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신이다〉 재현은 왜 문제가 되는가?

성범죄 고발을 담은 다큐 〈나는 신이다〉와 저널리즘 논의들

박주연 | 기사입력 2023/05/02 [16:52]

〈나는 신이다〉 재현은 왜 문제가 되는가?

성범죄 고발을 담은 다큐 〈나는 신이다〉와 저널리즘 논의들

박주연 | 입력 : 2023/05/02 [16:52]

지난 3월 3일, 글로벌 OTT 플랫폼인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다큐멘터리 시리즈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은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JMS, 아가동산, 만민중앙교회 등 사이비종교의 문제에 대중의 관심을 불러왔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받는 반면, 이 다큐멘터리가 피해자 증언을 사용한 방식과 재연 방식, 그리고 여성들의 사진 및 영상이 노출된 부분에 대해선 비판도 높았다.

 

시사적인 문제를 고발하는 다큐멘터리, 특히 그것이 성범죄일 때 피해자의 증언이 중요하게 쓰일 수밖에 없다. 1990년대 R&B 가수로 크나큰 인기를 얻었던 알 켈리의 성범죄를 집요하게 파고든 다큐멘터리 시리즈 〈서바이빙 알 켈리〉나, 오랜 기간 미국 체조 선수들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질러 온 의사 래리 내서 사건과 그 피해자들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는 영원히 어리지 않다〉에서도 피해자가 직접 등장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때론 시청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재연된 형태의 영상을 덧붙이기도 한다.

 

▲ 다큐멘터리 시리즈 〈서바이빙 알 켈리〉(Surviving R. Kelly)와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는 영원히 어리지 않다〉(Athlete A) 역시, 오랜 기간 다수의 피해자를 양산한 성착취 사건을 고발했으며, 피해자들이 직접 등장하고 일부 장면은 재연했다.

 

피해자를 등장시키거나, 과거 사실을 재연 영상으로 보여주는 것 자체가 문제인 건 아니다. 〈나는 신이다〉에 제기된 비판은, 그것이 방송에서 어떻게 쓰여졌으며 재연 방식은 어떠했는가에 관한 것이다. 또한, 피해자의 고발과 함께 이 문제를 얼마나 심도 깊게 제대로 다뤘는지가 중요하다.

 

〈서바이빙 알 켈리〉(Surviving R. Kelly)의 경우, 알 켈리의 성착취 행위를 다루는 한편 어떻게 그토록 오랜 기간 지속될 수 있었는지를 다각도에서 비춘다. 주변인들이 어떻게 동조하고 때론 방치했는지, 사실이 밝혀진 이후 흑인 커뮤니티가 그를 감싼 이유가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 등.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들여다 봐야 하는 것들을 세심하게 짚는다. (관련 기사: 수많은 소녀들 성착취…알 켈리는 어떻게 가능했나 https://ildaro.com/8393)

 

〈우리는 영원히 어리지 않다〉(Athlete A)도 마찬가지다. 단지 ‘변태 의사’의 개인적인 ‘일탈’이 아니라, 스포츠 계의 엘리트 시스템 속에서 발생하였으며 밖으로 드러나기 어려운 문제였다는 걸 밝히며, 유사 사건들이 반복되어 왔음을 알린다. 이런 구조 안에선 성폭력을 비롯해 아동학대, 그루밍 범죄가 쉽게 일어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한다. 능력주의, 학력주의, 최고의 성적을 내기 위해 감수하고 감춰지는 것들을 들여봐야 한다는 메시지를 빼놓지 않는다. (관련 기사: ‘엘리트 교육’이란 이름으로 자행된 학대, 묵인된 성폭력 https://ldaro.com/8919)

 

〈나는 신이다〉는 어땠는지 되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이 다큐 시리즈가 남긴 건 무엇인가? ‘사이비 종교 혹은 교주가 나쁘다?’ ‘그걸 (여전히) 믿는 사람들이 문제다?’ ‘가해자를 처벌해야 한다?’… 남겨진 분노와 질문이 구조적이거나 포괄적이지 않고 특정인이나 어떤 부분에만 한정되어 있다면, 그것은 왜일까? 또한 왜 〈나는 신이다〉를 보고 불쾌감을 호소한 이들이 많을까? 4월 26일 저녁, 한국여성민우회 주최로 열린 라운드 테이블 〈‘나는 신이다’는 다르지 않았다: 재현의 윤리와 저널리즘을 고민하다〉에서 이에 관한 분석과 풍성한 논의가 이뤄졌다.

 

▲ 4월 26일, 한국여성민우회가 주최한 라운드테이블 〈‘나는 신이다’는 다르지 않았다: 재현의 윤리와 저널리즘을 고민하다〉 현장 모습  ©한국여성민우회

 

가해자의 ‘악랄한’ 행위 재현, 부정적 영향 크다

 

류벼리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자극적이고 구체적인 가해행위 재현이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짚었다. 이런 재현이 시청자의 이해를 돕는다고 여겨지기도 하지만, 인권운동가들은 그 이면의 문제들을 지적해왔다. 특히 성폭력 피해자들에겐 “이렇게 심각한 피해가 아니면, 성폭력이 아닌걸까? 내 피해는 남들에 비해서 작은 피해인데, 왜 난 힘들까? 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는 거다.

 

또한 “서사를 부여하여 재연하거나 인터뷰와 함께 보여주는 방식은, 실제 사건을 ‘흥미롭게’ 구성함으로써, 시청자로 하여금 잘 짜인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느끼고, 소비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가해자를 제외한 모두가 쉽게 관객이 되어버리고, 이 상황을 함께 바꿔나가야 할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잊어버리게 된다.”

 

류벼리 활동가는 “가해자가 얼마나 악한 행동을 했는지 초점을 맞춰 그 행위를 재연하고, 그 행위가 서술된 문서를 강조해서 보여주는 방식은 가해자를 특수하게 만들고 악마화시키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이런 재현은 “성폭력이 반복되고 지속되는 구조와 그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피해자를 이해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사건이 “나에게 일어나지 않을 ‘특이한’ 일”로 인식된다는 점이 문제다. 사이비 종교 교주라는 ‘특이한’ 사람에 의한 ‘특이한’ 사건이 되어버리는 거다. 하지만 사실 이런 성폭력 사건은 “1인에게 많은 권력이 부여된 곳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명확하게 권력구조가 나눠져 있고, 소수의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곳은 비단 ‘사이비’ 종교뿐만이 아니다.” 류 활동가는 “이 방송의 목적이 ‘진짜 해결’이었다면, 성폭력이 일어난 구조와 방식을 설명하고, 성폭력을 일으키는 구조적 요인이 우리 현실에 다양한 방식으로 녹아들어 있다고 말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 라운드테이블 〈‘나는 신이다’는 다르지 않았다: 재현의 윤리와 저널리즘을 고민하다〉에서 이윤소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미디어팀 활동가가 발표한 발제문 일부  ©일다

 

이윤소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미디어팀 활동가는 〈나는 신이다〉에서 실제 피해 음성 및 영상, 재연, 문서 등이 얼마나 자주 쓰였는지 하나하나 분석했다. 그리곤 “이런 방식은 성폭력을 선정적이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거리’로 만들 뿐만 아니라, 구체적 범죄행위를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포르노’를 연상케 하여 시청자의 관음증을 자극한다”고 비판했다. 이렇게 “성폭력 사건을 ‘볼거리’로 만들 경우, 피해자의 상황을 타자화하여 성폭력이 일상적인 문제라고 감각하지 못하게 하고, 우리 사회가 함께 해결해 나갈 문제로 인식할 수 없도록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문제를 ‘진짜 해결’하고 싶다면, 어떻게?

 

그렇다면 어떻게 제작했어야 할까? 사실 그동안 이에 대한 논의와 토론이 없지 않았다. 관련 원칙이나 가이드라인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한국기자협회는 2012년 국가인권위원회와 공동으로 「성폭력 범죄보도 세부 권고기준」을, 2018년엔 여성가족부와 「성폭력·성희롱 사건보도 공감기준 및 실천요강」을 제정해 이를 준수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이 외에도 “각 언론사는 「취재준칙」, 「방송강령」, 「윤리규범 가이드라인」 등을 통해 성폭력 사건을 보도할 때 유의할 사항을 정하고 있다.” 이윤소 활동가는 가이드라인을 하나하나 안내했다.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을 지원해 온 한국성폭력상담소 김혜정 소장은 피해자들의 방송, 언론 출연 경험과 인사이트를 공유하며, 더 고민해봐야 하는 점들을 짚었다. 성폭력을 고발하려는 피해자의 경우, 특히 어떤 공동체나 커뮤니티에서 빠져나와 고발해야 할 때 “불안과 공포 속에서 아무도 믿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는데,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이 ‘가장 많은 사람들이 보는 곳에 가서 나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구독자 수가 많은) 유튜브 채널이라도 나가겠다고 할 정도로, 피해자는 자신의 사건을 알리고 해결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다.

 

이 절박한 마음을 방송/언론은 책임 있게 마주해야 하지만, 여전히 그러한 태도가 부족하다. “피해자가 출연에 동의했다 할지라도, 방송에 출연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이고, 어떤 플랫폼으로 제공될 것이며, 2차 3차 생산물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통되는지, 부정적이고 악의적인 소비가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안내하고, (피해자가) 신중한 판단을 할 수 있을 때 조력해야 함에도”, 책임 있는 방송/언론을 찾아 보기 쉽지 않다는 것.

 

김혜정 소장은 피해자 및 피해 증언을 이용하는 언론이라면, “피해자가 나와서 시청률이나 반응이 어땠는지가 아니라, 적어도 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됐는가, 피해자에게 이전보다 더 위험한 일은 생기지 않았는가에 대해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오히려 피해자와 촬영하면서 불안을 자극하는 질문을 던지거나, 방송에 나가면 안 된다고 얘기했던 부분임에도 그냥 내보내는 등 무책임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소장은 “(성범죄 사건 해결과 피해자 회복에)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고, 함께 사회를 개선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언론이 제공해야 함에도, 지금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넷플릭스라서 가능했다?

 

〈나는 신이다〉에 대해 회자되는 이야기 중 하나는 이 콘텐츠가 넷플릭스에서 배급되었기 때문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전세계에 서비스된다는 점에서 더 많은 시청자가 확보된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방송과 달리 심의와 규제가 없는 OTT플랫폼이기 때문이라는 의미도 있다.

 

▲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시리즈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   ©Netflix

 

손희정 경희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는 “이렇게 선정적이게 만들지 않았으면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하는데, (그 선정성 탓에) 이 콘텐츠는 (성범죄가 지속된) 구조를 빼고 분노만 남겨놓은 상태가 됐다”고 비판했다. “구조라는 맥락을 보지 못하게 하면서 분노만 하게 하는 것, 그리고 그 분노엔 사실 굉장한 관음증과 욕망, 쾌락이 섞여 있는 상태”라는 지적이다.

 

또한 손 교수는 “그동안 한국 방송은 (심의, 규제 등으로) 보수적이라서 이런 콘텐츠를 못 만들었는데, 이제 OTT플랫폼에선 그런 제약없이 ‘실력’을 펼칠 수 있다”고 하는 말도 잘 들여다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발휘된 ‘실력’이 폭력과 선정성의 재현이라면, 과연 그 ‘실력’이라는 게 무엇이냐”는 거다.

 

홍남희 서울시립대학교 도시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도 “폭력과 성(性)을 마음대로 재현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보탰다.

 

‘OTT 저널리즘’이라는 말과 넷플릭스라는 거대 미디어기업이 가져야 하는 책임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손희정 교수는 “넷플릭스는 기본적으로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있지 않은, 엄청난 주목 경쟁 안에서 승자의 위치에 올라가 있는 사업자”라고 설명했다. 그렇기에 “넷플릭스 안엔 트랜스젠더 인권을 말하는 다큐멘터리와, 트랜스젠더를 비아냥거리는 스탠드업 코미디 콘텐츠가 공존”한다는 거다.

 

손 교수는 “현재 OTT 플랫폼은 파급력은 크지만 책임질 수 있는 구조가 없다”는 걸 지적했다. 라운드테이블에선 우리 사회가 방송사나 언론사와 다른 위치에 놓여있는 이 미디어기업이 앞으로 어떻게 제작 콘텐츠와 그로 인한 영향력 등에서 사회적 책무를 지게 할지, 고민과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홍남희 교수는 “넷플릭스는 자신들은 플랫폼이기 때문에 정치적 입장이 없다고 하던데, 그럼에도 기업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이 있다는 건 분명하다”며, “그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 또한 공론의 장을 지속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나는 신이다〉가 남긴 것

 

문제가 좀 있더라도, 여전히 〈나는 신이다〉의 흥행을 ‘선정적인 재현 방식’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정말 그럴까? 이에 대해 손희정 교수는 흥미로운 지적을 했다. “사실 선정성 덕분이었다기보다, 선정성이 아닌 것에 관심을 가진 시청자들 덕분”이라는 거다. “이 콘텐츠가 10년 전에 이런 방식으로 나왔다면, ‘어디 자랑이라고 나왔냐 등’ 피해자들이 오히려 욕을 먹었을텐데, 지금 많은 시청자들은 피해자의 고통에 집중하고, 그 아픔을 해결하고자 하는 것에 관심을 가졌다는 것”이다. “이 콘텐츠는 가해의 쾌락을 전시하고 있지만, 시청자들은 피해자의 고통을 보는 상황”이 된 거라는 분석이다.

 

손 교수는 이런 상황이 가능해진 건, “오랜 시간 계속되어 온 반성폭력 운동의 역사가 남긴 관객성”이라고 주장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선정성이 아니라, 우린 피해자를 봐야 해’라는 목소리가 등장할 수 있게 됐고, 그 목소리가 지금의 영향력과 변화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선정성이 흥행을 이끌었다고 해석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나는 신이다〉가 남긴 것은 무엇일까? 〈나는 신이다〉 이후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해 나가야 하는가? 숙제는 많이 남았지만, 사회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방송, 언론들 또한 변화하는 사회적 흐름에 발맞춰 저널리즘의 책임과 소명을 다하는 것에 더욱 더 고심해야 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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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월 2023/05/03 [10:37] 수정 | 삭제
  • 나는 신이다에서 다룬 내용들 오래 전에도 TV에서 보고 알았던 거고, 그래서 의아했습니다. 무엇이 달라졌는지, 왜 해결이 안 되는 건지가.. 게다가 방송 탄 이후에 교세?가 엄청 커진 곳도 있다는.. 결국은 구조적인 문제를 건드리지 못하고 깊이 있게 다루지 않으니까 광신도 집단의 문제인 걸로 비춰지고, 해결책도 찾기가 어려운 거 아닌가 싶어요.
  • ㅇㅇ 2023/05/03 [10:09] 수정 | 삭제
  • 너무 중요한 얘기다. 만들어준 것만으로 감지덕지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잘 정리된 내용을 보니까 더 크게 얘기해야겠다. 엠비씨가 3류는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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