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적 성차별, 우리 일터에 있다

여성노동연대회의, 일자리 차별과 폭력을 이야기하는 자리 열어

박주연 | 기사입력 2022/11/24 [09:29]

구조적 성차별, 우리 일터에 있다

여성노동연대회의, 일자리 차별과 폭력을 이야기하는 자리 열어

박주연 | 입력 : 2022/11/24 [09:29]

“여성들이 연대하기 어려운 이유는 여성들이 바빠서, 남성들보다 바빠서 라고 생각해요. 오늘도 저 말고 다른 발제자를 추천했었는데, 육아 때문에 힘들다고 하시더라고요. 많이 좋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여성들은 남성보다 훨씬 더 많이 육아돌봄, 가사노동을 담당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더 바쁠 수밖에 없죠.” –김옥란 한국노총 의료산업노동자연맹 정책국장

 

바쁜 여성들이 뭉쳤다! “코로나19 재난 이후 여성노동자들이 겪는 차별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지만, 혐오세력들은 ‘구조적 성차별은 사라졌다’면서 이를 부정하고 있다.” 올해 여름, 양대 노총과 전국여성노조,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는 “여성노동자의 현실을 드러내기 위해서 ‘여성노동연대회의’를 발족”했다.

 

▲ 7월 1일, 대통령집무실 앞(삼각지역 12번 출구)에서 열린 ‘여성노동연대회의 출범 기자회견’ ©여성노동연대회의

 

여성노동연대회의는 △최저임금 인상, 성별임금격차 해소 △안전하고 평등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법제도 정책 정비 △5인 미만 사업장, 초단시간, 비정형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돌봄노동자 처우 개선, 돌봄 중심 사회로의 전환 △성평등 노동정책 적극 수립∙집행 등 5대 요구안을 발표했다. 그리고 여성노동자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활동 중이다.

 

17일 저녁, 서울 마포구 창비 50주년 홀에서 열린 〈여성노동자의 일자리 젠더폭력 다시, 깊게 보기 토크쇼〉도 그런 활동의 일환이다. 유튜브로도 생중계 된 이 날 토크쇼엔 골프장 캐디노동자, 제빵사, 간호사, 제조업 노동자, 언론노동자들이 모여 노동 현장에서 경험한 성차별과 젠더폭력을 이야기했다. 뿐만 아니라 여성노동자들 간의 공감과 연대가 서로에게 어떤 힘이 되는지도 밝혔다.

 

①같은 일 했는데, 왜 급여 차이가…왜 진급이 안 되죠?

 

아이들이 엄마가 옆에 없어도 생활할 수 있는 나이가 되자 41살이었다. 금속노조 한국와이퍼분회 강수미 조합원은 한국와이퍼라는 회사에 계약직으로 취업했다. 늦은 나이에 입사한데다 정규직 전환을 꿈꾸던 계약직이었던 만큼, 힘든 일도 군말 없이 해냈다. 잔업과 주말 특근, 심지어 일요일에 일하는 날도 있었지만 차마 쉬겠다는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일해서 정규직이 되었지만, 남성 직원들과 급여 차이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군필자 우대’라는 말을 들었지만, 군대에 갔다 오지 않은 남성 또한 여성보다 급여가 높았다.

 

“하는 일은 별반 차이도 없는데, 왜 이렇게 (급여) 차이가 나냐고 회사에 물어보니, 우리 회사는 옛날부터 그래왔다고 하더라고요.”

 

제조업 생산직엔 거의 대다수가 여성이지만, 여성 관리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여성은 승진이 안 되기 때문이었다. “10년에서 20년, 30년까지 근속하신 여성들도 있는데, 승진 기회가 전혀 주어지지 않아요.”

 

▲ 11월 17일 마포구 창비 50주년 홀에서 열린 〈여성노동자의 일자리 젠더폭력 다시, 깊게 보기 토크쇼〉왼쪽부터 사회를 맡은 김현미 (연세대 교수), 언론노동자 이유진 (경향신문), 제조업 노동자 강수미 (한국와이퍼), 골프장 캐디노동자 한혜숙 (드림파크CC), 간호사 김옥란 (의료노련), 제빵사 임종린 (파리바게트) ©일다

 

여성의 승진을 막고 있는 유리천장은 제조업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캐디노동자로 20년째 일해왔다는 한혜숙 전국여성노동조합 드림파크CC 조합원은 “현재 일하고 있는 골프장 내 캐디 노동자의 100%가 여성이지만, 관리자는 90% 이상 남성”이라고 지적했다.

 

경향신문 이유진 기자는 “경향신문이 올해 76주년인데, 지금까지 여성 편집국장이 딱 한 명 있었다. 상위 직급으로 갈수록 유리천장이 견고한 곳이 언론계이기도 하다”고 했다.

 

② 여성이라서 선호되는데, 왜 성차별이냐고요?

 

파리바게뜨 제빵 기사의 노동환경은 회사와의 관계 뿐만 아니라, 가맹점주와의 관계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 제빵 기사의 일터는 결국 가맹점이고, 그곳에서 홀로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파리바게뜨 제빵기사는 7:3 비율로 여성의 수가 많다. 그러나 결국 진급되는 건 남성의 수가 많기 때문에, 현장에선 주로 ‘젊은 여성’ 제빵 기사들이 일하고 있다. 그리고 가맹점주의 다수는 중장년 남성들이다.

 

임종린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장은 “이런 현장의 구조 속에서 ‘젊은 여성 제빵 기사’들이 쉽게 노동착취를 당한다”고 했다. 가맹점에선 연장 근무를 당연하게 시키는데, 회사에 그에 대한 수당을 청구하려면 가맹점주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임종린 지회장은 “혼자 고립되어 일하고 있는 입장에서 (연장 근무 등) 요구를 거절하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연장 근무를 했으니) 돈을 더 받아야 합니다’, ‘지금은 휴식 시간입니다’, ‘점심 시간 챙겨야 합니다’ 등의 말을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닌 거에요. 그런 말을 하면 ‘싸가지 없다’, ‘어린 주제에 이런 요구를 한다’, ‘돈독이 올랐다’ 등의 말을 듣게 되고… 결국 (가맹점주가) 제빵 기사를 바꾸겠다고 하면 또 나가야 하는 거잖아요?”

 

이런 구조 속에서, 여성 제빵사가 더 선호되는 모순적인 상황도 만들어진다. 가맹점주 입장에선 여성 제빵 기사들이 남성에 비해 ‘고분고분하고’ 더 다루기 쉽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이가 있는 남성 제빵 기사가 오히려 일하기 힘든 구조도 있어요. 갈 데가 없거든요. 가맹점들이 다 거부해서요.” 성차별이 여성노동자뿐 아니라, 남성노동자의 노동권도 침해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에도 회사에서 연락이 와서, 어느 점포에 남성 제빵 기사를 보내드렸어요. 굉장히 실력 있는 분이거든요. 근데 회사에서 다시 연락이 와서 여성 제빵 기사로 바꿔 줄 수 없냐는 거에요. 남성 점주와 30대 아들이 가게를 보는 중인데  (남성들만 있으면) 분위기가 칙칙하다는 거죠. 정말 너무 화가 나서…”

 

임종린 지회장은 “빵의 퀼리티가 보장되고, 맛있는 빵, 품질 좋은 빵이 고객들한테 제공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런 식의 (성차별적인) 환경이 조성되면 과연 실력 있는 제빵 기사가 남을 수 있겠냐”고 꼬집었다.

 

▲ 11월 17일 마포구 창비 50주년 홀에서 열린 〈여성노동자의 일자리 젠더폭력 다시, 깊게 보기 토크쇼〉에서 발제 중인 임종린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장 ©일다

 

③ 더 쉽게, 폭력에 노출되는 여성노동자들

 

남성도 조금씩 늘고 있지만, 여전히 여성의 비율이 압도적인 캐디 노동자들은 늘 폭력에 노출될 위험을 마주한다. 한혜숙 조합원은 “인격모독, 성희롱, 신체폭력 등을 겪어보지 않은 캐디는 없을 것”이라며 보호되지 않는 노동 현장을 토로했다.

 

캐디가 골프장의 매뉴얼대로 하더라도, 이용자들이 만만하게 여겨지는 캐디에게 폭언을 하거나 난동을 피우는 일이 끊이지 않는다. 참아야 하는 이는 캐디다. 회사에 고발하고 사과를 요구할 수도 있지만, 그게 제대로 실행되는 일은 드물다. 오히려 회사에서 나가라고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존재한다.

 

한편, 이유진 기자는 여성 기자로서 노출되는 폭력의 수위가 점점 높아지는 부분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이름과 신상을 어느 정도 공개하고 활동하는 직업이다 보니, 여성 기자들을 상대로 한 성희롱, 성차별이 비일비재”하다는 것. 특히 젠더 이슈, 성평등 이슈와 관련된 기사를 썼을 때, 온라인에서의 악성 댓글과 이메일의 수가 늘어난다.

 

“강남역 살인사건이나 혜화역 시위가 있을 때만 해도 이메일로 성희롱을 한다거나 악성 댓글을 달거나, 조금 심한 경우 특정 남초 사이트에 (기자) 얼굴을 박제하고 성희롱을 했었다. 최근엔 텔레그램 같은 단톡방에 여성 기자 얼굴을 딥페이크 합성해서 성희롱을 하는 등 범죄 수준의 성폭력도 늘어나고 있다. 더 악질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연대하는 여성들, 노조는 든든한 보호막!

 

여성노동자들은 일터에서 힘든 상황에 직면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다. 장 보러 갈 시간도 없이 바쁜 여성노동자들은 함께 공동구매를 하며 서로의 일을 나누고, 성차별/성폭력의 경험을 털어놓고 공감하고, 연대하여 맞서 싸우기도 한다.

 

▲ 11월 17일 마포구 창비 50주년 홀에서 열린 〈여성노동자의 일자리 젠더폭력 다시, 깊게 보기 토크쇼〉에서 발제 중인 한혜숙 전국여성노동조합 드림파크CC 조합원 ©여성노동연대회의

 

한혜숙 조합원은 노조 동료들과 함께, ‘진상 폭력 고객’에 대응해 ‘배치거부권’을 따내기도 했다. “고객들이 골프를 치러 왔을 때 캐디가 순번으로 배치를 나가는데, (폭력을 휘두른) 해당 고객에 대해서는 배치거부를 했어요. 그러면 그 고객은 셀프라운딩을 해야 하는 거죠. 원래 회사에 배치거부권이라는 게 있었던 건 아니에요. 우리 노조에서 나서서 한 거죠.”

 

경력이 단절되었다 다시 취업 전선에 뛰어든 중장년 여성들이 일자리를 계속 유지하는 데에도 노조는 든든한 보호막이다.

 

강수미 조합원은 “(회사가 지금 폐업 선언을 한 상황인데) 노조를 하게 됨으로써, 회사에 일거리가 정말 없(어서 폐업을 하)는 게 아니라, (폐업하기 위해) 일거리가 없는 회사를 만들고 있는 중이라는 걸 알게 됐다.”며 “노조가 있기 때문에 회사도 함부로 청산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설명했다. 이들은 함께 투쟁 중이다.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의 예시로 자주 쓰였던, 간호사들의 ‘태움 문화’에 대한 성찰 또한, 함께라서 가능하다. 김옥란 정책국장은 “사실 태움이라는 건, 간호사가 여초 집단이어서가 아니라 과중한 업무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생명을 다룬다는 압박감과 노동의 과부하가 과한 엄격함으로 작동되었다”는 것. 그렇기에 노조에선 간호사들의 노동 환경을 변화시키고자 “간호사 1인당 환자수 법제화. 의료인력 확충 등”을 요구하고 있다. 동시에 태움 문화 또한 바꾸고자 노력 중이다.

 

임종린 지회장은 혼자서 일해야 하는 제빵 기사의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함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직이 중요하다. 회사는 우리가 모여서 목소리 내는 걸 싫어한다. 그래서 우린 더 모여야 한다.”

 

여성이 모여서 목소리 내는 것이 환영 받지 못하더라도, 여성들은 이제 물러서지 않는다는 것이 〈여성노동자의 일자리 젠더폭력 다시, 깊게 보기 토크쇼〉에서 다시 한번 드러났다. 변화를 만들기 위한 여성노동자들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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