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이미 다양한데, 낡은 법률 언제까지?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을 위한 국회 토론회에서 모인 목소리

박주연 | 기사입력 2022/09/30 [16:05]

가족은 이미 다양한데, 낡은 법률 언제까지?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을 위한 국회 토론회에서 모인 목소리

박주연 | 입력 : 2022/09/30 [16:05]

얼마 전 동네 약국에서 조제약을 기다리다, 약사가 조금 큰 목소리로 어떤 노년 여성에게 약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걸 보게 됐다. 약사는 몇 번이고 반복해서 약 복용 방법을 알려주며 꼭 제 시간에 맞춰 챙겨 먹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었다. 약사의 “아셨죠?”라는 물음에 시원치 않는 대답이 나오자, 옆에 있던 다른 노년 여성 분이 “요즘 치매가 더 심해져서 그래”라고 설명해 준다. “집에서 챙겨 주는 분 없어요?”라는 물음엔 “아들이 있는데…. 전혀 관심 없어.”라는 답이 돌아온다.

 

알고 보니, 약을 받으러 온 분은 또래 친구 두 명과 함께였다. 그 친구들이 약사와 대화하며 환자의 상태를 설명했다. 약사가 “매일 제 때 꼭 먹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며 약을 넣어두는 달력을 함께 건넸다. 약 달력을 받은 친구 두 명은 “여기에 약 넣으라고 어떻게 설명해. 우리가 약을 넣어서 주자”는 대화를 나누며 환자인 친구의 손을 잡고 약국을 나갔다.

 

현재 한국 사회의 돌봄 제도와 현실의 틈을 단번에 체감할 수 있는 인상 깊은 장면이었다. 만약 이 환자의 질병이 더 심각해져 병원이나 약국에 직접 올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될까? 돌봄에 관심 없는 법적 가족을 대신해서 친구들이 처방전을 받을 수 있을까? 답은 ‘아니오’다. 1인가구 수가 ‘정상가족’으로 여겨지는 4인가구의 수를 한참 넘어섰음에도 불구하고, 혈연과 이성애 관계로 맺어진 가족이 아닌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등장해 이들이 돌봄을 수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법과 제도가 낡은 형태에 머물러 있는 탓이다.

 

▲ 9월 28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을 위한 국회 토론회’가 “현실과 다른 가족 규정,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주제로 열렸다. ©일다

 

9월 28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현실과 다른 가족 규정,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주제로,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을 위한 국회 토론회〉(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실, 한국여성민우회 등 공동 주최)가 열렸다. 허민숙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의료행위에서 ‘보호자/대리인’이 법적 가족으로 제한되는 한국과 달리 “호주, 영국, 미국 등지에선 의료 결정에 있어서 당사자의 평소 신념과 바람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신뢰 깊은 자이면 건강돌봄 대리인 자격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가족이라는 개념 역시 “혈연이나 법률혼으로 연결되지 않았으나 가족처럼 가까운 관계에 있는 친밀한 사람을 가족으로 여기는 ‘선택된 가족’(chosen family)으로 확대”되었다고 했다. “스웨덴에선 친밀한 관계에 있는 자(closely-related person)을 돌보게 될 경우, 정부로부터 돌봄 수당도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미 다른 국가들에선 법과 제도가 사회의 변화와 발맞춰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오히려 시대에 역행하고 있다. 지난 해 여성가족부는 건강가정기본법의 가족 정의를 변경하여, 비혼(非婚) 동거 가구와 아동학대 등으로 생겨난 위탁가정 등을 법적 가족으로 인정하며, 지원 대상으로 여러 가족 형태를 포괄하겠다는 계획(4차 건강가정기본계획 2021~2025년)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와서 여성가족부는 이 계획을 철회하고, 혼인과 혈연, 입양으로 이뤄진 기존의 단위로 법적 가족 규정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냈다.

 

▲ 9월 28일 오전 9시, 국회 소통관에서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 민주당 유정주 의원을 비롯해 13명의 국회의원과 32개 시민단체가 공동주최했으며, 참가자들은 ‘가족’ 규정과 ‘건강 가정’ 용어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여성가족부 장관을 규탄했다. (사진: 용혜인 의원실)

 

건강가정기본법 ‘혼인, 출산 중심의 가족 정의’ 꾸준히 개정 요구

 

만들어질 때부터 논란이 많았던 건강가정기본법은 2004년 2월에 제정됐다. 이근옥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변호사는 “법 제정 당시에도 가정관리학계, 사회복지학계, 여성계 등 여러 집단이 가족의 정의와 가족 정책의 방향 등에 이견이 있었으며, 충분한 합의를 거치지 못했다”고 했다.(관련 기사: 건강가정기본법 모순 많다 https://ildaro.com/1107)

 

2005년 6월에는 여성가족부가 출범(2001년에 신설된 여성부가 개편된 것)했다. “다양한 가족 형태를 포괄하고, 성인지적 관점을 내포하여 법이 ‘개정’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으며, 여러 번의 국회 발의, 국가인권위원회 권고, 정부 부처의 관련 연구가 계속되어 온 상황”이라고, 이근옥 변호사는 설명했다.

 

개정안은 2005년부터 발의되었는데, 이미 이 시점부터 가족의 정의 규정을 삭제하는 안이 발의되었다. 이근옥 변호사는 “개정안의 상당수가 가족의 범위를 혼인, 혈연, 입양을 넘어서 사실혼, 위탁가정 등으로 확대하거나 가족의 정의를 아예 삭제하였고, 그 외에도 모든 국민은 혼인과 출산을 중요하게 인식하여야 한다는 규정(제8조)과 가족해체 예방 규정(제9조)을 삭제하였다”고 설명했다.

 

또한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는 “건강가정기본법이라는 법률 명은 ‘건강가정’과 상반되는 ‘건강하지 않는 가정’이라는 개념을 도출시키므로, 다른 기본법과 같이 중립적인 법률 명으로 수정하여야 한다고 권고”했다.

 

2010년대인 19대, 20대 국회에서도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개정안에선 “건강가정기본법을 가족지원기본법, 가족정책기본법으로 변경”하고자 했다. 이외에도 “2014년엔 생활동반자에 관한 법률(안)의 초안이 작성되기도 했으나, 성소수자 혐오세력의 반발로 무산되었고, 현재까지 발의되지 않은 상태”이다.

 

▲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을 위한 국회 토론회 ‘현실과 다른 가족 규정,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서 이근옥 변호사가 2000년대 개정입법안 발의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출처: https://youtu.be/QsWDGmkq_i4)

 

2020년대인 21대 국회에선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과 정춘숙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이 나왔다. “가족정책기본법으로 변경, 제3조의 (가족) 정의 삭제, 제9조의 가족해체 예방 규정 삭제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올해 4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실재하는 다양한 가족형태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수용하고,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예방하는 취지로 1)성소수자 인권보호를 위한 법률 제정 2)건강가정기본법 개정을 권고”했다.

 

실제 가족의 구성도, 사회적 인식도 이미 변화했다

 

이런 개정안 논의가 최근까지 답보 상태였다는 건, 사실 부끄러운 일이다. 한국 사회의 인구와 가족 구조가 변화한 건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민주 한국여성민우회 성펑등복지팀 활동가는 “2021년 주민등록 통계상 1인 세대가 전체 세대에 차지하는 비중에 40%를 넘어섰으며, 1인 세대와 2인 세대를 합한 건 63.9%로 4인 세대 이상의 19%를 휠씬 상회한다”고 짚었다.

 

가족에 대한 사회 인식도 마찬가지다. “2021년 통계청이 발표한 ‘2020 사회조사’에 따르면,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거나, 하는 것이 좋다고 응답한 비율은 51.2%”이고, “2020년 여성가족부 ‘가족다양성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혼인 및 혈연 관계가 아니더라도 생계와 주거를 공유하면 가족이라는 생각에 응답한 비율은 69.7%”였다. 또한 “사실혼, 비혼, 동거 등 법률혼 이외의 혼인에 대한 차별 폐지가 필요하다는 응답도 70.5%”로 나타났다.

 

현재의 법적 가족 정의에서 벗어난 가족을 이루고 있는 이들이 실제로 차별을 경험하고 있다는 건 더 큰 문제다. “법적 가족만이 부양 가족으로 인정됨으로써 발생하는 불이익이 있으며, 이런 경제적 불이익은 불안감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또한 “질병, 사고와 같이 서로에게 돌봄이 필요한 상황이 닥쳤을 때, 관계를 증명할 수 없어 적절한 조력과 돌봄을 수행하기 어려워지는 문제”도 있다. 비친족 관계인 가족이 사망했을 때 ‘애도할 권리’마저 얻지 못한다.

 

박진옥 나눔과나눔 상임이사는 “현재 사망한 고인의 장례를 할 권리는 오직 법적 연고자에게만 주어지며, 그 법적 연고자는 1)배우자, 2)직계존비속-조부모, 부모, 자녀, 손자녀 3)형제자매까지만 해당된다”고 했다.

 

예를 들어 비혼 여성이 사망했을 경우, 부모가 먼저 사망해 부재하고 형제자매도 사망해서 없는 상황, 혹은 형제자매가 없는 상황이라면 ‘무연고자’가 되는 것이다. 박진옥 이사는 “흔히 무연고자라고 하면 홈리스, 독거노인 등을 생각하지만 장사법 내의 가족 범위가 굉장히 좁기 때문에, (법이 바뀌지 않는 한) 앞으로 무연고자가 양산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 나눔과나눔에서 제작한 장례를 치를 수 있는 가족의 범위와 가족대신장례 안내.

 

또한 “2020년 보건복지부가 ‘장사 업무 안내’에 ‘가족 대신 장례’ 지침을 마련해, 무연고 사망자로 확정된 이후 법적 연고자가 아닌 이들도 장례를 할 수 있는 길을 허용했지만, 법률적 한계는 명확하다”고 덧붙였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불평등’ 만들어 온 패러다임 폐기해야

 

가족의 해체를 예방하고 정상가족, 건강가족을 위한다는 건강가정기본법, 이 법이 차별과 혐오, 배제를 양산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장희정 한부모가족회 한가지 공동대표는 “건강가족을 위해 개인의 행복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냐?” 물었다. “어떤 이들이 결혼이 아닌, 이혼과 미혼모를 선택하는 이유는 더 이상 불행해지지 않기 때문이고, 나와 아이의 안전을 지키기 싶기 때문”인데 정상가족, 건강가족이라는 구조 때문에 차별의 대상이 된다는 건 너무 불합리한 일이라는 것. 장희정 대표는 “한부모 가정의 아이들 대부분이 (차별 경험 때문에) 미래 결혼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이게 어떤 의미겠냐”며 “저출산이 문제라면서, (차별적인 제도로) 저출산을 조장하고 있는 건 정부가 아니냐”고 비판했다.

 

건강가정기본법 개정 관련 논의에서 성소수자, 동성파트너십에 대한 부분은 늘 배제되어 왔다는 지적도 나왔다. 나기 가족구성권연구소 연구위원은 건강가정기본법 안에 “동성파트너십을 가족의 변화나 돌봄, 친밀성의 변화에서 철저하게 배제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주장했다. “결혼-출산-양육-돌봄으로 이어지는 이성애중심적 생애주기 정상성을 유지하려는 목적이 법에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법의 내용에 따라 “국가는 혼인을 통하지 않는 재생산, 사회를 유지·발전시키는데 기여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재생산은 비정상적인 것으로 낙인 찍고”, 차별과 불평등의 영역에 남겨왔다고 비판했다.

 

나기 연구위원은 “실제로 서로를 돌보고, 친밀한 유대를 만들어가는 시민의 삶을 지원하는 가족정책으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몇 가지 가족의 유형을 정책의 대상으로 포섭하는 것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주거/돌봄/노동/안전/죽음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불평등을 만들어 온 이성애규범적 가족 중심의 패러다임을 폐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기 위해선 건강가정기본법뿐만 아니라 “(가족의 범위를 규정한) 민법 제779조도 폐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국회 토론회에서 나온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에 대한 목소리는 명확하고,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었다. 현실과 전혀 맞지 않는 법률이 가족 구성에 있어서 차별과 혐오, 배제를 만들어왔다는 것. 정부와 국회는 현 사회 구성원들의 삶에 맞게, 가족 제도와 관련 법률을 마련함에 있어서 후퇴가 아닌 진전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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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0/10 [17:43] 수정 | 삭제
  • 일해라 정부! 생활동반자법 제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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