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의 말] 페미니스트로 살고자 하는 국어 교사들이 모여 교실과 학교에서 성평등한 국어 교육을 펼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성평등 국어교사 모임’을 만들어 고민을 나누고 대안을 만들어 온 국어 교사들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한국인 부-모가 양육하는 가정이 ‘정상 가정’?
학생들은 다양한 가정에서 자란다. 다문화 가정, 조손 가정, 한부모 가정, 부모와 떨어져서 형제나 자매의 집에서 지내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그 가정을 하나하나 호명하지 않고, 부모-자녀로 구성된 소위 ‘정상 가정’ 안에서 자라는 것으로 퉁치는 경우가 많다. 학교와 교육청에서 양육자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대체로 양육자가 학생의 부모일 것이라는 전제로 시작한다. ‘정상 가정’에서 자라지 않으면 제대로 ‘가정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도 쉽게 한다.
학생에게 문제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학생의 ‘어머니’에게 연락하려고 하는데, 다문화 가정의 학생인 경우엔 한국인 부모 쪽에 우선 연락을 한다(시골에서는 보통 아버지 쪽이다). (‘정상’ 가족에 속한 ‘한국인’) 어머니가 아이의 교육을 책임지는 가정이어야 아이가 잘 자란다는 편견이 이미 학교에 뿌리 깊이 자리하고 있다. 정말 ‘정상 가정’이어야만 되는 것일까?
교육청에서 양육자 대상으로 자녀 교육 상담을 한다는 내용의 가정통신문을 배부할 일이 있었다. 학생들에게 가정통신문을 배부하면서 “부모님들, 보호자님들이 오은영 박사님 좀 만나줬으면 좋겠다 싶었던 적 있지요?”라고 물었더니, 놀랍게도(사실 그렇게 놀랍지는 않을 수도 있다) 거의 모든 학생들이 격렬하게 동의를 표했다. 양육자와 크게 트러블이 없다고 생각했던 학생들도 강하게 반응했다.
학생들이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가족을 사랑함에도 관계에 문제를 겪는 경우가 많고, 가족을 사랑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 있을 수도 있고, 가족이 ‘남’보다 못하다고 느껴지는 경우도 있고, 가족과 만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며, 그 외에도 많은 상황이 존재한다는 걸 새삼 느꼈다.
보호자와 갈등 겪는 학생들
내 경우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대학교에 다니면서까지 학업 성적에 엄격하고 성질이 불같은 아버지와 갈등이 많았다. ‘갈등’이라고 하면 쌍방이 대거리하는 느낌이 들지만, 내 경우에는 말대꾸 한 마디 못하고 맞기만 했는데도 ‘우리 집에서 성격 나쁜 애’가 되었다. 내 10대에서 20대 전체, 30대 초반까지의 삶이 아버지와의 ‘갈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10대의 내가 잘 한 선택 중 하나는 대학교를 집에서 먼 곳으로 갔다는 점이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 부모와 떨어져 지내면서 내 마음 속의 많은 것이 나아졌다.
가정폭력 피해가 남긴 긍정적인 점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까? 내가 가족과, 좀 더 상세하게 말하자면 ‘부모’와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교사로 일하면서 학생들이 보호자들과 갈등이 있는 경우 그 상황을 이해하고 하소연을 들어주기가 어렵지 않았다.
수업 때 학생들에게 나와 아버지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며 ‘부모를 미워해도 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부모의 잘못을 자식도 인정하지 않으면, 관계 개선도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부모를 미워한다는 사실 자체에 상처받는 학생들이 많기 때문에, 밉다는 감정이 있어도 괜찮다고, 이 문제를 네가 지금 당장 해결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지금 너무 어렵더라도 나중에 가면 나아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괜찮다고, 이런 집이 있기 마련이라는 것도 말해주고 싶었다. 세상에 이런 문제로 고민하는 것이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아는 것이 도움이 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한 후에 한 학생이 나한테 조용히 와서 자신과 가족 간의 불화에 대해 이야기하다 살짝 울먹이고 갔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학생의 이야기를 듣는 것 정도였지만, 어느 정도는 위로가 되었으리라 믿는다.
교사로 일하면서 학생들과 상담을 하면서, 학생들의 내밀한 가정 사정을 알게 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내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이 나도 모르게 학생에게 덧씌워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지나치게 많이 알게 되는 것도 좋지 않지만, 가정 사정을 알아야 학생의 복지 지원이 가능한 경우도 있어서 마냥 모르고 지나가는 것이 학생에게 좋은 것도 아니다.
그리고 학생의 말을 통해 들었을 때, 이거 정말 괜찮은가 싶은 수준의 문제가 있는 가정도 있고, 적당히 학생이 직접 문제를 조율해 나가며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그 어떤 경우도 교사의 개입이 쉽지는 않다. 교사는 가정 문제를 해결하는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사실 전문가조차도 그가 직접 가정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니 교사로서 최선의 방책은 학생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 정도가 될 수밖에 없다.
새로운 가족 이야기
가족이란, 함께 살면서 유대감을 얻을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혈연과 관계 없이도 말이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다양한 가정의 형태를 가르쳐주는 것이 맞다고 본다. 어떤 가정의 모습이라도 ‘비정상’인 것은 없으며, ‘정상’의 기준에 벗어난다고 상처받을 것은 없다는 것이 학생들에게 전달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여기에는 다양한 가정의 형태도 포함이 되겠고, 화목하지 않은 가정도 포함이 될 것이다.
와난 작가의 웹툰 『집이 없어』를 보고 눈이 트이는 느낌이 들었다. 이 웹툰은 가정불화를 겪고 있거나, 혈연 가족이 없는 청소년들이 학교 친구들과의 갈등을 통해 관계를 형성해 가며 자신의 문제를 깨닫고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관련 기사: 우리는 집에서 집으로 https://ildaro.com/8999) 가정불화에 대해서도, 교우 관계에서의 갈등에 대해서도 눈감는 부분 없이 하나하나 착실하게 묘사한다. 최근의 트렌디한 웹툰이나 웹소설과는 달리 갈등이 사이다같이 시원하게 단번에 해결되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모르는 주인공들이 답답하지만, 서툰 소통을 통해 점차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어 더 소중하다. 가정 문제로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충분히 추천할 만하다.
이 웹툰처럼 학교에서도 당장에 불행하고,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서 상처를 받아도, 나 자신은 조금씩 나아질 수 있다는 것, 또 좋은 친구들을 만나 새로운 가족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위 글은 성평등 국어교사모임에서 함께 이야기 나누고 작성한 내용입니다. 이메일 주소 femi_literacy_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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