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노래로 남고자 했습니다”

한센인들의 시 『소가(訴歌)』 펴낸 출판편집자 아베 마사코

아이카와 치히로 | 기사입력 2022/10/28 [18:21]

“그들은 노래로 남고자 했습니다”

한센인들의 시 『소가(訴歌)』 펴낸 출판편집자 아베 마사코

아이카와 치히로 | 입력 : 2022/10/28 [18:21]

일본 전역에 있었던 한센병요양소에서 낭송되던 하이쿠·단가·센류(川柳, 일본의 정형시 형식 중 하나) 3천 편을 ‘보고 싶어’, ‘고향이 그리워’, ‘죽어줘’ 등 독특한 테마로 정리한 앤솔로지 『소가(訴歌)-당신은 꼭 다리를 건너와 줄 거야』(고세샤)가 작년 일본에서 발간되었다.

 

이 책을 편집한 이는 아베 마사코(阿部正子) 씨. 아베 씨는 그동안 원전으로 인한 방사능 피해와 약해(藥害)에이즈(혈우병 환자들이 HIV에 감염된 수입혈액제를 투여받고 에이즈에 감염된 사건), 다운증후군, 탄생사(誕生死, 유산, 사산, 출생 직후 사망 등을 통칭하는 일본어 조어) 등 사회문제와 생명에 대한 책을 만들어온 편집자이다.

 

▲ 산세이도 출판사에서 일했고, 퇴직 후 프리랜서 편집자로 ‘사회 문제와 생명에 관한 책’들을 내고 있는 아베 마사코 씨. 지금까지 기획·편집해 온, 양 손가락으로 다 셀 수 없을 정도의 책과 함께. (촬영: 오치아이 유리코)

 

초등학생 일기장 부록에 원전 위험성 경고 담아

 

어릴 적부터 그는 소수파였다. 언제나 1대9 중 자연스럽게 1이 되고 마는 아이였다.

 

1951년생인 아베 마사코 씨는 교사였던 아버지와 6명의 이복형제, 어머니와 남동생으로 이루어진 대가족 속에서 자랐다. 하지만 마음 편히 있을 곳이 없어, 마당 한구석에서 흙장난 치는 것이 행복이었다.

 

“어릴 적에는 말수가 적고 표현을 잘 못했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표현하기 어려워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때부터 사람들이 마음속에 숨겨둔 생각을 표현하도록 이끌어내려는 버릇이 생겼죠.”

 

학생운동 이후 세대였지만, 일본 사회에 대한 반발심 때문에 대학에는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결국 “일하기 싫어서” 사범계열 대학에 입학. 국어를 전공하며 교사를 꿈꿨지만, ‘자아가 너무 강해서 교사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단념했다.

 

당시 여성의 일자리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4년제 대학을 나온 여성을 채용하는 곳은 거의 없었다. 그러다 어머니가 신문에서 우연히 산세이도출판사 구인광고를 발견해, 직장을 구했다.

 

1974년에 입사하여 사전과 법률 관련 편집부를 거쳐, 1982년에 초등학생을 위한 일기장의 부록으로 ‘생명을 생각하는 특집-원자력발전’이라는, 원전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페이지를 만들었다. 1979년에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가 있기는 했지만, 일반적으로 원전의 위험성이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딱히 용기 있는 행동을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출판 후에 원자력회사에서 매일같이 전화가 걸려와 신변의 위협을 느낄 정도였다.

 

13쪽 정도의 특집이었지만, 원전의 단면도 등 상세한 정보에 입각한 만화식 구성으로 이해하기가 쉬워 각지의 반원전-탈핵 운동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되었다는 사실을 수십 년 후에야 알았다.

 

금기시하는 것이야말로 당사자들을 고통스럽게 한다

 

이어서 선천성 지체장애 아동의 부모모임이 쓴 『내 손, 밥그릇 모양이야』(1984)라는 단행본을 기획·편집하여, 선천적으로 손가락이나 발가락이 없는 아이들이 쓴 작문을 소개했다. 1999년에는 『환영합니다, 다운증후군 아가』를 편집. 다운증후군을 가진 자녀를 둔 백 가족의 목소리를 전하는 책으로 만들었다.

 

1980년대 미국에서 수입하여 혈우병 환자들에게 투여한 비(非)가열 혈우병치료제가 HIV에 감염되어 있어, 무려 1천8백여명이 감염되고 4백여 명이 사망한 ‘약해 에이즈’ 사태와 관련해서는 국가의 사죄와 대책을 요구하는 운동에도 참여했다. 그리고 이후 『약해 에이즈 원고로부터의 편지』(1995) 등을 만들기도 했다.

 

2002년에는 유산·사산·태어나자마자 죽은 아이 부모모임이 쓴 『탄생사』를 만들어 13명의 부모가 실명으로 쓴 수기를 출판했다. 당시 이 문제는 사회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지 못하는 상태였고, 남성들로만 이루어진 기획회의에서는 네 차례나 출판기획안이 각하되었지만, 아베 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금기시하는 것이야말로 당사자들을 고통스럽게 한다”고 설득해, 결국 출판에 이르렀다. 이 책은 당사자들로부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켜 독자엽서가 천 통 이상 쇄도했다.

 

“제가 해온 일은 ‘수’를 늘리는 거예요. 모두가 입 모아 같은 말을 함으로써 컵에 담긴 물이 흘러넘치듯 전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을 위하여

 

2016년에 퇴직한 후에는 프리랜서 편집자로서 『고양이 국어사전』, 『꿈꾸는 쇼와어』, 『에서를는 하이쿠·단가 사전』 같은 독창적인 기획의 표현 사전을 만들었다. 이 책을 위해 하이쿠·단가·센류를 수집하다가 만난 것이 『한센병 문학전집』(전 10권, 고세샤)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여자아이가 지은 ‘제비꽃 / 고향 아버지가 좋아하는 꽃 / 꽃병에 꽂아도 예쁘네’처럼 자신의 처지나 몸의 상태, 불합리에 대한 분노를 주변 풍경에 담아 정교하게 표현한 작품이 뿜어내는 강력한 힘에 이끌렸다. 방대한 작품군의 요약본을 만들고자 약 3천 편을 뽑아 『소가』를 엮었다.

 

『한센병 문학전집』은 49세에 요절한 노토 에미코 씨가 편집한 책이다. 아베 씨는 노토 씨와 면식은 없지만, 『소가』는 노토 씨와의 공동편집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베 씨는 노래가 사회에서 존재가 지워진 한센인들의 ‘존재증명’이라고 말한다. “노래는 궁극의 자기주장입니다. 그들은 노래로 남고자 했습니다. 타임캡슐처럼 미래를 위해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소가』에는 ‘당신은 꼭 다리를 건너와 줄 거야’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여하간에 권위라는 것을 너무 싫어해서 가장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들을 항상 생각합니다. 여기까지 와서야 누군가가 저를 불렀던 게 아닐까 싶어요. 100년 남을 만한 책을 만들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합니다.”

 

-<일다>와 기사 제휴하고 있는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의 보도입니다. 고주영 님이 번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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