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류 끊긴 지 오래인 부모형제가 나의 가족인가요?
저는 성인이 되면서, 혈연으로 이루어진 원가족으로부터 분리되어 독립 가정을 구성하였습니다. 복잡한 가족사 속에서 원가족 구성원들 대부분과 교류가 끊어진 상태에서 10여 년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10여 년 동안 누군가와 결혼하지 않았고 누군가를 입양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의 가족은 누구인가요?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함께 살지도 않았고, 최소한의 교류조차 없어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알지 못하는 혈연관계인 이들이 유일한 내 가족일까요?
지금의 민법과 건강가족기본법 등은 ‘그렇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도 핏줄이고 혈연이니까 가족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실제 생활과 삶에서 서로가 가족으로서의 의미나 역할을 충족하지 못하고 각자의 삶을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법은 이 관계만이 내 가족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는 혈연관계의 가족으로부터 분리된 이후, 함께 지내온 사람이 있습니다. 한집에서 살며 함께 자고 함께 일어나고 함께 밥을 먹고, 한 사람이 아프면 다른 한 사람이 돌보면서 그렇게 주거 공간과 경제적 자원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지나온 많은 시간 속에서 생의 희로애락을 나누면서 상호 간 부양과 보호, 정서적 교류를 10년 넘게 이어온 동반자가 있습니다.
생계와 주거를 함께하는 생활공동체로서, 일상적인 부양과 보호 등이 이루어지는 하나의 생활 단위를 꾸려 살아왔지만, 우리의 관계는 가족 혹은 가정으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비혼의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법적 혼인 관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우리는 서로의 가족 구성원으로서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가족제도 밖에서 살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의 법제도는 내가 오랜 기간 친밀하게 함께 살면서 누구보다 서로 의지하고 깊이 이해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너의 가족이 아니라고 부정하면서, 어떠한 교류 없이 지내더라도 혈연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이 너의 가족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법적으로 포괄되지 못하는 가족을 꾸리고 살면서 우리는 여러 불편을 겪어야 했습니다. 법이 인정하는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우편물을 대신 수령할 수 없는 문제와 같이 사소한 것부터 직장 내 건강검진, 건강보험, 대출, 주택 마련 등과 같은 주거 및 경제 문제까지 말입니다.
한편으로, 결혼하지 않은 성인 남녀가 함께 사는 것에 대한 편견의 시선과 모욕을 감당했던 경험도 있습니다. ‘동거하다 헤어지면 중고’라는 비아냥거림을 마주해야 했고, 나에게는 지키고 싶은 소중한 관계가 사회적으로 멸시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비혼의 상태인 것, 그리고 비혼이지만 서로를 돌보고 의지하며 함께 살아가는 것은 왜 비정상적이고 부도덕한 것처럼 여겨질까요? 그 기저에는 우리 사회에서 점점 증가하고 있는 다양한 가족들을 부정하고 차별하는 낡은 관념, 그리고 그 관념을 떠받치는 낡은 법이 존재합니다. 가족에 대한 고정관념, 소위 ‘정상가족’에서 벗어나는 가족 형태에 대한 차별과 멸시가 하루아침에 변화할 순 없겠지만, 법제도가 다양한 가족들을 인정하고 포괄한다면 이러한 차별적 인식을 바꾸는 데 있어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평등하고 행복하게 살 권리, 다양한 ‘가족구성권’ 보장해야
가족 다양성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나날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은 여성가족부가 직접 수행한 조사에서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여성가족부가 2021년에 발표한 결과를 보면, 국민의 68%가 ‘전통적 가족 감소는 사회변화에 따른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62%가 ‘생계와 주거를 공유하면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견해는 과반수를 넘었습니다.
가족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변화하고 있고, 실제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있고, 시민들의 삶의 양태들이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법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가족’을 둘러싼 사람들의 다양한 욕구와 변화하는 삶의 양태와 가치관들을 외면하지 말고, 누구나 서로를 사랑하고 친밀감을 나눌 수 있는 이들과 동반자적 관계를 맺고 가족을 이루어 살아갈 권리가 보장될 수 있도록, 국회가 소임을 다하기를 촉구합니다.
(※이 글은 혼인, 혈연, 입양 관계만 ‘가족’으로 정의한 건강가정기본법 제3조 1항을 삭제하라고 요구하는 시민들이 2022년 10월 25일 국회 앞에서 진행한 “우리의 연결될 권리를 보장하라” 행사의 발언문을 보완, 편집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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