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는 기득권과의 싸움, 피해자에겐 지지자가 필요하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미투운동 중간결산> 행사 개최

박주연 | 기사입력 2022/08/25 [19:59]

미투는 기득권과의 싸움, 피해자에겐 지지자가 필요하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미투운동 중간결산> 행사 개최

박주연 | 입력 : 2022/08/25 [19:59]

“우리들의 연대가 너희의 공모를 이긴다”(2020년 6월 11일, 일명 ‘박사방’ 사건 첫 공판날 진행된 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 기자회견 제목), “그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2020년 7월 13일,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고소인의 입장을 전하는 한국여성의전화 주최 기자회견 제목), “우리는 ‘자격 없는’ 여성들과 세상을 바꾼다”(2020년 2월 6일,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합격자 입학 반대 논란에 대한 한국성폭력상담소 논평) 등 반성폭력 운동의 담론을 확장시키며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외쳤던 말들이 커다란 현수막으로 펄럭이는 자리.

 

지난 20일, 서울 인사동 KOTE에서 한국성폭력상담소 주최로 <미투운동 중간결산 - 지금 여기에 있다> 행사가 열렸다. 미투 운동 지난 5년 간의 기억을 함께 길어 올리고자 하는 시민들이 모여 들었고, 행사는 온라인 유튜브로도 중계됐다.

 

▲ 한국성폭력상담소 주최 <미투운동 중간결산 - 지금 여기에 있다> 행사장. FDSC에서 제작한 현수막들이 전시되어 있다.  ©일다

 

행사장엔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클럽’ FDSC에서 제작한 ‘미투운동이 당신에게 건넨 말’ 현수막과 포스터, 책갈피가 배치되어 있었다. 피해자에서 생존자, 그리고 감시자가 된 D의 『그림자를 이으면 길이 된다』, 안희정 성폭력을 고발한 『김지은입니다』, 성범죄 피해자의 프레임을 깨기 위해 모인 『허들을 넘는 여자들』, 전국금속노동조합의 여성운동사를 기록한 『여성노동자, 반짝이다』 등의 책들도 소개됐다.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이 운영하는 불량언니작업장에서 제작한 굿즈들도 자리했고, 직접 로스팅한 원두를 선보인 김지은 씨의 람지커피도 사람들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본격적인 행사는 문단 내 성폭력을 고발한 트위터 ‘고발자5’ 공동 운영자이자 시인B의 성폭력을 공론화하고 형사고소 했던 고발자X와, 고은 시인의 성추행을 밝힌 최영미 시인의 이야기가 담긴 영상 <미투운동 중간결산: 1664일, 달라진 질문>(다큐멘터리 ‘애프터미투’ 프로젝트 팀 제작) 상영으로 시작되었다.

 

이어 ‘공동체의 성찰’, ‘2차 피해 해결’, ‘피해자의 일상’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지난 5년 간의 시간을 되짚으며 함께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과 동시에,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패널로는 안희정 성폭력 사건 증인부터 반성폭력운동 활동가, 연구자, 스쿨미투 고발 당사자 등이 참석했다.

 

미투 운동 5년, 기득권이 얼마나 공고한지 확인한 시간

 

먼저 안희정 성폭력 사건 증인 신용우 씨, 정의당 장혜영 의원, 성평등작업실 ‘이로’의 이산 대표, 한국성폭력상담소 란 활동가가 <성찰 빼고 돌아올 때: 가해자 처벌 후 복귀 전, 공동체의 숙제>라는 주제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8년 동안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수행 비서였으며 피해자에게 업무를 인수인계했던 신용우 씨는 재판 당시 피해자 편에 서서 증인을 한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를 비롯한 피해자 측 증인들은 재판 당시, 그리고 이후에도 여러 고초를 겪었다. 반면 가해자인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편에 섰던 증인들과 지지자들은 초고속 승진을 하거나 더 좋은 위치로 이동했다고 신 씨는 밝혔다.

 

신용우 씨는 이런 가해자’들’의 승승장구가 “대한민국의 구조적인 문제”라 꼬집었다. “아무리 불의라 하더라도 권력에 부딪히는 일이면, 오히려 권력에 줄을 서야 돈과 명예를 가질 수 있는 구조”라는 거다. 신 씨는 “안희정 성폭력 사건은 개인이 개인에게 저지른 범죄를 뛰어넘어, 권력과 그 고리들이 피해자와 진실의 편에 선 사람들을 얼마나 가혹하게 공격했는지는 보여 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혜영 의원은 그런 점에서 “지난 5년 동안 가해자들이 가진 기득권이 얼마나 공고한지 확인하는 시간”이었으며, 동시에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고 처벌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성찰을 요구하는 시간”이기도 했다고 짚었다. “미투 운동이 무엇과의 싸움이었는가 묻는다면, 성폭력과의 싸움인 것과 동시에 기득권과의 싸움이었다고 생각한다.”

 

▲ 8월 20일, 서울 인사동 KOTE에서 한국성폭력상담소 주최로 열린 <미투운동 중간결산 - 지금 여기에 있다> 첫 번째 세션 진행 모습 (한국성폭력상담소 제공)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과연 얼마나 달라졌나? 장 의원은 “우리가 미투 운동의 전체적인 흐름과 그 안의 개별적인 사건들을, 어떤 이야기로 기억하고 표현하고 전달하고 있는가가 우리의 성찰이 어디까지 왔는지 보여 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이야기는 피해자의 용기에 대한 확장”이라고 덧붙였다.

 

이산 대표는 “가해자가 출소하거나 (공동체로) 돌아왔을 때, 가해자가 다시 힘을 가지고 공동체를 흔들 수 있는지 없는지를 알기 위해선, 공동체 내 이해관계망을 제대로 들여다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동체 내 성평등 감수성도 중요하지만, 공동체 내 사람들이 계속 활동하며 자원을 얻을 수 있는가가 결국 이해관계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거다.

 

공동체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피해자가 돌아갈 곳은 없다. 장혜영 의원은 “‘피해자는 일상으로, 가해자는 감옥으로’라는 말을 하긴 하지만, 사실 (피해자에게) 돌아갈 일상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 짚었다. “미투 운동이 기득권과의 싸움”인데, “사실 그 기득권으로 구성되었던 것이 나의 일상이었을 때, 그 일상으로 돌아갈 순 없다”는 것. “결국 새로운 일상을 창조해 내야 한다”는 거다. 장 의원은 “우리는 (피해자와) 함께 어떻게 새로운 세계관을 만들어나갈 것인지 끝까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차 피해’란 무엇인가? 공동체의 토론 필요해

 

2차 피해에 대한 이야기도 뜨거웠다. 미투 운동의 시간은 “2차 피해 대응의 시간이기도 했다”고,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말했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2차 피해라는 말은 아는데 어디부터 무엇이 왜 문제인지 짚어낼 역량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인 것 같다”고 진단했다.

 

김 소장은 또한 “(가해 행위를) 부인하려는 행위를 하는 이들이 그룹으로 조직화 되어있다는 것”을 발견 했다며, “이런 구조를 시민들에게 어떻게 알려야 할지 여전히 고민된다”고 말했다.

 

이보라 국회여성정책연구회 회장은 “2018년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 만들어졌고 거기에 ‘2차 피해’라는 말이 들어가긴 했지만, 2차 피해라고 하는 폭력이 추상적으로 되어 있고 강제 수단이 제한적으로 되어 있다는 점”을 한계로 들었다. 현재 “2차 피해라고 하는 개념이 알려지긴 했지만 그것을 방지할 효과적 수단이 아무 것도 없다”는 거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대표는 “이런 법제화가 의미가 있지만, 처벌 조항이 없다는 한계가 명확한 상황 속에서 모든 것을 다 제도화해야 하는지 고민”이라고 털어놨다. 또한 모든 사건이 다 사법적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사안마다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 소장도 “사회 윤리 차원에서의 이야기와, 사법적인 차원에서의 이야기가 나눠질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2차 피해의 법적 범위를 너무 넓게 확장시켰을 때”의 문제점도 이야기했다. 이 범위가 너무 넓어진다면 “피해자에게 어떤 것을 물어보는 것 자체가 2차 피해라는 식”의 이야기기 끊임없이 나오게 되고, “거기에 불필요한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쓰게 되는 문제”가 생긴다는 주장이다. 때문에 “(성폭력 사건에 대해서) 정확하게 ‘누구와, 어떤 집단에게, 무엇을 물어야 하고, 그것이 왜 필요한 일인가’라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진척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권김 소장은 “이 문제는 ‘우리가 함께 어떤 사회를 만들어갈 것인가’라는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2차 피해를 없애자는 걸 큰 목표로 삼기보다, 이것이 왜, 어떻게 발생되고 있는지 살피고 사건을 지원”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관련 규정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규정을 (공동체 내에서) 얼마나 시간을 들여 인지하게 하는지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가이드라인이나 규정을 만드는데 그치지 말고, 그것을 읽고 같이 공유하고 토론하고 공부하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

 

▲ 8월 20일, 서울 인사동 KOTE에서 한국성폭력상담소 주최로 열린 <미투운동 중간결산 - 지금 여기에 있다> 세 번째 세션 진행 모습 (한국성폭력상담소 제공)

 

피해자의 회복에는 동료들의 지지가 필요하다

 

피해자가 어떻게 일상을 되찾을 것인가, 주변의 지지자들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도 더해졌다. 스쿨미투 당사자이자 충북스쿨미투지지모임에서 활동하는 주연 씨는 관계망이 좁은 지역에서, 청소년이 성폭력을 고발하고 가해자를 상대로 고소를 진행하는 것의 어려움과 고통을 토로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살아낼 힘을 얻었다”며, “(피해자의) 일상 회복은 이전으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한 현재를 살아가는 것”임을 이야기했다.

 

무엇보다도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피해자의 삶에 여유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주연 씨는 “피해자의 사회 복귀를 개인의 역량에 달린 문제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금전을 비롯한 생활 및 치료 지원의 접근성이 확대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또한 “아무렇지 않게 평소처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주변인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2004년 전국금속노동조합 내에서 성폭력을 고발한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공동체에 남아 부위원장이 된 권수정 씨는 “동지들의 응원으로 일상이 회복되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성폭력 사건을) 잊어버려서가 아니라, 동지들의 지지로 상처가 치유될 수 있었던 거”라고. 권 부위원장은 이런 내용이 “시스템으로, 조직의 매뉴얼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범죄 피해를 겪은 여성 10명의 에세이와 성폭력 대응 매뉴얼을 담은 책 『허들을 넘는 여자들』을 기획한 허 에디터는 피해자가 겪은 피해뿐만 아니라 “피해자가 꿈꾸고 있는 것, (피해 이후에도) 살아가는 방식 등의 이야기가 더 많이 나와야 한다”는 점을 짚었다.

 

피해자와 함께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여러 의견이 나왔다. 주연 씨는 “단지 힘내라, (네가 하는 일이) 멋있다 라고 말하는데 그치지 말고, 정말 어떤 방식으로든 함께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권수정 부위원장은 “너무 조심하느라 다가가지 못하기보다, 조금은 용감하게 (피해자에게) 접근해 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들 에디터는 “내가 피해자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알려주고, 피해자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주말인 토요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지속된 긴 행사였지만, 마지막 가수 이랑의 공연이 진행될 때까지 참석자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번 행사는 미투운동이 끝나지 않았으며,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이들의 열망과 목소리도 여전하다는 걸 보여줬다. 피해자들과 함께하는 새로운 일상,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이들의 힘찬 소리가 더 많은 이들에게 가닿길 바란다.

 

※<미투운동 중간결산 - 지금 여기에 있다> 행사 다시 보기: https://youtu.be/i7ztN4Awb8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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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름 2022/08/27 [22:40] 수정 | 삭제
  • 김지은씨 개업하셨나요? 람지커피. 주문해서 받아볼 수 있을지 궁금하네요. 미투운동은 피해자들이 얼마나 덜 상처받고 전보다 잘 살 수 있는지 관심 가지고 우리가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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