것이 떠올랐다. 방음도 잘 안 되는 공간이었다. 나는 피해자가 오기 전에 상황을 수습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가 적어도 다음날이나 그 다음날이라도 사과할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개업 직전 선배변호사에게 입은 추행 사건도 생각났다. 당시 나는 문제 제기를 할 고민조차 하지 못했었다. 선배변호사가 다음날 사과를 했기 때문에 참은 것처럼 스스로를 속였지만, 이제 막 진입한 업계에서 성추행 문제를 제기한 피해자가 되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이제 막 변호사가 됐으니까, 이제 곧 개업할 텐데. 그래서 나는 문제 제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변호사로서 한국사회의 낙후된 성인지 감수성에 대해 온갖 저항의 몸부림을 하며 달려왔지만, 내가 선 자리도 별반 다를 게 없음에 대해서는 얼마나 직면하고 저항했던가. 그래도 이 피해자는, 이 후배는, 이 사람은, 지금 용기 내서 내 앞에 있는데 말이다.

 

가해자의 자살과 음모론

 

2020년의 마지막 날, 피해자와 서초경찰서에 나가 긴 조사를 받았다. 서초경찰서에서 여경에게 조사를 받을 수 있도록 배려했지만, 우리는 담당수사관의 직접 조사를 청했다.

 

한없이 점잖아 보이는 일터에서, 한 달 남짓, 나이도 어리고 이제 막 약진하는 초임변호사를 대상으로 로펌 대표변호사의 성폭행이 이어졌다. 다시 경찰서에서 진술을 듣는 동안에도 중간중간 현기증이 일었다. 피해자는 담담했다. 밤 9시가 넘어서야 조사를 마쳤다. 경찰서를 나와 피해자와 말없이 걸었다. 애썼다, 고맙다 말을 먼저 건넨 건 피해자였다. 그렇게 헤어져 새해를 맞았다.

 

그런데 설이 지나고, 3월이 오도록 수사엔 진척이 없었다. 고소를 하고 진술을 마치고 3개월이 지나도록 피의자 출석도 이루어지지 않다 보니 피해자나 변호사나 초조하긴 매한가지였다. 피해자가 첫 피해를 입고 바로 신고하지 못하고 속수무책 피해에 노출된 것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가해자는 피해자 앞에서 수시로 법조계에서 품평의 중요성을 이야기했고, 스스로 입지가 탄탄함을 자부해왔다고 한다.

 

피해자에게 가장 큰 고민거리는 자신이 입은 피해 사건이 제대로 수사되고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인가였다. 검찰의 기소나 법원의 판결에서 가해자가 가진 지위로 인하여 생길 불공정을 경계했다. 보수적인 법조계에 갓 발을 디딘 초임변호사의 입장에서, 또 대표변호사로부터 업무상 위력으로 상습적인 성범죄 피해를 입은 입장에서 보면, 그리 이상할 일도 아니었다. 그런 피해자를 걱정 말라고 격려하고 다독이면서도, 나 역시 마음 한 켠에서 이런 걱정을 내려놓기 어려웠다.

 

결국 피해자는 어렵게 이 사건을 공론화하기로 결정했다. 사건이 기소되고 재판을 거치며 길어지면, 아무래도 좁은 법조계 내에서는 피해자의 신분이 노출될 우려가 커진다. 공론화를 하면 더욱 그렇게 되겠지만, 사건을 지켜보는 눈이 많을수록 그나마 법조계의 공정성이 확보될 거란 간절함이 컸다. 피해자는 직접 기자를 만나 인터뷰했다. 피해자의 서사는 구체적이었다.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랐기에 피해의 과정과 내용, 그런 때마다 마주했던 내적 갈등에 대해 자세히 말했다.

 

피해자가 언론 보도를 결심한 것은 수사에 영향을 주려는 것이 아니었다. 2021년은 성범죄를 포함하여 일반사건에서 검경수사권이 분리되기 시작한 해였다. 그래서 피해자는 경찰이 언론이나 여론에 흔들리지 않고 수사하여 마무리된 후, 송치 여부가 결정된 후에 기사가 보도되기를 원했다. 경찰에서 4월에 가해자에 대한 조사를 마쳤고, 4월 마지막 주에 검찰에 송치할 것임을 알려왔다. 언론 보도는 5월 첫 주로 결정됐다.

 

그런데, 인터뷰 기사가 나간 지 이틀이 채 지나지 않아 가해자가 자살했다. 피의자 사망으로, 사건은 사실상 공소권 없음이 기정사실화될 수밖에 없었다. 가해자의 자살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것은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도 아니고, 피해자에 대한 속죄는 더더욱 아니다. 가해자의 죽음으로 피해자가 제기한 모든 법적 절차가 사실상 중단되는데, 이는 곧 피해자의 권리가 사라지는 것이다. 심지어 죽은 가해자에 대한 동정 여론은 이내 살아있는 피해자에 대한 의심과 원망으로 치환되기 일쑤다. 그래서 가해자의 자살은 속죄가 아니라 궁극의 이기성이다. 이 사건도 다르지 않았다.

 

▲ 2021년 5월 26일, 로펌 대표에 의한 성폭행 사건 가해자가 사망하자, 피해자에 대한 의혹과 각종 음모론이 제기되었다. 심각한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5월 31일, 기자회견을 열고 피해자의 입장문을 대독했다. (화면 출처: KBS 뉴스)

 

사건이 알려지자마자 가해자가 사망한 사건에 대해, 누구 하나 피해자를 향해 선뜻 손을 내밀지 않았다. 사건이 보도됐을 땐 여러 변호사 단체들, 유관 단체들에서 연락을 해왔는데, 가해자가 자살하자 순식간에 사라졌다. 확인된 사실이 없다거나, 가해자도 같은 변호사인데 자극적인 기사는 내려야지 않냐 등 어지러운 말들만 난무했다. 피해자에 대한 수많은 2차 피해가 시작됐다. 변호사들의 익명 채팅방이나 사이트, 개인 SNS 등에는 피해자일 수 있는 여성 변호사들의 신상정보가 돌아다녔다. 피해사실 자체에 대해 노골적으로 의구심을 표출하기도 했다. 피해자의 인터뷰 기사를 두고도 각종 음모론이 제기됐다.

 

피해자가 심각한 2차 피해에 노출된 상황에서, 변호사로서 그대로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얼굴과 이름을 밝히고 나설 수 없는 피해자를 대신해, 피해자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전하기로 했다. 그러나 가해자의 죽음으로 인해 피해자의 미투를 둘러싼 의견이 분분해지자, 기자회견을 함께하기로 했던 곳에서 ‘피해자가 직접 도움을 청하지 않아서 내부에 이견이 많다’며 기자회견에 불참을 통보했다. 결국 나는 혼자 사회를 보고, 사건 브리핑을 하고, 피해자 입장문 낭독하며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러자 이번엔 기자회견을 두고 말이 많았다. 피해자가 기자회견에 동의한 것이 맞느냐, 피해자 변호사가 성급하게 언론에 보도해서 가해자가 사망한 것 아니냐 등. 겉보기에 피해자는 겨냥하지 않은 것 같지만, 피해자의 존재를 무시하거나 탓하는 말들이 무성했다. 지금까지 있었던 미투 사건들이 죄다 무색할 지경으로, 기소도 안 된 사건을 공론화했으니 잘못된 것이란 말이 공공연히 회자됐다. ‘변호사 미투 사건’은 이렇게 점점 ‘특별’해져갔다.

 

피의자가 자살하더라도 수사는 계속되어야 한다

 

피해자는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아야 했다. 다른 마을에서 일어난 미투와 우리 마을에서 일어난 미투를 대하는 현격히 다른 온도를 체감하며, 피해자와 내가 함께 느꼈던 것은 공포감이었다. 피해자가 피해에 속수무책이었던 것이 업무상 위력 때문이었는데, 그것이 단순히 가해자와의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피해자가 몸담고 생활해야 하는 소속사회와의 관계와 연동되는 거대한 것임을 환기하는 순간이었다.

 

▲‘성폭력 사건 피의자가 자살하더라도, 수사를 중단하지 말고 마무리해서 그 결과를 피해자에게 알려주고 종결해야 한다.’ 2021년 6월 8일, 서초경찰서를 방문해 피해자에게 수사 결과를 알려달라고 요청하였다. (화면 출처: YTN)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경찰에는 사건 수사가 마무리된 상황이니 피해자에게 수사 결과를 알려달라고 요청하였다. 대한변호사협회에는 피해자를 위해서나 가해자를 위해서나 ‘성폭력 사건에서 피의자가 자살하더라도 수사를 중단하지 말고 마무리해서 수사 결과를 피해자에게 알려주고 종결할 수 있도록 관행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하지만 변협은 끝내 피해자의 진정에 침묵했다.

 

반면, 서초경찰서는 불송치결정문에서 총 7장에 걸쳐 수사 결과를 소상히 기재해 보내왔다. 누가 보더라도 피해자가 주장했던 피해 사실 대부분이 사실로 판단되기 충분한 수준이었다. 특히 업무상 위력을 앞세운 폭력 앞에 피해자를 무력하게 만들었던 현실에 대해, 다수의 변호사들이 참고인으로서 입을 열었다. 특히 수습변호사들을 채용하는 데 있어서 평판조회 등이 큰 영향을 미친다는 의식이 공공연하다는 사실도 언급되었다. 불송치결정문 안에는 피해자가 로펌을 퇴사하면서 추가 피해자가 있을 것을 걱정하며 당부를 했던 내용도 기재되어 있었다.

 

수사기관의 수사 결과 고지는 피해자가 입을 2차 피해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방어 수단이었다. 관련해서 언론에 보도자료를 돌리고 피해자의 입장을 밝혔다.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소임을 다하며 살고 있는 개별 변호사들에 대한 신뢰와 희망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런 과정 속에서 피해자가 좀 더 힘을 내, 직접 방송사와 전화 인터뷰에 응하기도 했다. 피해자에 대한 의심도, 잘못된 보도니 ‘언론플레이’니 하며 분분했던 무수한 말들도, 경찰이 수사 결과를 담은 불송치결정문을 보내오자 잠잠해졌다.

 

2021년은 피해자와 함께 어느 때보다 더운 여름을 났다. 우리 사회를 그토록 뜨겁게 달구었던 미투의 실체가 고작 이것이었던가 좌절도 적지 않았지만, 그런만큼 더 직시해야 할 현실을 마주하며 어느 지점부터 바꿔가야 할지,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환기하는 계기가 됐다. 피해자에게나 나에게나 일련의 시련이 태풍처럼 휘몰아쳤지만 우리는 떠내려가지 않았고, 다쳤지만 단단해졌다.

 

[필자 소개] 이은의. 2014년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된 후, 서울 서초동 법원검찰청 코앞에 <이은의 법률사무소>를 열고 지금까지 여러 성폭력, 성차별 사건들을 다뤄왔다. 특별한 정의와 굉장한 진보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당연한 일들이 당연하게 처리되는 세상을, 합리적인 사고와 담론이 통하는 사회를 꿈꾸며 어느새 9년째 말하고 글 쓰며 싸우는 최전방에서 세상을 계속 배워가는 중이다. 저서로 『삼성을 살다』, 『예민해도 괜찮아』, 『불편할 준비』, 『상냥한 폭력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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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ㅇㅇ 2022/08/25 [14:04] 수정 | 삭제
  • sns에서 떠들썩했던 사건.. 변호사님이 변호를 맡고 계셨군요. 가해자가 무책임하게 자살을 했는데 피해자측 탓하는 거.. 다시 생각해도 너무 화나는 일이었어요. 피해자분도 변호사로 일하고 계시겠지요? 꽃길만 걸으시길 바랍니다..
  • 독자 2022/08/23 [17:36] 수정 | 삭제
  • 피해자분도 변호사님도 마음고생 많으셨어요. 법조계 미투 지지합니다.
  • 그린애플 2022/08/22 [16:25] 수정 | 삭제
  • 연재 잘 보고 있어요. 판검사, 변호사들은 성희롱 예방교육, 성인지 감수성 교육, 기본적인 인권교육 어떻게 받고 있는지 궁금해지네요.
  • 모래 2022/08/22 [14:20] 수정 | 삭제
  • 로펌 대표변호사 성폭력 사건... 글을 보니까 뉴스에서 보았던 기억이 났습니다. 경찰 수사결과가 나와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서울시장 사건은 수사가 그냥 종료돼버렸잖아요. 수사가 진척이 안 된 채 닫혀버리고 피해자에 대한 공격이 너무 심해서 진짜 피해자분의 심정이 어떨지.. 걱정이 됩니다.
  • 파이리 2022/08/22 [00:56] 수정 | 삭제
  • 기사 내용에서 틀린 부분을 정정합니다. 변호사시험에 합격하면 정식 변호사입니다. 수습 기간 6개월과는 상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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