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어’에서 혐오표현 빼고, 존중과 긍정 더하기[박주연 기자의 사심 있는 인터뷰] 한국농인LGBT 설립준비위원회 지양, 보석전국언론노동조합 성평등위원회가 3.8 세계 여성의 날을 앞두고 ‘젠더보도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이 가이드라인엔 “낙태를 ‘임신중지’로, 트랜스젠더의 성전환을 ‘성별재지정’으로, 안사람/바깥사람을 ‘배우자’로, 몰래카메라를 ‘불법촬영물’로” 등 그동안 관습적으로 쓰여왔지만 그 의미가 불충분하거나. 차별과 편견을 강화하거나, 혐오를 조장하는 말들을 이제 그만 쓰자는 내용이 담겨있다. 언론인뿐 아니라 독자들도 이런 변화가 반가울 것이다.
그럼 이건 어떤가? 게이를 나타내는 한국수어가 “항문섹스를 하는 남자”, 레즈비언을 나타내는 한국수어가 “여자와 몸을 비비는 여자”라는 것, 그러니까 이 용어들이 지극히 성관계 중심이라는 사실에 대해선 어떤 생각이 드는가? 이런 말을 쓸 때면 어떤 기분이 들까? 특히 성소수자 당사자라면?
청인이 쓰는 말뿐만 아니라 농인이 쓰는 말 중에도 변화가 필요한 것들이 있지만, 그에 대한 관심이 높진 않았다. 한국농인LGBT 설립준비위원회가 나타나기 전까지. 한국농인LGBT 설립준비위원회는 성소수자와 관련된 수어의 부정적이고 혐오적인 표현을 바꾸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활동을 시작했다. 그렇게 만들어 진 것이 〈농인성소수자X한국수어: 편견과 혐오를 걷어낸 존중과 긍정의 언어〉다. 이 대안수어를 담은 책과 영상을 담은 홈페이지(deafqueerkor.org)도 만들었다.
다양성을 포용하는 사회로 더딘 발걸음 중인 한국 사회에서 “농인”과 “성소수자”가 들어간 단체, 단순히 생각해 봐도 어려움이 두 배일 듯한 단체를 과감하게 시작한 이들의 호기로움이 궁금했다. 그래서 한국농인LGBT 설립준비위원회의 코다(CODA, 농인 부모를 둔 자녀)이자 퀴어인 보석 활동가, 농인이자 퀴어인 지양 활동가를 만났다.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서울인권영화제 사무실에서 만난 이들과의 솔직한 대화를 전한다. 수진 활동가가 수어통역으로 함께했다.
-언제 각자의 정체성에 대해 자긍심을 가지게 됐는지 궁금해요.
지양: 학생 때까지는 사실 농인이라서 뭔가 다르다는 걸 잘 몰랐어요. 근데 사회에 나오니까 못 하는 게 너무 많더라고요. 일 구하기도 너무 어렵고, 계속 ‘넌 청각장애인이라서 안 된다’는 말을 들으니까, ‘난 왜 청각장애인이지?’라는 생각 때문에 힘들었어요. 처음엔 나 자신을 욕했다가 그리곤 사회를 욕하고…. 그런 과정을 겪고 나서 ‘어쩔 수 없다. 나를 받아들이자’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날 이상하게 보는 사람이 이상한 거라는 생각도 하게 됐고요. 그게 20대 중반 정도?
내가 게이라는 거에 대해선 오랫동안 혐오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어요. 기독교 학교를 다녔는데, ‘저 게이 하기 싫어요’ 이런 기도도 할 정도였거든요. 나중엔 ‘난 왜 청각장애인이에요?’ 이러면서 하나님도 미워지고, 교회도 떠났지만은요. 그러다 2018년에 같이 일했던 여성 동료한테 ‘난 남자가 좋다’고 커밍아웃을 했는데, 그 분이 인터넷에서 관련 모임을 찾아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수어를 쓰는 사람(게이)들 모임을 알게 됐어요. 연락하니까 종로로 나오라고 하더라고요.(웃음) 처음 갈 때만 해도 너무 무서웠는데, 수어를 쓰는 사람들을 본 순간 너무 좋았어요. ‘나와 같은 사람이 있었어! 수어를 쓰는 사람이 있었어!!’라고요. 정말 들뜬 기분이었죠. 그 때부터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태국도 가고 일본도 가서 컨퍼런스, 세미나 등에 참석하면서 배웠어요. ‘내가 잘못 된 게 아니라 사회 시선이 잘못된 거라는 거.’ 그 때부터 자긍심이 생긴 거 같아요.
보석: 코다 정체성에 자긍심을 가지게 된 건 수어통역학을 전공하면서부터에요. 공부를 시작하면서 내가 코다라는 존재이고,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됐어요. 그러고 나서 부모님을 바라보니까, 그들의 삶과 이야기도 재해석이 되더라고요. 그렇게 코다 프라이드가 생긴 것 같아요. 성소수자로서는… 글쎄요, ‘난 왜 성소수자야?’ 이런 절망 같은 게 별로 없었달까?(웃음) 유치원 때부터 꿈에 남자들이 나오고(웃음) 스무 살 지나선 거의 성소수자 친구들만 만나기도 했고요. 다만 어떤 안 좋은 사건을 한번 겪으면서, 내가 성소수자라는 걸 때때로 숨기면서 살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됐죠. 그렇게 좀 조용히 지냈는데, 3년 전부터 이 활동 시작하면서 코다 정체성과 성소수자 정체성이 만났을 때 생기는 시너지를 경험하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은 자긍심 시너지 뿜뿜이에요.(웃음)
-한국농인LGBT 설립준비위원회를 만들게 된 과정도 궁금합니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지양: 종로 모임에 나가게 됐잖아요. 몇 번 나가 보니 나랑 좀 안 맞더라고요. 그 모임엔 수어 쓰는 청인들도 꽤 있었는데, 모임 자체가 농인 중심이라고 보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고요. 늘 술 먹고, 야한 얘기 하고…,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교육이나 세미나도 해 보자고 제안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는 분위기였어요. 그 모임은 그만뒀고, 이후에 만난 어떤 분이 태국에서 “ASIA DEAF GALA 2018”(아시아 농인 갈라) 행사에 가 보라고 하더라고요. 굉장히 긍정적이고 자긍심이 가득한 행사였어요. 성소수자에 대해서도요. HIV/AIDS나 동성혼 논의를 하는 세미나도 있더라고요. 너무 유용한 정보들이 많아서, 이런 논의가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는데, ‘다음 개최지로 한국 어떠냐? 행사를 열어보라’고 하는 거에요. 다들 도와주겠고 하니까 떠밀려서 얼떨결에(웃음) 결국 그 행사는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못 하게 됐지만요.
그렇게 한국에 돌아와서 아는 사람들을 좀 모아서, 일단 게이, 레즈비언 이런 수어를 좀 긍정적인 수어로 만들어 보면 어떻겠냐고 했어요. 하지만 좀 일들이 있어서 잘 안 됐고, 다시 혼자가 됐죠. 그리고 2019년 일본에서 열린 “제5회 농X섹슈얼 마이너리티 전국대회 in 후쿠오카”를 갔는데, 이 때 논의 주제가 ‘수어통역사’였어요. ‘농인만 모여서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게 아니다, 청인들과 소통하려면 수어통역사가 있어야 하는데, 그들에게도 성소수자에 대한 정보와 올바른 수어가 전달되어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가 오갔는데, 정말 많이 배웠어요.
그 후 한국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열렸을 때, 아는 분이랑 둘이 부스를 냈는데, 그 때 행사의 수어통역이 알아들을 수 없는 수준이었거든요. 나이가 좀 있었던 수어통역사는 “너 게이지?” 이런 말도 막 하고. 너무 실망스러웠어요. 서울인권영화제에서 수어통역 감수를 해 달라고 한 적도 있었는데, 성소수자와 관련된 수어가 기존의 수어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의 이런 수어가 사실 성소수자 당사자에겐 혐오스럽다’고 얘기했어요. 서울인권영화제 활동가가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해서, ‘나 혼자서 대안수어를 만들기는 어렵다, 사람을 좀 모으고 싶다’고 했더니 그렇게 하자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이 단체가 만들어졌어요.
-복잡하고 긴 사연이 있었네요.
지양: 시작하고 보니 그냥 ‘취미활동’ 정도로도 안 되겠다 싶어서 정식 단체가 되기로 한 거에요.
-보석 활동가는 어떻게 합류하게 된 건가요?
보석: 수어 관련 일을 계속하고, 공부도 하고 있었는데 사실 일종의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었어요. 농인권 활동을 하면서 안 된다고 하는 것들이 있었거든요. ‘(농인 인권에 대해 말할 땐) 그런 얘긴 하면 안 돼. 얌전하게, 친절하게, 이성적으로 해야 돼’라고요. 왜 그래야 되는지 모르겠는데 자꾸 그런 말을 들으니까 너무 힘들었어요. 그러다 이 단체가 시작된다는 걸 알게 됐고, 지양 님이 같이 하자고 하더라고요. 이 활동을 시작하면서 이전의 의문들은 다 깨졌어요! 그래서 지금 활동에 더 빠져들고 있는 중이에요.(웃음)
-활동을 시작하자마자 ‘대안수어’ 만드는 일에 매진하셨어요. 〈농인성소수자X한국수어〉부터 만들게 된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지양: 이 수어를 만드는 일이 가장 필요한 일이었거든요. 이 단체를 만든 이유도 ‘농사회가 혐오 수어를 안 썼으면 좋겠다’는 거였으니까요. 지금의 수어는 농인인 비트랜스젠더-이성애자들이 만들어서 사용해 온 말들로, 당사자인 농인성소수자가 사용하면 자기비하가 되어버리는 몹시 모욕적인 표현이에요. 그래서 농인 성소수자는 본인의 성소수자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하며 ‘차별 반대’를 주장하고자 할 때조차 성소수자 혐오적인 표현을 동원해야만 하는 모순적인 상황에 놓여요. 자신의 존재와 경험, 정체성을 긍정적으로 설명하기 너무 어려운 거죠.
이런 상황이다 보니 대안수어를 만드는 일이 중요했는데, 생각보다 정말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처음엔 단순하게 ‘게이, 레즈비언, 바이, 트랜스젠더’ 이것만 대안수어로 만들려고 했거든요. 근데 막상 공부를 시작하니까, 이 정도론 안 되겠더라고요. 우리 스스로도 배워야 할 게 너무 많았고요. 각 단어들의 의미와 용례부터 시작해서 해외에선 어떻게 쓰고 있는지도 다 찾아봤어요. 이걸로도 부족하다 싶어서 HIV/AIDS 등의 단어를 만들 땐 관련 단체를 만나 이야기 듣는 시간도 가졌어요. 그런 과정들을 거쳐 만들어진 수어에요.
이 수어는 농인 성소수자에게 필요한 것이기도 하지만, 농사회 전반에 ‘이제 혐오적인 수어는 그만 쓰고 긍정적인 수어를 써 달라’는 메시지기도 해요. 수어통역사들에게도요. 청인 사회에도 ‘이런 혐오 수어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어요. 청인들 또한 그 수어를 봤을 때 ‘아, 이게 혐오 수어구나. 이걸 쓰면 안 된다.’라는 걸 알았으면 해요. 적어도 판단할 수 있어야 하잖아요? 수어통역사를 배치하는 게 끝이 아니라, 지금 이 수어가 어떤 혐오 표현을 담고 있지 않은지 알아야죠.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짚어주셨네요. 〈농인성소수자X한국수어〉가 많이 알려져야 할 텐데, 반응은 어떤가요?
지양: 전국의 농인 관련 기관 및 협회, 인권단체 등 약 250군데에 〈농인성소수자X한국수어〉 책자를 보냈어요. 반응은… 글쎄요. 이 책자를 보냈는데도 여전히 혐오 수어를 쓰는 수어통역을 하는 인권단체 행사도 있었어요. 또 다른 행사에서도 수어통역사가 성소수자 관련 단어를 좀 껄끄러워 하면서 통역하는 걸 보았고요. 한번은 어느 농인 협회에 가서 책자 받았냐고 물어보니까, 구석에 숨겨져 있는 걸 보여주더라고요. 왜 그렇게 숨겨놨냐고 하니까, 공부하려고 거기 둔 거라는 핑계를 대고. 다른 곳도 분명히 보냈는데 계속 못 받았다 그러기에, 보낸 내역을 보내주니까 그제서야 어느 통역사가 가져간 거 같다 그러고…. 그래도 몇몇 단체에서 우리 수어 동영상을 자신들 SNS에 올리기도 하는 등의 반응이 있긴 했어요.
보석: 〈농인성소수자X한국수어〉를 만든 의미를 더 알아주셨으면 해요. 우리가 이걸 만든 건, ‘이렇게 부르면 기분 나빠요. 이러지 말아주세요’ 수준이 아니라 ‘우릴 정확하게 이렇게 불러주세요!’라고 메시지를 던지는 거거든요. 그걸 원해서 책자와 동영상까지 만든 거니까요. 한국농인LGBT 설립준비위원회 홈페이지 들어가 보면 아시겠지만, 홈페이지 구성도 정말 고민 많았어요. 수어 중심으로, 수어 사전 형식으로 만든 거거든요. 이렇게 영상으로 단어 의미를 설명하는 수어 사전은 보기 드물어요. 물론 우리의 경우는 단어가 엄청 많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기도 하지만, 정말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약간의 변화를 보기도 했어요. 수어통역사 분들 중에 대안수어를 쓰진 않지만, 지금의 혐오적인 수어를 쓸 때 눈치를 보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그 부분이 좀 흥미로웠어요. 적어도 ‘이걸 써도 되나? 좀 그런가?’ 이런 분위기는 됐다는 거죠.
지양: 맞아요. 예전엔 농인이나 수어통역사들이 그런 말을 막 했는데, 이젠 제 앞에서 좀 눈치를 보더라고요. ‘쟤 인권 활동가야.’ 이러면서.(웃음)
-사실 성소수자 용어라는 게, 청인이 쓰는 말도 계속 변하고 늘어나잖아요. 성적지향, 성별정체성만 해도 스펙트럼이 굉장히 다양해지고 있고요. 수어로 어디까지 만들어야 하는지 고민도 있을 것 같아요.
보석: 처음 모였을 땐 단순하게 L, G, B, T 이것만 해 보자고 시작했는데 이제 일이 커지긴 했죠.(웃음) 일단 우리의 기준은, 당장 수어통역사들이 수어통역을 해야 하는데 어떤 말의 개념이나 의미가 없는 것들부터 만들자는 거예요. 성소수자 인권 관련 논의를 하는데 꼭 필요한 것들이요. 다만 무리해서 단어를 만들어 내진 않으려고 해요. 사실 지금의 한국수어사전이 실패한 이유가, ‘청인들은 이런 단어를 가지고 있는데 왜 농인들은 없지?’ 라는 관점으로 접근해서 말도 안 되는 수많은 수어를 만들어 낸 탓이거든요. 사용되지도 않는 수어를요. 우린 당사자들이 필요하다고 하는 말들을 만들고 싶어요. 그러니까 앞으로 많은 분들이 우릴 찾아와 주시면 좋겠어요. 더 다양한 정체성과 다양한 이야기를 알고 싶어요.
-〈농인성소수자X한국수어〉가 더 많이 쓰이기 위해선, 공적인 기관에 등록을 해야 할까요?
보석: 일단 시도하고 있는 건, 국립국어원의 한국수어사전 운영과 수어사전 편찬위원회 운영을 담당하는 주무관에게 민원을 넣고 있어요. 지금 등록되어 있는 혐오표현이 담긴 수어를 지워달라고요. 우리가 만든 걸 등록하는 게 어렵다면, 일단 지금껄 삭제하라는 의견인데요. 담당자 말에 의하면, ‘보편적인 어휘를 쓰는 게 맞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는 거에요. 너무 화가 나서 ‘이 건에 대한 논의를 제대로 하긴 했냐, 혐오표현이라는 걸 인정 못하겠다는 거냐 아님 혐오표현이라는 것도 인지를 못했다는 거냐’ 따졌더니, 다시 논의해봐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언제까지 논의를 마칠 생각이냐고 물었더니 그것도 모른다 그러고. 계속 반응이 없으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액션에 나설 생각이에요. 저흰 정말 이 활동에 진심이거든요. 이제 농사회에서도 ‘쟤네 좀 찐이야’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이 활동이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농인으로서 목소리 내야 하고, 농인 커뮤니티에서 성소수자로서 목소리 내야 하잖아요. 할 일이 굉장히 많아 보이는데요.
보석: 성소수자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인권운동 전반에서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사실 굉장히 어렵긴 해요. 아예 뭘 모르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나을텐데, 같이 인권운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우린 이걸 차별이라고 느낀다’고 전하는 게 어렵더라고요. 농접근권을 무조건 막 다 보장해달라고 하는 건 아니에요. 같이 방법을 찾아봤으면 좋겠다는 거죠.
농사회에서도 성소수자 인권 문제뿐만 아니라 인권 이야기 자체를 시작해야 하고요. 농사회엔 이런 정보가 막혀 있거든요. 이걸 뚫어 주는 역할을 해야 해요. 농사회에서 농인 성소수자 실태 조사를 해보려고요. 많은 숫자는 아니고 최대 30명 정도? 지금 농인 성소수자가 어디에 위치하고 있고,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지, 어떤 이슈를 말하고 싶은지 알아보고 싶어요.
지양: 농인 성소수자들 중엔 ‘이런 활동을 왜 해야 하냐,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분들도 있어요. 왜 이런 활동이 중요한지, 어떤 의미인지 잘 설명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농사회엔 인권단체가 별로 없거든요. 그런 점에서도 우리의 역할이 필요할 거라고 봐요. 또, 청인 사회에서 잘 모르는 농인 인권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죠. ‘농인 성소수자들은 왜 이렇게 불만이 많아?’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변화를 만들어내야 하니까요.
-함께 목소리를 낼 사람들을 늘려나가야겠네요.
보석: 농접근권이 우리에게 선택이 아니라 운동이라는 걸 꼭 알아주셨으면 해요.
지양: 그러니까 (농접근권 등과 관련된) 어떤 제안을 했을 때 ‘이건 안 된다’고 하기보다 ‘같이 방법을 찾아보자’고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보석: 내부적으로 저희도 처음엔 부침이 있었어요. 당사자성에 대한 논쟁도 심했고요. 농인 성소수자 활동이니까 청인은 있으면 안 되는거냐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논의가 있었죠. 일단 지금 정한 건, ‘농인의 인권이 내 인생에서 너무 중요한 사람이면 당사자’다. 그리고 ‘내가 농인인지 청각장애인인지, 내 정체성은 내가 정하는 거다’에요. 사실 이게 순탄한 결론은 아니에요. 앞으로도 뜨겁게 싸워야죠.(웃음)
농사회 안에서도 여러 갈등이 있어요. 수어를 쓰는 사람과 구어를 쓰는 사람 간의 갈등도 있고요. 사소한 게 아니라 중요한 갈등이죠. 우리 안에선 그런 갈등을 꺼내놓고 이야기해 보려고 해요.
-앞으로, 어떤 변화들을 기대하시나요?
보석: 일단 농사회가 조금 더 소란스러워졌음 좋겠어요.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면서 (정보 접근에 취약한) 농인들이 처한 현실이 알려지고, 그에 따라 변화가 생긴 건 긍정적인 부분이긴 해요. 하지만 농인 인권 문제가 다 해결된 건 결코 아니거든요? 아직 그런 착각에 빠질 때는 아니라고 봐요. 계속 소란스러움을 만들어야죠.
몇 달 전, 서울농아청년회와 〈농 자부심? 그래서 너 뭐 돼? - 농 자부심 이후, 우리가 해야 할 것들〉이라는 행사를 했어요. 농인 성소수자로서 농인 성소수자의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였는데, 이런 농사회의 공식적인 자리에서 농인 성소수자가 가시화된 건 거의 최초 아닐까 싶어요. 굉장히 뜻깊은 자리였고, 이런 자리가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적어도 인권 연대 안에선 농인 성소수자가 어디든 갈 수 있었음 좋겠어요. 그래도 조금의 변화를 느끼는 건, 성소수자 단체에서도 행사에 농인 참여자가 온다고 하면 횡설수설하지 않고 우리한테 연락이 와요. 농접근권을 위해서 수어통역이 필요하다고요. 이제 그런 인식이나 분위기가 생긴 것 같아요. 조금은 낯설지 않은 존재가 된 것 같아요.
-한국농인LGBT 설립준비위원회와 농인 성소수자의 인권운동을 지지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양: 곧 자원활동가 모집 공고가 나갈텐데요. 같이 해 주신다면 너무 좋고, 후원도 좋죠.(웃음)
보석: 농인을 수어통역사를 통해서만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수어통역사가 없으면 농인을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농인이 (수어통역사를 고용할) 돈이 있어야만 만날 수 있는 존재가 되어버렸더라고요. 물론 그것도 중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사실 농인과 청인은 정말 다양한 형태로 만날 수 있거든요. 이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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