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더 많은 무지개집이 필요하다

책 〈여기는 무지개집입니다〉

박주연 | 기사입력 2023/01/12 [20:49]

우리에겐 더 많은 무지개집이 필요하다

책 〈여기는 무지개집입니다〉

박주연 | 입력 : 2023/01/12 [20:49]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퀴어들이 모여 사는 무지개집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건 몇 년 전이다. 그런 곳이 실제로 존재한다니 ‘대박인데?’ 싶었다. 누가 사는지, 어떤 집인지 궁금했다. 종종 건너 건너 들리는 이야기들로 무지개집에 대한 상상을 채우곤 했다.

  

▲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무지개집 전경 (제공: 무지개집)

 

그 무지개집의 실체(?!)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서점으로 향했다. 〈여기는 무지개집입니다〉는 가족구성권연구소에서 기획하고 엮은 책이다. ‘가족 상황에 따른 차별을 해소’하고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가족·공동체를 구성’할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소수자, 페미니즘, 인권의 관점에서 다각적으로 연구하며 실천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가족구성권연구소와 무지개집의 만남이라니, 필시 재미있는 책이리라 직감했다.

 

‘내 집 마련’이 꿈인 세상이지만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 지 좀처럼 가늠되지 않는 요즘, 심지어 물질적 공간으로서만이 아닌 “나로서 살 수 있는 집을 찾아서” 도전장을 내민 이들의 이야기가, 〈여기는 무지개집입니다〉에서 시작된다.

 

무지개집의 탄생

 

15명의 퀴어와 5마리 고양이가 사는 무지개집의 탄생은 퀴어라면 한번쯤 꿈꿔본다는 ‘퀴어마을’, ‘퀴어공동체’를 상상하던 이들의 생각 속부터였다. 왜 퀴어들은 이런 상상에 붙들리고 마는 걸까? 이것은 비퀴어들이 생각하는 ‘친구들끼리 모여 살면 재미있겠지.’와는 차원이 다른 욕망이다.

 

‘정상 사회’가 상정한 ‘보통’의 생애주기와는 다른 삶을 살게 되면서, 퀴어들은 이탈된 자신의 삶의 궤도를 어떻게든 굴러가게끔 ‘노오력’한다. 신혼부부 대출 없이 집을 마련해야 하고, 돌봄자/보호자로 인정 받지 못하면서도 파트너와 친구들을 돌봐야 한다.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부정하거나 지우려고 하는 주변인, 동료, 이웃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렇다 보니 ‘퀴어마을’ 같은 달콤한 상상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볼까?’ 하고 대담하게 한 발 내디딘 사람들이 있다.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하나둘씩 커뮤니티에 모습을 보이지 않더니, 어느 순간 고개를 돌려보니 내가 제일 나이 많은 사람 중 하나가 되어 있었다”는 코러스보이도 그 중 한 명이다. 그는 북아현동에 살던 게이였다. “정작 북아현동 주민들은 알지 못하는 감추어진 마을 공동체”였던 “북아현동 부녀회”의 게이들은 가까운 곳에 살면서 “수시로 모이고 친목을 다지”며 “서로가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일상”을 보냈다. 당시 좋은 기억을 만든 코러스보이와 동하, 가람은 레즈비언 친구들과 함께 서교동과 연남동에 걸쳐 모여 살기도 했다. 2014년의 어느 날, 코러스보이는 “누군가 퀴어타운(혹은 퀴어하우스)을 시작해주길 기다리기만 하다가는 절대 그런 날이 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지금을 바로 그 때로 만들기로 결심한다. 

 

▲ 책 〈여기는 무지개집입니다 - 한 지붕 퀴어 대가족〉(가족구성권연구소 기획. 김현경, 나영정, 정현희, 김순남, 박서연, 성정숙, 유화정, 이종걸 지음. 오월의봄, 2022) 표지

 

“각자의 전세금을 모으고 대출을 조금 하면 집을 지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현실로 만들 수 있었던 건, 함께주택협동조합과의 만남 덕분이다. “2013년 설립된 함께주택협동조합은 개인이 감당하는 주택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하자는 취지로, 조합이 주택을 매입하고 조합원들이 실거주함으로써 주택의 사회적 소유를 실천”하는 곳이었다. 코러스보이가 당시 함께주택협동조합 박종숙 이사장과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무지개집은 상상에서 본격적인 계획이 됐다. 3가구, 총 6명이 초기 ‘무지개멤버관심자모임’으로, 함께 주택 매입을 위한 부동산 조사부터 시작했다.

 

워크숍을 하며 집 짓기 과정과 정보, 주택협동조합 공부, 같이 살 때를 예상한 시뮬레이션 등을 해나갔다. 진짜 현실이 되자, 함께 살 집을 만드는 일의 어려움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무지개집을 어떤 공간으로 구성할 것인지 계속 논의했고, 비용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신중한 고민이 이어졌다. 약 1년 반 동안 40번 이상 회의와 워크숍을 거치며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무지개집과 함께주택협동조합의 주택건설 과정은 서로가 가진 다양성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시간의 연속”이라 기억될 정도로 알찬 시간이었다.

 

6명으로 시작한 무지개집은, 2016년 5월 오픈하우스를 할 땐 15명과 고양이 4마리가 함께 하는 5층 건물로 세상에 첫 인사를 건넸다.

 

공간을 넘어 가족이 될 때

 

무지개집엔 다양한 공간이 있다. ‘홍다방’으로 불리는 1층은 “무지개집에서 가장 널찍하고 중요한 공용공간”이며, 2층과 3층은 셰어하우스 형태다. 2층은 다섯 가구가 방을 제외한 모든 공간을 함께 쓰고, 3층은 두 가구가 주방과 거실만 공유한다. 4층은 두 가구가 완전히 분리된 구조이며, 5층은 한 가구가 전체를 사용한다. 그리고 옥상이 있다.

 

퀴어들이 모여 사는 무지개집에선 어떤 ‘특이한’ 일이 일어날까 궁금해할 사람도 있을 테니, 하나만 살짝 공개하자면…! 무지개집은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신발을 벗어야 하는” 구조다. 5층에 사는 사람도 1층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올라간다는 거다. “무지개집의 1층 신발장은 한집에 산다는 감각이 시작되는 공간”이다. 여러 가구가 사는 건물에선 보기 어려운 구조이긴 하다. 동시에 무지개집이 어떤 곳인지 명확하게 보여 주는 특징이다. 다소 불편할 수도 있는 현관 공유를 선택한 무지개집은 ‘한집에 사는 감각’, 공동체로서의 감각을 주요 가치로 선택한 거다.

 

무지개집의 주거 공간은 사실 크지 않다. ‘테이블만한 방’(가람), ‘꼬딱지만 한 집’(더지)로 표현될 정도다. 하지만 1층과 옥상 등 함께 쓸 수 있는 공용 공간이 있다. 이 공용 공간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우리 집’은 크다고 할 수도 있고, 작다고 할 수도 있다. 사람에 따라 다른 크기의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점도 무지개집의 재미있는 특징이다.

 

▲ 무지개집 구성원들은 다같이 모여 김장을 하곤 한다. (제공: 무지개집)

 

 

모든 게 즐겁고 재미있는 것은 아니다. ‘공동생활’이라는 건 끊임없는 노력과 돌봄이 수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셰어하우스인 2층과 3층 사람들은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청소를 분담하는 것만이 해답이 아니었다. 청소에 대한 기준이 각기 달랐기 때문이다. “살림은 성별과 나이의 문제로 여겨지기도 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독립적인 여성들에게 게이 동생들은 초보 공동생활자”로 보였고, 요리를 하는 사람들에겐 냉장고를 어떻게 쓸 것인지도 관건이었다. 각자 불편한 것, 싫어하는 것도 달라서 오해가 쌓이기도 했다.

 

문제 해결을 위해 소통이 필요했다. 회의를 하고, 공동 생활을 위한 합의를 만들어 나가는 일이야말로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이 아닐까?

 

더 많은 ‘무지개집’을 상상하다

 

무지개집은 퀴어들을 위한, 퀴어들이 모여 사는 집인 만큼 구성원들의 정체성에도 영향을 줬다. 현식은 “퀴어 정체성을 잊어버리거나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지내게 되었다”고 밝힌다. “무지개집 입주 전엔 게이의 삶과 ‘일반’의 삶을 철저하고 분리”하였고, “‘이제 결혼해야지’라는 간섭을 받았던 직장에선 게이처럼 보이는 행동이나 말투, 정보를 통제하며 지냈”는데, 무지개집에 입주하면서 달라졌다. 회사를 그만두었고, (무지개집) 1층에 식당을 창업하면서 “집, 일터는 물론 거의 모든 관계에서 자신이 하나로 일치되면서 소위 ‘일반’ 사회에서 살아갈 때의 긴장을 떠나 보내게 된” 것이다.

 

오김 또한 무지개집 생활을 통해 “퀴어 정체성을 갖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중요하지 않은 방식으로 사는 경험을 해서 (이제) 다른 사람들하고 사는 게 힘들어지겠다”고 했다. 퀴어라는 정체성이 그냥 보통이 되어버리는 집, 나를 숨기거나 특별히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집에서 사는 경험이 개인의 삶에 엄청난 힘이 되리라는 건 자명한 일이다.

 

인디는 퇴사를 결심했을 때 “무지개집이 주는 안정감이 큰 역할을 했다고 느꼈다”고 했다. “무지개집에 산다고 해서 소득이 생기는 건 아니지만, 회사를 그만뒀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고립은 걱정하지 않을 수 있었던” 탓이다. 혼자가 되지 않을 것이고 도와줄 사람이 있다는 생각이 주는 안정감은 자신감을 주고, 새로운 일에 도전할 용기를 준다. 무지개집에서의 삶은 단지 (거주할) 집이 생겼다는 것과는 또 다른 관계의 안전망을 제공했다. 

 

▲ 무지개집 내부, 다른 층들을 연결하는 계단에서 쉬고 있는 고양이들. (제공: 무지개집)

 

누군가는 무모하다고 했을 도전을 감행하고, 새로운 집과 확장된 가족, 색다른 마을을 만들고자 하는 무지개집 이야기를 접하며 든 생각은 하나다. 더 많은 무지개집이 필요하다는 것! 퀴어를 위한 무지개집은 물론이거니와 더 많은, 더 다양한 소수자들의 삶에 버팀목이 되어주는 재미있고 다채로운 집들 말이다.

 

영어 이름에 알 수 없는 의미의 브랜드 아파트, 집 값 떨어진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배제하는 공간이 되어 버린 주거단지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집, 차이를 받아들이면서도 대화할 수 있는 집, 편히 쉴 수 있고 꿈을 꿀 수 있는 집. 그런 집들을 상상하게 하는 책 〈여기는 무지개집입니다〉가 많은 이들의 삶에 노크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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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먹깨비 2023/01/14 [19:41] 수정 | 삭제
  • 공동생활 쉽지 않은데.. 쉽지 않은 만큼 미리 해보는 게 좋다. 10년 뒤의 무지개집도 궁금하고. 또다른 무지개집들이 마니마니 생겨나면 좋겠다.
  • ㅎㅎ 2023/01/14 [11:27] 수정 | 삭제
  • 언젠가는 퀴어/비혼(싱글맘 가정 포함) 주거공동체를 만드는 게 꿈인 1인인데, 이렇게 현실로 먼저 만들어진 것을 보니까 신나요. ^^ 망원동에 5층짜리 주거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여건이 된다는 게 부럽기도 해요. 인서울이 아니어도 무지개집들이 생겨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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