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몸, 밝은 피부의 ‘팝 스타’만 보고 컸지만…

[음악계 페미니즘 화두] 리조의 음악은 ‘모두’를 위한 것이다

블럭 | 기사입력 2023/02/17 [09:38]

마른 몸, 밝은 피부의 ‘팝 스타’만 보고 컸지만…

[음악계 페미니즘 화두] 리조의 음악은 ‘모두’를 위한 것이다

블럭 | 입력 : 2023/02/17 [09:38]

-연재 소개: “음악계에 좋은 작품은 많아도, 좋은 논의는 여전히 부족하다. 페미니즘 관점에서 고민하고 논의할 수 있는 화두를 던지고 함께 나누고자 한다.”

 

‘빅 걸’은 원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어

 

리조(Lizzo)는 한 시대의 아이콘이다. 많은 이들이, 그러니까 업계 관계자부터 그의 음악을 듣는 이들까지 리조를 팝 스타로 인식한다. 리조가 본격적으로 북미 지역에서 인지도를 얻기 시작한 것은 2016년, 대형 레이블과 계약하면서부터다. 히트곡 중 하나인 “Good as Hell”도 이 시기에 나왔고, 각종 차트와 결산에 선정되며 음악적 재능을 인정 받았다. 음악을 시작한 것은 훨씬 이전인 2011년부터인데, 당시에는 인디뮤지션으로 활동하면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리조는 2013년 첫 정규 앨범 [Lizzobangers] 발매 이후부터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지금과 같은 인지도를 가지게 된 것은 2019년 메인스트림 첫 앨범인 [Cuz I Love You] 발매 이후부터다. 음악도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그의 비주얼이 어떤 방향으로든 세간의 관심을 모은 것도 사실이다.

 

▲ 리조(Lizzo)를 팝 스타의 반열에 올려 놓은 앨범 [Cuz I Love You] 자켓 이미지. 2019년 발매된 이 음반은 비평가들과 대중 모두에게 큰 호평을 받았다.

 

리조의 앨범에는 자기 긍정, 셀프 러브, 몸의 긍정에 관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2015년에 나온 “My Skin”은 “자신을 사랑하는 법, 자신의 몸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모든 사람, 특히 여성이 겪어야 하는 삶의 여정과 같다”는 가사로 시작한다. 대표곡 중 하나인 “Juice”도 “이렇게 멋지게 태어났는데, 더 꾸밀 필요는 없지”라는 가사가 담겨 있다.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을 때부터, 이미 리조는 음악보다 자신의 몸이 더 관심을 받게 되는 상황에서 힘든 시간을 겪었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줄곧 리조는 자기 몸을 긍정하는 이야기를 음악에, 또 무대에 담았다. 함께하는 댄서들 역시 플러스 사이즈 모델들이다.

 

많은 팝 스타가 크고 작은 구설수에 오르고 여러 혐오 발언에 시달리지만, 리조는 유독 그런 공격을 더 많이 받았다.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그가 건강을 챙기면 ‘자기 몸 긍정과 몸의 다양성을 이야기해온 당신이 다이어트를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맞는가’라고 비판했다. 리조는 그린 스무디 10일 클렌즈(한 차례 유행했던, 몸 속을 깨끗하게 한다는 다이어트 방식)을 한 적 있는데, 이를 두고 왈가왈부한 것이다. 리조는 이에 대해 ‘술도 너무 많이 먹고, 매운 것도 많이 먹고, 속이 더부룩한 것도 많이 먹어서 건강을 챙긴 것뿐’이라고 해명하며, “빅 걸은 원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Big girls do whatever u want with your bodies!!!)라고 SNS에 적기도 했다.

 

리조만큼 많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멋진 음악가도 드물고, 리조 이전에 그만큼 몸에 대한 긍정이나 셀프 케어, 다양성 존중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 음악가도 드물다. 그러나, 그런 리조라고 해서 늘 건강하고 자존감이 높은 것은 아니다. 수많은 혐오 공격에 시달려 SNS 계정을 닫은 적도 있다. 그는 행복하게 즐길 수 있는 팝 음악을 선보이고 있음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그를 공격하고, 그의 음악에 담긴 가사 하나 하나에 트집을 잡는다. 앨범을 함께 만든 작곡가들 중에 백인 남성이 있다는 것을 두고도, ‘너도 결국 백인 남성 작곡가와 일하지 않냐’며 흑인 여성 음악가로서 자긍심을 보여주는 리조에 대해 흠집을 내기도 한다.

 

▲ 2016년에 발표한 데뷔 EP 수록곡이던 “Good as Hell”은 리조(Lizzo)가 대중적으로 알려진 2019년 이후에 역주행에 성공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싱글 버전 커버 이미지.

 

내 몸, 내 피부에 편안함을 느낀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팝 스타라는 개념이 뚜렷한 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팝이라는 개념도 모호해지고, 많은 음악가가 장르 색채를 드러내다 보니 과거처럼 팝 스타의 카테고리에 묶이는 뮤지션 비중이 줄어들었다. 리조의 음악도 힙합, 알앤비에 강한 뿌리를 두고 있다. 여기에 플루트 연주를 비롯해, 자신만의 독특한 특기와 클래식 음악에서 익힌 아름다운 전개를 녹여낸다. 그런가 하면 가사에는 가감 없는 표현이 담겨 있어서, 더욱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사실 리조를 장르 음악가로 규정했다면, 이만큼 많은 헤이터(hater)들의 공격을 받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나는 그가 팝 스타로 불리는 것에 환호한다. 그럼으로써 더 많은 이들에게 좋은 메시지와 에너지를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조는 패션 매거진 엘르(ELLE)의 영국판 커버를 장식하며 인터뷰했을 때, ‘불안했다. 왜냐면 내가 무대에서 봤던 스타들은 다 마르고 밝은 피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며, ‘내 노래가 아무리 좋아도, 사람들이 내 말을 듣고 싶지 않아 할 것 같았다’라고 고백했다. 전에는 팝 스타가 된다는 건, 누군가가 자신처럼 되고 싶어해야 하는 거라 여겼는데, 이제는 ‘내 아름다움은 진짜야’라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또 그렇게 생각하면,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자신을 보는 사람들까지 끌어당기게 된다고 했다.

 

그런 리조의 음악은 듣는 이를 행복하게 하면서, 동시에 좋은 화두를 던진다. 여전히 팝 스타를 한 사람이 아닌 상품으로 여기며 구세대의 미적 기준에 맞추려는 이들이 있지만, 리조는 훌륭한 작품을 내놓으면서, 자신이 전하는 메시지에 설득력을 더해 그 힘을 유지해오고 있다.

 

의류 브랜드 이티(Yitty)를 런칭하며 ‘빅 걸’에 관한 인식 개선에 나서는 것은 물론, 흑인 여성에 관한 오래된 선입견-과잉성욕을 지니고 있고, 지나치게 강하다는-을 정면으로 타파하는 중이다.

 

▲ 2022년 7월 리조(Lizzo)의 정규 4집 앨범 [Special] 발매 이벤트로, 은하계 LIZZOVERSE 라이트 쇼가 뉴욕에서 진행되었다. (출처: 인스타그램 secret_nyc)

 

이번 그래미 시상식에서도 리조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했다. 올해의 레코드 부문에서 수상한 리조는 아델(Adele), 비욘세(Beyonce)와 서로 존경과 축하를 나누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안을 바라보는 아웃사이더라고 느꼈다. 하지만 내 자신에게 진솔함을 유지했다.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었고, 내가 변화가 되어야 했다. 이 앨범에 담긴 노래들은 모두 우리가 우리 몸을 사랑하는 것, 내 피부(색)에 편안함을 느끼고 기분 좋음을 느끼는 것에 관한 것이다. 그것의 한 부분이 되어 자랑스럽다. (중략) 내가 그랬던 것처럼, 오해를 느끼고 아웃사이더라 느끼는 이들이 있다면, 자신에게 늘 진솔했으면 한다. 누군가를 만날 것이고, 당신을 믿고 지지하는 누군가를 끌어당길 것이다. 내 프로듀서들도 그랬다.”

 

팝 스타의 위치에 있던 많은 여성들이 타인의 시선에 의해 신체가 평가의 대상이 되고, 분절적으로 보여지며, 때로 ‘시선강간’의 대상이 되기도 했기 때문에, 그만큼 리조의 작품과 행보는 의미가 크다.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선택한 의상임에도, 많은 이들은 그에 대해 ‘성적 대상화를 자처한다', ‘그런 (노출) 표현을 하니까~’ 등의 프레임을 씌워 공격해 왔다. 그러한 공격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는 세상이기에, 그래서 리조는 더욱 소중하다.

 

※참고 자료

-미국 패션지 보그, “바디 컨피던스(몸 자신감) 혁명을 시작하는 떠오르는 음악가를 만나다”(자넬, 오크오두, 2017.02.09)

-뉴욕타임스, “리조는 당신을 끌어올리고 싶어 한다”(산드라 E. 가르시아, 2018.09.18)

-미 공영방송 PBS, “Lizzo, 다양성, 자신감 및 여성성에 대해 이야기하다”(베레니스 바우티스타, 2020.02.14)

-미 방송사 NBC 뉴스, “Lizzo, 스무디 디톡스 공유에 대한 반발에 응답하다”(스테판 사익스, 2020.12.16)

-미 음악 매체 빌보드, “Lizzo, 자신이 '백인 음악'을 썼다는 비판에 답하다: '내 메시지는 말 그대로 모두를 위한 것이다'”(스타 보웬뱅크, 2022.12.13)

-미 인디문화 매거진 페이퍼, “리조는 자신이 팝스타가 될 만큼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산드라 송, 2022.07.23)

-뉴욕타임스, “모든 것 아래, 그녀는 100% Lizzo다”(바네사 프라이드먼, 2022.03.30)

 

[필자 소개] 블럭. 프리랜서로 일하며 음악평론가, 작가, PD, 기자 등 다양한 호칭으로 불린다. 음악시장 내에서 여성주의 실천을 하며, 새로운 의제를 던지고자 노력 중이다.

이 기사 좋아요
  • 도배방지 이미지

  • 소리 2023/02/18 [14:20] 수정 | 삭제
  • 아 너무 재밌게 읽었어요!
  • ㅇㅇ 2023/02/17 [20:27] 수정 | 삭제
  • 셀프 러브, 몸 다양성 이런 거 말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리조를 보면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고 바로 느껴집니다. 그래서 정말 기분이 좋아져요. 음악도 넘 좋고.. 카디비와 같이 호흡 맞춘 뮤직비디오 보고 기절. 리조는 진짜 멋지고, 아름답고, 소중한 뮤지션이에요.
  • 폴라 2023/02/17 [16:53] 수정 | 삭제
  • 리조 음악 들으면 완전 사이다 가사에 즐거움이 뿜뿜!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