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소개] 여성들의 말과 글이 세상에 더 많이 퍼지고 새겨져야 한다고 믿으며, 서점에서 퍼뜨리고 싶은 여자들의 책을 고른다. ‘살롱드마고’의 신간 책장에서 마음에 새겨지는 책을 한 권씩 밑줄 그으며 꼭꼭 씹어 독자들과 맛있게 나누고자 한다.
흔들리는 내 모습을 남에게 보이는 것은 너무나도…
“부끄러움에서 가장 끔찍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나만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믿는 것이다.” -아니 에르노 『부끄러움』(비채, 2019) 中, 책 『수치심 탐구 생활』 24쪽에서 재인용
서른을 앞둔 무렵 나는 출퇴근길마다 지나는 육교 위에서 몸을 던지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 발치 아래 8차선의 넓은 도로에는 차들이 전속력으로 달렸다. 출퇴근 중인 육교 위 사람들도 그 차들만큼이나 빠른 걸음으로 내 옆을 슥슥 지나쳤다. 온 세상에서 지금 멈춰 있는 건 오직 나뿐인 것 같았다.
나를 걱정하는 친구의 권유로 처음 심리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나는 상담소에 찾아가는 길에서부터 상담을 받는 시간까지 내 안의 수치심과 격렬히 싸워야 했다.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내 모습이 구차하게 느껴져 수치스럽고, 이렇게 엉망진창인 내 꼴을 가감없이 보여야 하는 상담 작업 자체가 견딜 수 없이 모멸스러웠다. 스스로에게 완벽하기를 바란 적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완전하지 않은 나를 누군가에게 보이는 일은 엄청난 두려움과 부끄러움에 휩싸이게 했다.
‘이건 내가 아니다.’ 나는 나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용서할 수 없었다.
“괜찮아, 아무렇지 않아야 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는 건 더 더 더 수치스러운 일이야.” (사월날씨 『수치심 탐구 생활』 51쪽, 왼쪽주머니, 2023)
“빈틈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서 나는 통째로 포기해버린다. 작은 빈틈에 크게 좌절하여 도저히 메울 수 없는 구멍이 나 있는 사람으로 지레 인식해버린다.” (이하 같은 책 193쪽)
해결하지 않은 감정은 언제고 값을 치르러 온다
대학을 졸업한 뒤 나의 첫 직장은 성매매 산업의 피해자를 상담하고 지원하는 곳이었다. 상담원 자격을 얻기 위한 연수에 참여했을 때, 나는 교육 진행자와 동료들로부터 ‘의연하다’는 칭찬을 들었다. 위기와 폭력에 노출된 젠더폭력 피해자들과 가장 가까이서 만나는 상담원에게 ‘의연함’이란 꽤 도움이 되는 강점 같았다.
실제로 현장에서 성매매 관련 사건을 지원하다 보면 업주나 성매수자의 욕설과 협박 등 상담원도 직간접적 폭력을 겪는 일이 생겼다. 그때마다 나는 피해자 앞에서도, 가해자 앞에서도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전혀 긴장되거나 동요되지 않은 척했다. 가해자에게 겁먹거나 뒤로 물러서지 않는 모습을 보여야, 불안해하는 피해자에게 안전하다는 믿음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의연함은 진짜 내가 가진 내공이거나 상담원으로서 키워진 강점이 아니었다. 사실은 나의 오랜 ‘위장’이자 ‘감각의 마비’였다. 나는 정말 아무렇지 않았던 게 아니다. 그저 ‘모든 것’으로부터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려 했을 뿐이다. ‘느낀다’는 것은 위험하다. 느끼면 흔들리고, 흔들리면 내가 완전하지 않다는 걸 들키게 된다. 나는 나를 지키고자 아주 오랫동안 ‘무감각’의 갑옷을 입고 살았다. 감정에 불씨가 켜지기도 전에 재빨리 꺼버리곤 했다.
“나에게 부정적인 감정이란 숨기거나 빨리 없애야 하는 것을 넘어서서 차라리 느끼지 않는 편이 나은 것이 되어갔다. 가능한 평정심을 유지하려 노력했고 감정이나 욕구가 나를 방해하지 않기를 바랐다.” (36쪽)
“남겨놓은 감정, 해결하지 않은 감정, 느껴야 할 때 느끼지 않은 감정은 언제고 값을 치르러 온다.” (37쪽)
육교 위에서 삶의 끄트머리를 붙잡고 망연자실 했을 때, 나는 삶의 의미와 더불어 나 자신과의 친밀감조차 잃어버린 상태였다. 나는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었고 나 자신에게도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갑옷은 나를 지킨 게 아니라 버리게 만들었다. 심리상담은 갑옷을 벗어가는 과정이기에, 나는 그토록 수치스러워한 것이다. 더이상 멀쩡한 척할 수 없음을 깨달았기에, 내가 약하고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기에, 무엇보다 내가 나를 얼마나 지독하게 혐오하는지 이제는 마주할 수밖에 없기에. “나는 내가 다르고 부적절하고 부족하다고 느낀다.”
수치심은 어디에서 왔을까
이렇게 “수치심을 느낀다”는 사실조차도 수치스럽게 여겼던 나에게, ‘수치심’이라는 주제 하나로 자신의 내면을 깊게 파고든 책 『수치심 탐구 생활-완벽주의와 자기의심에 대하여』는 반갑고도 궁금한 이야기였다. 저자 ‘사월날씨’는 일상에서 벌어지는 작은 균열에도 수치심을 느끼는 자신을 연구의 ‘재료’로 삼아, 심리학적이고 사회적인 관점에서 수치심을 조명, 분석한다.
“사회 속에서 누가 자신을 부끄러워하게 될까? 우리로 하여금 어떤 상태를 부끄럽게 여기도록 만들까? 완벽하고 정상적인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중략) 그렇기에 수치심을 탐구하는 데 있어 평가의 기준과 잣대를 만들어내는 사회의 가치체계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19쪽)
특히 가부장제 사회에서 살아가는 여성에게 수치심이란 한몸처럼 너무나 익숙한 것이다. 어쩌면 이 사회는 여성에게 자기 스스로를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주입하는 것 같다. 저자 역시 여성으로서 자신이 가진 수치심의 바탕에 이러한 성차별적 사회 구조와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는 문화가 강하게 자리하고 있음을 말한다. 수치심은 타인의 기준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것인데, 여성은 “자신의 몸을 독자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으므로, “여자의 분열과 그로 인한 자기부정과 자기혐오는 예정된 수순이다.”
‘완전함’을 버리고 ‘온전함’을 되찾기
어릴 때부터 중증 아토피 피부염을 가진 나는 수치심이 가슴에서 피어오르는 게 아니라 내 온몸의 피부에 들러붙어 있다고 느낀다. 여성의 눈썹 한 올, 점 하나까지 평가하고 아름답기를 요구하는 이 폭력적인 사회에서 신기루 같은 완벽한 몸 외에 모든 ‘다른 몸’은 부정 당한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인식하기 전부터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빛과 태도로부터 부끄러움과 자신에 대한 혐오를 쌓아갔다. “절대로 좋을 수 없는 몸을 미워하지 않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자신을 미워하는 건 또 얼마나 쉬운가.” 결국 내가 감정을 차단한 것은 그것을 느끼기가 너무 고통스럽고 괴롭기 때문이었다.
과거에 비해 내가 수치심으로부터 한발씩 나아가게 된 것은 아토피가 낫거나 자존감을 회복해서가 아니다. 상담을 비롯해 있는 그대로의 나, 그러니까 인정하고 싶지 않은 취약한 나를 드러내는 기회를 계속 가지면서 그것을 타인들과 나누었기 때문이다. 특히 몸을 둘러싼 기억과 감정을 말과 글로 낱낱이 드러냈을 때 그것이 받아들여진 경험은 내가 나로 살아도 괜찮다는 힘을 보태주었다. 그렇게 해도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고, 나는 ‘완전히’가 아니라 ‘온전히’ 존재할 수 있었다.
최근 글쓰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참여자들로부터 공통적인 소감을 들었다. 용기 내어 자신을 개방할수록 “내가 이상한 게 아니구나”, “이런 말을 해도 되는구나”,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니구나” 느끼게 된다고 한다. 홀로 부끄러움을 품은 비밀은 ‘수치’로 또아리를 틀고 나를 옥죄지만, 그것을 바깥으로 뱉는 순간 물거품처럼 힘없이 사라지고 만다. “존재에 대한 수치심이 회복되”기 위해, 우리는 “취약함을 말하고 감정을 나누고 깨져 있는 나를 드러내야 한다.”
[필자 소개] 달리. 에세이 『몸이 말하고 나는 쓴다』(2021)의 작가이며 전북 남원에 있는 지역서점이자 페미니즘 문화공간 ‘살롱드마고’에서 프로그램과 모임을 기획한다. 지역에서 여성들과 글을 읽고 쓰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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