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재난도 불평등하다, 아동부터 노인까지 ‘기후정의!’

수만 명의 시민들 발걸음 이어진 924 기후정의행진

박주연 | 기사입력 2022/09/27 [13:33]

기후재난도 불평등하다, 아동부터 노인까지 ‘기후정의!’

수만 명의 시민들 발걸음 이어진 924 기후정의행진

박주연 | 입력 : 2022/09/27 [13:33]

“기후재난, 이대로 살 수 없다! 기후정의 실현하라!”는 목소리가 한데 모였다. 지난 9월 24일 토요일, 서울 시청역 근방에 모인 3만 5천여명의 시민들은 다양한 메시지가 담긴 깃발과 피켓, 현수막을 들고 목청을 높였다. 유아차에 탄 유아부터 손수 그린 피켓을 든 어린이/청소년, 청년과 중년, 머리가 희끗한 노년의 사람들까지, 전 세대가 한데 모인 자리였다.

 

▲ 924 기후정의행진 중 광화문 부근에서 진행된 다이인(Die-in) 퍼포먼스 모습 (출처: 924 기후정의행진)

 

기후정의행진은 오후 1시에 사전행사(부스, 자유발언대 등)가 시작된 때부터 시민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았다. 청년기후긴급행동, 불교기후행동, 에너지정의행동,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등 관련 단체는 물론 권리찾기 유니온,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 권리보장을 위한 네트워크,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교육노동운동의 전망을 찾는 사람들, 동물권행동 카라 등 다양한 영역의 시민사회 단체가 부스에서 기후정의를 위한 캠페인 혹은 안내 자료 등을 배포했다.

 

오후 3시부터 진행된 본 집회가 끝난 후엔 수많은 참가자들이 시청역에서부터 광화문역, 안국역, 종각역 등 약 5km를 함께 걸었다. 행진 중 광화문 일대에선 ‘다이인 퍼포먼스’(다이-인 Die-in은 ‘죽은 듯이 눕는다’는 뜻으로, 참가자들이 일정 시간 땅에 눕는 비폭력 시위)가 열리기도 했다. 행진이 끝난 후에도 공연과 퍼포먼스가 있는 문화제가 이어졌다.

 

“화석연료 체제를 종식”하고 “생명파괴 체제도 이제 그만”하고 “불평등을 끝장내자”는 기후정의행진 모습을 전한다.

 

대도시인들이여, 에너지 사용을 줄여라!

 

전세계가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을 겪고 있는 2022년, 탄소중립(탄소 배출량은 최대한 감소시키고 흡수량은 증대시켜 순 배출량을 0 수준으로 낮추는 것)을 외치는 목소리가 무색하게 강원도 삼척엔 석탄화력발전소 ‘삼척블루파워’가 건설되고 있다. 국제사회가 석탄발전 폐쇄를 권고하는 이 시점에도 국내에 새로운 석탄화력발전소가 지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진 도시인은 얼마나 될까?

 

▲ 924 기후정의행진에서 기후변화를 가장 먼저 체감하고 있는 농부들도 목소리를 높였다. ©일다

 

마이크를 잡은 하태성 삼척석탄화력발전소반대투쟁위원회 위원장은 “정말 이대로 살 수 없겠다 싶어서 삼척에서 올라왔다”며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서 생활하는 시민들에게 야단치고 싶다. 에너지 좀 그만 쓰라고, 아파트 평수 좀 그만 넓히라고, 냉장고 사이즈 좀 그만 키우라고 외치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에너지 소비가 결국 또 다른 발전소 건립의 명분이 되고 있는 탓이다.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중단 운동을 하고 있는 하 위원장은 국회의원, 도지사 등의 정치인을 만나면 ‘법이 없다’는 핑계를 댄다며, “석탄화력발전소 건립 중단을 위한 탈석탄법 제정”에 힘을 실어 달라고 강조했다.

 

대도시의 에너지 과도 사용을 비판한 건, 월성원전 인접지역 주민도 마찬가지다. 황분희 월성원전 인접지역 이주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은 “발전소 가까이 살면서 공기와 먹거리, 마시는 물, 농수 물까지 다 오염된 것과 함께 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이 조그만 시골 마을에서 그 에너지를 다 쓰겠냐. 이 에너지를 다 쓰는 건 누구냐? 바로 대도시”라고 지적했다. 대도시의 에너지 사용을 위해 희생 당하고 있지만, 국가는 대책에 묵묵부답이다. 방사능이 기준치 이하여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말의 반복일 뿐이다.

 

황 부위원장은 “주민들에게 이주할 권리를 달라”는 요구뿐 아니라, 핵발전소의 무서움을 강조하며 “지구와 사람을 위해서 더 이상 핵발전소는 짓지 말아야 한다. 핵발전소는 정의롭지 않다! 그러니까 전기를 아껴쓰자!!”고 당부했다.

 

▲ 924 기후정의행진 중 ‘핵발전소 주민 이주지원 법률 제정’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 ©일다

 

기후정의, 주거정의, 그리고 정의로운 일터를!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 또한 기후정의에 목소리를 보태며 ‘발전소 노동자들의 정의로운 일자리 전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박종현 공공운수노조 금화PSC지부 사무국장은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일 한지 10년 째”며 “그동안 차질 없이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문제가 생기면 밤낮 없이 발전소로 나와 일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 “석탄화력발전소가 기후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하나둘 폐쇄가 결정되었고, 일자리는 앞으로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박 사무국장은 발전소 노동자에 대해 논의하지 않는 채 발전소가 폐쇄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표했다. “지금이라도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가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하여 정의로운 (일자리) 전환이 꼭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위한 태안화력발전소 노동자 공동선언’에서도 발전소 노동자들은 “노동자의 고용 보장, 정규직 고용”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전력산업의 민영화를 반대”하며 “민간주도의 재생에너지 건설을 중단하고 재생에너지 공기업을 건설”해야 정의로운 에너지전환이 이뤄질 수 있음을 강조했다.

 

노동권에 이어 주거권에 대한 목소리도 나왔다. 지난 여름 기후재난 참사 이후 기후위기로부터 안전한 주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변하지 않은 현실, 아니 오히려 퇴보한 현실에 대한 비판이 잇따랐다.

 

▲ 924 기후정의행진 중 인권, 노동권을 보장하여 기후정의를 실현하라고 요구하는 시민들의 모습(좌)과 임대주택 제공 등 주거권을 보장하여 기후정의를 실현하라고 요구하는 시민들의 모습(우). ©일다

 

이재임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지난 참사 이후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요구했지만 책임 당국이 내놓는 대책은 여전히 형식적”이라고 했다. 오히려 “대규모 개발과 주택 공급을 통한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식의 주거 불평등을 더 악화시키는 계획만 반복”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 심지어 “내년 공공임대주택 예산은 올해 대비 30%나 삭감되어 역대 최고치 삭감을 기록”했다. (관련 기사: 세입자, 반지하 거주자들 “내가 LH 사장이 되겠다” https://ildaro.com/9445)

 

이재임 활동가는 “이런 상황이, 기후위기와 함께 한국 사회 불평등의 핵심 고리 중 하나인 부동산 산업을 함께 말해야 하는 이유”라며, “빈곤을 만들어내는 뿌리, 주거 불평등을 만들어 내는 뿌리, 기후위기를 만들어 내는 뿌리는 닮아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친환경 주택을 더 짓겠다는 등의 개발도 기후위기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한국 사회의 부동산 산업을 그대로 답습하는 한, 기후위기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오래된 주택가를 밀어 없애 저렴한 주거기가 고가의 아파트 단지로 변하고, 그 집을 소유하지 않거나 비싼 주거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결국 밀려나는 불평등을 이제 끝내야 한다. 기후정의를 함께 말하고 있는 우리는, 지금껏 짓고 허물기를 반복하는 개발 방식에 이제 아무런 정당성이 없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우리에겐 기후혁명이 필요하다

 

‘미래세대’라 불리며 기후위기에 대한 책임을 떠넘겨 받고 있는 청소년, 청년 기후 활동가들, 코로나19 팬데믹을 비롯한 여러 기후 재난의 상황에서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거나 안전망에서 배제되는 성소수자, 이주민, 장애인 활동가들, 농업의 현장에서 기후위기로 인한 변화를 가장 먼저 체감하고 있는 농부들 모두 한 뜻으로 기후정의가 시급하다고 외쳤고, 변화를 요구했다.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급진적인 변화를.

 

▲ 서울 시청역과 숭례문 인근에서 개최된 ‘924 기후정의행진’에는 3만5천여 명의 시민들이 참여했으며, 본 행사 이후 총 10개의 긴 행렬이 이어졌다. ©일다

 

김지은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은 “대규모 자연 파괴와 생태 학살을 당연한 것처럼 무한정 요구하고 용인하는 자본주의 체제, 기후위기를 불러온 주범인 자본주의 체제를 철폐하지 않으면 이 붕괴를 멈출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착한 성자로 살아가는 개인의 실천을 넘어”서야 한다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캠페인이 아니라 혁명”이라고 강조했다. “어쩌다 태어나 보니 자본주의 세상에 살게 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잘못된 세상을 폐기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며 그것이 “우리의 마땅한 권리이자 존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집회 마지막에 참가자들이 함께 외친 924 기후정의선언에도 “불평등하고 위협적이고 폭력적이 이 체제 아래서 이대로 살 수 없고, 이대로 살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담겼다. “화석연료와 생명파괴 체제를 종식하고”, “모든 불평등을 끝장내고”, 기후위기를 야기한 자본가, 대기업이 아닌 “기후위기 최일선 당사자의 목소리가 커진” 사회를 향해 나아가자는 목소리, 이 거대한 목소리가 기후혁명의 시작일지 모른다.

 

※ 9월 한 달 간 탈석탄법 제정을 위한 국민청원이 진행된다. 참여 링크. https://petitions.assembly.go.kr/status/onGoing/E445D627FC6A568CE054B49691C1987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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