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비난자에서 몸을 가진 비판자가 되기

페미니스트 국어 선생들이 말하는 ‘요즘 학교 어떤가요’⑬

바람분다 | 기사입력 2023/05/07 [10:58]

얼굴 없는 비난자에서 몸을 가진 비판자가 되기

페미니스트 국어 선생들이 말하는 ‘요즘 학교 어떤가요’⑬

바람분다 | 입력 : 2023/05/07 [10:58]

[기획의 말] 페미니스트로 살고자 하는 국어 교사들이 모여 교실과 학교에서 성평등한 국어 교육을 펼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성평등 국어교사 모임’을 만들어 고민을 나누고 대안을 만들어 온 국어 교사들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몸, 목소리와 용기

 

“쌤도 페미라면서요?”

“선생님, 저런 쓸데없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아도 돼요. 쟤들 일부러 저러는 거예요!”

 

복도를 가득 채운 학생들로 둘러싸인 채, 칼날 같은 질문이 나에게 날아왔다. 그 순간 나는 사실 휘청였다. 하지만 뒤따라온 다급하고도, 뜨거운 연대의 목소리에 평온과 용기를 되찾았다.

 

이 일의 발단이 된 우리 반 학급 활동을 시작할 때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이다. 그때 우리 반 앞 복도에는 같은 학년 학생들이 거의 다 몰려와 있었다. 그 순간에 연대와 용기를 선택한 몸, 목소리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난 도망가거나 숨었을지도 모른다. 학교 안팎이 미투(#MeToo) 정국으로 들끓던 그해, 그때의 감정은 내게 또렷하게 자국을 남겼다. 두려움과 기쁨이 뒤얽힌 감정과 머릿속에 스친 수많은 생각, 몸의 떨림을 생생히 기억한다.

 

시작은 작은 학급 활동이었다. 희망하는 직업에 관련된 기사나 자료들을 정리해서 학급에 게시하는 활동을 학기 초에 계획했다. 방학을 얼마 안 남기고, 정해진 순서에 따라 한 학생이 게시물을 만들어 교실 안 지정된 장소에 붙였다. 그 학생의 희망 직업은 여성들의 수가 많지 않은 직업이었다. 게시물의 내용은 이런 현실을 비판하고, 여성들이 해당 분야에 더 많이 진출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제도적 방안, 개인적 도전을 제시한 기사 몇 개를 꼼꼼하게 정리했다. 그런데 이 게시물이 학급 내에서 ‘논쟁’이 되었던 모양이었다. 다른 반 학생들이 우리 반에 우르르 몰려왔고, 비난과 혐오의 말들이 오갔다고 한다. 한 학생이 나에게 찾아와 그 상황을 알렸다.

 

우리 반 앞에 가득한 학생들을 보았을 때, 그 속에서 들끓는 에너지를 느꼈다. 그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면서 두려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두려웠다. 그렇지만 반갑기도 했다. 우리 한번 솔직히 이야기해 보자는 마음이었다. 우리의 몸과 에너지가 부딪히고 있었고, 감정과 생각이 엉켜 있는 얼굴을 서로 마주할 수 있다는 것에 뭔가 기대감이 생겼다. 처음에 날아온 말은 ‘메갈은 병이에요!’였다. 난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 수많은 몸과 얼굴들 뒤, 그 목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말했다. ‘누가 말했어요?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말해 줄래요?’ 하지만 돌아온 답은, ‘쌤도 페미라면서요?’였다. 난 휘청였다.

 

그때, 한 학생이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고, 저건 의도가 있는 질문’이라고 말해주었다. 그 다급한 연대의 목소리는 내 몸의 두려움을 위로하고 용기의 버튼을 누르게 했다. 나의 ‘페미’ 여부를 추궁하고 비난하는 목소리를 눈을 뜨고 마주하고, 뜨거워진 몸을 진정시킬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심상한 온도의 목소리로 말하게 해 주었다.

 

“네, 페미니스트 맞아요. 그게 문제가 될까요?”

내 목소리가 떨렸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읽는다는 것

 

이후의 과정을 여기에서 다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만, 나는 다른 선생님들의 개입을 막고 학생들과 소통하려고 노력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사람은 나에게 찾아오기로 했다. 우선, 학급 내에서 원 게시물의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목소리를 가장 크게 내고, 다른 반에 부정적인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전달한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비판을 하고 싶다면 서로 예의를 지키는 게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학급 전체 논의의 자리를 만들거나, 반박하는 게시물을 만드는 방법을 제시했다. 처음 게시물을 만들어서 붙인 학생에게도 똑같이 두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순서를 정해 서로 반박하는 게시물을 만드는 걸로 결론이 났다. 며칠 후, 원 게시물에 대한 반박 게시물을 만나게 되었다.

 

그 게시물을 두고 많이 고민했다. 원 게시물에 비해 20~30배 가까이 많은 분량이었고, 특정 사이트의 글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었다. 몸과 몸, 얼굴과 얼굴, 목소리와 목소리로 만나는 장을 만들고 싶었는데 실패했구나 싶었다. 그 게시물을 보며 내가 느낀 것은 ‘자신을, 이 많은 분량의 타인의 목소리 뒤에 숨기고 싶어 하는구나’였다. 타인의 글을 그대로 가져온 부분과 자기 생각을 나누어서 정리하고, 학급 게시물이라는 원래 목적에 맞게 분량을 조정해 올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그런 게시물은 학기가 끝날 때까지 만날 수 없었다.

 

▲ 힘 있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근거로 들이대는 것, 타인의 삶과 서사를 무시하는 태도 등은 미디어, 뉴미디어의 상호소통 방식에서 학습되고, 강화된다. 자신을 숨기고 쉽게 비난의 말들을 휘두른다.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읽는다는 것은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가’와 관련된 용기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 사건 이후에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읽는’ 학교 활동과 수업을 한다는 것에 대한 내 생각은 많이 바뀌었다. 또한 ‘요즘 학생들은 문해력이 낮다’라는 기사들에 동의할 수 없게 되었다.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읽는다는 것은 내 논리를 대신할 근거를 어딘가에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그 비판 속으로 자신을 던지고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가와 관련된 용기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또한 요즘 학생들은 미디어, 뉴미디어에서 자신의 필요에 따른 내용과 읽기 방법을 잘 찾아내고 그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다. 다만 방향의 문제가 존재할 뿐이다. 이 두 문제를 국어 선생으로서 어떻게 잘 갈무리해서 실천과 수업, 활동들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

 

뉴미디어에 대한 나의 ‘좋아요’를 고민해 보기

 

미디어 비판 관련 수업 내용은 이미 학교 안에 많이 들어와 있다. 주장과 근거의 구분, 근거의 타당성과 신뢰성 평가 등이 핵심적이다. 성평등 교육의 관점에서, 성역할 고정관념이나 성별에 따른 차별적이고 고정적인 재현의 문제 등에 대한 논의가 많아진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미디어의 구조와 역동 자체가 바뀌고 있어서, 그 속에 연루된 ‘나’의 문제를 고민하지 않고는 비판적으로 미디어를 대하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작년에 미디어 관련 수행평가를 준비하면서,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 ‘좋아요’와 ‘구독’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뉴미디어의 세계를 다룬다. 둘째, 뉴미디어의 산업구조를 ‘나’의 선택과 행위와의 관계 속에서 고민해 본다. 셋째, 뉴미디어에 대한 나의 ‘좋음’을, 얼굴을 마주한 공간에서 이야기하는 경험을 해 본다.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은, 자신이 즐기고 있는 ‘1인방송채널’이나 ‘게임’ 중 하나를 선택하여 소개하기, 자신이 좋아하는 이유를 정리하고 비판적으로 평가해 보기. 자기 생각을 완성된 글로 작성하여 발표하기였다. 1인방송채널 플랫폼이나 게임산업에 대한 일반적 분석 혹은 비판은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선호’ 혹은 ‘취향’을 ‘비판적으로’ 고민해 보는 기회는 많지 않다. 학생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활동 내용이지만 시도해 보기로 했다. 낯선 활동이기에 질문과 답변이 많이 오고 갔다.

 

“그냥 유ㅇㅇ 사이트를 분석하면 안 돼요?”

“우리나라 게임산업의 미래, 이런 거 말해도 되죠?”

“좋아하는데 이유가 어딨어요?”와 같은 질문에 나의 답변은 이랬다.

 

“뉴미디어산업의 특징이나 구조에 대한 비판이 결론에 포함되면 멋지죠. 하지만 꼭 자신이 좋아하는 구체적인 채널이나 게임에 대해서 먼저 분석하고, 그에 기반한 결론을 밝혀주세요.”

 

▲ ‘좋아요’와 ‘구독’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뉴미디어의 구조를 ‘나’의 선택과 행위와의 관계 속에서 고민해 보고, 나의 ‘좋아요’의 이유를 타인과 얼굴을 마주한 공간에서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욕심을 부린 덕에 힘은 좀 들었지만, 재미있었다. 학생들이 제시한 비판의 관점은 몇 가지로 모이고 있었다. 돈으로 연결되는 인기를 얻기 위한 자극적인 내용, 댓글이나 채팅창을 통해 이루어지는 사용자들 간의 의사소통에서의 무례함이 주된 것이었다.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맹목적인 국가적 대결, 성차별적이거나 성희롱적인 언어와 태도, 개인 특성에 대한 비난, 차별과 배제 등이다. 뉴미디어에서 광범위하게 ‘기본값’으로 설정된 성별 이분법, 여성의 대상화, 성희롱적 언행, 혐오 표현 등에 대해서도 학생들은 매우 예민하게 짚어냈다.

 

공공의 장에서 논의해 보는 경험

 

발표할 때, 자신이 소개하는 뉴미디어의 실제 영상을 1분 이내로 보여주는 것도 가능하다고 약속했었다. 교실에서 모두가 보기에 문제가 없는 장면을 골라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또한 누군가 문제를 제기한다면 공유를 멈추기로 원칙을 정하고 발표를 진행했다. 실제로 한 반에서 평균 한두 번 정도 문제 제기가 있었다. 일단 영상을 멈추고, 문제를 제기한 학생의 의견을 듣고 반 전체에서 간단한 의견교환을 하여 진행 여부를 결정했다.

 

대부분이 열린 마음으로 참여하였고, 문제 제기를 받은 발표자도 교실에서 함께 결정한 사항을 잘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논의와 합의의 과정이 나에겐 기쁘고 반가운 일이어서, 요즘도 그 장면들이 종종 생각난다.

 

“어...집에서 준비할 때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발표하려니까 좀 아닌 것 같네요. 영상 없이 발표해도 감점은 없는 거죠?”라고 발표자가 말하는 경우도 있었다.

 

“앗, 저 방송. 욕 좀 많이 하지 않아요? 적절한 장면으로 골라서 왔나요?”

“아, 네. 제가 이 채널을 자주 보긴 했는데, 준비하면서 생각해 보니 그렇더라고요. 그 점을 비판하려고요. 준비한 장면은 큰 문제가 없습니다.” 이런 대화가 오가기도 했다.

 

수행평가를 마무리하면서, 학생들에게 나의 감상을 전달했다. 인기를 얻는 1인방송채널이나 게임이 가진 이야기 구조에 대해서 생각해보자는 말을 꼭 하고 싶었다. 왜 전투와 전쟁, 경쟁 방식의 이야기와 매체가 인기를 얻는가, 그 속에서 승자가 되는 사람들이 갖추어야 하는 능력이나 태도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여성이나 성소수자, 장애가 있는 존재, 조용하게 관찰하고 들어주는 존재, 천천히 걸어가는 존재들은 뉴미디어에서 차별 없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상황인지 고민해보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좋아하는 것이, 타인을 억압하거나 경쟁적인 사회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하거나, 다름을 차별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구조를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보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선생의 지루한 말이 되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성공했는지는 모르겠다. 좀 더 효과적인 고민 나누기의 방식을 아직은 좌충우돌하며 모색하고 있다.

 

▲ 학교에서라도, 뉴미디어에 깃들어 있는 혐오, 맹목적 편 가르기, 성희롱과 성차별의 문제를 함께 논의하고 비판할 수 있는 몸을 가진 존재가 되어 볼 기회를 만들어 보면 좋겠다.

 

미디어 뒤에 숨지 않는 우리 몸을 만들기 위해

 

치열했던 미투 정국이 지나갔다. 학교는 지금도 입시를 중심으로 한 껍데기를 힘겹게 짊어지고, 그 속에 들끓고 있는 에너지들을 가린 채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 에너지는 미디어, 뉴미디어의 세계에서 폭발하고 있는 모양이다. 학교는 계속 이것들을 모른 체하고 유지될 수 있을까?

 

학교에서 토론대회를 해 보면, 특정 사이트나 커뮤니티의 의견을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토론대회라는 경쟁 방식은 상대의 주장이 비논리적이고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식의 태도를 논쟁에서 효과적인 ‘무기’로 이해하게 만든다. 정치인들마저도 ‘부끄럼 없이’ 일방적인 자기 논리의 강요와, 타인의 삶에 대한 ‘무지’를 스스럼없이 과시하는 요즘이다. 그러니 학생들 사이에서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타인을 ‘제압’하는 것이 세련되고 논리적이라는 착각이 힘을 얻는 것이다.

 

힘 있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근거로 들이대는 것, 타인의 삶과 서사를 무시하는 태도 등은 미디어, 뉴미디어의 상호소통 방식에서 학습되고, 강화된다. 내가 아니라 누군가가 한 말에 근거를 두고, 삶이 아니라 힘을 논리의 근거로 사용하는 방식은 결국 자신을 숨기는 방식이다. 자신을 숨기고 쉽게 비난의 말들을 휘두른다. 뉴미디어는 그것을 할 수 있는 가장 편리한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학교는 여기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혹은 할 수 있을까?

 

학교가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학교가 ‘주인공 자리 회복’이라는 관점에서 뉴미디어를 생각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학생·청소년들의 뉴미디어 접근을 우려 대상으로만 여기고, 통제하려는 유혹을 떨쳐버렸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다면, 얼굴 없는 비난자로 몸을 숨기며 살아가는 이들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라도, 뉴미디어에 깃들어 있는 혐오, 맹목적 편 가르기, 성희롱과 성차별의 문제를 함께 논의하고 비판할 수 있는 몸을 가진 존재가 되어 볼 기회를 만들어 보면 좋겠다.

 

나의 ‘좋음’의 의미를 미디어 전체의 구조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자기 행위의 의미를 고민해 볼 수 있었으면 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변화시키며, 서로를 마주 볼 수 있는 몸과 얼굴, 목소리를 가진 존재들이 학교에서 안전하게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위 글은 성평등 국어교사모임에서 함께 이야기 나누고 작성한 내용입니다. 이메일 주소 femi_literacy_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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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발자전거 2023/07/08 [14:37] 수정 | 삭제
  • 다시 읽어도 여전한 놀라움과 감동!
  • 존경합니다 2023/05/18 [14:24] 수정 | 삭제
  • 찐 교육자시다..
  • ㅇㅇ 2023/05/12 [10:02] 수정 | 삭제
  • 특정 쟁점에 대해서 얘기하다보면 진영과 상관없이 인터넷에서 떠도는 이야기를 자기가 정리한 의견인양 이야기 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을 종종 느끼곤 합니다. 그렇게 남의 의견의 단면만 앵무새처럼 외워두었다가 이야기하기에 논리에 헛점이 생기거나 근거가 빈약해지는 문제가 꼭 발생하는데, 이를 지적하면 발작하는 패턴도 흔하고요. 그런 모습을 보며 위화감을 느끼면서도 꼭 집어 정리하지 못 했는데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누군가의 의견뒤에 자기의 얼굴을 숨기고 싶어하는 심리일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학생들이 좋아하는 1인 미디어를 남들에게 소개하고, 발표하는 친구를 보면서 자신의 취향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경험은 정말 소중할 것 같네요. 힘드셨겠지만 일선에서 좋은 교육을 위해 힘쓰시는 모습에 경의를 표합니다.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 아이스 2023/05/09 [20:55] 수정 | 삭제
  • chat gpt 시대가 열렸다는 얘기에 솔직히 걱정되는 맘이 더 컸어요. 자아를 얼마나 용기있게 마주할 수 있는지 더 큰 과제를 안게될 것 같습니다. 타자에 대한 개념도 경쟁적이고 니편 아니면 내편으로 왜곡되지 않을지.. 이런 고민을 만나게 되니 반가워요..
  • 벼리 2023/05/08 [22:08] 수정 | 삭제
  • 내공이 느껴지네요. 학생들의 변화 가능성을 믿고 소중히 하는 마음도 전해집니다. 세상을 바꾸는 건 각자의 현장이겠죠. 이렇게 훌륭한 수업 사례가 많이 공유되고 교육현장에서 논의되고 연구가 되면 좋겠어요!
  • 구구 2023/05/08 [13:13] 수정 | 삭제
  • 저도 페미교사에요. 너무나도 멋진 수업 사례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걸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 ㅇㅇ 2023/05/07 [22:29] 수정 | 삭제
  • 존경스러운 선생님. 선생님과 함께하는 학생들은 얼마나 좋을까요.. 역시 페미니스트 선생님은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 J 2023/05/07 [19:01] 수정 | 삭제
  • 뉴미디어에 대한 통찰이 있는 글 잘 봤습니다. 좋아요, 공감하기, 평점 주기, 익명의 댓글 같은 손쉬운 의사표시들이 개인과 집단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더 많은 논의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 우림 2023/05/07 [13:14] 수정 | 삭제
  • 선생님의 글을 읽고 나니, 학교에 정말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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