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꽃’의 화자는 정말 여성일까?

페미니스트 국어 선생들이 말하는 ‘요즘 학교 어떤가요’⑧

김시옷 | 기사입력 2023/01/18 [09:18]

‘진달래꽃’의 화자는 정말 여성일까?

페미니스트 국어 선생들이 말하는 ‘요즘 학교 어떤가요’⑧

김시옷 | 입력 : 2023/01/18 [09:18]

[기획의 말] 페미니스트로 살고자 하는 국어 교사들이 모여 교실과 학교에서 성평등한 국어 교육을 펼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성평등 국어교사 모임’을 만들어 고민을 나누고 대안을 만들어 온 국어 교사들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시 해석에 끼어든 여성성/남성성에 대한 통념

 

페미니스트 국어 교사는 가르치는 교과서 곳곳에서 난감한 장면들을 맞닥뜨린다. 가령 소설 수업 중에 ‘김 첨지’(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나 ‘허 생원’(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 대해 가르치면서, 주인공 ‘스스로에게만’ 진실하고 아련한 사랑을 아름답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김 첨지의 아내, 성 서방네 처녀는 어떤 마음이었을지 생각해보지 않고서는 수업을 마무리할 수 없다.

 

또는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을 가르치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데 그저 울고, 붙잡지도 못하고 멀리서 상대의 행복을 빌어주는 화자를 ‘그 태도’ 때문에 여성이라 말할 수도 없다.

 

▲ 2015 개정 고등학교 국어 교사용 지도서 410쪽 (박안수 외, 비상)

 

고등학교에서 사용하고 있는 『2015개정 고등학교 국어교과서』(박안수, 비상출판사)의 경우, ⌜진달래꽃⌟이 배치된 단원의 학습 목표는 ‘한국 문학에서 여성 화자의 전통이 계승되는 양상을 이해한다.’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적극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하지도 못하고, 혼자서 서러움을 감당하는 태도는 ‘여성’의 것이라는 말이다. 이는 ‘여성적 어조’라는 문학 용어와 함께 오랜 세월 시 ⌜진달래꽃⌟을 해석하는 데에 절대적인 기준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우리는 시를 다시 한번 꼼꼼하게 읽어볼 필요가 있다.

 

진달래꽃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이 시의 화자는 정말 여성일까. 상대방의 의지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이별을 받아들이는 소극적 모습, 나에 대한 변심으로 인해 떠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헌신하려는 태도를 지닌 화자라는 것은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에 ‘여성적’이라는 해석을 붙이는 것에는 쉽게 동의할 수 없다.

 

우선 해당 시는 1922년에 발표된 남성 작가의 작품이다. 그리고 학교 교육에서 참고하고 있는 시 해석의 정전(正典)들은 대개 해방 후부터 1980년대까지의 시기에 작성된 것들이다. ‘여성 화자’라는 해석은 시가 연구되었던 당대를 지배한 성차별적 인식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시인은 사랑을 잃은 슬픔을 어떻게 하면 더 절절하게 표현할까 고민했을 것이다. 상대의 변심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자신의 사랑을 어떻게 하면 더 간곡하게 표현할까도 고민했을 것이다. 그 고민의 결과로 만들어진 화자의 태도나 말투를 의심의 여지 없이 여성의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자신의 사사로운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고, 굳은 의지와 강인함을 드러내는 것이 ‘남성적’이라고 여겨지는 것과 정확히 대조되는 지점에서 말이다.

 

이러한 점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작가도 있다. 조선 시대 가사 문학의 대가 정철의 작품들이 그렇다. 대표작인 ⌜사미인곡」, ⌜속미인곡」은 연인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는 여성 화자의 외피를 입고, 실은 임금에 대한 정철 자신의 간절한 마음을 표현하였다. 아부의 전략으로 여성의 목소리를 이용한 셈이다. 가부장제 사회의 질서 안에서 ‘을’의 입장이 되어 감내하고, 인내하고, 매달리는 모습은 유구하게 여성의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진달래꽃」으로 수업을 할 때에는 시적 상황을 파악한 뒤에, 항상 학생들에게 ‘내가 이 시의 화자 입장이라면 어떻게 할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이야기를 나눈다. 학생들의 답은 각양각색이다. ‘싫다는데 구질구질하게 왜 매달려요. 따귀를 때려주면 모를까’, ‘뭘 행복까지 빌어줘요. 그냥 쿨하게 가라고 하면 되지’, ‘그렇게 슬픈데 왜 매달려보지도 않고 보내요. 저라면 뭐라도 더 해보겠어요’, ‘더 좋은 사람 만나서 복수할 거예요’ 등등.

 

여학생들은 주로 이런 답을, 남학생들은 주로 저런 답을 한다는 공식 같은 건 없다. 각자의 성격, 개성, 가치관에 따른 반응을 보일 뿐이다. 사랑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 더 이상 성역할 통념을 받아들이지 않는 세대에게 ‘여성 화자’라는 이름으로 계속 이 시를 가르치는 것은, 그러므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사랑만이 아니다. 어떤 사안에 대해 단호하거나 혹은 망설이는, 감정을 절제하거나 혹은 감정을 훤히 드러내는 여성도 존재하고 남성도 존재한다. 때문에 우리는 성별 이분법적인 해석에서 벗어나 이 시를 다르게 읽을 수 있어야 하고, 다르게 읽어야만 한다.

 

사실 이런 생각은 다른 교사들 중에서도 공감하는 이들이 꽤 있을 것이다.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면, 학교 현장에서 할 수 있는 구체적인 활동, 이를테면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구성한 문학 수업 계획과 같은 것들을 함께 만들어내고 실행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를 뒷받침해줄 수 있도록 교육 과정이 꾸려지고, 그 교육 과정을 바탕으로 교과서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각자 자리에서 조그맣게 소리 내고 있는 여러 목소리들이 합쳐져 큰 함성이 되기를 바란다. 페미니스트 교사로서 여기저기서 ‘저 여기 있어요!’라고 말하는 동료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리하여 이것이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이미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한용운의 『님의 침묵』)”라는 구절을 읽고, 화자가 집요한 스토커일 수도 있지 않느냐고 묻는 학생들과 만나고 있다.

 

*위 글은 성평등 국어교사모임에서 함께 이야기 나누고 작성한 내용입니다. 이메일 주소 femi_literacy_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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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ㅇㅇ 2023/01/24 [15:59] 수정 | 삭제
  • 아 너무 좋다 진짜.....!! 한용운 시가 스토커 아니냐고 ㅋㅋㅋㅋㅋㅋ 아 너무 좋아요 진짜. 선생님도 학생도.
  • 맘모스 2023/01/20 [22:03] 수정 | 삭제
  • 시를 암만 읽어봐도 진달래꽃 즈려 밟고 떠날 이가 여성인 것 같은데... 버림받고 기다리는 쪽이 여자라고 교과서에서 가르치다니! 진달래꽃이 남자는배여자는항구인 줄 아나봄
  • ㅇㅇ 2023/01/18 [21:19] 수정 | 삭제
  • 조금 다른 얘기지만.. 김소월의 시는 정말 명시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달래꽃 읽었을 때 성별 불문이라고 생각했는데, 학교 교육에선 굳이 여성 화자라고 가르치고 있군요.. 감상자에게 해석을 열어두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싶어요.
  • 별리 2023/01/18 [13:38] 수정 | 삭제
  • 국어선생님들 연재가 넘 재밌습니다. 정철의 아부라는 표현도 넘 웃기구요.. ㅋㅋ 수업시간을 떠올려보면 시 감상이라기보다 일방적인 해석으로 암기하듯이 배운 것 같아요. 다시 시를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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