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빠졌다…윤석열 정부 1년에 대한 여성계 평가

〈표류하는 성평등 정책 방향키 잡기〉 토론회서 비판과 제언 나와

박주연 | 기사입력 2023/05/12 [13:45]

‘여성’이 빠졌다…윤석열 정부 1년에 대한 여성계 평가

〈표류하는 성평등 정책 방향키 잡기〉 토론회서 비판과 제언 나와

박주연 | 입력 : 2023/05/12 [13:45]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며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앞세웠던 윤석열 정부가 1년을 맞이했다. 아직 여성가족부는 폐지되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 임명된 여성가족부 장관 또한 여성가족부가 없어도 양성평등 사회가 가능하다는 말들을 늘어놓으며, 정작 성평등한 사회를 위해 어떻게, 무엇을 하겠다는 건지 알 수 없다. 여성가족부만 문제가 아니다. 정부 정책에서 ‘여성’은 좀처럼 찾을 수 없는, 금기어가 된 모양새다.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한국여성단체연합 주최로 열린 〈윤석열 정부 1년 정책 평가 및 제언 토론회 - 표류하는 성평등 정책 방향키 잡기〉 토론회에서 ‘여성’을 지운 윤석열 정부 정책 평가가 이루어졌다. 젠더폭력, 노동, 복지, 사회, 평화 분야 모두에서 현 정부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여성가족부 업무, 목표, 과제에 ‘여성’도 ‘성평등’도 없다

 

“여성정책이 실종돼서 분석할 자료조차 없다.”

 

신경아 한림대학교 교수는 이렇게 말하며, 그나마 나와있는 「2023 여성가족부 주요업무 추진계획」과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에 대해 논평했다.

 

▲ 지난 1월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따뜻한 동행, 행복한 가족’을 위한 2023년 주요업무 추진계획

 

1월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23 주요업무 추진계획은 ‘업무계획’으로 “동행, 미래, 혁신”을 제시하고, 3대 목표로 “약자에게 더 따뜻하고 안전한 사회 조성”, “저출산·저성장 위기를 극복할 미래인재 양성”, “촘촘하고 든든한 지원을 위한 사회서비스 고도화”를 제시하고 있다.

 

신 교수는 “만약 (보고서의) 표지를 보지 않는다면, 어떤 부처의 계획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추진방향은 어떤 구체적인 가치나 지향을 담고 있지 않으며, 3대 목표는 여성가족부라기 보다 보건복지부의 목표에 가깝다.”고 꼬집었다. 업무계획의 6대 핵심과제도 “여성가족부의 정체성이나 고유의 책무성을 찾아 보기 어렵다”며, “과제명 어디에도 ‘여성’도, ‘성평등’도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년 전인 2022년과 비교하여 보니, 확연히 달라진 점이 드러났다. ‘모두가 체감하는 성평등 사회 구현’, ‘젠더폭력으로부터 보다 안전한 사회’ 등 “성평등을 목표로 하거나, 성인지적 관점의 정책적 기조가 (윤석열 정부에서는) 사라졌다”는 것. 또한 “여성정책이 ‘출산·양육’, ‘폭력피해 지원’, ‘경력단절 예방’에 대한 것으로 최소화”되었다.

 

신경아 교수는 “여성, 성평등이 사라진 정책은 젠더관계의 불평등성에 대한 구조적인 이해를 차단하고, 개별 사안에 대한 일시적인 처방으로 국한된다”며 큰 우려를 표했다. 가령 사회구조적인 문제인 ‘성별 임금격차’의 경우, “노동시장과 조직 내 성차별과 성별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노력보다 ‘여성의 직업훈련 확대’ 같은 처방으로 개선될 수 있다는 인식”을 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스토킹 같은 성폭력도 “성별(젠더)과 무관한 개인들 간의 우연한 범죄 사건으로 정의”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또한 여성정책을 “취약한 여성 집단에 대한 보호” 정책으로 제한하는 것은 “1990년대 이전의 ‘요보호 여성’, ‘부녀정책’처럼 성평등 가치가 등장하기 이전의 관점”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정책의 기조가 “전통적 가족주의로의 회귀”라는 점에서도 문제적이지 않을 수 없다.

 

▲ 올해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여가부 폐지 저지 전국행동’에서 전개한 〈안지워지지〉 프로필 바꾸기 인증샷 캠페인 중에서. 여성가족부를 폐지해선 안 되며, 오히려 ‘성평등 추진체계’로서 그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고 여성계는 요구하고 있다.

 

‘비동의 강간죄’ 도입 번복하더니, 성범죄 ‘무고죄’ 강화?

 

젠더 기반 여성폭력과 관련된 정책에서도 ‘여성’이란 말이 빠졌다. ‘여성폭력’을 일괄 ‘폭력’으로 변경한 것.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젠더 기반 여성폭력에서 ‘여성’ 지우기는 사실상 이 정책의 기반을 삭제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송란희 대표는 “‘여성폭력’이라는 용어는 수십 년간 피해여성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 낸 법적 용어이자 정책용어”이며, 개인 ‘남성과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불평등한 성별 권력 관계를 포착하기 위한 용어”라고 설명했다. 이를 모를 리 없으련만, 그럼에도 정부가 굳이 ‘여성’이라는 말을 지우는 건 “이를 여성과 남성 간 ‘갈등’의 문제로 만들어, 그 ‘갈등’에서 이득을 보겠다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또한 “여성폭력의 현실을 호도하고, 관련 정책을 축소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는 것 아닌지” 의문이 든다고 했다.

 

송 대표는 ‘윤석열 정부 120대 국정과제’ 중 그나마 젠더 기반 여성폭력과 관련이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 세 가지, 63번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 구현>, 64번 <범죄피해자 보호지원 시스템 확립>, 69번 <국민이 안심하는 생활안전 확보>에 대해서도 분석했다. “성희롱, 성매매 문제는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았으며”, “성폭력, 가정폭력, 데이트폭력, 스토킹은 갑자기 ‘젠더’도 ‘여성’도 사라진 채 그저 ‘5대 폭력’(권력형 성범죄, 디지털 성범죄, 가정폭력, 교제폭력, 스토킹범죄)이 되어 피해자 보호를 강화하겠다는 과제로 묶여버렸다.”

 

국정과제 내용은 ‘양형기준 강화’, ‘종합적 원스톱 서비스’, ‘사회적 약자 보호’ 등으로 요약된다. 송란희 대표는 “젠더 기반 여성폭력이 왜 발생하는지, 그로 인한 특수성이 무엇인지를 삭제해 버리면, 과제들엔 껍데기만 남는다”고 지적했다. ‘피해자 중심’의 정책은, 사건 발생부터 해결까지 피해자가 직면하는 매 순간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인식하고, 피해자의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그 문제의식을 사회변화로 이끌어내는 전 과정에서 작동되어야 하는 것이지, 단지 분산되어 있는 범죄피해자지원사업을 모아 원스톱으로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 송 대표는 이런 정책 메커니즘은 “근본적이고 복잡한 질문을 사라지게” 할 뿐 아니라 “국민이 아닌, 대상화된 피해자를 보호해준다는 말만 남게 한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양형 기준 강화’를 외치면서 성폭력 무고죄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더해졌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사실 성폭력 대비 ‘무고죄’로 기소되는 수는 0.78% 수준이며, 성폭력 무고 중 ‘가해자에 의해 고소된 사건’의 84.1%가 불기소되는 상황”이라 설명했다.(관련 기사: 성폭력 ‘무고’에 대한 통념이 거짓이라는 게 밝혀졌다 https://ildaro.com/8514) 김 소장은 “무고한 남성을 여성이 무고한다는 언설은 강간 통념이자 강간 신화의 일종임에도,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정부가 확대하는 것은 심각한 잘못”이라고 말했다. 현실에선 “성폭력 피해자들의 권리조차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음에도, “가해자들의 적반하장 무고 고소를 부추기고, 폭행·협박이 동반되지 않은 성폭력 사건 피해자들이 수사기관 근처에도 가지 못하게 만든다”는 점도 강조했다.

 

윤석열 정부는 ‘비동의 강간죄’를 도입하는 것도 번복했다. 폭력, 협박이 있어야만 강간을 인정했던 형법을 개정하여, ‘동의 여부’를 중심으로 강간을 정의해야 한다는 요구는 오랜 기간 제기되어 왔고,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김혜정 소장은 “비동의 강간죄는 일상권력과 성폭력을 해소하기 위해 세계가 향해 가고 있는 체계”라며 “시민들의 의식, 감수성, 요구는 이미 변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 강간죄개정연대는 2019년부터 꾸준히 성폭력의 판단기준을 폭행과 협박이 아닌 동의 여부로 바꾸는 운동을 이어오고 있다. 〈우리가 아는 문제, 우리가 바꾸는 내일 '강간죄 개정을 위한 릴레이 리포트'〉 1탄 "술이나 약물이 있었던, 원치 않은 성관계" 중에서 (출처: 한국성폭력상담소)  

 

많은 여성, 특히 청년 층에서 일상의 공포로까지 자리잡은 ‘디지털 성범죄’도 정부는 뒷짐이다. 심지어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전국 지자체 산하 디지털성범죄 피해자지원센터 마련’ 관련해선, 여성가족부가 관련 예산을 제출하지 않았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예산소위원회에 출석한 여성가족부 차관은 해당 지원을 위한 15억 증액안을 거절하기까지 했다. 김혜정 소장은 “예산삭감, 축소, 증액 거절 등이 가져오는 문제”를 말하며, “성평등 확산, 여성폭력 방지, 피해자 지원 사업의 실질적 규모와 방식, 최소한의 안전망과 직결”되어 있는 사안이라고 비판했다.

 

69시간 노동? ‘장시간 노동’이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

 

윤석열 정부의 노동관에 대해서는 사회각계에서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주당 최대 69시간 노동이 가능하도록 하는 노동시장 ‘개혁’안은 큰 논란을 일으켰다. 반발이 심해지자 슬그머니 주 60시간 노동으로 변경해 말하고 있지만, 이 또한 세계적 흐름과는 거리가 먼 ‘장시간 노동’이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지금 윤석열 정부가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하고 있는 정책들은 사실상 ‘사용자의 입장’에서 유리한 정책들로,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과 착취가 예정된 것”이라며, “그 정책들이 어떤 파장과 문제점을 가져올지에 대한 검토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특히 노동 시간에 대해선 “깊은 사유가 필요하다”고 말하며 “노동자들의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이자, 삶을 구성하는 시간 배분에 관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시간은 “임금노동 시간만이 아님”에도, 정부는 “노동시간 문제를 노동시간과 휴식시간의 배분이라는 빈약한 관점에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 이러한 노동 정책은 “여성노동자에겐 더욱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 지난 3월 7일, “주당69시간 개악안을 철회하라!”라며 여성노동연대회의를 비롯한 여성운동단체들이 공동성명을 냈다. 노동시간 연장에 반대하고, 노동시간 단축으로 ‘노동자의 시간주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이미지 출처: 한국여성노동자회)

 

“돌봄의 책임이 과중한 여성노동자들은 지금도 ‘시간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더욱 긴 장시간 노동이 요구되면, 여성들은 현재 일자리를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 기준 노동시간이 길어지면, 여성들은 더 짧은 노동시간을 찾아 ‘시간제 일자리’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 이는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일자리를 의미한다. 또한 사용자는 (여성이) 장시간 노동을 감당하기 어렵다 판단할 것이고, 채용성차별이 더 심해질 우려가 있다.”

 

배진경 대표는 “여성의 일자리 질 저하는 물론, 돌봄노동의 과중으로 여성의 삶을 나락으로 몰아넣는 동시에, 여성의 미래를 앗아갈 것”이라며 장시간 노동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재생산권을 ‘출산’에만 방점 두나

 

박은주 한국여성단체연합 활동가는 윤석열 정부가 가족의 개념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건강가정기본법을 개정하기로 한 계획을 철회하고, ‘정상가족’ 중심으로 회귀하고 있는 것에 대해 지적했다.

 

“시민들의 실재적 삶을 담은 새로운 가족의 개념에 대한 필요성은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하지만 지난해 여성가족부는 ‘사실혼 및 동거 가구 등을 법적 가족으로 인정하겠다’는 기존 입장(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을 철회하고, 현행 유지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2021년 발표된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엔 ‘부성 우선주의 원칙’ 폐기 방침도 담겨 있었다. 하지만 “2022년 법무부 관계자는 ‘부성 우선주의 원칙의 대안이 마련되지 않았다. 올해 안에 할 계획이 없다.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면 법 개정 작업에 나서겠다’고 말하며, 기존 계획을 뒤집은 상황”이다.

 

또한 박은주 활동가는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임신중지가 비범죄화 되었음에도, 임신중지를 보장하는 정책이 전무”하다는 것을 지적하며, “정부는 임신·출산 중심으로 복지정책에 접근하면서, 여성의 재생산권도 출산에만 방점을 두고 있다”고 꼬집었다. 게다가 “출산을 장려하는 정책 방향을 견지하면서도 대안 없이 장애여성 출산에 대한 지원을 줄이는 차별을 감행”했다고 덧붙였다.

 

▲ 8일, 한국여성단체연합 주최로 이룸센터에서 열린 토론회 〈윤석열 정부 1년 정책 평가 및 제언 토론회 - 표류하는 성평등 정책 방향키 잡기〉 현장.  ©일다

 

이제라도 ‘성평등’으로 방향키 돌려라

 

지난 1년 산적한 이 많은 문제들, 해결할 방법은 ‘있다’. 이제서라도 성평등 정책과 제도를 마련하면 된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앞으로 4년이 남았다. 지금이라도 젠더 기반 여성폭력 관련 정책을 완전히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은주 한국여성단체연합 활동가 또한 “정상가족 기준 복지가 아니라, 차별과 배제를 발견하고 해체하는 성평등 복지”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신경아 교수는 현재의 정책 방향을 바꾸지 않으면 “여성들의 고통이 가중될 것”이며, “여성과 함께 살아가는 남성들, 아이들, 노인들의 고통으로 확산되어 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무리한 상황을 하루빨리 중단시키는 것이야말로 정치인들의 사명”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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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리한마리 2023/08/24 [06:50] 수정 | 삭제
  • 심각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올라 2023/05/17 [07:10] 수정 | 삭제
  •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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